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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박근혜 전 대통령 대리인단 이끈 이중환 변호사 

“탄핵심판은 재판으로 포장된 ‘정치 게임’, 불행한 역사 되풀이 막아야” 

글 이상언 중앙일보 논설위원 lee.sangeon@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 탄핵심판에서 인정된 사실은 실제의 사실과 매우 다를 것
■ 무효라고 주장하진 않겠지만 절차와 결론 모두 수긍 못해
■ 현직 대통령 탄핵돼도 정권 유지되도록 헌법 개정 필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를 맡았던 이중환 변호사.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가 TV에서 울려 퍼졌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완성됐고, 5월 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됐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 집회(2016년 11월 2일이 시작)가 열린 지 넉 달 만이었고,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결의(12월 9일)한 지 석 달 만이었다.

헌재의 결정이 공표된 날 서울중앙지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수사하는 중이었다. 수사의 결론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탄핵이 결정된 것이다. 헌재는 탄핵심판을 신속히 진행했다. 첫 변론 절차가 진행된 날이 2017년 1월 3일이었으니 선고까지 총 66일이 걸렸다. 이 같은 ‘신속함’에 대해 박한철 당시 헌재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곧바로 대통령 직무정지가 이뤄졌다. 총리가 권한대행 역할을 맡았지만, 우리나라 총리는 선출직이 아니다. 권한대행의 리더십은 ‘민주적 정당성’을 온전히 갖출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가 통치에 공백이 생겼다. 이는 국가와 헌법 수호의 측면에서 중대한 위기였다.”(중앙일보 2018년 3월 8일 자 참조).

헌재의 신속한 결정의 배경에는 ‘재판관 결원’이라는 문제도 있었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탄핵심리 진행 중인 1월 31일에 임기만료로 퇴임했고, 3월 13일에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이 예정돼 있었다. 평상시라면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각각 후임자를 지명하고 국회의 청문회 절차를 밟으면 될 일이었지만 대통령 직무 정지라는 특수한 상황은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야당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헌재 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더라도 청문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학계와 법조계에선 대통령 권한대행이 과연 헌재 재판관 지명권을 가졌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재판관 결원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웠고, 3월 13일이 지나면 재판관 9명 중 7명만 남아 탄핵심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훗날 탄핵심판의 정당성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수사 중인데 탄핵심판 서두른 헌재”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읽고 있다.
5년 뒤, 10년 뒤 또는 그보다 먼 훗날에 대통령 탄핵소추의 역사가 되풀이된다면 그때도 이런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불거진 제도적·법률적 논란거리를 정리하고 해소하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 재판관을 지명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답을 우리 국민은 아직도 모른다. ‘가본 적이 없는 길’이었기에 우왕좌왕하며 지나갔는데, 가고 난 뒤에 이정표를 세우거나 지도를 그리지도 않는다.

재판관 결원 해소 문제 외에도 탄핵심판 과정에서 절차와 방법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소송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국회가 제시한 소추 사유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심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등의 주장이 계속 이어졌다. 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측에서 제기한 것이지만, 지지층 밖에서도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법률적으로, 학문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해 볼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다.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를 맡았던 이중환(60) 변호사를 4월 4일에 만났다. 탄핵심판에서 드러난 제도적 허점과 헌재 판단에 대한 견해를 글로 정리하고 있다는 법조계 소문을 들은 뒤였다. 그는 “불합리한 부분을 없애자는 것이지 탄핵 결정이 무효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핵이 고도의 정치적 행위가 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핵심판 뒤 그가 언론에 자기 생각을 자세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대면 인터뷰와 서면 인터뷰를 병행)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부터 지금까지 인터뷰나 기고를 통해 입장을 자세히 밝힌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러셨는지요?

“소송에서 패소한 변호사가 그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패자는 말이 없어야 한다’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제가 탄핵심판에 대해 언론에 인터뷰나 기고를 하게 되면 패소한 대리인의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근 몇몇 법조인을 통해 이 변호사께서 탄핵심판을 ‘리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와 대통령이 정면충돌해 대통령이 패배한 헌정사의 기록적인 사건입니다. 그동안 헌법학계에서 이 일에 대해 공개 토론회를 열거나 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런 과정에 참여해 제 의견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탄핵심판의 절차적 문제와 헌재의 헌법 해석 문제를 직접 정리해 보기로 마음먹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법률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왜 박 전 대통령 측 변론을 맡았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많을 듯합니다.

