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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 초대석] ‘한국판 엘 시스테마’ 꿈꾸는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만들어 연주자로 인정받고 싶어요”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abcd2877@naver.com
2008년 장애인·저소득층 자녀 위한 무료 음악 교육 프로그램에서 출발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4월 18일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개봉


▎영화 [뷰티플마인드]의 실제 등장인물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유혜영 교사, 심환, 김민주, 이원숙 교사.
중남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에는 청소년 무료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가 있다. 1975년 창립한 엘시스테마는 기존의 음악 교육과는 달리 사회적 변화 추구라는 지향점이 뚜렷하다.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을 제시하고, 협동심·소속감·책임감 등을 길러준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세계적인 음악가로는 LA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더블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즈 등이 있다.

특히 두다멜은 28세 때인 2009년 9월, 세계 정상급 악단인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연소 상임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내한 공연 하루 전인 3월 15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LA 필하모닉 100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음악이란 마법 같은 것이자 최고의 선물이다. 나는 사람을 모으고 화합하게 해주는 음악이 내 나라를 비롯해 사회를 치유해 주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우리나라에도 ‘한국판 엘 시스테마’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은 2007년 설립된 사단법인 ‘뷰티플마인드’(이사장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뷰티플마인드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전 세계의 소외된 이웃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는 문화외교 자선단체다.

한국인들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2006년 미국과 홍콩에 이어 2007년 한국, 2012년 싱가포르, 2015년 베트남에 설립됐다. 2016년 7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적 지위를 획득했다.

뷰티플마인드 산하 기구로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가 있다. 2008년 창립한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는 장애가 있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비장애 학생들에게 음악을 무료로 가르쳐주는 곳이다.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의 꾸밈없는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고(故) 류장하 감독의 유작(遺作)이자,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뷰티플마인드]가 4월 18일 전국 100여 곳의 롯데시네마에서 개봉했다.

합격의 ‘열쇠’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끼


▎시각장애인 어린이가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서 첼로를 배우고 있다.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뷰티플마인드]는 10세부터 30세, 천재부터 노력파, 장애인부터 비장애인까지 다양한 뮤지션들이 서로의 차이에 귀 기울이며 오케스트라 앙상블을 이뤄가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의 무료 음악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예비 뮤지션들이다.

[뷰티플마인드]는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 학생들의 2018년 초부터 여름까지의 시간을 기록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연대기 순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정기 연주회를 클라이맥스로 설정해 두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학생들의 일상을 차분히 쌓아가는 데 집중했다.

또 그 안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외적·내적 변화를 담아냈다. 주요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제 각각의 일상이 소개됐다. 다층적으로 인물을 바라보고자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적극 활용했다. 개인에서 가정·학교·사회로 시점이 확장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아이들 각자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한 지점, 뷰티플마인드 앙상블 오케스트라로 모이게 된다.

주요 등장인물은 ‘4차원 마성(魔性)의 매력 부자’ 기타리스트 심환(25), ‘절대음감이 장착된 베테랑’ 기타리스트 허지연(30), ‘프로 귀요미’ 피아니스트 김건호(10), ‘노력형 천재’ 첼리스트 김민주(21), ‘반전의 잠재력 고수’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진(21)과 이들의 가족들이다.

이들과 함께 비장애인인 첼로 전공 임하준, 작곡 전공 이한, 이원숙 지휘자와 유혜영 피아니스트 등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 교사들 모두 영화를 빛내는 주인공이다.

월간중앙이 [뷰티플마인드] 개봉 직전인 4월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스튜디오에서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심환(발달장애 2급)과 김민주(시각장애 1급) 그리고 이들을 10년 이상 가르치고 있는 이원숙씨와 유혜영씨를 만났다. 유혜영씨는 창립 때부터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고, 이원숙씨도 만1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는 지금은 교사 30명에 학생 30명이 함께하는 대가족이지만, 출발은 조촐했다. 교사 6명이 아이들 6명을 맨투맨 방식으로 지도하며 꿈을 키워 나갔다.

유혜영씨는 “장애가 있는 학생들 가운데 음악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 또는 저소득층 가정 학생들 가운데 음악적 끼가 있는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 지원할 수 있다”며 “선생님들의 공정한 면접과 테스트를 통해 합격자를 뽑는데, 합격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끼”이라고 언급했다.

뷰티풀마인드 뮤직아카데미는 매년 총 4학기에 학기당 10회 레슨 체제로 운영된다. 분야는 피아노, 현악(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클래식·기타), 관악(플루트·클라리넷·트럼펫), 성악, 작곡, 국악(가야금·해금)으로 이뤄졌다. 반(班)은 행복반(발달장애·지적장애·자폐성장애), 사랑반(시각장애), 희망반(비장애 저소득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교사들은 전원 무보수 봉사직이다.

이날 인터뷰에는 환이의 어머니 이영숙(56)씨와 민주의 어머니 이윤자(52)씨도 자리를 함께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매니저 역할을 한다. 늘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며 일거수일투족을 거든다.

