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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1)] 남자골프의 神話 ‘코리안 탱크’ 최경주 

“신이 우즈를 선택했다면 KJ는 신을 감동시켰다” 

2002년 한국인 최초 PGA 투어 우승… 세계 무대에 우뚝
지금도 퍼트·웨이트로 하루 마무리하는 지독한 연습벌레

레전드(legend)는 말 그대로 전설 같은 인물을 말한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보여온 사람이다. 이런저런 루머나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고, 곧고 바른 성품에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까지 보인다면 레전드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터다.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 연재를 시작한다. 스포츠·문화·예능 등 각 분야의 전설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성공을 향해 쏟아 부은 남다른 노력, 정상을 지키기 위한 자신만의 철학, 후대를 위한 묵직한 메시지도 들어볼 것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짭짤한 스토리를 기대해도 좋겠다.


▎최경주가 2002년 PGA 투어 콤팩클래식에서 우승한 직후 부인 김현정씨와 포옹하고 있다.
타이거 우즈는 두 살 때 잔디밭에서 미니 골프채를 휘둘렀다. 최경주는 열일곱 살인 완도수산고 1학년 때 처음 골프를 접했다. 골프를 할 형편도, 체형도 아니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까지 아버지를 도와 개펄에서 물고기를 담아 왔고, 밭에 거둬 놓은 콩도 챙겨 오고, 소여물도 베 왔다. 중학교 때 잠시 역도선수를 했고, 고1 때 운명처럼 골프를 만났다.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완도 촌놈’은 ‘코리안 탱크’가 됐다. 최경주는 2000년 미국 PGA 투어에 진출했다. 20년 동안 8개의 우승트로피를 모았고, 세계 최고 골퍼들의 경연장인 프레지던츠컵 대표로도 출전했다. 외신은 “신이 타이거 우즈를 선택했다면, KJ(최경주의 애칭)는 신을 감동시켰다”고 썼다. 2007년 최경주재단을 설립한 그는 이사장을 맡아 골프 꿈나무들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

최경주 이사장은 국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다. 1월에는 골프 꿈나무들을 데리고 중국 광저우에서 전지훈련을 했고,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시즌을 준비했다. 2월 초, 미국에 있는 최 이사장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애리조나에서 열리고 있는 PGA 대회에 출전 중이었다.

2012년에 펴낸 자서전 [코리안 탱크 최경주]에서 ‘내 골프 인생 18홀 중 이제 겨우 11홀 정도를 마쳤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2019년 현재 KJ의 골프 인생은 몇 번째 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많이 왔겠죠(웃음). 13번이나 14번 홀쯤 되지 않을까 싶네요. 남은 홀이 몇 개 없으니까 라운드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인 것 같아요. 내년부터는 챔피언스 투어(시니어 투어)도 출전하게 되니 그것도 준비해야 하고요.”

올해 한국 나이로 50세가 됐습니다. 2016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50대의 반란을 보여주고, 50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쉰을 맞은 느낌과 각오는 어떠신지요?

“실감은 안 납니다. 너무 빨리 와버려서요. 그전에야 50세이면 선수생명도 거의 끝나는 시점이었지만 지금은 PGA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수가 많잖아요. 관리를 잘해서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고요. 그런데 한국이나 아시아 선수는 50대가 많지 않고 조기 은퇴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내년 시니어 투어 가는데 거기는 또 다른 시장이지 않습니까. 챔피언스 투어는 컷오프 없이 3일만 치면 상금을 받게 되니 심리적·육체적 부담이 아무래도 덜하겠죠. 이제는 막무가내로 플레이만 하는 게 아니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각계각층에서 50대는 리더로 있을 나이거든요.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라도 주고 싶어요. 그래서 몸도 만들고 준비를 잘 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골프… 늘 겸손해야


▎지난해 11월 12일 성남시 소재 KPGA 빌딩에서 열린 ‘KPGA 갤러리 개관식’에 참석한 최경주가 자신의 기증품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사진:KPGA 제공
자신의 인생을 바꾼 세 가지 장면을 꼽으라면?

“쉽지 않은 환경에서 골프라는 걸 접한 것,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미국까지 온 것,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 이 세 가지가 가장 잘한 일 같네요.”

인생 최악의 샷을 꼽는다면요?

