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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트럼프가 존 볼턴을 남미로 보낸 이유 

북한보다 중남미 좌파정권 손본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美, 베네수엘라 이어 쿠바·니카라과 반미 정권 축출 노려
역내 중국·러시아·이란 영향력 억제하고 친미 벨트 구축 포석


▎“마두로 아웃”을 외치는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 참여자. /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중남미 지역에 대한 헤게모니는 1990년대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자유무역과 개방정책을 기치로 내건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중남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중남미 각국에서 좌파 정권들이 반미주의를 내세우면서 득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말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남미 12개국 중 파라과이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10개국에서 좌파정권이 집권했다.

이 때문에 핑크 타이드(pink tide,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남미지국장 래리 로터가 2005년 남미가 좌파 천국이 됐다면서 처음이 용어를 사용했다. 게다가 미국이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하느라 중남미 지역을 챙길 겨를이 없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중남미 좌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는 등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뒷마당 되찾아라” 트럼프 특명 받은 볼턴


▎리처드 세고비아라는 베네수엘라 청년이 1000%가 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없어진 볼리비아화 지폐를 재료로 지갑이나 벨트, 핸드백 등을 만들어 팔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핑크 타이드는 2015년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우파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좌파 정권들이 통치해온 중남미 국가들은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각종 복지 혜택과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가 악화하고 국가 재정은 파탄 상태에 빠지게 됐다. 실업률과 인플레가 치솟고 생필품뿐만 아니라 식량까지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자 이들 국가의 민심은 등을 돌렸다.

2016년 6월 페루에서 우파인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이 당선된 데 이어 같은 해 8월 핑크 타이드의 중심 역할을 했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핑크 타이드는 눈에 띄게 퇴조했다. 칠레에서는 2018년 3월 억만장자 사업가 출신의 우파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4월 열린 파라과이 대선에서도 우파인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가 당선됐다. 같은 해 6월 콜롬비아 대선에서도 우파인 이반 두케 마르케스 후보가 정권을 잡았다. 특히 같은 해 10월 치러진 브라질 대선에서 친미 우파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남미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ABC(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국가들에서 친기업·친시장·친미 정책을 앞세운 우파 정당들이 집권하게 됐다. 이로써 남미 12개국 중에서 우파가 정권을 잡은 국가는 6개국, 좌파가 통치하는 국가는 6개국이 됐다.

남미의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면서 미국 정부가 새로운 개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강경파이자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자)의 상징적인 인물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에게 중남미 정책을 총괄하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에 북한 문제보다는 중남미 좌파 정권들을 적절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쿠바를 비롯해 중남미 좌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전략을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지역을 다시 미국의 뒷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쿠바 유화정책을 마뜩지 않게 생각해 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12월 쿠바와 관계 복원을 선언하면서 해빙 분위기의 물꼬를 텄고, 2015년 7월엔 외교단절 54년 만에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의 쿠바 개인 여행을 제한하고 쿠바 군부와 거래하는 미국 기업의 거래를 단속하는 제재조치를 내리는 등 양국 관계를 국교 정상화 이전으로 되돌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쿠바 등 중남미 좌파 국가들에 대한 거부감을 십분 활용하면서 베네수엘라를 제1의 공략 목표로 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11월 베네수엘라를 니카라과, 쿠바와 함께 ‘폭정의 3인방(troika of tyranny)’이라고 칭하면서 “폭정의 3인방은 이 땅에서 영원히 견디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볼턴 보좌관의 ‘폭정의 3인방’ 발언은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칭했던 것과 비슷하다.

‘마두로 축출’ 동시다발적 작전 돌입한 美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수도 카라카스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볼턴 보좌관이 가장 먼저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세에 나선 이유는 무엇보다 베네수엘라가 반미와 핑크 타이드를 대표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그동안 쿠바 등 좌파 국가들에 원유를 싼값에 공급하는 등 반미 연대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베네수엘라는 하루 10만 배럴 규모의 석유를 거의 무료로 쿠바에 공급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중국·러시아·이란 등과 지나치게 밀착해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마두로 정권에 500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원유 등 에너지를 확보해 왔고, 러시아도 170억 달러를 지원하거나 투자했다. 러시아는 또 최근 전략핵폭격기인 TU-160을 베네수엘라에 착륙시키는 등 군사 지원을 해왔다. 이란은 핵개발 원료인 우라늄을 베네수엘라에서 공급받고 있으며, 쿠바 등과 함께 베네수엘라의 군부 및 정보기관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볼턴 보좌관은 최근 베네수엘라 특사로 임명된 엘리엇 에이브럼스와 함께 마두로 정권을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에이브럼스 특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인권담당 국무부 차관보와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중동 담당 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는 등 대표적인 네오콘이다.