“저는 탄핵 사건을 맡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 출신입니다. 1972년 ‘10월 유신’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고, 대학교 3학년까지 유신 치하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유신의 폐해도 압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제 가족이 대구로 이사하기 전까지 시골에 살면서 전기와 수도가 없어 밤에 호롱불을 켜고, 모친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습니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부유한 편에 속했는데도 그랬습니다. 그 뒤 대한민국의 발전 과정을 직접 체험한 저로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비교적 후한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따님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컸습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때 저는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될 것이라는 보도를 보았으나, ‘설마 가결이 되겠나’ 하고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뒤 해외에서 청와대 관계자의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많던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은 어디 가고…”


▎이중환 변호사(왼쪽)가 4월 4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상언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수락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청와대의 전화를 받을 때 현직 대통령 사건이므로 여러 명망 있는 법조계 인사들이 대리인단에 들어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제가 헌재 연구관으로 2년 근무했고, 검사로서 20여 년간 일했기 때문에 실무적 도움이 필요해 연락을 해왔을 것이고, 따라서 지시받은 일만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12월 13일 오전에 귀국해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화했는데 그쪽에서 ‘변호사가 네 명밖에 없다. 당신이 제일 선임이므로 답변서도 작성해 제출해야 하고, 언론 브리핑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과의 인연을 가진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가족들과 상의하니 ‘가급적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소신에 따라 하겠다면 막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다음 날 답변서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탄핵심판의 절차와 결론 중 어느 쪽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건가요?

“절차와 결론 모두에 제가 수긍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일부 보수 단체에서 주장하는 ‘탄핵은 무효다’라는 말씀을 하려는 건가요?

“헌재의 탄핵심판은 1심이 최종심입니다. 헌재 결정을 뒤집을 방법은 없습니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을 교훈으로 삼아 그릇된 제도, 틀린 법률 해석을 바로잡자는 것이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주장하시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문제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절차와 관련된 것은 무엇인가요?

“탄핵심판도 일종의 재판입니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유(박 전 대통령의 헌법 위배 및 법률 위배 사실)를 박 전 대통령은 모두 부인했습니다. 강일원 당시 헌재 주심 재판관은 준비절차 첫 기일에서 ‘이 사건은 사실인 정의 진검승부(眞劍勝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여부를 명확히 규명하는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려면 법률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절차적 문제의 대표적 사례는 헌재가 수사 중, 또는 재판 중인 사건의 기록을 받아 재판에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헌재법 32조 단서 조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헌재는 최서원(이하 최순실)씨의 형사사건 기록을 검찰로부터 받아 심판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헌재법 32조 단서에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의 기록을 쓰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 있는 이유는 검찰이 작성한 수사기록에 의존해 헌재의 심리가 이뤄져 검찰이 의도한 방향으로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헌재 산하 헌법재판연구원이 발간한 [주석 헌법소송법] 372쪽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법 32조 단서 조항을 근거로 헌재의 수사기록 송부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는데, 헌재가 기각했습니다.”

“사무라이의 칼에 목검으로 맞선 형국”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
소추사유가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쓸 수 있는 자료가 최순실씨 등 박 전 대통령 주변인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 외에는 이렇다 할 게 없는 상황이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법이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다. 탄핵심판에서 소추사유 증명 책임은 청구인, 즉 소추위원 측에 있습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공범으로 기소된 최씨에 대한 수사기록을 넘겨받은 헌재는 그 기록을 근거로 재판을 진행했고, 그렇게 됐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측이 검찰 수사기록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습니다. 입증 책임이 피청구인에게 전환되는 것은 법률적으로 매우 부당하고, 헌법 원리에도 위배됩니다. 그래서 헌재 전원재판부 심리 과정에서 ‘검찰 수사기록이 헌재에 송부됨으로 인하여 소추위원 측은 사무라이의 예리한 진검(眞劍)으로, 대통령 대리인단은 목검(木劒)으로 다투는 지경이 됐다’고 항의했습니다.”

