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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이슈] 삼중고에 빠진 서초동 변호사들의 속앓이 

“‘디케(정의의 여신)의 저울’이 검찰로 기운다” 

이례적인 로펌 압수수색에 의뢰인 정보 유출 초비상
갈수록 강해지는 검찰권에 “재판 불균형” 집단 반발


▎압수수색한 자료들을 들고 나오는 검찰 수사관들. / 사진:연합뉴스
'변호사 비밀유지권 보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변호사 비밀유지권 침해 사례를 모집합니다.’

최근 한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설문조사 요청을 받았다. 설문의 문항은 작심한 듯 구체적이었다. ▷권력 기관으로부터 피의자 방어권이나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침해당한 적이 있는가 ▷소속이 개인, 기업·기관, 법무법인 중 어디인가 ▷비밀유지권을 침해한 권력기관은 검찰, 경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기타 중 어디인가 ▷비밀유지권을 침해당한 방식이 변호사의 사무실, 컴퓨터,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치인가 ▷피의자의 사무실, 컴퓨터, 휴대전화를 압수수색 영치해 변호사와의 대화를 증거자료로 수집했는가 등이다. 변호사들은 변협이 비밀유지권 침해에 대한 실태조사에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변협 차원의 이례적인 설문조사는 변호사 업계가 직면한 위기감과 당혹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몇 년간 대형 법무법인과 기업 법무팀에 대한 사정 당국의 압수수색과 자료 요청이 이어지면서 서초동 법조타운은 어수선하기만하다.

시작은 2016년이었다. 최근까지 대형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은 3번 진행됐다. 조세포탈 혐의로 롯데그룹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이 신동빈 롯데 회장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중앙지검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문제가 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소송에서 일본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대리한 김앤장을 압수 수색했다. 올 2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증거를 수집한다는 명목으로 역시 김앤장에 압수수색 영장을 들이댔다.

대형 로펌 소속의 A 변호사는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변호사의 비밀유지권까지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대다수의 변호사들이 ‘이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서초동의 분위기를 전했다. 변호사 사무실이 압수수색에 노출될 경우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보장된 피의자 방어권이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변호사법 제26조)는 비밀유지의무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이는 변호사 활동에 전반적인 위축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게 현장 변호사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변호사 사회의 불만 여론이 커지자 변협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3년새 대형 로펌 3곳 압수수색 체면 구겨


▎지난 2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증거 수집 명목으로 두 번째 압수수색을 당한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 사진:연합뉴스
세 번의 대형 로펌 압수수색은 임의 제출 형식으로 이뤄졌다. 검찰이 압수수색 대상을 알려주면 로펌 측에서 관련 자료를 가져오는 방식이다. 강제집행보다 한발 물러난 형식이지만 변호사 업계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가령 검찰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특정 자료를 요구했을 경우, 일일이 모든 파일을 확인해 제출한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A 변호사는 “수사 사안과 관련 없는 의뢰인의 중대한 정보가 함께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걱정스러운 일로 꼽았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변호인이 제출 자료를 아무리 선별해도 결국 뭔가는 딸려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별건(別件) 수사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검찰로 흘러간 자료가 화를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변호사는 “대형 로펌일지라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는 얘기가 새어 나가면 의뢰인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면서 “로펌 입장에서는 존폐의 위협마저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 사무실의 압수수색은 변호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는 입장이다. B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의뢰인과 변호사는 두터운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의뢰인은 자신의 은밀한 치부까지 변호사에게 모두 드러낸다. 이런 업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검찰과 법원, 금융당국에서 단지 수사 편의를 목적으로 압수수색을 남발하고, 변호사에게 고도의 진실 의무까지 부과하게 되면 의뢰인으로서는 자신의 절대적인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권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다.”

압수수색을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다. 판사 출신의 C 변호사는 “로펌이 범죄에 가담, 협력했다는 혐의가 있는 경우의 압수수색은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렇지 않고 피의자가 변호사에게 이야기한 내용, 제출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은 증거수집의 목적을 위한 필요성보다 변론권을 침해할 우려가 훨씬 크기 때문에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변호사들은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이 국가기관의 수사편의 우선주의로 흐를까 경계한다. 앞서의 B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에서 단순히 업무상 편의성 때문에 법조삼륜의 일원인 변호사의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한다면 심각한 후유증을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로펌 출신인 D변호사의 지적이다. “실체적 진실 규명에 불가피하다는 진지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면 납득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봤을 때 과연 검사 개개인이나 검찰 조직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서 그토록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판사 출신의 C 변호사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압수수색에 대응해 ‘허용된 범위를 벗어난, 그래서 위법한 압수수색에 의해 수집된 증거’라는 항변 논리를 재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변호사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변협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에 이뤄진 법률상담을 증거자료로 수집하는 것은 피의자 방어권과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침해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허윤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은 “변협 차원에서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 침해 사례를 수집하는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안다”며 “2016년 이후로 세 번째 압수수색이 이어지면서 관행화되는 걸 막아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허 대변인은 로펌 압수수색이 헌법의 원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상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는 책임은 검찰에게 있지만 피고인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는다. 검찰권과 피고인의 방어권은 동등하다. 변호인의 변호권도 동렬적으로 보장돼 있다. 로펌 압수수색의 문제점은 검찰권이 변호권을 침해한다는 데 있다.” 그는 “비밀유지의무 침해 사례를 분류·유형화해 발표하고 변협 차원에서 국가기관에 재발방지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변호사 활동을 위축시키는 곳은 비단 검찰 뿐만이 아니다. 일부 변호사들은 기업을 향한 공정위·국세청·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들의 자료 요구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변호사의 법률 자문 내용이 수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 전문 E 변호사는 “기업의 경우 준법경영을 위해 고문 변호사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두고 법망을 피해가는 데 조언을 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형사재판과 별개인 이들 기관의 조사 영역에서는 일단 자료가 넘어가면 사실상 내용에 관해 다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E 변호사는 “설령 고문 변호사가 기업의 부적절한 행위와 비위 사실을 파악한다 해도 이를 공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모든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입사 시 비밀유지서약을 하고 이를 어기면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기록 제공 인색… 정보 불균형 심해져”


