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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 특별기획] 북 핵보유국 공인시 남한의 선택 

NPT 탈퇴, 국제적 고립 남한 국민들은 견딜 수 있나?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北 핵보유국 되면 한국·일본·대만의 핵무장 가능성
미국 핵우산 편입도 차선책이지만 文 정부 추진 미지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 27~28일 베트남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사진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 사진:연합뉴스
솟아오르는 거대한 버섯구름.

이 구름 아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전해주십시오.

지난해 가을 입장료 200엔을 지불하고 방문한 일본 나가사키시(市) 원폭자료관 입구 동판에 영어, 일본어 및 한국어로 기록된 문구다. 자료관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나가사키가 마지막 피폭지가 되길 바라며”란 문장이 10개 국어로 번역돼있었다.

나가사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핵잠수함이 작전을 수행하던 곳이었다. 1945년 8월 8일 원폭 투하 전날 미군이 인근 지역에 소개(疏開) 목적으로 소이탄을 투하했다. 다음 날 아침 원폭 팻맨(Fat man)을 실은 B29 폭격기는 시야를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목표지점을 못 찾고 연료가 떨어져 가자 오전 11시 50분 미쓰비시 중공업 등 공장지대에 팻맨을 투하했다. 반경 5㎞ 내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 1만여 명을 포함하여 7만5000여 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반경 50㎞ 이내에 거주하던 20만여 명의 시민들이 방사능 피해에 시달렸다. 교회, 소학교 등 전쟁과 상관없는 기관과 시설은 물론이고 어린이, 노인 등의 피해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원폭자료관에는 이 원폭이 왜 나가사키에 투하됐고 태평양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전혀 설명이 없었다. 1941년 12월 일본의 기습적인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태평양 전쟁의 기승전결이 기술돼 있지 않았다. 원폭의 피해 실상만을 적나라하게 나열, 일본이 세계 유일의 핵무기 피폭 피해국가라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어 씁쓰레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본말 왜곡은 2012년 발표된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to-Asia)’ 정책과 미·일 동맹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2016년 5월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헌화함으로써 점차 고착화되고 있다.

‘공포의 균형’이 가져온 억지력


▎중국의 마오쩌둥은 핵을 두고 “어차피 써먹지 못하는 물건”이라고 했지만 그 영향력을 간파하고 있었다.
한국 남자들이 군대 복무기간 동안에 만졌던 M16 소총 등 개인화기와 대포·탱크·비행기 등을 통상 재래식 무기(conventional arms)라고 한다. 어떤 재래식 무기도 한 방으로 사람을 7만 여명을 살상하긴 어렵다. 따라서 다량의 재래식 무기가 하나의 핵무기를 상대할 수 없다는 특성을 비대칭성(asymmetric)이라고 한다. 핵무기의 특수한 비대칭성 때문에 강대국이나 독재국가의 지도자들은 무조건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한다.

1972년에 미국·소련·영국·프랑스·중국 등 5개국은 핵 확산 방지를 선언하고 향후 어느 국가가 핵 실험 이후 보유를 선언하더라도 공식적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의했다. 5개국은 핵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하였으며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이후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보유한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및 북한 등 4개국은 NPT에 가입하지 않은 실질적인(substantive) 핵무기 보유국가로 분류된다.

특정국가의 핵무기는 가공할 위력의 비대칭성 때문에 국경을 맞대거나 혹은 인접국가에 확실하고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당초 핵무기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마오쩌둥은 1964년 중국의 핵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는 보고를 받고 지시했다. “어차피 써먹지 못하는 물건이다. 미국과 소련이 우리가 핵보유국이라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 미·소 양국이 핵무기로 중국을 위협하는 사태만 억제하면 핵무기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후발 핵무기 보유국가로서 핵무기의 기능을 어쩌면 정확하게 파악한 발언이다.

중국의 핵실험으로 초비상이 걸린 국가 중 하나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였다. 특히 인도는 1958년과 1962년 두 차례 중국과의 국경 분쟁에서 패배해 두려움은 배가 됐다. 인도 국방부는 중국과의 무력 충돌을 가상한 시나리오에서 재래식 무기론 화력이나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위협 등에서 도저히 핵무기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10년 동안 각고의 준비 끝에 인도는 1974년 5월 18일 포카란 근처의 라자스탄 사막 지하 핵실험장에서 원자폭탄 실험을 실시했고 그 폭발력은 15㏏이었다.

