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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슈] '어벤져스'의 ‘마블민국’은 이렇게 탄생했다 

소속감 느끼고자하는 한국인의 성향을 저격!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noxkang@gmail.com
비수기 4월에 시리즈 개봉, 캐릭터 노출시켜 연착륙 유도
쿠키 영상으로 학습시키고 연대감 자극해 역대급 흥행 일으켜


▎12년간 마블 세계를 지켜온 ‘어벤져스 군단의 여정’을 마무리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사전 예매가 200만 명이었다. 개봉 후 최단기간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섰고, 2009년 [아바타]가 세웠던 1333만 명의 기록을 3주 만에 위협했다. 한 주간 스크린 1702개를 점유했고, 좌석 점유율은 80%에 육박했다. 말 그대로 숫자들의 잔치다. 2019년 4월 24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 (이하 엔드게임) 얘기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제목이 보여주듯 어벤져스 시리즈의 총결산이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어벤져스가 11년 만에 한 세대의 마지막을 고한 것이다. 무려 22편이다. [엔드게임] 이전의 흥행 순위를 따져보자면 바로 직전에 개봉했던 어벤져스 시리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흥행 성적이 1100만의 기록을 세웠다. 어벤져스의 두 번째 이야기였던 [에이즈 오브 울트론]이 1000만 흥행 기록을 세운 후 3년 만이었다.

2008년 [아이언맨]의 동원 관람객이 430만 명 정도였음을 생각해보면, 10년 만에 관람객 수가 두 배로 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벤져스] 시리즈의 개봉에는 일종의 시간적 패턴이 있다. [어벤져스] 1편의 개봉이 2012년 4월 26일, 2편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2015년 4월 23일. 지난해 개봉했던 [인피니티 워]가 4월 25일 그리고 올해 개봉한 마지막 이야기 [엔드게임]의 개봉이 4월 24일이다. 거의 정확하게 4월 마지막 주에 개봉해 5월 한 달을 어벤져스의 달로 만든다.

전통적으로 4월은 한국 영화의 비수기다. 중·고·대학교 중간고사가 있고, 날씨가 좋아져 대개들 야외활동을 즐기기 때문이다. 혹서기인 7월 말부터 8월이 한국 영화 흥행의 성수기인 것도 같은 이유다. [아이언맨]을 비롯한 주요 마블 영화들이 이 시기에 집중해 한국에 연착륙했다.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포탈처럼 마블 영화의 연착륙을 도와주는 일종의 입구 역할을 한 셈이다.

특이한 평균주의가 불러일으킨 조기 관람


▎마블 시리즈를 이끌어 온 3대 캐릭터인 토르(맨 왼쪽)와 아이언맨(가운데), 캡틴 아메리카./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꼬박꼬박 이 시기를 통해 개봉해왔던 마블 영화가 흥행에 탄력을 받기 시작하자, 어벤져스를 중심으로 [닥터 스트레인지] [캡틴 마블] [앤트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같은 서브 라인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약 3년 간격으로 개봉하는 어벤져스 사이를 어벤져스 멤버들이 채우면서 점차 그들에 대한 낯섦을 줄이고, 마블 유니버스의 전체 구도를 관객들에게 설득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신, 외계 생명체, 인간 등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판타지 월드, 이 말도 안 되는 존재의 근간, 에피스테메(Episteme, 특정 방식으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기초), 공통분모의 크기를 이렇듯 차츰차츰 넓혀온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4월 25일 [엔드게임]은 제목처럼 한국영화 시장의 블랙홀로서 관객뿐만 아니라 문화계 이슈 전체를 빨아들이고 있다. 5월 한 달은 마블의 달, 마블의 5월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도 앞서 기록해둔 숫자가 계속 바뀌는 중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한국을 ‘마블의 나라’라고 부른다. 우선 짚어봐야 할 것은 한국 영화 시장의 특수성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한 편 이상의 1000만 영화가 태어난다. 매년 정리되는 영화관 입장권 전산망을 보면 1년 동안 영화 관객은 대략 2억 명을 넘는다. 인구를 대략 5000만 명이라고 어림잡자면 매년 1명의 인구가 보는 영화가 4편 이상이라는 뜻이다.

인구 5000만의 국가에서 매년 1000만 관객 동원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 1인당 4편 이상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멀티플렉스 영향이 크다. 특히 한국의 멀티플렉스는 단순히 영화관이라기보다 일종의 여가 공간이자 취미 활동의 장소다. 여기에 스크린 독과점이 사실상 허용된 상황이라 어떤 영화를 보겠노라고 마음먹고 영화관을 찾지 않는 이상 시간에 맞춰 볼 수 있는 영화가 선택될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1000만 영화들은 대개 15세 관람가이거나 보편적 주제를 가진 작품이 많다. [광해-왕이 된 남자] [명량] 같은 작품들은 역사적 사전 지식이 도움이 되고, [신과 함께]나 [극한 직업]은 오락성이 강한 장르 영화라는 점에서 부담 없는 킬링 타임 영화로 선호됐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영화를 보는 것, 그것도 대형 흥행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꽤나 중요한 사회적 의사소통의 형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흥행하는 영화에 대한 이슈 집중도가 높다 보니, 보지 않으면 대화에서 소외되기 쉽고 유행과 세상 문제에 뒤떨어지는 듯 압박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여가 선용 상품이 아니라 일종의 대중적 문화자본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얼리 어댑터로서 세련된 소비 감각을 보이고 이를 개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시, 확산함으로써 문화적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음을 인증 받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있는 것이다.

