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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대선 공약 뒤집는 주요 국책 사업 暴走 실태 

DJ가 만든 예비타당성 조사 이명박·문재인 정부가 허물다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균형 발전과 지역경제에 기여한다는 보장 없어
정부의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MB정부 4대강 사업과 닮은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29일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예타 면제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공공인프라 사업을 해야 하는데, 아시는 바와 같이 서울, 수도권은 예타 면제가 쉽게 되는 반면, 지역은 인구가 적어서 예타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걸 해소하기 위한 방식이 예타 면제인데 무분별하게 될 수는 없다. 엄격한 선정 기준을 세워서 광역별로 1건 정도의 공공인프라 사업들은 우선순위를 정해서 선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업이 뭔지, 그리고 예타를 거치지 않지만 가장 타당성 있는 사업이 뭔지 협의하고 있다.”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이다. 같은 달 29일 정부는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전국 14개 지역의 23개, 24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후폭풍이 거세다. 지자체는 환영하지만 무분별한 세금 낭비가 아니냐는 비판이 매섭다.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소장은 논평을 내고 “법령이 면제 사유를 정하고는 있지만 이번의 경우처럼 한꺼번에 대규모로 모든 지자체에 선물을 주듯이 골고루 면제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정부의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번 결정은 기존의 문재인 정부가 예타 면제를 결정했던 이전 사업들과는 결이 다르다.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은 아동수당 13조4000억원,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 등 복지 분야에 집중됐다. 지금과 같은 큰 잡음 없이 사업이 진행된 이유는 경제성을 따지기 어려운 복지에 대한 세금 투입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나름 형성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예타 면제 사업에 선정된 사업들의 70% 이상이 SOC 사업이라는 점에서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없다던 기존 정부 방침과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내세운 국가균형발전 명분과도 동떨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는 반발도 만만찮다. 기재부는 예타 면제 사업 선정 기준으로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사업계획이 구체화돼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지’, ‘지자체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인지’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월간중앙이 이번 예타 면제에 선정된 사업들의 과거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국가균형 발전과 지역경제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상당수 사업들이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1월 29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예타 면제 결정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경제성에만 집착해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면 낙후된 곳을 더 낙후되고 좋은 곳은 더 좋아져서 지역간 불균형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지방의 낙후를 완화하고 국가균형발전에 근접해 가고자 지방의 오랜 숙원 사업들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 조기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도록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예외적 조치를 검토하게 됐다.”

이번 결정은 ‘국가균형발전’에 방점이 찍힌 셈이다. 기획재정부의 ‘2018년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 제35조를 보면 “지역균형발전 분석은 지역 간 불균형 상태의 심화를 방지하고 지역 간 형평성 제고를 위해 지역낙후도 개선, 지역경제 파급효과, 고용유발 효과 등 지역개발에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다”고 나와 있다. 해당 사업의 시행으로 지방 경제가 살아나고 국가 발전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어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이름에 걸맞지 않은 사업 다수


그러나 KDI의 과거 분석은 이번에 선정된 사업들이 균형발전에 크게 부합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렸다.

약 2000억 원이 투입되는 울산 산재전문 공공병원의 경우, 사업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2018년 작성된 ‘울산 산재모병원 건립 사업’ 예타 보고서를 보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지수는 0.0084%였다. 2008년~2015년 전체 예타 조사 사업의 평균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지수가 0.321%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극히 낮은 수치다. 또한 울산시의 지역 낙후도는 16개 시·도별 가운데 2위, 170개 시·군 기준으로는 21위로 비교적 형편이 좋은 곳이다. 따라서 울산 산재 모병원 건립 사업의 경우, 지역낙후도 개선 측면에서도 예타 면제는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울산외곽순환도로 건설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KDI 작성 보고서에는 “본 사업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지수는 0.2350%로 2008년~2010년 135개 예타 조사 대상사업의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지수 평균인 0.3431%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시돼 있다. 지역낙후도 역시 16개 시·도별 가운데 2위, 170개 시·군 기준으로는 7위로 상위권에 속하며 형편이 점점 나아지는 상황이다. 울산은 인구증가율(61위)을 제외하고는 모든 항목이 상위권에 올랐다. 지역낙후도 개선 측면에서 사업 시행의 효과가 낮은 수준으로 KDI는 판단한 것이다.

2017년 발표된 KDI 자료에 따르면 ‘동해선 단선전철화(포항~동해)’ 사업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지수도 0.1667%%에 그쳤다. 노선이 지나가는 경북은 0.1722%, 강원은 0.1536%였다. 2008~2012년 예타가 진행된 다른 철도사업 평균값(0.6574%)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11년 간이타당성재조사에서도 “2008년 42개 예타조사 대상사업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지수 평균은 0.1789%로 본 사업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명시되지 않은 1.2조 사업도 균형발전에 역행


▎남부내륙철도 사업이 예타 면제 대상이 되면서 경남은 축제 분위기다. 이를 환영하는 대형 펼침막이 경남도청 입구에 걸려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남해안관광도로 사업의 첫 사업구간인 국도77호선(신안 압해도-해남 화원면) 사업은 지역낙후도 측면에서 필요성은 인정됐다. 16개 시·도 가운데 전남은 최하위인 16위, 국도 77호선이 지나가는 목포시, 해남군, 신안군은 170개 시·군 가운데 각각 33위, 147위, 170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는 효과가 그리 크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지수는 0.3164%로 전체 평균인 0.3431%에 미치지 못했다.