“지울 수 없는 상황이 있죠. 2008년인가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 공동 4위로 오다가 올드코스 17번 홀(파4)에서 9타를 쳤어요. 파 4에서 8개가 제일 많이 친 건데 거기서 기록을 깼고, 구라파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죠(웃음). 보기만 한다 생각하고 쳤으면 됐는데 무리하게 하다 보니 예상치 않은 상황이 나왔죠. 골프는 역시 내 마음대로 안 돼요.”

이 대목에서 최 이사장이 브리티시오픈에서 있었던 두 가지 상황을 헷갈린 것 같다. 17번 홀에서 9타를 친 건 2005년 일이고, 2008년에는 최종일 공동 4위로 오다가 마지막 18번 홀(파 4)에서 8타를 쳐 ‘PGA 메이저대회 톱5’ 기회를 놓쳤다. 어쨌든 최 이사장은 “골프가 이처럼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거죠. 늘 순리에 따르고 겸손해야 한다는 걸 느낍니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과 통화하면서 “아무래도 완도에 한번 내려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했더니 “시골 부모님은 골프에 대해 잘 모르시니 만나셔도 별 도움이 안 되실 것 같고, 추강래 사부님은 한번 만나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라고 했다. 최 이사장이 ‘사부’라고 표현한 추강래 사장은 완도수산고 1학년 최경주에게 처음 골프를 가르쳤고, 평생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완도는 정말 멀었다. 호남선 종착지인 목포에서도 승용차로 1시간 이상 달려야 했다. 땅끝마을이 있는 전남 해남이 한반도 최남단이었으나 해남 밑에 있는 완도에 연륙교(완도대교)가 놓이면서 ‘땅끝 아래 완도’가 됐다.

추 사장은 완도에서 ‘전사마(전복을 사랑하는 마을)’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 입구에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영화관 포스터만큼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식당 안에는 최경주 프로의 골프화·모자·트로피 등이 전시돼 있었다. 완도 명물인 싱싱한 전복회를 앞에 놓고 추 사장과 마주앉았다. 그는 [코리안 탱크 최경주와 아마추어 골퍼 추강래]라는 제목의 책을 기자에게 건네줬다. 최경주를 키운 스토리를 쓴 소책자다.

추 사장은 “이 세상에서 최 프로만큼 연습을 많이 한 골프 선수는 없다고 자신합니다. 하루에 공을 3000∼4000개 쳤어요. 하도 오래 클럽을 잡고 있어서 손이 펴지지를 않아 왼손으로 오른손가락 하나씩 잡아 폈어요. 최 프로와 악수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랍니다. 손바닥에 옹이가 앉은 것처럼 딱딱하니까요. 트랙터로 논 다 맨 다음에 그 트랙터 몰고 와서 연습하고 갔다니까요”라고 회고했다.

목포해양대를 나온 추 사장은 원양어선을 타면서 골프를 접했다. 완도에서 체육사를 운영하던 그는 1985년 완도 최초로 청해골프연습장을 만들었고, 다음해 완도수산고에 골프부를 만들었다. 첫 골프 부원 4명 중에 최경주가 있었다. 최경주가 “뭔 닭장이 저리 크냐”라고 했던 골프연습장은 오래전 문을 닫았다.

쇠파이프로 폐타이어 두들기며 손목 힘 키워


▎최경주(앞쪽)와 타이거 우즈가 2010년 US 오픈 3라운드 7번 홀에서 똑같은 자세로 퍼트라인을 읽고 있다.
추 사장은 독학으로 레슨법을 익혀 아이들을 가르쳤다. 철공소에서 수도관 파이프를 90㎝ 길이로 자른 뒤 끝에 쇠뭉치를 용접했다. 그걸로 폐타이어를 치는 연습을 시켰다. 쇠파이프가 워낙 무거워서 자연스럽게 허리 회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타이어를 때린 뒤 반동으로 튀어나오는 채를 버텨내는 동안 손목 힘이 자연스럽게 키워졌다.

다른 선수들은 50번도 못 하고 헉헉댔지만 중학교 역도부 시절 몸무게(48㎏)의 세 배가 넘는 158㎏ 역기를 들어올렸던 최경주에게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타이어 치기 훈련을 마치고 골프채를 들면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덕분에 유연하면서도 강한 스윙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고 최경주는 훗날 자서전에서 술회했다.

