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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인터뷰] ‘광주형 일자리 설계자’ 신재형 전 광주시 자동차특임단장 

“광주시, 현대차의 고민부터 공부하라!”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 녹취 정리 신재현 인턴기자
■ 투자협약 체결됐어도 이제 시작… 독일 ‘AUTO 5000’ 모델은 부적절
■ 日 기타큐슈 같은 친환경·자율주행차 만드는 최신공장으로 가야
■ ‘적정임금·적정노동’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자 존엄한 삶이 목적
■ IMF 경제 위기 당시 광주 기아차 회생에 참여… 정찬용 전 수석과 위원회 설립


▎신재형 전 광주시 자동차특임단장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제대로 정착되고, 타 지역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바이블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신재형(61) 전 광주광역시 자동차특임단장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려는 사람이다. 2019년 1월 31일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주주로 참여하는 완성차 공장, 소위 ‘광주형 일자리’의 투자협약이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 이용섭 광주시장, 이원희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이쯤 되면, ‘노·사·민·정의 대타협이 이뤄졌으니 광주형 일자리는 ‘다 된 일’처럼 보고 싶은 것이 대중의 심리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의 안정과 지속까지는 아직 수많은 ‘if(만약)’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희망을 말하되, 현실에 발을 디디고 일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다.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7000억원이 순조롭게 모인다면?’, ‘2021년까지 광주에 자동차 공장이 계획대로 완공된다면?’, ‘1000cc 미만 경형 SUV의 연 10만 대 생산과 판매가 잘 이뤄진다면?’, ‘누적생산 35만 대 달성까지 근로자 평균 초임 연봉이 주44시간 기준 3500만원 수준으로 노사분규 없이 유지된다면?’, ‘광주시와 중앙정부가 주거·교통·교육·의료·문화 등에 걸쳐 복지 지원이 지속 가능하다면?’, ‘궁극적으로 친환경차·무인 자동차 생산 기지가 될 수 있다면?’ 등이 광주형 일자리 앞에 놓인 ‘if’들이다.

사실 광주형 일자리는 굉장히 다면적인 개념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노·사·민·정의 합의로 자동차 법인을 세우겠다’는 대전제만 일치했을 뿐, 그 구체적 방법론과 롤모델에 관해선 중구난방이었다. 이런 차이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광주형 일자리의 플레이어 당사자들(정·관계, 노동계, 현대자동차)을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 그동안 신 전 단장이 쌓아온 업(業)이었다. 기획력과 인맥, 그리고 인내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래서 그를 두고 ‘광주형 일자리의 설계자’라고 칭하는 이도 있다.

2월 11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사무실에서 만난 신 전 단장은 광주형 일자리 협약식에 관해 감상적 소회를 말하지 않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담담히 말했다. 어떤 사안이 현재 처한 좌표를 알려면, 과거의 기원과 궤적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신 전 단장의 인생 경로와 생각은 광주형 일자리의 과정과 포개진다.

신 전 단장은 광주 출신이다. 그에겐 ‘1980년 5월 광주’에 관한 마음의 빚이 늘 있었다. 당시 그는 군 복무 중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고 넘길 수 없었다. 부채의식을 안고 살던 와중에 1997년 IMF 경제 위기가 닥쳤다. 기아자동차가 위기에 처했다. 기아차는 금호타이어와 더불어 광주 제조업의 축이었다. 광주 출신 인사들이 뭉쳐 광주 기아차 살리기에 참여했다. 이때 그도 주도적으로 동참했다. 그때 시작된 광주 그리고 자동차와의 인연은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아우토 5000’, ‘GM모델’은 광주의 미래 아니다


▎기아차 광주공장 내 차량 생산라인. 기아차는 금호타이어와 더불어 광주 산업의 핵심으로 꼽힌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1965년 아시아자동차란 회사가 광주에 생겼다. 울산 현대차보다 역사가 빨랐다. IMF 때 ‘기아차 광주공장을 살려달라’는 광주 출신 여론 주도층의 청원이 많았다. 1999년 현대차가 기아차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했다. 그 다음엔 ‘기아차 광주 공장의 생산량을 늘려달라’, ‘핵심부품 공장을 설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광주공장 생산이 60만 대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2014년 윤장현 광주시장이 당선됐다. 그는 선거공약으로 자동차 170만 대 생산을 내걸었다. 독일의 ‘아우토(AUTO) 5000’을 모델 삼아 ‘광주형 일자리’라고 네이밍했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윤 시장이 내놓은 노사협업 플랜이었다.”