1998년 5월에는 라자스탄 주 포카란의 지하 핵 실험장에서 2차 핵실험이자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핵 출력 TNT 45㏏ 규모였다. 작전명은 샥티 작전이었다. 샥티는 산스크리트어로 ‘신성(神聖)한 힘’을 뜻한다. 인도의 핵개발에는 중·소 분쟁으로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소련의 기술적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중국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인도의 핵 보유는 역설적으로 주변국가에 악몽으로 다가왔다.

인도와 국경 분쟁 및 종교적 갈등을 겪었던 인접국가 파키스탄 군부는 비상이 걸렸다. 국경 인근 포카란 사막에서 진행된 인도의 핵실험은 파키스탄에게는 위협 그 자체였다. 인도군과 국경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를 가정한 시뮬레이션 결과, 파키스탄은 백전백패였다. 결국 파키스탄은 핵개발 이외엔 대안이 없다는 판단 하에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민간 핵물리학연구소 유렌코에 근무하던 핵물리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를 초빙했다.

칸은 1971년 파키스탄이 인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조국의 핵 보유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유렌코의 핵심 기술인 원심분리기 설계도를 빼돌려 파키스탄으로 귀국했다. 파키스탄은 1998년 5월 핵실험에 성공해 이슬람권 최초의 핵보유국이 됐다. 칸은 파키스탄의 영웅이 됐다. 그는 북한 등 일부 국가들에 핵 확산을 지원한 혐의가 드러나 가택 연금을 당하기도 했다가 석방됐다.

결국 중국과 인도,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공포의 균형(balance of horror)’이 성립됐다. 공포의 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지난 2017년 중·인(中·印) 국경에서 나타났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건설의 일환으로 인도 시킴부의 둥랑 지역 인근에서 도로공사를 개시하자 인도군이 반발하고, 중국군이 대응했으나 양측 군인들은 총격전 대신에 투석전을 벌이거나 몸싸움에 그치는 등 자제력을 발휘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 분쟁도 핵무기 보유 이전보다 이후 빈도수가 줄었다. 물론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억제 능력은 분명하다.

‘불완전 협상’ 감지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인도가 개발한 핵폭탄 샥티. 인도가 핵을 만들자 인접국가 파키스탄도 가세했다.
상황 분석의 무대를 한반도로 이동시켜보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북한의 비핵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처럼 트위터와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보다 못한 미국 정보수장 6명은 지난 1월말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이구동성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CIA 등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관장하는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DNI)은 “북한 지도자들은 핵무기가 정권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로버트 애슐리 국방정보국장(DIA)은 “1년 전 존재했던 북한의 핵 능력과 위협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기관장들은 아마도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할 것 같다”고 이들을 비난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과 곧 만날 것이며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의 비핵화 전략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2월 27~28일 베트남에서 개최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확실하게 감지된다. 비건 북핵 협상 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실무협상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구체적 합의안은 오리무중이다. 2차 정상회담은 역시 1차와 같이 날짜를 미리 잡아놓고 의제를 논의하는 역순으로 진행됨에 따라 불완전한 협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불완전 협상은 북한의 부분 핵폐기에 그칠 가능성을 상징한다. 기존 제조된 핵무기를 묵인하는 핵 동결과 종전선언을 통한 제재 완화는 ‘워스트 딜(worst deal)’이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월 이후 하원을 장악한 미국 민주당의 견제와 감시가 심해지면서 핵동결로 비핵화를 달성했다고 포장하고 선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칙적 협상은 예측을 불허한다.

지난해 3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결정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에서 6월 들어서는 상견례(the get-to-know-you)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췄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각종 발언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the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에서 ‘선(先) 미국 본토 위협 제거, 후(後) 완전한 비핵화’로의 궤도 수정을 암시하고 있다.