추 사장은 또 부산의 헌책방에서 잭 니클라우스의 레슨을 그림으로 설명한 책을 사 왔다. 둘은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나중에는 내용을 달달 욀 정도가 됐다. 훗날 최경주가 PGA 대회에서 잭 니클라우스를 만나 “당신의 레슨책으로 골프를 배웠다”고 말한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추 사장은 ‘될성부를 떡잎’ 최경주가 골프장에서 실전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역의 김·미역 공장 사장들에게 부탁을 했다. 이들이 새벽에 최경주를 차에 태워 골프장에 데려간 뒤 함께 공을 쳤다. 골프 입문 4개월 만에 광주 송정리에 있는 공군부대 골프장에서 처음 필드를 밟은 최경주는 108타를 쳤다. 다음에는 10타를 줄여 98타가 됐고, 한 달 뒤 78타까지 줄였다.

최경주는 ‘그린피’를 벌고자 골프연습장에 오는 손님들의 차를 세차하기도 하고, 클럽을 닦거나 잔심부름을 하면서 용돈을 벌었다. 손님들에게 가끔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그때 만난 ‘귀인’이 김재천 서울 한서고 이사장이었다. 그는 “우리 학교로 오면 일주일에 두 번씩 필드에 나가게 해주마”라고 약속하며 명함을 쥐어주었다. 최경주는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갈 때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을 떠올렸다. “고기는 큰물에서 놀지 조그만 데 가면 고기가 없다.”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니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골프부가 해체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허락해 주지 않자 아버지는 소 판 돈으로 선생님들에게 양복을 선물했다고 한다. 최경주는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와 함께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추 사장은 “오래전 미국에서 열린 대회를 갔는데 그날따라 최 프로 퍼팅이 엉망이었어요. 이상하다 싶어 물어보니까 ‘그 사람이 나타났어요’ 하데요. 최 프로 전학을 끝까지 반대하고 손찌검까지 한 교사가 골프장에 왔다는 겁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최 프로 멘털이 완전히 깨졌다고 해요. 그래서 ‘그 사람도 너를 위해서 잘 되라고 그러지 않았겠냐. 용서하고 잊어버려라’고 했죠”라고 후일담을 들려줬다.

추 사장과 함께 최경주가 졸업한 화흥초등학교를 찾았다. 교정 왼편에 샷을 날리는 최경주의 전신상(像)과 그의 공적을 새긴 비석이 있었다. 그 뒤에는 화흥초 골프부가 쓰는 골프연습장이 자리잡고 있다. 최경주 동상은 완도의 랜드마크인 완도항 해변공원에 있었으나 완도군이 2015년 해조류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철거해 한동안 방치됐다. 2016년에야 최경주의 모교에 자리를 잡게 됐다. 추 사장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완도의 자랑인 최경주를 활용한 마케팅이나 스토리 텔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동상이 다시 옮겨졌으면 좋겠어요”라며 “우리나라는 너무 화끈 달아오르고 또 너무 급격히 식어버리는 것 같아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추 사장이 ‘고향의 유망주 2명을 추천해 달라’고 했던 최 이사장의 얘기를 들려줬다. “최 프로가 세 가지 조건을 달았어요. 첫째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친구가 없어야 한다. 셋째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였죠. 근성이 없으면 적당히 안주하게 되고, 친구와 골프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신앙이 있어야 어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였죠.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수요? 물론 없었죠(웃음).”

남자골퍼, 군 문제 부담 느끼는 게 안타까워


▎미국 애리조나에서 훈련 중인 최경주. 그는 대회가 없어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 사진:PING골프
최경주는 벙커샷의 도사다. 타이거 우즈도 부러워한다. 그는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끝없는 연습을 통해 필살기 벙커샷을 장착했다. 내친김에 명사십리해수욕장을 찾았다. 3㎞에 걸쳐 이어진 부드러운 모래사장인데 썰물 때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진다. 최경주는 이곳에서 벙커샷 뿐만 아니라 바람을 다스리는 법과 클럽의 정확한 비거리도 익혔다.

최 이사장은 2016 리우올림픽 골프 남자팀 감독을 맡았다. 왕정훈·안병훈이 나선 남자팀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 박세리 감독이 맡았던 여자팀이 금메달(박인비)을 따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최 이사장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도 남자팀을 맡는다.

2016년 리우에서는 어떤 점에서 실패했고, 2020 도쿄에서는 어떤 전략으로 나가야 할까요.