담론이 시작될 시점의 환경은 어땠나?


▎현대차 실무자들이 광주형 일자리 법인공장이 설립될 빛그린산업단지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소위 ‘반값 임금’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한 단계였다. 1980년대 노동투쟁이 치열했다. 그 결과로 신규 노동자들을 뽑지 못하다 보니 평균연령은 높아졌고, 연공서열에 맞춰 임금은 올라갔다. 그리고 노동시간이 길었다. 일을 열심히 해 길어진 측면도 있겠지만 휴일근무나 야근수당을 받기 위한 영향도 있었다.”

‘아우토 5000’ 케이스가 부각되는데 광주형 일자리에 이식될 수 있나?

“지속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기업 환경 등에서 토양이 다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주(州)정부가 일정 부분을 기업에 투자하고,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에 간섭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나라다. 독일 폴크스바겐이 1999년 경영악화로 볼프스부르크시 공장의 해외 이전을 추진하니 지방정부와 노조가 ‘가지 말라’고 요청했다. 폴크스바겐이 이를 받아들여 만든 별도법인이 ‘아우토 5000’이었다. (5000마르크 수준으로 노동자 임금을 낮추되 5000명을 고용하는 타협안이었다. 2001년 8월 교섭이 타결됐다.) 그러나 7~8년 후 원위치가 돼버렸다.”

GM의 ‘새턴 프로젝트’도 언급되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동차업계엔 불문율이 있다. 임금이 10만 달러를 넘어가면 그 나라의 자동차산업은 망한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게 돼있다. M&A(인수합병)되거나 사라진다. 스페인과 영국이 그런 위험을 겪었다. (이럴 때 구원투수처럼 등장하는) GM은 (일시적인) 고용을 빌미로 정부 보조금을 빨아먹고 도망가는 회사다. 호주에서 자동차산업이 없어졌고, 아시아시장에서도 중국을 제외하면 거의 폐쇄했거나 폐쇄할 것이다.”

그렇다면 광주형 일자리가 참고할 모델은 없는 것인가?

“일본이 조용히 추진해 온 기타큐슈 모델이 있다. 도요타 렉서스가 기타큐슈에서 만들어진다. 도요타뿐 아니라 닛산, 스바루 등 5개 완성차 업체가 들어와 있다. 연 154만 대를 생산한다. 이 지역에 자동차 부품업체가 1000개 있다. 이 중 20%가 자동차 생산 관련 로봇을 만든다. 이 지역 연 소득은 14만 달러 안팎이다.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생태계가 완벽히 구축돼 있다.”

기타큐슈 모델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첫째,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이 도쿄의 3분의 1이하로 저렴했다. 둘째, 야하타 제철소 부지가 있었다. 셋째, 기타큐슈의 목표 설정이었다. 원래 규슈 지역은 철광과 탄광산업이 발달했다. 1960~1970년대 공해가 심각했다. 일본 정부는 산탄지역 특별법을 만들었다. 폐광되는 지역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한 것이다. 어느 지역이 특정 산업을 지정하면 보조해주는 시스템이다. 타 지역 대부분은 테마파크 등 관광산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기타큐슈는 자동차산업을 선정했다. 그리고 도요타와 결합했다. 별도 출범한 도요타 큐슈 법인은 아이치현에 있는 도요타 본사, 부품 공장과 상생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정확한 숫자를 공개하진 않지만 도요타 기타큐슈의 노동자 임금은 도요타 아이치 본사보다 현재까지 40% 이상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세기 후반의 대립구도에서 탈피해야


▎1월 31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식이 성사됐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장(왼쪽), 이용섭 광주시장(왼쪽 두 번째), 이원희 현대차 대표이사(오른쪽)와 기념촬영을 했다. / 사진:연합뉴스
신 전 단장과 윤장현 당시 광주시장 사이엔 접점이 없었다. 둘을 이어준 이가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이었다. 윤 시장은 광주형 일자리를 업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의욕과 조직, 자금력은 있었지만, 기획하고 실행할 적임자가 필요했다. 정 전 수석은 광주시의 조력 아래 이 무렵 사단법인 자동차산업밸리 추진위원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 전 단장은 3번을 고사했다. 훗날 자동차산업밸리 추진위원장이 되는 정 전 수석도 끈질겼다. 2014년 9월, 정 전 수석과 신 전 단장이 서울에서 또 만났다. 그때도 신 전 단장은 “광주에 자동차 기업이 왜 오느냐? 올 이유가 없다”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날 밤 귀가하던 중 문득 심경에 변화가 일었다. 일종의 소명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해보겠다”고 말한 뒤 일은 속도전으로 진행됐다. 자동차산업밸리 추진위원회는 그로부터 두 달 후인 11월에 출범했다. 신재형 전 단장은 상임 부 위원장을 맡았다.