진검 앞에서 목검을 들고 싸우는 형국이었다고 하더라도 검찰 수사 내용 중 사실이 아닌 부분을 입증하는 게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 아닌가요?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에서 박한철 당시 헌재소장이 ‘탄핵심판은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 일인) 2017년 3월 13일 전에 선고되어야 한다’고 미리 선고 일자를 지정했기 때문에 피청구인 측에서 신청한 많은 증인이 불출석했습니다. 다수의 증인 신청이 기각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사실관계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리가 종결됐습니다. 저는 탄핵심판에서 인정된 사실은 실제의 사실과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절차와 관련해서, 당시 형사소송법 적용 여부가 논란이 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헌재법 40조는 탄핵사건의 경우 형사소송법을 우선하여 준용(準用)하고, 예외적으로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결정문에도 ‘탄핵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수하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무시한 독창적 절차법이 적용됐다고 봅니다.”

형사소송법 적용 내지 준용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는 부분은 어떤 대목입니까?

“탄핵심판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을 파면하는 심판 절차이므로 당사자에게는 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형사소송 절차의 대원칙은 ‘공판중심주의’입니다. 공판 중심주의는 재판 과정에서 직접 증거물 제출, 증인신문, 변호인의 반대 신문 등을 거친 뒤 공소사실(탄핵심판에서는 소추사유) 인정 여부를 재판부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검사가 작성한 조서를 그대로 유죄의 증거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검사가 작성한 조서를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헌재는 영상으로 녹화된 진술 내용, 변호인 참여하에 작성된 조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했습니다. 대기업 회장들은 모두 변호인 입회하에 조서를 작성했으므로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대기업 회장들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할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 대리인단이 대기업 회장들을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었다면 재단(미르·K스포츠) 출연 등에 대한 헌재의 사실인정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반대 신문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조서를 증거로 삼는다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헌재가 사건 기록을 송부받았는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은 사실관계에 전혀 다툼이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부분 등은 언론에 그대로 보도돼 증거가 명확했고, 피청구인(노 전 대통령)도 공직선거법 위반 등에 대한 소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서 송부된 검찰 수사기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범으로 기소된 사건의 수사기록이 아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참모들의 비리와 관련된 수사기록입니다. 그 사건들은 모두 1심 재판이 종료된 상태였습니다. 반면,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송부된 검찰 수사기록은 박 전 대통령이 공범으로 돼 있는 사건이었고, 최순실씨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두 탄핵심판의 내용은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재판 중인 사건 수사기록 활용은 위법”


▎이중환 변호사가 탄핵심판이 열린 헌재 심판정에서 대리인단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이 현직 상태일 때 특별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헌재가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유사 상황이 벌어질 때 수사기록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헌재가 검찰의 수사기록을 활용하는 것은 ‘수사·재판 중인 기록의 송부를 요청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재 법 32조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입니다. 검찰 수사기록을 이용하게 되면 헌재의 탄핵심판이 검찰의 구도대로 진행될 위험성이 있으므로 막는 것입니다. 국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서를 헌재에 보내면서 증거자료로 제출한 것은 최순실씨에 대한 공소장, 언론 보도 자료 등이었는데 소추사유를 직접 입증할 증거는 없었습니다. 검찰 공소장은 법원에 대한 검찰의 의견 제시에 불과합니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 무죄가 선고되는 것도 많지 않습니까? 소추사유에 포함된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이 공모하여 3개 대기업들로 하여금 재단법인 미르와 재단법인 케이스포츠에 360억원을 출연하도록 하여 뇌물을 받았다’는 부분은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재판관은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과 다른 결정을 하였다’는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법관의 자격을 포기한 것입니다. ”

국회의 조사 없이 탄핵소추가 된 것도 논란이 됐는데요, 이런 부분도 법으로 좀 더 명확히 해놓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국회법 130조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발의할 때 본회의 의결로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하여 조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야 한다’가 아니고 ‘할 수 있다’로 돼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사건에서 법사위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대통령 대리인 측이 절차 위반을 주장했으나 헌재는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중 일부 대리인이 노 전 대통령 대리인과 같은 주장을 펼치기도 했으나 저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법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이 그렇게 돼 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부분을 고쳐야 합니다. 박 전 대통령 소추사유 중 검찰의 공소장에 근거하여 기재된 특가법 위반(뇌물) 등 형법 위배 부분만 다소 구체적이었고, 헌법 위배 부분은 구체적 사실관계가 없는 추상적 내용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탄핵소추 의결 전 법사위에서 소추 여부에 대한 사실 조사와 법률적 판단을 의무적으로 하고, 법사위 및 법사위원장이 소추사유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이라도 부담하는 형태로 국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일원 주심 기피신청하려다 시기 놓쳐”