문화자본으로서의 영화가 1990년대에는 고급의 유럽 영화나 수입이 금지된 외국어 영화처럼 배타적이었다면 최근엔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평균주의적 경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2019년 5월을 강타한 [엔드게임]의 사전 예매율이나 폭발적인 초기 반응의 역학 구조 역시 여기서 멀지 않다. 누구보다 먼저 [엔드게임]을 보고, 영화표를 사진으로 찍어 누구보다 빨리 SNS에 올리고, 거기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곁들인다. [엔드게임]을 보는 것 자체가 아니라 봤다는 사실을 인증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적 자본이자 세련됨의 참조사항으로 유통되는 것이다.

남보다 먼저 체험하고 싶고, 이를 누군가에게 스스로 알림으로써 자발적 홍보대사가 되는 것은 비단 영화에만 국한된 반응은 아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소개된 식당에 조금이라도 먼저 가보고, 직접 맛을 본 후 SNS에 게재하려고 밤을 새며 줄을 서는 모습이나 커피 전문점 ‘블루 보틀’이 한국에 첫 매장을 열자 누구보다 먼저 맛을 보고 SNS 매체에 올려 이 사실을 인증하고 주변인으로부터 궁금증과 호기심,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 사실 이 특이한 평균주의가 어벤져스 조기 관람 열풍에도 영향을 미쳤다.

배타적 문화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마블 열풍


남이 갖는 것은 어느 정도 ‘나’도 나눠야 한다는 평균주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라도 조금 더 빨리 남보다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배타적 문화자본주의가 바로 [어벤져스: 엔드게임] 즐기기에도 나타난다. 초반 상승세에 비해 125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3주 차 이후 흥행세가 조금 주춤해진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내가 먼저 본다는 것, 이게 단순히 [엔드게임]을 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왜 1000만 영화는 뉴스 가치를 가질까라는 질문 말이다. 특정 방송사의 방송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고 해서 화제가 될지언정 1000만 영화만큼 뉴스 가치를 갖지는 않는다. 모든 언론 매체에서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등장하면 원인 분석을 하고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소비자 심리를 추적한다. 1000만 영화라는 것 자체가 사회현상이라는 의미다.

프랑스의 영화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의 말처럼 흥행한 영화는 영화의 내적 의미를 떠나 일단 사회적 사건임에 분명하다. 높은 시청률의 드라마가 광고나 유행어처럼 파생되는 것과 달리 영화가 사회적 현상의 근거가 되는 이유는 사실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영화가 ‘상품’이기 때문이다. 영화관이라는 시장에 여러 개의 상품이 걸리고 심지어 같은 가격으로 고객의 선택을 기다린다. 같은 가격으로 제시된 여러 상품들 중에서 관객은 하나를 고른다.

영화라는 상품이 사회적 분석 대상이 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영화가 매우 적극적인 구매 품목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집에 편안하게 앉아서 채널을 돌리다 선택할 수 있고, 가족의 선택에 의해 따라서 볼 수 있을 확률도 높지만 영화는 꽤나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문화 소비재이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적극적 문화 소비행태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가 무척 공평한 문화상품이라는 사실이다. 가까운 예시로 뮤지컬이나 연극, 클래식 공연을 생각해보자. VIP석과 R석 그리고 S·A석 등으로 차별화되는 등급에 따라 가격이 거의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가격의 차이만큼 보이는 정도와 들리는 것도 다르다. 사각지대일수록 싸고, 생생하게 배우들의 몸짓을 보거나 선율의 흐름을 목격할 수 있다면 가격은 훨씬 더 올라간다. 같은 공연을 본다고 하지만 사실 이런 환경에서 소비하는 위치와 가격에 따라 ‘다른’ 문화 상품을 소비하고 있다고 봐도 과장은 아니다.

최고 수준 CG, 배우를 한 번에 보는 가성비 甲 작품들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마블 기획상품을 구매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영화는 다르다. 일찍이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영화의 등장이 예술품의 ‘아우라’를 무너뜨릴 테지만 그 대가로 평등한 문화상품을 양산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예술품의 아우라란 단 하나의 진품이 가지고 있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독보적이며 독특한 힘을 뜻한다. 가령 ‘모나리자’는 엄청나게 많은 가품, 모사품, 복제품이 있지만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바로 그 작품이 갖는 원천적 에너지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모나리자’는 원작이 있다. 단 하나의 원작이 있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은 위작이며 모작이라는 것을 뜻한다. 원작이 있기에 원작의 아우라가 있고, 천문학적 숫자의 가격이 매겨진다. 하나밖에 없으니 가격이 생길 수 있다.