▎변호사들은 로펌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수사편의 우선주의로 흐를까 경계한다. / 사진:연합뉴스
검찰과 변호인의 정보 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에 있다 . 변호사들은 수사기록 복사나 문서송부촉탁 등 실무 과정에서 가해지는 제약이 점점 늘어난다고 하소연한다. 형사 사건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을 변호하려면 수사기록을 복사해서 검토해야 한다. “이전에는 수사기록 복사가 쉬웠지만 4~5년 전 검찰내규가 바뀌면서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게 F 변호사의 하소연이다.

수사기록에 고소인이나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기재돼 있어 개인정보 유출과 피고인의 악용 가능성 때문에 검찰이 복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F 변호사는 “과거보다 피의자, 피고인을 초반부터 제대로 변호하기 어려워졌다. 검찰이 정보 측면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재판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민사소송에서 활용하는 문서송부촉탁도 최근 들어 힘들어졌다고 한다. 문서송부촉탁은 재판부가 원·피고의 신청을 받아 사건 관련 문서를 보관하는 공공기관 등에 송부를 요구해 받아보는 절차다. 이는 재판 절차상 필수적일 때가 많다. 특히 형사재판 결과를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는 손해배상 사건의 경우 검찰이나 법원이 가진 형사재판 기록을 받아 판단 자료로 삼는 경우가 흔하다. 민사소송법 294조에도 ‘법원은 공공기관·학교, 외국의 공공기관에게 업무에 필요한 사항에 관해 보관 중인 문서의 등본·사본의 송부를 촉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F 변호사는 “민사재판을 진행하는 판사가 형사소송 기록이나 검찰 기록을 보려고 문서송부촉탁을 요구하는데도 검찰에서는 못 보낸다고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자료 송부를 거부하더라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법원이 검찰의 상급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판사들의 불만도 누적된다는 후문이다.

변호사들은 지난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추진했던 변호사의 자금세탁방지 의무 부과 방침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FIU 의중대로 자금세탁방지 의무가 부과되면 변호사는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고객의 거래를 금융 당국에 보고하고, 관련 기록도 보관해야 한다. 이는 변호사법상 의뢰인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와 충돌한다.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은 최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변호사 비밀유지권의 침해’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기업 법무팀·대형 로펌·개업 변호사의 사무실이나 컴퓨터, 핸드폰을 압수수색해서 범죄 자료들을 다 가져가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 별건 수사다. 변론권 침해이기도 하다.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이 수사 및 조사를 이처럼 손쉬운 방법으로 하는 사이 인권 침해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자칫 사법의 근간인 변호사 제도 자체가 흔들릴까 걱정된다.”

앞서의 A 변호사는 “변호인의 비밀유지의무가 보장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방어권이 지켜질 수 없다”면서 “그게 과연 국민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정의의 여신이 든 저울이 검찰로 기울어지는 셈”이라고도 했다.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 개개인의 변호권 보장되지 못할수도”

B 변호사 역시 “수사의 편의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까지 압수 수색하는 관행이 굳어진다면 앞으로는 민사 부문에서도 유리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상대방을 소송 사기죄로 고소하고 그 과정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고 우려했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행법상 변호사는 비밀유지 ‘의무’는 있지만 ‘권리’는 갖고 있지 않다. 외국은 변호사에게 비밀유지권을 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Duty of Confidentiality)와 구별해 연방증거법과 보통법에 의해 변호사-의뢰인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이 인정된다.

최승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 원장은 “로펌 압수수색은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를 형해화할 위험이 있다”면서 “로펌 압수수색은 엄정한 공익성에 대한 비교 형량을 전제로 하여 엄격하게 심사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변호사 비밀유지 의무 관련 토론에 참가한 적이 있는 법무법인 한결의 김희제 변호사는 “판례와 현행법 해석상 변호사의 증언거부권을 제외하고는 의뢰인의 비밀보호를 위한 제반 규정은 매우 미약하거나 불명확한 상황”이라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관련 법령의 개정이 필요하지만, 개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개정 전이라도 압수수색 절차나 증언 절차 등 변호사의 의뢰인 보호가 문제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변협 차원의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에서도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입법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더딘 상황이다. 20대 국회 들어 2017년에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에는 같은 당 유기준 의원이 변호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국가기관의 과도한 법 집행에 다른 속내가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로펌 출신의 D 변호사는 “국가 기관에서 사회적 분위기 등 시류에 따라 보여주기식 수사나 조사를 펼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했다. 기업 전문 E 변호사 역시 “기업의 경우 공정위 조사와 검찰의 수사가 중복돼 경영활동에 큰 지장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경영상 비리는 반드시 척결돼야 하지만 시간 간격을 두고 연이어 들어오는 각각의 기관에 비슷한 내용으로 자료를 준비하고 해명해야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B 변호사는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도덕성을 따지기보다 사건 수임에만 치중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법조인이라면 지켜야 할 직업윤리가 약해진 면도 있다”면서 “일부 전관 변호사들의 어긋난 행동도 한몫 했다”고 주장했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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