이밖에 정부는 국도 간선기능 강화 목적으로 각 도별 1개 사업을 선정, 총 1조2000억을 투입하기로 했다. 급경사, 선형 불량 등 도로 위험을 개선하고, 차로수 불균형에 따른 병목 구간 해소가 명목이다. 하지만 해당 사업들도 지역균형발전 취지를 충분히 살렸다고 보기 어렵다.

‘국도7호선(농소~외동) 건설 사업’의 경우, 지역낙후도 측면에서 사업구간에 속한 울산시는 상위권이고, 경주시도 중상위권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지수도 2008년~2010년 135개 예타 조사 대상사업의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지수 평균인 0.3431%에 한참 못 미치는 0.0522~0.0525%에 머물렀다. 병목구간 해소 목적으로 선정된 ‘성남-장호원간 6공구 잔여구간’도 마찬가지. 사업 구간이 위치한 경기도는 16개 시·도별 중 4위이며 170개 시·군 가운데 이천시는 41위, 여주군은 61위다. 이에 KDI는 “지역균형발전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지수도 0.0592~0.0670%에 그쳤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주요 예타 면제 사업 중에는 지역균형 발전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도 있다. 이번 예타 면제 사업 가운데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많은 재정(약 4조 7000억원)이 투입되는 남부내륙철도는 지역경제 활성화 지수가 1.0536%를 나타냈다. 2008년~2010년 135개 예타 조사 대상사업 평균인 0.3431%를 훌쩍 뛰어 넘는 수치다. 지역 낙후도 측면에서도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인정받았다. 16개 시·도별 가운데 경북은 13위, 경남은 8위로 중하위권이었다. 170개 시·군 지역낙후도 지수 순위로 보면 김천시는 90위, 고령군 75위, 성주군 104위, 진주시 65위, 통영시 76위, 거제시 29위, 합천군 148위, 고성군 103위, 산청군 162위였다.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보자면 남부내륙철도 사업은 타당성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이번 예타 면제에 선정된 사업들은 지자체의 숙원이 대부분이다. 과거 예타 조사에서 제동이 걸린 지차체들은 “경제성 확보에 실패한 것이 큰 이유였다. 기준이 너무 높다”고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최근 많이 거론되고 있는 비용편익분석(B/C)은 경제성 분석에 해당한다. B/C 비율이 1보다 클 경우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 지자체의 경우 이들의 볼멘소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수도권은 인구가 많아 도로나 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의 비용 대비 효과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방은 경제성을 높이려 해도 예타를 통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종합평가 모두 기준 넘긴 사업 전무


▎한국환경회의 관계자들이 1월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규모 건설·토목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예타 조사는 경제성만 고려하지 않는다. 경제성, 정책성, 지역 균형 발전 등 항목별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한 계층화분석법(AHP, Analytic Hierarchy Process)에 따라 계량화된 수치가 사업 타당성의 근거로 쓰인다. 평가 비중은 건설사업의 경우 경제성이 35∼50%, 정책성이 25∼40%, 지역균형발전은 25∼35%를 차지한다. 이 세 항목의 종합평가(AHP)가 기준치인 0.5를 넘어야 대규모 SOC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단순히 경제성 분석의 결과인 B/C가 예타 통과의 전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월간중앙이 확보한 10개 사업 예타 보고서 가운데 종합평가 기준인 AHP 0.5를 넘긴 사업은 단 하나였다. 2012년 KDI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전도시철도 2호선’ 사업의 B/C는 0.9로 1을 넘기지 못했다.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요인을 포함한 AHP 분석에서는 0.508이 나왔다. 간신히 0.5를 넘긴 셈이다. KDI는 사업 타당성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약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보통 AHP가 0.58을 넘겨야 확실한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여기에 “대부분의 도시철도가 연간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운영 적자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고 재정부담이 가중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해당 보고서는 고가의 자기부상열차를 놓고 조사를 했다. 이보다 비용이 덜 소요되는 트램 사업으로 예타 면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재정 부담은 덜었지만 트램이 기존 차로를 잠식해 교통체증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서남해안 관광도로 사업 구간 중 하나인 신안 압해도부터 해남 화원면을 잇는 연도교 사업은 이미 두 차례나 예타에서 탈락했었다. 2007년 발표된 첫 조사에서 이 사업은 B/C가 0.174에 그쳤다. 기준인 1에 턱없이 부족했다. AHP 종합분석 결과 역시 0.336으로 기준치인 0.5를 넘기지 못했다. 2014년에 다시 실시된 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조사 결과 역시 B/C는 0.28, AHP는 0.354였다. 이 조사 보고서는 “지역낙후도 측면에서 사업 추진의 필요성은 인정된다”고 봤지만 조사에 참여한 평가자 6명 모두 사업 미시행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경제적 타당성은 물론 국가 상위 계획과의 부합성이 낮은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경제성 분석과 정책성 분석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이유다.