광주형 일자리를 위해 현대차그룹과 어떻게 관계를 시작했나?

“2012년 광주에 현대모비스 공장이 들어섰다. 핵심 부품공장을 광주로 보내달라는 지역 출신 여론 주도층의 요청에 현대차가 응답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기아차 광주 공장 생산용량(capacity)도 최대 62만 대로 늘었다. 당시 현대차는 광주에 공장 증설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되면서 대선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박근혜 후보는 ‘광주 기아차 100만대 생산’, 문재인 후보는 ‘기아 시티’ 공약을 내걸었다. 정치바람을 타니 모든 것이 중단됐다. 현대차와 모든 채널이 끊어졌다.”

왜 그렇게 됐을까?

“기업은 지속성을 중시한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정치바람 타는 것을 싫어한다. 가령 자동차로 광주가 시끄럽게 하면, 울산이나 다른 도시들은 가만히 있겠나?”

그렇다면 현대차를 움직이게 할 유인책은 무엇이었나?

“광주에 자동차를 몇십만 대 더 생산하게 하는 것으로 기업이 움직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큰 가치를 내세워야 했다. 그래서 ‘제조업 르네상스’란 가치로 정리했다. 이를 수단으로 대한민국 중산층을 재건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광주형 일자리와 제조업 르네상스가 어떻게 연결되나?

“(친환경, 자율주행과 관련된) 자동차를 연 30만 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최신형 공장을 가져야 한다. 자동차는 전·후방 고용효과가 크다. 그렇기에 적정시간 노동과 ‘반값연봉’으로 영속성을 가지는 모델을 (현대차에) 제시해야 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광주시가 합작 투자를 해서 별도법인으로 가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애플과 팍스콘의 관계처럼 위탁생산 공장으로 가자고 주장했다.”

당시 의견은 큰 틀에서 현재 광주형 일자리의 콘셉트가 됐다.

“자본의 착취, 노동의 쟁취란 20세기 후반의 대립구도에서 탈피하자고 생각했다. 그동안 공장이 들어서면 시민들에게 좋을 게 뭐가 있었나. 노동자나 좋았지. 연봉 1억원 받는 소수의 노동자가 아닌 시민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노동자에게 월급을 절반 받으라고 하면 어느 노동자가 좋아하겠나. 그러니까 기업은 경영 상황에 맞게 적정임금을 주고, 나머지는 (복지의 형태로) 지방정부가 보전하라는 것이다. 미국 역시 보조금으로 자동차 공장을 유지시켰다. 일자리가 창출, 유지되지 않는 도시는 존속할 수 없다. 광주도 마찬가지다.”

현대차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통하던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14년 11월경 광주 기아 공장에 왔다. 윤 시장, 정찬용 위원장, 나 이렇게 셋이 정 회장을 만났다. 정 회장은 ‘광주에 별도 공장을 새로 설립하는 것은 어렵다’고 답했다. 당시 기아차는 멕시코에 공장을 짓고 있었다. 정 회장은 ‘광주공장은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생산량을 줄이지 않겠다는 뜻이어서) 중요한 말이었다. 이후 2015년 1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이하 당시 직함), 정진행 사장, 박광식 부사장을 만났다. 다른 것은 흘려듣더니 별도법인 이야기가 나오자 ‘거기까지 생각했어요?’라며 눈을 반짝이더라. 현대차는 한국 공장이 가장 낡았다. 현대차 역시 최신 공장을 한국에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노조와의 관계 때문에 한국에 만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전기차·수소차 전용 공장을 한국에 세울 때, 광주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또 한 번 더 눈이 반짝이더라. 그러나 이후 진전은 없었다.”

연애(투자유치)와 부부싸움(임금협상)을 같이 하려니…


▎민주노총 산하인 현대·기아차 노조가 1월 31일 광주시청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대차는 경형 SUV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봐야 할 사안이다. 차종은 자동차회사의 극비사항이다.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빛그린산단국가산업단지는 어떻게 활용될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월 11일 충북 충주에서 현대모비스 수소연료전지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총 123만 평이다. 광주에 60만 평, 전남 함평에 60만 평이 걸쳐있다. 자동차 전용산업단지다. (2021년 완공 예정인 광주형 일자리 공장 용도로) 현대차가 들어오면 20만 평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 외의 땅도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할 텐데.