“선수들이 코스를 잘 알아야 하고, 코스에 맞는 샷도 준비해야 합니다. 월드 랭킹으로 대표를 선발하니까 엔트리가 한 달 전에나 정해집니다. 선수 개개인 특징에 맞춰 준비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도쿄는 가까우니까 미리 사전 답사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출전 가능성이 높은 선수 후보 3∼4명 모아서 코스가 이러니 어떤 샷을 많이 구사해야 하고, 어떤 홀에선 어떤 걸 조심하고, 이런 걸 사전 인지시키는 게 중요하죠. 개막 6개월 전부터는 올림픽을 위해서 코스에 맞는 샷이나 기술적인 것을 공유하며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남자골프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선수 개개인이 생각과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위기 상황을 넘기기 위해 뭘 하고, 훈련은 평상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죠. 선수들을 다 평가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기술적 측면을 많이 강조합니다. 미국 아이들은 기술보다 감각으로 하는 걸 선호합니다. 숏게임·퍼팅 등을 기계화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하는 거죠. 그러면 생각이 단순해집니다. 골프는 생각이 많으면 안 돼요. 또 우리나라 남자 선수들은 군 문제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제 좀 골프를 알 것 같고, 잘 치고 있는데 군대는 가야겠고, 그러다 보면 마음이 급해지는 거죠. 난 군 복무(단기사병) 마치고 나서 골프가 잘 됐거든요. 요즘 후배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한국 여자골프도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습니다만 선수들이 너무 일찍 정상에서 내려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로골퍼가 오래 꾸준한 활동을 하는 데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체계적인 훈련이 제일 중요합니다. 미국 선수가 두 개 치면 우리는 네 개 쳐야 할 정도로 그들과 우리는 체격조건과 힘쓰는 것 등이 다릅니다. 기(氣)라는 게 있잖아요. 선수·갤러리·언론 등이 한데 어우러져 뿜어내는 게 장난 아니거든요. 거기에서 탁 튀어나오게 하려면 남다른 노력과 편하게 마음껏 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겠죠. 그렇다고 후배들이 못하는 건 아닙니다. 잘하고 있는데 워낙 팬들이 우승 안 하면 못 친 것처럼 생각해버리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 기세가 장난이 아니잖아요.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중년층도 탄탄하고요. 저스틴 로즈는 1999년부터 주니어로 활동하면서 그때부터 정말 잘 친 친구였는데 20년 후에야 빛을 내고 있잖아요. 우리 젊은 친구들도 5∼10년 안에 우승 많이 하는 선수가 분명히 나올 겁니다. 기대하고 격려해 줘야죠. PGA 투어 우승하면 병역특례 혜택은 아니더라도 뭔가 혜택을 좀 주면 좋겠어요. 태극기 날리고 국위선양 하는 게 골프가 가장 크잖아요.”

프로라면 팬에게 감사 마음 표현할 줄 알아야


▎최경주의 모교인 완도 화흥초등학교에 세워진 최경주 동상. / 사진:정영재
한국 골프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학업을 거의 전폐하고 스윙머신으로 키워지는 것 같습니다. 학업과 골프를 병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꿈나무들에게 골프를 가르쳐봤지만 역시 공부를 한다고 해서 골프가 안 되고 이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 선수들을 비교해 보면 청소년기에는 우리 선수들이 앞서지만 대학 때부터 차이가 확 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 친구들은 중·고교 시절에 의무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고,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SAT(대학입학 자격시험)도 준비하고 숙제도 꼬박꼬박해야 합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절대 프로 갈 수 없고, 최소 2년은 다녀야 합니다. 대학 가서 엄청나게 연습하고, 학교를 위해 공식대회를 뛴 뒤 휴학을 하고 프로 테스트를 보는 거죠. 우리는 대학 다니면서 프로로 뛰고, 소매에 학교 마크도 찍어 다니고 하는데 미국에선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공부도 필요 없다, 공만 잘 치면 된다면서 아이들을 몰아붙여요. 그래서 대학에만 가면 지쳐버리는 거죠.”

요즘은 우리나라도 분위기가 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 셋 다 골프로 대학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하루하루를 정말 집중해서 생활합니다. 학교를 마친 뒤 집에 와서 숙제하고 연습볼 치고 다 하거든요. 학교에서 5∼6명씩 팀을 만들어 프로젝트를 내 주면 집에 있는 모든 것 동원해서 만들고 발표도 하고 그럽니다. 얼마 전에 우리 재단 선수가 미국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어요. 주변 대학에서 러브콜이 들어왔죠. SAT 점수만 갖고 오면 장학생으로 받겠다는 겁니다. 제가 그동안 아이들한테 ‘너희들 국·영·수는 꼭 해라’고 얘기했는데, 이제 비로소 아이들이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깨닫는 것 같아요. 공부하겠노라고 바람이 불고 있어요.”