▎박한철 전 헌재소장은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2017년 1월 31일에 퇴임했다. 그는 헌법재판관 공석으로 인한 탄핵심판의 정당성 문제를 우려해 심리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기록 사용, 형사소송법 미적용, 국회 법사위 조사 생략 등 큰 틀에서의 원칙적 절차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진행 과정에서 그 외의 문제도 있었나요?

“우선 주심 재판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2017년 1월 말께 ‘박 전 대통령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후 강일원 주심 재판관의 부친이 정치적 변동에 따라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주심 재판관은 그것이 부당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안다’는 내용의 정보를 충분히 믿을 만한 과정을 거쳐 전달받았습니다.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주심 재판관에게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판단해 주심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헌재법 24조 제3항에 ‘변론기일에 출석하여 본안에 관한 진술을 한 때에는 기피신청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고, 제가 2017년 1월 3일의 1회 변론 기일에 출석해 본안에 관한 변론을 했기 때문에 기피신청의 시기를 놓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주심 재판관에게 그런 사유가 있었다면 스스로 주심 자리에서 물러나고, 헌재 재판부가 주심 재판관을 변경하는 절차를 진행했어야 하는 게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강일원 전 헌재 재판관은 “선친이 장면 전 총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나온 얘기로 짐작되는데, 선친은 사업을 했다. 정치 활동을 한 적이 없다. 설사 무엇인가 불이익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주심 회피신청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내가 객관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과도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가 서둘러 탄핵심판을 끝내려 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그랬나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는 2016년 12월 9일에 헌재에 접수됐는데 박한철 헌재소장은 2017년 1월 31일에, 이정미 재판관은 3월 13일에 임기만료로 퇴임하게 돼 있었습니다. 헌재법 3조 3항은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에는 임기 만료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뒤 정치권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소장 후임자를 임명하더라도 청문회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헌재 소장 후임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법원장도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자에 대한 지명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으며, 헌재도 퇴임이 예정된 헌재소장과 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달라는 요청을 대통령 권한대행과 대법원장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에 대한 임명 절차를 진행하면서 헌재가 충실한 심리를 통한 사실 확인과 이에 근거한 헌법적·법률적 판단을 하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추 사유 추상적이고, 소추 의결서도 엉성”


▎이중환 변호사가 인터뷰 도중 피곤한 듯 눈을 닦고 있다.
그 밖에 탄핵심판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또 있습니까?

“국회에서 의결한 소추사유와 헌재가 파면을 결정한 사유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법률적으로 중대한 결함입니다. 국회의 소추 의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유 중 헌법 위배 부분은 정말 법률가가 작성하였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성했습니다. 소추 의결서는 형사소송에서의 공소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데 공소장은 검사가 법원에 피고인의 처벌을 요구하는 서류로서 검사는 피고인의 범행에 대하여 구체적인 일시·장소·방법을 적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에는 검찰이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은 공소장을 내면 재판을 진행하지 않고 공소를 기각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을 준용하는 탄핵심판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공소사실을 조금 바꾸거나, 추가하는 것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는 형사소송법 원칙과 ‘공소제기를 받은 법원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범죄사실 한도 내에서 사건을 심리하고, 판단할 권한을 갖는다’는 불고불리(不告不理)의 원칙 또한 탄핵심판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운 부분인데,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상황을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의 소추사유는 헌법위배 행위 5개 항, 법률 위배 행위 8개 항이었는데 대통령 대리인단은 소추사유 중 헌법 위배 부분은 소추사유가 추상적이고, 사실관계가 특정되지 않았으므로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국무위원이 아닌 최순실에게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사항을 미리 알려주고 심의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였다’는 소추 사실은 일시·장소가 전혀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헌법 위배 부분의 소추사유는 모두 위와 같은 형식으로서 특정되지 않은 사실들이었습니다. 주심 재판관은 2016년 12월 22일과 2017년 1월 25일 두 차례에 걸쳐 소추위원 측에 소추사유를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주심 재판관은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는 다른 재판이기는 하지만 소추사유에 관한 사실관계를 특정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7년 2월 1일에 소추위원 측은 소추사유 중 법률(형법) 위배 부분을 모두 삭제하고, ‘최순실 등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등 4가지 유형의 헌법 위배로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보통의 형사 재판으로 치자면 공소장이 바뀐 것에 해당하네요.

