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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레이더] 암호화폐 품은 삼성 갤럭시 S10 

‘판’을 깔아 블록체인 옥석 가리자! 

이재운 이데일리 기자 jwlee@edaily.co.kr
삼성의 미래, 나아가 한국 IT 기술의 미래가 담긴 고민의 산물... 안드로이드 잇는 차세대 모바일 운영체제(OS) 주도권 선점 전략

삼성전자가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10’ 시리즈에 암호화폐(가상화폐)를 저장하는 월렛 기능을 탑재했다. 시중에는 ‘XX업체가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할 정도다. 삼성전자는 왜 갑자기 갤럭시 S10에 암호화폐 관련 기능을 탑재했을까? 블록체인 사업을 바라보는 삼성전자의 관점은 무엇일까? 또 관련 업계의 생태계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이 모든 질문의 답은 삼성전자가 선보인 ‘키스토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브랜드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10’에 블록체인 기능을 탑재했다.
갤럭시 S10은 삼성전자가 처음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선보인 지 10주년을 기념하는 신작이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삼성전자 수뇌부는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신제품을 소개할 것인지를 꽤나 고심했다고 한다. 삼성은 결국 ‘IT 혁신의 중심’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했다. 애플, 인텔 등 IT 붐을 주도한 실리콘밸리의 핵심 도시이자 북미와 남미 등 현재 삼성전자의 가장 중요한 전략시장이 제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갤럭시 S10에 암호화폐 전자지갑이 탑재된다는 소식이 흘러나온 건 올해 초부터다. 이미 여러 가지 방식의 암호화폐 전자지갑이 스마트폰에서 활용되는 서비스는 선보였지만 스마트폰 제조사가 직접 이를 개발해 탑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삼성전자는 제품 공개 전까지 이를 함구하다 2월 20일(현지시간) 행사 전날 가진 비공개 미디어 브리핑부터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키스토어, 침체 국면의 블록체인의 돌파구?


▎삼성전자가 공개한 새로운 블록체인 지갑 기능인 ‘키스토어’는 일반 암호화폐 지갑보다 강력한 보안 성능을 자랑한다. / 사진:삼성전자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공식적으로 설명한 내용은 “스마트폰 내부에 암호화폐를 저장·보관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자지갑이나 블록체인 플랫폼을 별도로 선보일 계획은 없으며, 특정 플랫폼에 속하지 않은 암호화폐라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그 도구를 유통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키스토어이다. 애플의 앱스토어, 구글의 플레이스토어처럼 블록체인 기반의 응용 서비스(dApp, 디앱)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 말이다. 아직까지 삼성전자 같은 대형 사업자가 이를 운영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삼성전자가 신생 블록체인 서비스인 코스모체인과 손을 잡았다더라는 ‘카더라 뉴스’가 돈 적이 있다. 그것도 해당 블록체인 개발업체 임원들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잠시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잠잠해진 상태다. 해프닝일 수 있지만 삼성이 깔아주는 판에 해당하는 키스토어에 초기에 참여하려는 여러 암호화폐 개발업체들의 높은 관심과 기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블록체인 시장으로 다시 눈을 돌려보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다양한 블록체인 플랫폼과 응용 서비스가 각기 모습을 드러냈지만, 블록체인 개념 자체가 낯설고 실제 처리속도도 느렸다. 가장 큰 현실의 장벽은 ‘사용 저변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폰을 많이 판매하는 제조사가, 그것도 브랜드 출시 10주년 기념 야심작에서 블록체인 응용 서비스를 유통시키고 구동시킬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이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자연히 기대하고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의 키스토어는 블록체인 혁명에 폭발적인 힘을 더해줄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다른 제조사들, 특히 중국 제조사가 이 대열에 합류할 경우 폭발력은 배가될 수 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저변이 확대되면, 침체 상태인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특히 위·변조 방지를 통해 ‘신뢰성’을 담보하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중국·인도·남미·아프리카 등 소위 신흥국 시장에서 특히 유용하다. 인프라 구축에 많은 돈이 드는 유선 인터넷 대신 상대적으로 보급이 쉬운 스마트폰 판매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삼성의 전략이 신흥국 시장을 선점할 새로운 기회가 되기에 충분한 카드로 평가받는 이유다.

물론 일장춘몽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앞서 삼성페이를 통해 보여준 성과를 보면 결코 헛된 꿈이 아니란 기대를 가져볼 만하다. 삼성전자는 삼성페이를 통해 자신들만의 ‘갤럭시 생태계’를 완성했다. 이번 암호화폐 기능 탑재가 갤럭시 생태계의 영역을 더 넓히는 데 기폭제가 되리란 점에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페이가 자리잡기까지는 불과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분야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던 2015년 2월, 삼성전자는 해외 핀테크 기술업체 루프페이를 인수했다. 루프페이가 보유하고 있던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MST 기술은 카드 결제 단말기의 마그네틱 인식부에 단거리 전파를 보내 카드정보를 전달하는 통신 기술의 일종이다.

별도 장치가 없어도 기존 카드결제(PoS; Point of Sale) 단말기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고, 동시에 이를 암호화한 상태로 전송하는 등 보안성이 높아 호평을 받던 기술이다. 애플페이 등 다른 오프라인 간편결제는 별도 무선통신 장치(NFC 방식)를 설치하거나, 보안성이 떨어지는 QR코드를 이용해야 했다.