골프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한국의 골프 문화, 골프장 문화는 아직 선진국으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요?

“(웃음) 개개인이 지켜야 될 거죠. 흔히들 준법정신이라고 하죠.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안 지켜서 그런 거죠. 내가 쓰레기 안 버리면서 다른 사람도 안 버리겠지 하면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없겠죠. 그런데 ‘이렇게 해도 아무 말 안 하네’ 하면 깨지기 시작하는 거죠. 과거 저희들이 골프 배울 때는 비가 와도 골프 약속은 지켜야 하고, 늦으면 절대 안 되고, 셔츠도 컬러 있는 것만 입어야 하고 등등 에티켓을 강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깨지기 시작했잖아요.”

프로 선수들에게 서비스 정신을 강조한다고 하던데요.

“선수들은 팬들에게 감사하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프로암(공식경기 전날 아마추어와 프로가 함께 라운드 하는 것)에서 동반자가 멋진 샷을 날리거나 버디를 하면 ‘이리 오소. 내가 해주는 거 있소’하며 꼭 안아줍니다. 그러면 70∼80대 아버지 같은 분들이 아이처럼 좋아하지요. 나중에는 ‘이 정도면 잘 쳤으니 나도 안아 줘’하고 들이대는 분들도 있어요. 한참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대회 프로암에서 그쪽 손님에게 그립 잡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어요. 10년쯤 뒤에 미국 대회에서 그 분이 ‘그립, 그립’ 하면서 달려와 나한테 안기더라고요. 제 덕에 90대 치다가 싱글이 됐다면서요. 저는 국내 프로암에서도 코스 파악한다면서 제 공만 치는 후배들이 있으면 ‘그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잠시 맡은 재물, 잘 쓰다 가야죠”


▎최경주가 2007년 6월 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우승 후 트로피를 치켜들고 있다.
많은 돈을 벌었고 그만큼 좋은 일에도 많이 쓰신 것 같습니다. ‘재물’에 대한 철학은 무엇입니까?

“베푸는 거죠.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거니 잘 쓰고 가야죠. 후배들, 더 나아가 후대에게 골프가 뭣이냐를 가르치고, 삶을 통해 골프를 왜 하는지 보여주고, 골프를 통해 재물이 생기면 어떻게 쓸 건지도 가르쳐주고 싶어요. 최경주재단 꿈나무들은 기질이 있는데 집안이 어려운 아이들입니다. 저도 기질이 있었지만 집안 좋은 게 아니었잖아요. 고향 어르신들이 필드 데리고 가고 밥도 사 주고 잘하니까 용돈도 주시고, 이런 게 큰 힘이 됐어요. 저도 그분들 채도 닦고 신발도 털어드리고 그러면 틀림없이 용돈이 나왔거든요. 그런 식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저와 비슷한 친구들 발굴해서 몇 년 계속 후원해서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겁니다. 내가 상금 벌자는 것보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도 포기 안 하니 너희도 포기하면 안 돼’라고 메시지를 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에이 씨’ 하고 대충 친 샷이 하나도 없어요. 브리티시오픈 한 홀에서 아홉 개 치면서 얼마나 열불이 터졌겠어요.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고, 채를 집어던지거나 그런 짓 절대 하지 않았어요. 애들이 보고 있으니까요.”

부인 김현정씨를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을 접한 최 이사장은 남다른 체험을 통해 바위 같은 믿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자서전에 나온 일화다. 2001년 PGA Q스쿨(대회 출전권자를 가리는 프로 테스트)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마지막 퍼트를 앞두고 있었다. 5.5m 내리막 버디 퍼트가 들어가면 합격, 안 들어가면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는 그 짧은 시간에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마치 분필로 그은 것처럼 퍼트 라인이 선명하게 보였다고 한다.

신앙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 물어봤다. “사람들이 보통 초능력 얘기하잖아요. 우리는 그분이 동행해 주신다고 얘기하죠. 골프든 생활이든 잘 안 풀리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마음 한쪽으로 골프만 보고 잘된다 안된다 따지면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러나 그분은 항상 내 편이라는 믿음 때문에 늘 감사하고,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믿음을 갖고 삽니다.”

최 이사장은 지금도 대회가 없을 때는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연습장에서 훈련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다시 웨이트 트레이닝과 퍼팅 연습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코리안 탱크’를 전진하게 하는 연료는 지독한 연습, 그것뿐이다.

※ 정영재 -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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