1월 19일자 [뉴욕타임스]는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영철 부위원장에게 핵연료 물질 및 핵무기 생산 동결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구축 능력을 줄이길 원한다”고 말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집중 논의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핵연료와 핵무기 생산 동결은 영변 원자로와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시설 가동 중단과 함께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공장의 가동 중단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 본토 안전, 김정은 위원장은 제재 완화를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카드지만, 한국으로선 북핵 위험을 계속 안고 가야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김 위원장이 연초 중국 방문 이후 강공 카드를 제시한 데 대해 미국이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한 신년사 표현처럼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일본이 미국, 프랑스에서 핵을 사온다?


▎북·미 정상이 두 번째로 만나는 무대가 될 베트남 하노이. / 사진:연합뉴스
북핵은 과거·현재·미래의 핵으로 구성돼있다. 영변 핵시설은 현재와 미래의 일부 핵에 불과하다. 이미 추출하고 농축한 플루토늄과 우라늄은 현재의 핵이다. 영변 핵시설은 미래의 핵이다. 제조를 완료한 과거의 핵무기도 점차 공식화되고 있다.

주일미군사령부(USJF)는 2019년 1월 18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주일미군의 역할과 관련한 동영상 자료를 통해 북한의 핵위협을 언급했다. 북한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동아시아의 3대 핵보유 선언국(3 declared nuclear states)으로 분류했다. 3개국에 대한 핵무기 숫자를 러시아는 4000기 이상으로, 중국은 200기 이상, 북한도 15기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표기했다. 아마도 미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북한 핵 보유에 관한 최초 기록으로 평가된다. 군사적 위협 요인에 대한 미군의 역할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향후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 재래식 무기론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점차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으로 공인돼가고 있다. 북한 역시 올 신년사에서 “핵 추가 제조·실험·사용·거래를 않겠다. 사실상 핵보유국의 주체이지 핵 폐기의 객체가 아니다”고 선포했다.

북한이 은닉해놓은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은 신고·사찰 및 검증을 통해서만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 핵의 부분적 동결은 세계 비핵화 역사에서 유례가 없다. 모든 핵을 포기하는 이란 핵 협상도 불완전하다며 협상의 파기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이 ‘스몰딜(small deal)’로 북핵 폐기의 성과를 과시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이 핵 동결로 제재 완화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사실상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결국, 북한은 파키스탄의 핵 보유 모델을 벤치마킹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워 ICBM 폐기 등에 집중하며 핵 동결 선에서 협상할 경우,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핵 동결의 대가로 제재를 완화하고 ICBM 폐기에다 주한미군 감축이 본격화할 경우 한반도엔 핵보유국 북한과 재래식 무기국 한국만 남을 것이다. 시간 싸움에서 북한에 약점을 노출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리얼리티 쇼는 고스란히 한국의 안보 불안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 동결 타협은 미봉책이지 해결책이 아님을 인식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북핵 위협이 가속화함에 따라 주변국들의 반응도 예민해지고 있다. 북핵이 불완전하게 폐기될 경우 일본의 ‘비핵화 3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때마침 미국에서 나왔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원자폭탄의 피해를 본 국가로 1971년 국회 결의를 통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도 않고,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세웠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2019년 1월 28일자에서 ‘트럼프 세계에서 핵무기는 자위 수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일 동맹 관계의 약화로 인해 일본이 핵무기 개발 금지 원칙을 파기할 것인지 집중 조명했다. 포린 폴리시는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6개월에서 몇 년 안에 손쉽게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은 현재 47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이것으로 핵폭탄 60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나아가 “일본이 민간용 로켓 프로그램을 개발해 놓고 있어 이를 군사용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현재 핵무기 보유에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돼있으나 북한 또는 통일 한국의 핵 위협에 직접 노출되면 일본의 국민 정서가 급변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마쓰시타 나루시게 도쿄대 교수는 이 매체에 “일본이 핵무기를 직접 만들지 않고, 미국으로부터 핵무기를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핵무기를 일본에 팔지 않으면 프랑스에 타진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북핵에 맞선 한국의 3가지 선택지


▎북한은 2008년 6월 비핵화 의지를 밝히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시켰다. / 사진:연합뉴스
이제 핵무기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재래식 무기 보유국인 한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우선 한국의 선택은 세 가지다. 첫째,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선의만을 믿고 재래식 무기와 흔들리는 한·미동맹에 한국의 안보를 맡기는 시나리오다. 정의용 실장이 지난해 3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받아 적어온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음” 이라는 문장만을 성경책처럼 철석같이 믿는 경우다. 비용이 들지 않는 무대응 방책이지만 ‘비오는 날에 대비해’ 우산을 전혀 준비하지 않는 행태다. 매년 방위비 협상으로 주한미군의 역할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평양의 자비심만을 기대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이상주의 이론의 관점에서도 설명이 미흡하다.