“그렇습니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당시 가장 중요한 소추사유는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하여 3대 대기업(삼성·SK·롯데) 회장들을 상대로 재단에 출연을 요구하고, 그 대기업들로 하여금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지배하는 2개 재단에 360억원을 출연케 함으로써 결국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들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추위원 측은 국회의 의결을 받지 않은 채 이런 내용을 소추사유에서 제외했습니다. 소추위원은 국회 의결 없이 소추사유 중 일부를 철회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소추위원 측의 소추사유 변경은 중대한 법률 위반입니다.”

“최순실 일부 사안 조언했지만 ‘국정 농단’은 과도한 해석”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자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국회의 재의결 없이 소추사유 변경을 한 것에 대해 당시 대리인단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절차를 위반한 소추사유 변경에 대해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2017년 2월 3일과 2월 6일 두 차례에 걸쳐 서면을 제출하면서 ‘소추위원 측의 소추사유 변경은 기본적 사실관계에서 국회 소추 의 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유와 다르거나, 추가로 기재되었으므로 탄핵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헌재는 탄핵심판 결정문에 ‘2월 1일의 소추사유 유형별 정리 자체에 대하여 피청구인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변론을 진행하였다’고 기술했습니다.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결국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에는 들어있지 않은 부분까지 심리를 진행했습니다. 이는 ‘재판부는 기소된 부분에 관해서만 판단한다’는 사법적 원칙을 어긴 것입니다.”

어떤 부분이 소추사유에 포함돼 있지 않았으나 헌재가 심리와 판단을 한 것인가요?

“헌재는 결정문에 ‘2월 1일 자 준비서면에 주장한 소추사유 중 소추 의결서에 기재되지 아니한 소추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은 이 사건 판단 범위에서 제외한다’고 적었으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인용한 사실에는 소추 의결서에 기재되지 않은 것들이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탄핵결정문의 ‘6.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여부’ 중 ‘가. 사건의 배경’이 대표적입니다. 소추사유에 이 내용이 전혀 없고, 소추사유는 대통령 재임 기간 중의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헌재의 결정문에는 피청구인과 최태민과의 관계, 대통령 취임 전 비서실 운영 형태까지 기재하였습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대한 부분도 탄핵소추 의결서에 없는 내용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과 달리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가 첨부돼 있지 않습니다. 저는 헌재가 소추사유와 실제로 파면을 결정한 사유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누락시켰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헌재는 ‘사인의 국정 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을 사실로 인정했는데,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습니다. 헌재는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과 대통령의 권한 남용에 대해 사실관계 인정과 법률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흔히 국정 농단이라고 하는 것을 헌재는 국정 개입 허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최씨는 일부 사안에 대해 박 전 대통령에게 조언하거나,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을 농단한 사실은 없습니다. 헌재는 최씨가 국정에 개입했다고 봤으나 그 판단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헌재는 자기 책임 원리를 위반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최씨나 수석비서관의 잘못까지도 헌법 위반 사실로 인정해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최순실이 추천한 일부 공직자는 최순실의 이권 추구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임명된 김종은 내부 문건을 최순실에게 전달하고, 최순실의 요구 사항을 정책에 반영하는 등 최순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최순실의 추천으로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단장으로 임명된 차은택의 지인들은 최순실의 요구사항대로 미르를 운영하는 등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는 부분은 박 전 대통령이 전혀 공모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서 헌재는 노 전 대통령이 공모하지 않은 부분에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헌재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 판단을 달리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재단 설립 문제는 권한 남용 아닌 정책 판단 잘못”


대통령 권한 남용 부분까지도 부정하시는 것인가요? 재단 출연 요구는 권한을 잘못 사용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습니까?

