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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온라인에 치이고 규제에 묶인 대형마트의 생존 전략 

수십 년간 쌓은 고객 데이터가 반전 카드? 

가격·상품·배송 3박자 갖춘 온라인 시장으로 고객 이탈... 400여 개 대형마트 매출 줄어드는데 정부는 규제 강화

2012년부터 대형마트는 7년 연속 역신장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 다양한 상품, 편리한 배송까지 갖춘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급성장으로 대형마트는 위기에 처했다. 거기에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비롯한 각종 규제까지 더해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자구책으로 가격파괴 전략도 다시 내놨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홈플러스는 3월 진행한 ‘쇼핑하라 2019’ 할인행사를 4월까지 연장했다. / 사진 : 홈플러스
4월 4일, 서울시 양천구에 위치한 이마트 목동점 곳곳엔 ‘국민 가격’이라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올 들어 더욱 팍팍해진 국민 가계에 힘을 보태고자 파격적인 할인가를 제시했다는 게 이마트 측의 설명이다. 같은 날 이마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홈플러스 목동점에도 ‘앵콜 쇼핑하라 2019’라고 쓰인 현수막이 매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삼겹살을 비롯한 육류, 라면 등의 각종 생필품 위에 파격 할인이라는 문구가 행인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홈플러스의 한 판매 직원는 “지난해 인기 많았던 제품을 모아 올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면서 “행사 때문인지 방문하는 고객 수가 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마트들이 일제히 ‘가격파괴’ 카드를 꺼내들었다. 롯데마트도 ‘극한 가격’을 테마로 2010년 돌풍을 일으킨 5000원짜리 통큰 치킨을 3일간 한정수량으로 판매하고, 한우를 반값에 선보였다. ‘국민 가격’을 내세운 이마트는 30만 원대 TV, 9900원 청바지 등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층을 중점 공략 중이다. 홈플러스 역시 먹거리와 생필품을 포함한 700여 종을 할인하는 ‘쇼핑하라 2019’ 특별전을 3월부터 진행했다.

장바구니 물가가 낮아진다는 반가운 이야기로 들리지만 대형마트의 속내는 편치 않다. 그간 대형마트는 가격파괴가 수익성 증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한동안 가격 경쟁을 지양해왔다. 타사보다 10원 더 싸게 하는 일명 ‘10원 전쟁’으로 경쟁이 과열되면서 3사 모두 출혈을 겪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다시 파격적인 할인 경쟁에 나선 건 몇 년간 지속된 대형마트 매출 위기 탓이다.

대형마트의 초저가 전략은 단순히 해당 제품의 매출을 올리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저렴한 품목을 미끼 삼아 발길이 뜸해진 고객을 유인하는 ‘필사적인’ 마케팅의 일환이다. 대형마트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객이 오지 않으니, 극단적인 가격 할인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우울한 속내를 털어놨다.

최근 들어 대형마트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유통업체 매출이 전년 대비 6.8% 증가했지만, 대형마트는 -2.3%로 유일하게 매출 증가율이 뒷걸음질했다. 특히 온라인 유통업체와의 격차가 눈에 띈다. 온라인 유통 거래액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11조8939억원으로 전년 대비 22.6% 상승했고, 쿠팡과 11번가 등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도 전년 대비 15.9% 올랐다.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실적은 전반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2018년 오프라인 유통업체 매출 증가율은 1.9%에 그쳤다. 편의점은 8.5%, 백화점은 1.3% 매출이 증가했다. 하지만 -2.3% 매출증가율을 보인 대형마트보다는 사정이 나은 셈이다.

멤버십 서비스, PB 제품도 역부족


▎지난해 11월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25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김범석 쿠팡 대표(오른쪽)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도쿄 소프트뱅크 그룹 본사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 : 쿠팡
대형마트는 2012년부터 꾸준히 매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업계 1위인 이마트는 2018년 매출 11조5223억원, 영업이익 489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하면 매출 1.4%, 영업이익은 26.4% 감소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중국 내 점포 철수까지 겹친 롯데마트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해 매출 6조3170억원, 영업이익 84억원으로, 매출은 0.1% 줄고, 영업이익은 79%나 내려앉았다. 홈플러스 역시 2017년 당기순이익이 전 년 대비 28% 오그라들었다.