“(광주형 일자리 협상 과정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투자유치로 협상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임금협상으로 변질된 것이다. 투자유치 협상이 연애라면, 임금협상은 부부싸움이다. 부부싸움은 싸우고 나서도 다시 같이 살 수 있지만 연애는 싸우고 나면 끝이다. 둘은 애초에 결이 다른데 이것을 같이 하려니 자꾸 어그러졌다. 광주시는 그 123만 평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갖고 현대차 투자유치를 봐야 한다.”

투자유치와 임금협상이 병행됐으니 그토록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겠다.

“새 공장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기존 노동단체가 왜 관여를 하는지 모르겠다. 나쁜 일자리라고 생각되면 오지 않으면 된다. 노조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일거리가 생기면 일자리가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일자리를 더 늘릴 수 없으면 나누면 된다. 노조의 일은 일거리를 만들기 쉽게 하는 것이고, 이 일거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안 되면 나눠야 한다. 주 52시간 노동이 노동자가 일을 덜 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동의 존엄함을 경험시키기 위해 자신의 임금을 낮춘 것이다.”

원래 빛그린산업단지는 자동차 전용 산업단지가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3030억원 예산 투입이 확정됐다. 예비타당성(예타) 통과 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가 도움을 줬다. 당 대표 당선 이후 첫 국회 포럼 테마가 광주형 일자리였다.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정현 의원 등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광주형 일자리에 관심을 가졌다. 예타 통과 위한 산자부 단계에선 김동철 의원, 기재부 단계에선 장병완 의원이 도와줬다. 정부에서도 협력해서 1년 만에 예타를 통과했다. 빨리 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예타는 친환경 부품 클러스터로 통과됐다. 부품이란 단어를 넣은 이유는 완성차로 진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대선 국면에서 ‘부품’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약속을 지켰다. 광주형 일자리는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떻게 이야기했나?

“후보 때 문 대통령과 한 이야기가 있다. ‘호남을 놓고 보면 역대 대통령들의 사업 브랜드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시아자동차, 나주 비료공장, 여수 석유화학단지를 만들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광양제철을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시아문화전당을 만들었다. 여수 엑스포를 개최했고, 한국전력을 나주로 이전했다. 여수는 경주 관광객을 넘어섰다. 나주는 100여 개 기업이 들어섰다.’ 그러면서 당시 문 후보에게 ‘문재인표 호남 산업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속마음은?


▎신재형 전 단장은 “현대차의 광주형 일자리 투자는 발을 담근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봤다.
광주형 일자리가 합의까지 격한 난항을 겪었던 지점이 있었다. 광주시와 현대차 간 광주형 일자리 협의안을 두고 노동계에서 반발한 것이다. ‘5년간 임단협 유예’ 조항이 그것이었다. 노동계는 노동3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라고 봤다. 이는 최종적으로 ‘가시적 경영성과 창출과 같은 중대한 사정 변경이 있는 경우 유효기간 도래 이전이라도 노·사·민·정 협의회에서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도록 부속 결의를 협정서에 추가한다’는 절충안을 협정서에 넣은 뒤에야 봉합됐다.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이 당초 예상보다 늦었다.


▎도요타, 닛산, 스바루 공장 등 자동차 생태계가 구축된 일본 기타큐슈 지역은 광주형 일자리의 롤모델로 꼽힌다. 사진은 기타큐슈의 미야타 공장.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조항이 있었다. 노동규범에 위배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청와대 관계자에게 ‘이건 누구 생각이냐? 실행 단계에서 관철되기 힘들다’고 물었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보자’고 말했고, 2017년 11월부터 논의와 협상이 본격화됐다. 계획대로 됐으면 2018년 1월 말 혹은 2월 초에 조인식을 하는 것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광주시에서 임금문제를 들고 나오자 분위기가 흐려졌다. 결국 일이 1년 늦어지게 됐다.”

광주시의 전략적 미숙인가?

“기업이 결정하면 지자체는 지원의 문제로 끝내야 한다. 기업의 결정을 비트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기업이 우리 지자체로 오면 지원해 주겠다’, 이것이 지자체장들의 행태다. 광주형 일자리가 중간에 6번 무산됐다. 이것은 현대차 노조의 반대 때문만이 아니었다.”

현대차가 곤혹스러운 상황들이 있었겠다.