“국민 대다수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를 위해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를 설립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재 결정문에도 박 전 대통령이 최씨를 위해 두 개의 재단을 설립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부터 문화융성과 스포츠 진흥에 큰 관심을 보였고, 그것은 대통령 선거 공약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리커창 중국 총리와 문화 재단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2월에 박 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에게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해 청와대 비서실은 이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 뒤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 경영권자와의 개별 면담에서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 설립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10월에 리커창 중국 총리 방한을 앞두고 전에 교환한 양해각서에 맞는 문화재단을 뒤늦게 설립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무리한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한 과정을 박 전 대통령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수석비서관도 박 전 대통령에게 이러한 문제점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촛불집회 전후로 이러한 문제점이 밝혀지자 이를 숨기려고 재단 설립에 대한 청와대 개입 사실을 부인한 박 전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의 대응이 부적절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탄핵소추 대상이 되는 헌법 위배 또는 법률 위배가 아니라 정책 판단의 잘못에 해당합니다.”

그렇다 해도 대기업에 출연을 요구한 것은 정당한 대통령 권한 행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재단 기금을 출연하는 것에 관련된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은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모임 단체로서 역대 정권에서 대형 수재와 같은 각종 국가적 재난에서부터 연말 이웃돕기와 같은 각종 형태의 기금을 모금했습니다. 모금 기준은 대기업들의 매출액 기준으로 할당됐고, 전경련 소속 대기업들은 위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고자 매년 사회협력기금을 준비했습니다. 헌재 결정문에도 ‘전경련의 사회협력회계 분담금 기준으로 기업별 출연 금액을 결정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종전의 예에 따라 대기업 회장들에게 재단 출연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을 강요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 뒤 우리나라 대통령직은 더욱 위험한 자리가 됐습니다. 까딱하면 탄핵 대상이 되고, 퇴임 후 직권남용죄로 처벌될 위험성이 커졌습니다. 대기업들은 전경련의 출연 금액 요청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통상의 기부금으로 생각하고 출연을 했습니다. 전경련의 출연 협조 요청을 강요로 느끼지 않았다고 봅니다. 일부 대기업들은 기업의 경영 애로 또는 이미 문화 관련 사업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하거나 출연 분담금을 깎았습니다. 대통령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다면 대기업들이 위와 같이 출연 거부 또는 출연금 감액을 요청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기업으로서는 피청구인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등으로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는 헌재 결정문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인정한 것입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사실 인정으로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최순실 등 외부 정책 의견 청취는 헌법 위반 아냐”


▎대기업 총수들이 2016년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출석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데 대한 추궁이 이뤄졌다.
헌재는 대통령의 공무상 비밀누설도 파면 사유에 포함했는데요, 이 부분도 잘못됐다는 것입니까?

“헌재 결정문에는 국회의 소추사유에 전혀 없는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을 기재하면서 ‘정호성 비서관이 최순실에게 박 전 대통령의 말씀 자료·보고서 등을 전달하였다’고 적시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 일시, 각종 비밀문건의 정확한 명칭, 내용 등은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정호성 비서관이 최순실씨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된 47건의 문서만으로는 비밀 누설을 파면 사유로 삼기에 부족해 추상적 사실을 담으면서 박 전 대통령의 부정적 행동을 강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헌재는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 관련 비밀이 누설된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결정문에도 그 부분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해외순방 시 여성 대통령인 박 전 대통령의 의상 때문에 해외 일정이 최순실에게 전달된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여성 대통령이라 의상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미혼인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한 최순실씨가 그 일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최순실씨로부터 압수된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에는 순방 대상 국가의 국기 색깔과 대상 국민이 좋아하는 색상과 관련된 메모가 적혀 있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일정을 알려준 행위가 심각한 공무상 비밀누설이 된다는 헌재의 판단은 합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헌재는 결국 박 전 대통령이 헌법상의 대통령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파면의 핵심 사유로 제시했습니다. 이것도 부당하다고 보시나요?