전문가들은 대형마트가 초저가 전략으로라도 고객 방문을 유도해야 하는 ‘업태 존망의 기로’에 처했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가격 경쟁이 출혈 경쟁으로 이어진 이후로 단독상품, 자체 브랜드인 PB(Private Brand)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면서 “하지만 경기불황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이젠 할인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대형마트들은 2017년부터 수익성 제고 차원에서 자체 브랜드인 PB 육성에 공을 들였다. 저렴한 가격과 합리적인 품질로 인기를 끌며 PB 비중을 확대했지만, 매출 하락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형마트의 위기를 부른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 유통업체의 급성장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마트 3사끼리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전제, “쿠팡이라는 신흥 강자의 등장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전쟁으로 국면이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유통업체 중 쿠팡은 2014년 이른바 ‘로켓 배송’ 도입을 시작으로 ‘유통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매출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70% 성장률을 찍었다.

오프라인 유통 업태 중에서도 대형마트는 온라인과 중첩되는 부분이 특히 넓은 만큼 타격도 컸다 . 우선 가격부터 게임이 안 된다. 그간 대형마트는 고가 품목 위주의 백화점과 대비되는 ‘저가 이미지’를 앞세워 성장했다. 셀프서비스와 다점포화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고, 상품 가격은 낮췄다. 하지만 소셜커머스, 오픈마켓 등의 온라인 유통업체가 진입하면서 대형마트는 백화점보다는 저렴하지만 온라인보다는 비싼 ‘어중간한’ 위치로 내몰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멤버십 서비스 강화나 PB 제품을 활용해 실지 만회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

‘다양성’과 ‘배송’에서도 온라인에 밀렸다.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다수의 판매자에게 플랫폼을 제공하며 상품 선택지를 늘렸고, 쿠팡은 약 1억2000만 가지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간이 한정된 대형마트는 온라인보다 취급 상품이 적을 수밖에 없고, 상품 차별화가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이 빠른 배송으로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는 현실도 대형마트를 위협하는 요소다. 서용구 교수는 “최근 온라인은 새벽 배송, 당일 배송 등으로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신선식품까지 당일치기로 배송하기 시작했다”면서 “대형마트가 경쟁우위를 갖던 신선식품 시장마저 온라인 유통업체들에 빼앗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거시적 환경 변화도 대형마트 영업 환경에 악재로 작용했다. 4인 가구 감소와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경기 불황, 미세먼지로 인한 실내 활동 증가 등은 소비자 구매 패턴의 변화를 부추겼다. 특히 전문가들은 온라인과 편의점을 주로 이용하는 ‘1인 가구의 증가’가 대형마트에 장기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서 교수는 “4인 가구가 줄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지적하면서, “4인 가구에 의존하던 대형마트의 존재감은 앞으로 더 미미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 2월 기준, 1인 가구가 주로 이용하는 편의점 매출은 전년 대비 3.7% 증가했지만, 대형마트 매출은 13.7% 감소했다.

고강도 규제의 족쇄는 더해지고


▎대형마트는 2012년부터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에 의무휴업을 시행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형마트가 전국에 400여 개의 점포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덕이 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형마트는 저렴한 상품 가격 덕분에 소비 활성화와 물가 안정의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정부는 유통산업발전법에 의거해 1999년부터 유통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초기 유통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정부는 대형마트 출점 촉진과 영업 활성화 차원에서 규제를 완화하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대형마트가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붕괴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대형마트를 옥죄는 규제가 쏟아졌다. 2010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제도가 신설됐고, 2012년에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정이 더해졌다. 2013년 오전 10시로 영업 개시 시간이 늦춰지더니, 월 2회 의무휴업일까지 가세했다. 이후 상권영향평가 기준이 강화되면서 신규 출점 제한이라는 고강도 규제에 발목이 잡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대형마트의 위기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요일 둘째 주, 넷째 주에 문을 닫다보니 아예 첫째 주, 셋째 주 일요일에도 방문하지 않는 고객이 생긴다”면서 “일요일 매출이 평일 매출의 두 배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대형마트에게는 한 달 중 사실상 8일 매출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이라며 하소연했다. 대형마트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시점도 영업시간 제한을 비롯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시행된 2012년 이후와 맞물린다.