“정주영 선대회장과 정몽구 회장을 직접 뵌 적이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의 속마음을 짚어본다면, ‘내 할아버지(정주영 선대회장)가 자동차 공장을 울산에 세울 때, 온 나라 온 국민이 환영했다. 내 아버지(정몽구 회장)가 기아차를 인수했을 때, 온 국민이 기아차의 회생을 소망했다. 그런데 내가 광주에 투자한다고 하니, 먹튀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더라’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투자를 할 수 있겠나. 정 부회장은 하면 크게 갈 것이다. 가면 미래로 갈 것이다. (현대차의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앞서 지자체의 마인드부터 변해야 한다는 뜻에서) 지자체는 기업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지원을 해주고, 없으면 말아야 한다. 기업에 해가 되는 방향인데, 좋다고 우기면 안 된다. 광주형 일자리의 소위 4대원칙이 그렇다.”

4대원칙은 적정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을 일컫는다.

“이 중 적정임금, 적정노동을 빼놓고 기업에 도움 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4대원칙이 존속됐다면 이런 일자리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어려웠다. 광주형 일자리는 이름만 남기고, 4대원칙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실제 어떻게 됐나?

“관철되지 않았다. 광주시가 나섰지만 현대차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걸로(4대원칙 안 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가령 하청회사의 임금까지 (현대차가) 책임지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만 이 중에서 적정시간과 적정노동은 청와대와 현대차 모두 합의했다.”

“어떻게 사는지에 관해 노동자가 고민할 때”


▎기아차 멕시코 현지 공장은 40대 생산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자동차 생산에서 멕시코에 추월당한 상태다. /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향후 광주형 일자리의 안정화와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로 광주가 기업을 이해해야 한다. 광주시와 광주 시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광주엔 대기업이 거의 없다. 광주시가 자동차산업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현대차의 고민을 공부해야 된다. 어떻게 하면 현대차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면 안 된다. 광주시는 빛그린산업단지를 어떻게 채워갈 것이며, 이것이 어떻게 일본 기타큐슈를 쫓아가고 닮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광주가 광주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인가?

“어떻게 해야 세계 자동차산업을 선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성공할 수 있다. 자본의 논리로만 고민하면 안 된다. 광주형 일자리에 여러 주체가 있지만 결국은 하나다. 기업은 기업 본연의 일을 하고, 노동자는 적정한 선에서 자기 주장을 하고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모델이 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결국 삶의 형태에 관한 실험인 것 같다.

“가령 대졸자가 대기업에서 연봉 5000만원을 받는다고 치자. 그런데 전세비용이 한 해 2억원씩 오른다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반면 초임이 3000만원인데 주택 지원을 받는다고 치자. 어느 삶이 더 나은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임금뿐일까. 임금이 아닌 것들을 정부, 지자체가 체계적으로 지원해줘서 기업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기업은 (공장을 지을 때 국내의) 새만금·목포·구미를 고민하지 않는다. 베이징·하노이·뭄바이 등 세계를 시야에 넣고 고민한다. 그러니 기업을 끌어들이려면 자기 지역에 맞는 산업을 요구해야 한다. 광주는 자동차 생태계가 어느 정도 구축된 상태였다. 토대가 갖춰져 있지 않은데 아무 연관성 없는 산업을 요구하면 안 된다.”

광주형 일자리가 잘 안 되면, 광주시가 볼모로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투자 주체다. (회사가 망할 것 같은데 자본을 계속 투입하면) 배임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회사 설립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를 수 있겠지만 자본을 투자할 때는 사업계획서, 타당성 검토 그리고 수정 사업계획서의 절차를 거친다. 기업은 미래 자산을 만들어내는 조직이다. (광주형 일자리 법인 투자금 700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세우기 위한 작업은 현대차가 주축이 되어서 현대차의 정보를 가지고 광주시와 함께 작성할 것이다.”

자동차산업밸리 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해체됐다. 광주형 일자리의 투자협약을 그는 바깥에서 지켜봤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2월 10일 ‘한국의 2018년 자동차 생산량이 402만8834대로 전년(411만499대)에 비해 2.1% 줄었다’고 발표했다. 2015년 455만600대였는데, 3년 연속 50만 대 이상씩 줄어들고 있다. 내수시장은 150만 대 선에서 정체돼 있고, 수출도 250만 대 이하(245만대)로 떨어졌다.

어느새 한국의 자동차 생산은 멕시코보다 떨어지는 세계 7위로 내려앉았다. 멕시코엔 기아차 공장이 있다. 신재형 전 단장은 헤어지면서 “(광주형 일자리 타결로) 현대자동차그룹이 23년 만에 국내에 공장을 짓는다. 이제 더 큰 결단을 끌어내는 것은 광주시와 광주 시민의 임무”라고 말했다.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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