“헌재는 ‘피청구인이 최순실의 추천에 따른 공직자 4명을 임명했고, 최순실의 추천에 따른 다수의 공직자 임명은 피청구인이 공익실현의무를 위반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4명이 다수입니까?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자가 10명이라면 4명은 다수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자는 적게는 3000명, 많게는 그 수의 열 배라고 합니다. 헌재의 ‘다수’에 대한 수학적 개념 내지 판단은 무엇에 근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조직법상 대통령 산하에 3개 실, 국무총리 산하에 5개 처, 4개 위원회, 17개 부처가 있고, 거기에 위원회·정부투자기관·공기업도 있는데 최순실씨가 인선에 관여한 곳은 문화·체육 분야에 한정돼 있고, 최고위급은 차관급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최순실씨 추천에 따른 4명의 공직자 임명을 국익을 해하는 정도의 명백한 공익실현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을까요? 역대 대통령들은 그러한 인사를 하지 않았나요? 향후 대통령들은 그런 인사를 전혀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에게 말씀 자료 등을 보내 의견을 구하는 것은 헌법상 공익실현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습니다. 헌재의 논리에 따르면 대통령의 공적 발언이나 연설문 등을 공직자 아닌 자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거나, 대통령이 공무원 아닌 가족·친지·친구·후원자들로부터 의견을 들어 정책에 반영하는 행위가 헌법 위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통령에게 사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자의 불법적 행동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의견을 제시하는 주변 사람과 공모하여 불법적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이러한 의견 청취 행위와 같은 정치적 업무 방식을 탄핵 대상으로 삼는 것은 대통령제에 대한 과도한 제한입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에게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까?

“헌법수호 의지 문제는 대통령 대리인단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탄핵소추 의결서의 소추사유에 기재되지 않았고, 탄핵심판의 변론에서도 전혀 심리하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따라서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 부분에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지 부족에 대한 사실인정은 잘못된 것입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검찰 조사나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한 점에 비추어 보면 피청구인의 헌법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피청구인의 행위가 헌법 84조에 의해 재직 중 기소될 수 있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에 해당하지 않아 기소될 수 없으므로 기소를 전제로 하는 수사에 응하지 않는 행위가 헌법 위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고, 피청구인이 검찰 조사나 특별검사 조사에 응하지 않은 이유는 절차적 문제와 경호 등의 여러 사유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특별 검사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할 때 박 전 대통령은 직무 정지된 상태였으므로 압수수색을 거부할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여야 합의에 따른 책임 총리 수용, 대통령직 자진 사퇴 등을 제안하며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헌재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나, 고려하기 싫었다고 생각합니다.”

“헌재, 박 전 대통령 헌법수호 의지 고려하기 싫었을 것”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2017년 1월 16일 헌재에 출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와 과정에 대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탄핵 제도에 결함 내지는 법률적 미비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1987년 헌법 체제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두 차례 탄핵소추를 당했습니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과 장관, 헌재 재판관, 법관 등’을 탄핵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탄핵 대상 공직자 중 유일하게 대통령에게만 실제로 탄핵이 적용된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 탄핵의 모델인 독일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고, 간선제로 선출되는 독일 연방 대통령에 대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곧 정권 교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더라도 부통령이 대통령의 잔여 임기 동안 대통령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대통령이 파면돼도 정권은 교체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파면되면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게 돼 있어 대통령 탄핵은 정권 교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탄핵소추 의결이 국회와 헌재를 거치며 고도의 정치적 게임의 수단으로 변질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신임뿐만 아니라 대통령 소속 정당에 대한 신임투표의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향후 헌법을 개정할 때 미국처럼 대통령이 탄핵당하더라도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총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미국처럼 대선 때 부통령이나 국무총리를 미리 지명하는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미국처럼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엔 부통령이 잔여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면 야권이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무리수를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차피 정권 교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다음 선거에서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탄핵이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1월 29일 3차 대국민 담화에서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탄핵이 고도의 ‘정치 게임’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 역사가 길지 않은 독일은 군중의 집단적 흥분 상태가 지속하면서 나치가 등장하고, 바이마르헌법 질서가 무력화된 결과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경험했습니다. 2차 대전 후 독일은 이러한 헌법 질서의 문란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고자 헌법재판소를 설치했고, 우리나라도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독일을 참고해 헌재를 설치하고, 탄핵소추 심판을 헌재가 담당하는 가장 강력한 사법형 탄핵심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내용 확인 바랍니다) 비록 헌재가 국회·행정부·사법부가 각 3명씩 재판관을 추천 또는 임명하는 정치적 사법기관이라는 본질적 한계가 있더라도 재판관들은 법관의 자격을 가진 자들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헌재는 여론으로부터 독립해 헌법 원리에 충실한 심리를 한 후 탄핵심판에 관해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으로 향후 대통령·법관 등 탄핵소추 대상자들의 업무 수행에 상당한 위험이 초래되거나, 정치적 분쟁의 가능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저는 헌재가 이 사건에서 헌법 위배의 범위를 과도하게 넓게 해석함으로써 헌법 원리를 변형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견해에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면 헌법을 개정할 때 헌재를 폐지하고, 미국의 연방 대법원과 같은 정통 사법기관에 탄핵심판을 맡기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저는 민사·형사·행정 등 각 전문 분야 사건의 1심 법원·항소법원·최고법원을 두고, 대법원이 헌재와 같은 역할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두에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글을 쓰고 계시다고 했는데요.