예타 면제의 ‘저주’ 되풀이되나


▎지난해 7월 폭염이 이어지면서 녹조가 발생한 금강 백제보. 4대강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의 대표적 사례다.
울산외곽순환고속도로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분석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경제성은 0.53으로 1에 미치지 못했고, 정책성 분석 역시 정책 방향과 일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도 이미 울산시는 상위권에 위치해 큰 점수를 얻지 못했다. 결국은 AHP 역시 0.310에 그쳤다. 다른 사업들의 상황도 크게 다를 바 없다.

AHP 점수는 최소 0.42가 넘어야 그나마 사업 타당성을 고려할 수 있다. 월간중앙이 확보한 예타 보고서 결과를 종합하면 AHP 점수 0.42를 넘긴 사업은 두 개 정도다. ‘대전도시철도 2호선’과 ‘남부내륙철도’ 사업이다. 이들의 AHP 점수는 각각 0.508, 0.429다. 두 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나머지 8개의 사업은 경제성은 물론 종합평가인 AHP 점수에서조차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이밖에 충북선 고속화 사업이나 제2경춘국도, 평택-오송 복복선화 사업 등도 B/C는 물론 AHP 점수 역시 사업 타당성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잘못된 예타 면제 결정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섣부른 선택이 회복하기 힘든 주름살을 지역과 국가 재정에 안긴 사례를 보자. 전남 영암군의 포뮬러원(F1) 경기장은 예타 면제를 통해 43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그러나 2014년 이후 경기 자체가 열리지 않아 누적 손실은 6000억원에 달한다. 의정부 경전철은 개통 5년 만인 지난해 적자 누적으로 파산했고, 수요 예측에 실패한 양양국제공항, 무안 공항 등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정부의 예타 면제 결정에 대해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예타제도는 IMF 위기 후 인프라 건설에 대한 재정낭비를 막고자 도입한 제도”라며 “이명박 정권이 무력화시킨 걸 문재인 정권이 그대로 답습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는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도입됐다.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공공건설공사 사업의 효율을 기하려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였던 2007년 국가재정법시행령에 예타 면제 사유에 해당하는 5가지 사업이 적시됐다. 공공청사의 신·증축 사업, 문화재 복원사업, 국가안보에 관계되거나 보안을 요하는 국방 관련 사업, 남북 교류협력 사업, 사업 추진이 시급한 재해복구 지원 등이다. 그러다 2009년 3월, 이명박 정부는 예타 면제 규정을 10가지로 확대시켰다. 단순 개량 및 유지보수 사업, 기초생활수급자·장애인 등에 대한 현금·현물 급여 지급 등의 사업이 추가됐지만 4대강 사업용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재해예방, 지역 균형발전 등 국가 정책 차원의 추진이 필요한 사업은 예타를 면제한다는 조항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면제 규정이 확대된 3개월 후인 2009년 6월 4대강 사업의 턴키 공사가 공고됐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밝힌 예타 면제의 주된 목적은 ‘지역 균형발전’이다. 기재부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 제10조(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은 예타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이번 정부의 결정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다를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문 대통령도 입을 열었다. 2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215명 초청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대규모 예타 면제에 우려가 없지 않다”고 전제, “그래서 정부도 그런 우려를 특별히 유념하면서 예타 면제 사업을 지자체와 협의해서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하는 한편, 지역 간 균형을 유지하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명했다.

이명박 정부서 포문 열고 문재인 정부 따라가는 꼴

이종수 교수는 이번 조치의 후유증을 우려했다. 그는 “예타는 ‘정치적 논리’들을 경제적 언어로 제어하는 장치인데 중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정치적 공약 사업들이 대거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지방을 지원하되, 그 지원은 부가가치와 성장혁신을 이끌 동력을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학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예타 분석에서 중요한 건 경제성과 지역균형발전 반영 비율”이라며 “이 비율이 고무줄이라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정부 결정은 이미 경제성이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낮다고 나온, 타당성 없는 사업에 조사를 면제했다는 것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재정 낭비 초래는 불가피해 보인다.”

예타 제도는 나름 국고의 손실을 막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능을 해왔다. KDI 공공투자관리센터에 따르면 예타 제도가 도입된 1999년부터 2017년 말까지 예타 사업 690건의 경제적 타당성 확보율 비율은 약 47.4%에 불과했다. 종합적 타당성을 확보한 사업은 437건(63.3%)이었다. 이 기간 예타를 통해 141조원의 예산이 절감됐다는 게 KDI의 진단이다. 예타 조사 도입의 취지가 어느 정도 지켜진 셈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예타 제도는 유지돼야 하지만,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타 제도 자체를 정비해 더 쉽게 지원할 근거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정부에서는 앞으로 예타 대상 요건을 총사업비 1000억원 이상, 국가 재정 지원 규모 500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대규모 SOC 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들고, 유지·보수를 위해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다”면서 “예타라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정책 담당자들은 판단에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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