둘째,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부응하고 적극적인 한·미동맹으로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는 대책이다. 남한의 진보정부가 추진할지 미지수지만 최상의 차선책이다.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중국의 반발 등 무리가 있지만 전술핵무기의 일부 도입 등도 시도할 수 있다. 지난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군산비행장에서 보관하다 미국 콜로라도 공군기지로 철수한 전술핵무기라도 재배치해서 공포의 균형을 맞춰야 하지만 이 또한 용이한 일이 아니다. 우선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전개된 한·중 갈등 재연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천문학적 비용 부담 요구 등으로 현실화되기 위해선 국민들의 적극적인 비용 부담 의지와 안보에 대한 철저한 현실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북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명분도 약해지고, 한국이 머니 게임(money game)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안보와 비즈니스를 교환하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고비용이 든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정글과 같은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안보의 무임승차는 어떤 동맹에서도 불가능하다.

마지막 대안이 자체 핵무장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한국이 반드시 수준을 똑같이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고 일본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은 지난 2015년 3월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언급했다.

지난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의 압력으로 핵 개발을 최종적으로 포기하던 시절, 한·미 간에 치열하게 전개된 물밑 첩보전을 이해하고 있는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은 한국의 핵 개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베트남의 공산화에 안보 위협을 느끼고 핵 개발을 추진하던 박 전 대통령은 ‘한국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라는 1976년 키신저 장관의 으름장에 결국 굴복했다.

40년이 지난 한국의 핵무장은 정책적 혹은 기술적으로 가능할까? 우선 기술적으로 핵 관련 전문가들은 1조원의 예산과 6개월의 시간 그리고 1000명의 지원 인력만 있으면 세계 13위 원전대국인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최초로 핵무기가 개발되고 나면 그 이후에 생산되는 핵무기는 더 적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국제사회도 한국의 핵개발 관련 기술적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대표적인 예가 퍼거슨 보고서다. 퍼거슨 보고서는 2015년 4월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인 찰스 퍼거슨(Charles Ferguson)이 핵 비확산그룹에 제출한 비공개 보고서이다. 보고서의 제목은 ‘한국이 어떻게 핵무기를 획득하고 배치할 수 있는가(How South Korea Could Acquire and Deploy Nuclear Weapons)’이다.

주요 골자는 미국과 중국이 일본과 북한을 제어하지 못해 독자적인 핵무장에 나설 경우, 한국 역시 5년 내에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대국 중 하나로 핵무기 획득시 국제사회로부터 한시적이고 형식적인 경제 제재를 받을 수는 있지만,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는 제재를 가하는 쪽에서도 타격을 입게 되므로 지속하기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NPT 탈퇴는 가능할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 경기도 평택시 소재 캠프 험프리스.
한국은 경주 월성 원자로에서 매년 핵무기 416개를 생산할 수 있는 2.5t 분량의 플루토늄이 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4330개의 전술 핵무기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수치라는 것이다. 또한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에서 좀 더 정교한 형태의 핵폭탄을 830개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은 지난 2000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정상 신고 대상인 우라늄 농축 실험을 무단으로 실시하였다가 IAEA의 특별사찰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UN안보리에 회부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장인순 원자력연구소 이사장은 최신 기술인 레이저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학문적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북한의 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이 국제적인 현안으로 부각된 시점이라 쉽게 논란이 가라 앉지 않았다. 정부는 2004년 10월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4원칙’을 발표하고 원자력 통제전문 기관인 원자력통제기술원을 설립하는 등 국제사회의 신뢰 회복에 주력했다.