“판결 평석과 유사한 형태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회가 생긴다면 법률 전문지에 기고할 생각입니다. 거기에 탄핵심판의 구체적 진행 과정 등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 책으로 출판해 볼까 합니다.”

정치적 활동을 염두에 두고 그런 작업을 하시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합니다. 천성이 그렇습니다. 지금 하는 일은 일종의 의무감 때문입니다. 정치 활동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일입니다.”

[박스기사] ‘국회의 창’ 황정근 변호사 - “헌법 재판은 일반 재판과는 다르다”


▎판사 출신인 황정근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소추위원 대리인단 대표를 맡았다.
탄핵심판에서 이중환(60) 변호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패였다면 국회 쪽의 창(槍)은 황정근(58) 변호사였다. 소추위원 대리인단 대표로 활동했던 황 변호사는 판사 출신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도 일했다. 헌법·선거법 관련 소송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법조계에선 박 전 대통령 측이 국회 측보다 먼저 황 변호사를 접촉해 변론을 부탁했다면 탄핵심판 양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탄핵소추의 법률적 허점을 가장 잘 아는 법조인이라는 점에서다. 황 변호사에게 이 변호사 주장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탄핵심판에서 검찰 수사기록을 받아 증거로 사용한 것은 헌재법 32조 위반이라고 하는데.

“그 조항은 당사자, 즉 박 전 대통령에게 국한된 것으로 봐야 한다. 헌재가 넘겨받은 것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록이 아니라 최순실·정호성·안종범 등에 대한 것이었다.”

“탄핵 앞서 국회 조사 거치도록 법 개정 필요”

헌재에서 일부 증인에 대한 신문이 생략되는 등 형사소송법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고도 주장한다.

“헌재법에 형사소송법 또는 민사소송법을 준용한다는 조항에 ‘헌법 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헌재가 헌법 재판의 성질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소송법 준용의 범위와 정도가 달라진다.”

국회가 자체 조사 과정 없이 탄핵안을 의결하는 것은 법을 바꿔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이 변호사 생각이다.

“동의한다. 조사 절차를 거치는 게 맞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때 국회의 조사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을 당시 헌재가 용인했고,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국회 조사 과정이 생략됐다. 원론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다. 조사가 먼저 이뤄지도록 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 국회의 ‘소추사유’가 다시 정리됐는데, 국회에서 이를 재의결하지는 않았다.

“소추사유를 다시 분류한 것뿐이다. 없던 팩트를 새로 넣은 게 아니다. 문제 될 게 없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헌재가 ‘헌법수호 의지’에 대한 판단을 결정문에 넣은 것은 소추사유에도 없는 부분을 재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양형 판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소추사유가 인정된다고 곧바로 헌재가 파면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헌법 위배를 인정하더라도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인가를 재판관들이 판단해야 한다. 헌법수호 의지에 대한 헌재 판단은 파면이라는 ‘중형’을 선고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봐야 한다.”

※ 이중환 변호사는 - 1959년 경북 구미에서 출생 경북고, 고려대 법대 졸업 25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5기) 인천지검 차장검사 대구지법 서부지청장 역임 현 법무법인 선정 대표 변호사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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