여기에다 한층 더 까다로워진 상권 영향 분석도 장애물로 등장했다. 대형마트는 신규 출점이나 매장 확대를 꾀하려면 전통시장, 슈퍼마켓 등 기존 소매업에 미치는 상권 영향 분석 자료를 해당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복수의 유통 전문가들은 “대형마트의 신규 출점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며 “신규 출점으로 성장해온 대형마트가 성장의 동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올해도 롯데마트를 제외한 업계 1, 2위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출점 계획이 없다.

이런 현실과 관련해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통업은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산업”이라며 “각종 규제로 위축된 대형마트는 유연성을 잃으며 도태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반면 규제에서 자유로운 온라인은 신속성, 편리함 등을 중시하는 소비 취향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성장세를 구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통산업발전법은 골목상권이 아닌 온라인에 날개를 달아준 법”이라고 평했다.

대형마트 규제 강화가 전통시장 활성화에 과연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대형마트가 쉬면 소비자들은 외출을 아예 안 하거나 집에서 온라인 전자상거래를 이용한다”면서 “전통시장으로 가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서용구 교수는 “온라인 전자상거래의 약진이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위기를 동시에 초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이라는 신흥 강자가 있는데 한국과 일본이 싸우고 있는 격이다.”

정부는 올해도 대형마트 규제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5차 유통산업발전 기본 계획에 따르면 상권영향평가 분석 대상 업종을 서비스업으로 확대하고, 제3의 상권영향평가 기관에 위임해 대형마트를 비롯한 대규모 점포의 상권 진출 제한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지역 발전 기여 평가제를 도입해 대규모 점포의 지역협력계획서 이행실적을 점검하고, 지역 발전 기여도를 평가할 예정이다.

오프라인 혁신으로 온라인에 맞서다


▎대형마트는 공간효율을 포기하고 체험 공간을 확대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1층 전체를 고객 휴식 공간으로 꾸민 롯데마트 ‘어반 포레스트’에서 고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형마트도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는다. 점포 수익성 개선에 힘쓰는 동시에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온라인 사업도 강화하는 추세다. 롯데마트와 이마트는 지난해부터 그룹 차원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쇼핑은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백화점, 홈쇼핑 등을 합친 통합 온라인 사업부를 출범하는 등 온라인 비중을 확대할 방침이다. 홈플러스 역시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인근 매장에서 수령하는 새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미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주도권을 쥔 시장에서 대형마트의 온라인 전략이 효과를 나타낼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의 강점을 살린 대형마트만의 ‘차별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승호 교수는 “사람이 오지 않는 대형마트는 ‘손님 모으기’가 급선무”라고 강조하면서 “초저가 할인을 내세운 미끼 상품으로 고객을 유인할 수 있지만, 그건 고육지책일 뿐”이라고 회의적 평가를 내린다.

유통전문가들은 지역 상권에 의존하는 대형마트 특성을 살리는 방안을 제안한다. 예컨대 ‘주민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고객이 방문할 유인을 제공하는 ‘체험형 매장’으로 콘셉트를 전환할 경우 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형마트 3사는 지난해부터 오프라인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이마트는 잡화점 삐에로쇼핑과 가전매장인 일렉트로마트 등 전문 매장을 확대하고 체험 위주로 공간을 바꿨다. 홈플러스는 창고형 할인점인 홈플러스 스페셜로 기존 매장을 리뉴얼하고 있다. 소포장 제품부터 대용량 제품까지 진열해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계산이다. 롯데마트도 구매한 식자재를 전문 셰프가 현장에서 직접 요리해주는 그로서란트 매장을 확대하는 중이다.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재방문율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그래도 희망은 있죠.” 기자가 만난 대형마트 관계자들은 경제 불황, 규제 강화 등 여러 악재 속에서도 대형마트가 반등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안승호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대형마트가 수십 년간 쌓아온 고객 데이터는 판을 뒤집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온라인의 공세와 정부의 규제를 뛰어넘어 대형마트들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지 지켜볼 일이다.

- 이태림 월간중앙 인턴기자 rim_ki@naver.com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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