한국 핵개발의 면죄부는 IAEA가 2008년에 한국의 미(未)신고 핵 활동에 모든 의혹이 해소됐다는 보고서를 내놓음에 따라 핵개발 의혹에 대해 사면을 받았다. 2000년의 사태의 교훈은 한국도 부분적으로 우라늄 농축이 가능하다는 기술적인 확인과 동시에 핵 개발에 실제 나설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국제정치적 측면을 고려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키신저 전 장관의 지적대로 한국의 핵 개발은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을 가져와 일본과 대만 등 연쇄적인 핵 개발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기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명분이 사라지며 역설적으로 대북제재 등이 무용지물로 변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미국은 한국의 핵 개발을 적극적으로 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 입장에서 유대인 연결망을 통해 핵 개발을 은밀히 방조 및 지원하던 이스라엘과는 다르다. 우선 한국이 공식적으로 핵 개발에 나서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한다. 한국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핵무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NPT 제10조에 의거해 탈퇴할 수 있다. NPT 제10조 1항에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이 결정되는 경우 탈퇴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이 조항을 원용해 조약 탈퇴를 발표한다면 후폭풍은 지난 2000년 경험에서 판단하건데 간단치 않아 경제적,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고수해 발전소를 축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원전은 한국 전력 공급량의 3분의 1 수준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원광석은 에너지 생산 및 X-레이 촬영 등을 목적으로 미국·호주·인도 등에서 수입된다. 아쉽게도 충북 진천이나 옥천 등에서 채굴 가능한 한국의 우라늄 매장량은 실험실에서 사용할 정도의 소량이다. 197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내 우라늄 매장 실태를 파악한 결과 약 24만t 내외로 평가했다. 실제 가채량 및 순도 등을 분석하면 경제성이 없는 소규모다. 북한의 경우 가채량 기준으로 400만t에 달한다.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충분한 양으로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버틸 수 있는 토대다.

6·25전쟁 감행한 북한 체제의 비이성적 특성


▎1970년대 당시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핵 개발 추진을 저지했다.
1981년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에 발생한 포클랜드 전쟁 초기에 미국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자 영국의 대처 수상은 “만약 미국이 영국의 입장을 지지해주지 않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함으로써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냈다.(한용섭, [북한 핵의 운명]) 핵무기 사용이 물리적으로 어렵지만 얼마든지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사례다.

북한 핵이 미국의 위협을 막고 체제를 수호하는 방어성 성격의 무기라는 일각의 주장은 6·25 전쟁을 감행한 북한 체제의 비이성적 특성을 간과하는 판단이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네트 박사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이 많아질수록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핵위협이 노골화되면서 안보의 한계가 노출되고 미국의 핵우산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불확실함에 따라 국민들이 강력하게 핵무장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대책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동맹이 가치동맹에서 매년 방위비 협상으로 씨름을 해야 하는 ‘아파트(condominium) 동맹’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맞춤형 억제전략(tailored deterrence strategy)’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도 불가피하다.

무르익지 않은 우리 안의 핵담론


▎경주 월성 원자로는 매년 2.5t 분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종적으로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지 여부는 국민의 안보의식에 달려있다. 안보 불안이 심해지면서 북핵 위협이 보다 구체화되고 외국 자본이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면 경제를 위해서도 안보 불안을 해소해야 하는 시점이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들의 핵무장 여론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였다.

1996년 7월 미국 랜드연구소와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91%가 핵무장 찬성이었다. 이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52%, 2016년 9월 5차 핵실험 직후에는 58%,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직후에는 60%의 찬성 의견을 보였다.

북핵 위협이 심각하지만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고립을 국민들이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해 아직은 의견이 집약되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핵무장 담론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 ‘핵 무장론자인가?’다. 오 전 시장은 “절대 핵무장론자는 아니나 담론 형성을 통해 동북아 국제정치의 레버리지를 형성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아직은 핵무장이 정치인의 공약으로 확정되기엔 여론이 숙성되지 않았다는 것과 실제 실현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 시선이 만만치 않음을 반증한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서 “미국의 정책은 북한 정권을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다루어야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을 가정하며 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그 땅에 농부들로 하여금 환금(換金) 작물인 해바라기를 심게 했던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2015년에 발간된 회고록 [핵 벼랑을 걷다: My journey at the nuclear journey]에서 “장관 시절 가졌던 북한과의 음울한 경험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면 얼마나 위험할지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페리 전 장관의 독백은 사실상 현실화되고 있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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