이영숙씨는 “어떤 분의 소개로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 입단하게 됐다”며 “환이가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 가는 날만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사와 기쁨을 느꼈다”고 반색했다. 이윤자씨는 “민주는 원래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의 중창단에서 노래를 했는데 홍콩에까지 가서 공연을 한 적도 있다”면서 “지인의 소개와 권유로 첼로를 배우게 됐고, 그 덕에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환이와 민주는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의 터줏대감이다. 환이는 2010년, 민주는 2009년 입단했고, 지금은 각각 백석예술대학과 한예종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 성장 과정 기록하기 위해 영화 제작에 나서


▎기타와 피아노에 재능이 탁월한 심환.
환이는 “어서 학교를 졸업해서 음악과 함께 우체국에서 우편물 분류하는 일도 하고 싶다”며 웃었다. 환이는 고교 졸업 후 꽤 오랫동안 우체국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지난해 백석예대에 진학했다. 환이의 전공은 기타이지만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다.

민주는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의 ‘보배’다. 민주는 시각장애인 최초로 서울예고에 합격해 화제를 모았고, 지난해에는 한예종에 합격해 다시 한 번 주위를 놀라게 했다.

“초등학교에서 첼로를 배운 지 얼마 안 됐을 때 교재에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이란 곡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나중에 민주랑 같이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진짜 선생님과 함께 그 곡을 연주하게 됐어요. 그리고 예술의전당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성장을 대견해하고,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들도 가슴 벅차다. 아이들과 살을 부대끼며 고락을 함께하는 교사들의 감동도 새삼 말할 게 없다. 그렇더라도 이들의 일상이 영화로 제작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을 터.


▎첼리스트로 서울예고를 나와 한예종에 재학 중인 김민주.
“아이들의 눈부신 발전 과정을 기록해 두자는 아이디어에 따라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해서 우리가 직접 찍어 봤어요. 그런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그때 노재헌 뷰티플마인드 상임이사가 ‘차라리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의했고, 이후 고 류장하 감독 등 영화사 제작진들과 마음을 모으게 됐어요.” 이원숙·유혜영 교사는 차분히 기억을 떠올렸다.

선생님들과 제작사가 의기투합했을지라도 영화의 주인공인 아이들과 부모들의 출연을 설득하는 것 역시 쉽진 않았다. 이윤자씨는 한동안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실 민주가 서울예고에 합격했을 때 몇몇 지상파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출연을 제의해 왔어요. 하지만 그때는 우리 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영화 제작 때는 고민하다 출연을 결정했어요. 장애가 숨기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요?”

이원숙 교사는 “아이들을 10년 이상 가르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라며 “영화 제작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망설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뜻을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진로를 열기 위해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 등록한다. 부모들은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가 아이들에게 디딤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턱을 넘는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떨까. 무엇이 교사들의 헌신과 봉사를 이끌어낼까.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나섰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내 그만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혜영씨는 “한번은 시각장애인 아이를 가르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며 “그래서 내 눈을 가리고 건반을 쳐봤더니 나는 그 아이의 절반도 안 됐다. 그때 많은 걸 깨닫게 됐고 인내심을 갖게 됐다”고 돌이켰다.

섬김의 자세 10년… 이원숙·유혜영 선생님


▎이원숙 교사의 지휘에 따라 공연을 하고 있는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 학생들.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원숙씨는 “어렸을 때 나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셨던 한 가정교사의 ‘섬김의 자세’에 감동을 받았다. 그때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렀는데 큰아이가 생후 11개월쯤 선천성심장병 판정을 받았다. 그 일로 인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소명의식을 다시 깨울 수 있게 됐다.”

유혜영씨는 어렸을 적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어머니에게서 증조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증조할아버지는 동네에서 배를 주리는 사람들에게 늘 먼저 밥을 먹인 후에 당신이 아침식사를 하셨다고 하더라.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나 역시 작더라도 내가 가진 걸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는 창립 10년이 지나면서 양적·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다. 그동안 수많은 음악 꿈나무들을 배출했다. 또 수많은 새싹들을 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학생을 합쳐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60명이 넘는 대가족이 됐다.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가장 큰 숙원은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 자체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일이다.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단원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사회인으로서 직장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이원숙 교사는 “우리 자체적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아이들을 단원으로 채용할 수 있다면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혜영 교사는 “우리가 더 준비하고 노력해야겠지만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거들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장난끼를 주체하지 못하던 환이도 미래와 직장을 이야기하자 자못 진지해졌다. “유진이, 종혁이, 훈이는 동생들인데 다 내 제자가 됐으면 좋겠다.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 계속 남아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

어머니들도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게 엄마들의 공통된 소망”이라며 “뷰티플마인드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이 오랫동안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직업이 창출된다면 더 바랄 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가 마무리돼 갈 무렵 민주가 수줍어하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민주는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 교사들이 꼽는 ‘단원 출신 선생님 1호’ 후보다.

“참, 최근에 레슨을 받았는데 선생님이 ‘연주를 잘하는 것보다 그 곡이 너무 좋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내가 잘해서 좋은 연주가 된 게 아니라 곡과 내가 잘 어우러져서 좋은 연주가 됐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라고 하셨다. 내가 그런 연주자가 될 수 있을까?”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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