미국 정부는 마두로 정권 교체를 위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제재조치로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마두로 정권으로의 송금을 차단한 것을 들 수 있다. 마두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연간 110억 달러의 수입원이 막히는 조치다. PDVSA는 마두로 정권의 생명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PDVSA의 원유 생산량은 현재 하루 120만 배럴에 달한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중 40%가 미국으로 향할 정도로 미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주요 수출 시장이다.

미국 에너지 정보국(EIA)에 따르면 지난해 베네수엘라산 원유와 석유 제품 수입량은 하루 평균 50만 배럴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제재조치에 따라 베네수엘라 정부가 미국에 원유를 수출할 수 없게 되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마두로 대통령은 군부 출신 인사들을 PDVSA의 요직에 대거 임명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해 왔다. PDVSA를 제재하면 군부가 직격탄을 맞아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흔들릴 수 있다.

반미 표방한 ‘남미판 유럽연합’ 와해 수순

미국 정부는 또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스스로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30일 이례적으로 과이도 의장과 전화 통화를 갖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이도 의장에게 “역사적인 대통령직 인수를 축하하고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싸우는 베네수엘라 야권에 강력한 지지를 보낸다”고 격려했다.

미국은 군사개입 카드도 꺼냈다. 볼턴 보좌관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부문 제재조치를 발표할 당시 ‘5000 병력을 콜롬비아로’라고 적힌 메모장을 고의로 언론에 노출시켰다. 미국은 남미 지역에서 브라질·콜롬비아·페루와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콜롬비아와 페루에서는 미군기지가 운용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면서 “베네수엘라에서 과이도 의장과 야당 인사, 미국 외교관에 대한 폭력 사태가 있을 경우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면서 대외 개입을 꺼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에 대해선 군사 개입도 불사한다는 입장까지 견지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브라질, 콜롬비아와 함께 과이도 의장의 ‘임시 대통령’ 선언 직후 동시다발적으로 이를 인정하는 등 ‘비밀외교’를 통해 사전에 조율까지 했다. 미국을 비롯해 베네수엘라 정국 위기 해결을 위해 2017년 페루 리마에서 미주 14개국 대표들이 결성한 ‘리마 그룹’ 중 캐나다·브라질·콜롬비아·아르헨티나·칠레 등 11개국이 일제히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 것도 이런 비밀 외교 덕분이었다.

과이도 의장은 지난해 12월 중순께 비밀리에 미국·콜롬비아·브라질을 방문해 마두로 정권 축출 전략을 설명했다. 이들 3개국은 과이도 의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앞서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11월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해 대선에서 승리한 당시 보우소나루 당선인과 만나 중남미의 현안 및 미국과 브라질의 관계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브라질을 중심으로 남미 각국과 함께 ‘자유주의 동맹’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남미에서 우파 정권 국가들이 결집할 경우 남미공동시장(MERCOSUR, 메르코수르)과 ‘남미판 유럽연합’인 남미국가연합(UNASUR, 우나수르)은 자칫하면 해체될 수도 있다. 메르코수르는 1991년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 출범한 관세동맹으로 2012년 베네수엘라가 추가로 가입했다. 현재 볼리비아가 가입 절차를 밟고 있으며 칠레·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가이아나·수리남은 준회원국이다.

美 궁극적 타깃은 중남미 지원하는 중·러


▎2017년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손을 맞잡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트럼프 정부는 마두로 정권 교체 이후 다음 차례로 쿠바와 니카라과 정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의 전략은 마두로 정권 붕괴를 고리로 쿠바와 니카라과 정권도 와해하고 더 나아가 중남미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1월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중남미의 3대 좌파 정권들과 이들을 비호하는 중국·러시아·이란의 영향력을 몰아내 남미를 재편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어 트럼프 정부가 50년 넘게 눈엣가시였던 쿠바 정권 타도를 다음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쿠바를 무력화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부터 손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는 미국은 다음 조치로 쿠바에 대해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 새로운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제재가 발동되면 쿠바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해외투자는 동결된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헬름스 버튼법(Helms-Burton Act, 정식 명칭은 쿠바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법)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1996년 3월 발효된 이 법은 미국이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쿠바와 거래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먼저 손본 후 니카라과를 해결한다는 전략이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니카라과의 독재정치, 정부탄압, 폭력사태 등에 대해 비난의 수위를 높이면서 밑밥을 깔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계획대로 마두로 정권이 축출되고 베네수엘라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면 쿠바와 니카라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 등 중남미의 친미 우파 정상들이 미국 편에 서서 반미 좌파 국가들에 압박을 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중남미에서 반미세력 규합 명분만 만들어 주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쿠바·볼리비아·터키·시리아·이란 등도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자 마두로 정권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아무튼 뒷마당인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트럼프 미국 정부의 전략이 중남미 우파와 좌파 정권들 간의 갈등과 대립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도 개입하면서 중남미가 ‘거대한 게임(Great Game)’의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각국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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