삼성페이가 보여준 저력


▎지난 2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박람회 ‘MWC 2019’에서 SK텔레콤은 도이치텔레콤과 손잡고 ‘블록체인 모바일 신분증’ 기술을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2015년 8월부터 삼성페이 서비스를 선보였고, 이후 삼성페이는 삼성과 갤럭시 브랜드를 대표하는 ‘킬러 앱’(Killer App, 반드시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만드는 핵심적인 응용 서비스)으로 자리잡는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은행계좌 등 결제 정보를 한번 저장해두면 지갑을 따로 들고 다니지 않고도 스마트폰만으로 어디서나 결제가 가능하고, 별도 가맹점 가입 절차도 필요 없어 스마트폰이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식의 전략은 비단 삼성전자뿐 아니라 카카오·네이버·애플·구글 같은 IT 기업은 물론 은행, 카드사 등 금융사도 모두 주목하는 전략 방향이다. 카카오가 카카오T, 카카오페이 등을 통해 선보이는 전략도, 애플이 아이폰을 통해 결제(애플페이)부터 항공권, 입장권 등을 모두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모두 이런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지배적 제품을 앞세워 핀테크 업계를 장악했다. 지금은 대체투자 상품 판매와 같은 종합 핀테크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며 영향력을 계속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런 삼성전자의 성과는 이번에 암호화폐-블록체인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생태계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실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내에는 블록체인 연구를 담당하는 팀이 구성돼 있다. 이들은 테조스(Tezos)를 비롯한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개발자들을 초청해 내부 강연과 스터디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활용하면서 보안성을 높인 ‘삼성페이’는 갤럭시 시리즈의 킬러 앱으로 자리잡았다. / 사진:삼성전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최근 들어 생명력을 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 2월 25일부터 나흘간 열린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박람회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 2019’에선 5세대(5G) 이동통신이 주인공이었지만, 나아가 더욱 빨라진 네트워크 기술에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주목을 받았다. 인텔은 블록체인과 5G를 연계해 재난 탐색·구조 로봇을 실시간 원격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고, SK텔레콤과 도이치텔레콤은 신분 확인을 블록체인으로 실시간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전시회를 둘러본 한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이 이제 시작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상용화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내년에 열릴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을 앞두고 블록체인 상용화 연구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올해 G20 정상회의 개최 의장국이기도 하다. 일본이 현재 G20 정상회의에서 강조하는 주요 사항은 ▷경제 성장과 불평등의 감소 ▷인프라와 건강의 질 향상 ▷기후변화와 해양 플라스틱 오염 대책 ▷디지털 경제 ▷노령화 사회 문제 등이다. 이 중 디지털 경제의 핵심 논의사항으로 바로 암호화폐를 꺼내 들고 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카드 보급 확대와 핀테크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금 사용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 상황에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결합하는 결제 시스템의 혁신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신뢰관계를 중요시하는 일본인의 특성과도 맞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전히 경제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기 원하는 일본의 욕망은, 새롭게 발걸음을 넓히려는 중국의 야욕에 맞서 자신들을 차별화할 카드로 적용할만하다. 이런 국제 정세는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 삼성전자가 전략적으로 암호화폐 저장 기능을 갖추도록 하는 한 배경으로 이해된다.

이야기는 다시 삼성전자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향한다. 현재로서는 삼성전자가 별도로 암호화폐를 발행하거나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삼성전자의 물류 프로세스를 대행 운영하는 삼성SDS가 블록체인을 부분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독자적인 블록체인 생태계를 직접 구축하려는 게 아니냐는 견해가 해외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의 재벌체제에 대한 외신들의 이해부족(모든 것을 ‘삼성’으로 통칭하면서 생기는 문제)에서 비롯된 오보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에게 키스토어는 과거에 시도했던 바다, 타이젠 등 ‘독립적인 생태계 구축’의 꿈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삼성전자는 과거 안드로이드라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 플랫폼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뒤늦게나마 바다와 타이젠을 개발해 자체 기반으로 삼으려다가 실패했다. 이번 갤럭시 S10은 과거의 ‘실기’(失期)를 만회할 기회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삼성전자 개발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 S10 공개 브리핑에서 “블록체인-레디(Blockchain-ready) 스마트폰을 지향한다”며 “이는 별도의 OS 개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안드로이드(기존 모바일 생태계)에서 블록체인 기반 체제로 전환되는 시대를 대비하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따른다. 스마트폰 혁명에 비록 다소 뒤졌지만, 블록체인 시대는 주도하겠다는 야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

안드로이드 놓친 실기 만회할 절호의 기회


▎3월 6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S10 출시행사에서 관람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는 글로벌 기업 단위에서 블록체인을 실제 사업에 연결시킨 사례는 IBM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고 하겠다. IBM의 하이퍼레저는 현재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플랫폼으로 꼽히긴 하지만, 지배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그 상태에서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의 삼성전자가 보여줄 수 있는 카드는 바로 스마트폰 자체를 활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당장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일단 판을 깔아주면서, 시간이 지나 성공 잠재력이 확인되면 인수나 투자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빅픽처’는 결국 수직 통합, 수직계열화에 있다. 하드웨어 생태계를 모두 아우르는 경쟁력은 원가 절감을 이끌어냈고, 여기에 삼성페이와 같은 서비스를 더했다. 비록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다소 뒤처졌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움켜쥐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블록체인 플렛폼은 당장 모든 것을 ‘탈(脫) 중앙화’시키기보다, 당분간은 중앙화 방식의 기존 체제와 공존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중앙화돼 있지만, 동시에 탈중앙화 흐름에서 역시 성장과 생존을 모두 가져가야하는 삼성전자도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이다. 그런 의지와 욕망이 갤럭시 S10의 암호화폐 지갑화(化)로 연결됐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어쩌면 삼성의 미래, 나아가 한국 IT 기술의 미래가 담긴 고민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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