▎유통·통신·패션·음료 등 전 업종에서 마블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이 한창이다.
영화는 어떤가? 우리는 적게는 7000원부터 많게는 1만5000원, 관람 환경에 따라 비싸면 4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영화를 구매한다. 그런데 7000원짜리나 4만원짜리나 ‘다른’ 영화가 아니다. 똑같이 디지털 촬영되고 프린트된, 모두가 다 원본인 작품을 즐긴다. 미국 할리우드의 극장에서 걸리는 화면이나 여기 한국 CGV에서 걸리는 화면이나 다를 게 없다. 완전히, 100% 똑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할리우드산 영화(Made in USA) 상품의 차별성과 저력이 생겨난다. 같은 돈을 주고 구매하는 상품으로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최고 수준의 제품이다. 배우들의 몸값만 해도 그렇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 등 거의 한국영화 한 편 제작비에 맞먹는 개인 출연료를 가진 배우들이 영화 한 편에 전부 등장한다. 컴퓨터그래픽이나 음향, 시각 효과의 수준도 할리우드 이외의 다른 영화 시장에서는 감히 재현이 불가능할 경지를 선보인다. 가성비에 있어 [어벤져스] 시리즈는 최고 수준이란 뜻이다. 한국 관객들은 특히나 기술적 세련미와 첨단의 정도에 무척이나 매혹을 느끼는 성향이 있다. 과거 [트랜스포머]나 [인셉션]이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도 유사하다.

사실 이처럼 높은 수준의 영화적 기술력을 가진 작품이 비단 [어벤져스]만은 아니다. DC코믹스(DC Comics)를 기반으로 한 다른 영화들과 돌연변이들이 주연을 맡았던 [엑스맨] 시리즈 역시 건물을 통째로 들어 올리거나 지구를 반으로 나눌 만큼 대단한 시각적 판타지를 제공했다. 이는 마블의 영화 작품에도 해당된다.

마블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화라고 해서 모두 다 한국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2008년 [아이언맨]의 성공 이후 거의 매년 마블의 여러 영웅들이 하나, 하나씩 개봉됐지만 흥행 성적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캡틴 아메리카]는 한국적 정서로 보기에는 미국적 선민의식에 빠진 청교도적 캐릭터였고, [토르]는 우리에게 낯선 신화적 인물이라 동화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마블의 팬들 중에서도 마니아적 성향을 지닌 팬층에게만 인기가 있다고 여겨졌고, 헐크의 첫 번째 이야기였던 [인크레더블 헐크]는 거의 참패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남겼다.

한국인 특유의 소속감·연대 자극한 레고전략


▎4월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시아 팬 이벤트에서 안소니 루소 , 조 루소 감독 형제(왼쪽부터),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대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브리 라슨이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엄밀히 말해, 한국에서 서구의 판타지는 그다지 영향력 있는 장르 영화라 보기는 어렵다. 역설적으로 [신과 함께]의 성공은 동양적이며 한국적 판타지인 사후 세계와 토착 불교와 도교의 결합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서양 판타지의 근간이라면 기독교적 세계관과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분법적인 대안 세계의 상상력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처럼 리얼리즘적 현실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그중 하나이고, [해리포터]처럼 현실과 현실 사이의 틈에 다른 마법의 규칙과 언어로 운용되는 공간이 있으리라는 상상력이 다른 하나다.

비교적 이 세 작품들은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하지만 다른 유럽이나 영어권 흥행이나 성공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는 [해리포터]를 읽고 자란 서구의 어린이 세대가 [헝거게임] [다이버전트]와 같은 성인 판타지물, 키덜트 판타지 시장을 키워온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 점에서 초기 마블 영화의 소소한 실패, 불확실한 성공은 서구적 판타지의 개념에 이질감을 느끼는 한국 관객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아이언맨]의 성공 이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즉 아이언맨의 소개로 하나둘씩 어벤져스가 형성됨으로써 낯선 세계를 친근하게 홍보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다정한, 부자이며 유능하지만 신체적으로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인간적 매력의 토니 스타크는 여러 마블 캐릭터들을 편입시킨다. 영화의 마지막에 자리 잡은 쿠키 영상은 일종의 다음 캐릭터에 대한 예습 자료 역할을 했고, 특히 한국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쿠키영상’은 마블 영화에 대한 흥미로운 학습 요소로 자리 잡았다. 마블 영화를 보는 것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이라는 관객 참여적 요소가 설득된 것이다. 마블 즐기기가 일종의 문화가 된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즐길 만한 게 무척이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지난해 연말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의 일면과도 닿아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N차 관람하면서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프레디 머큐리의 외모나 목소리를 모사하며 즐기고 놀았다.

[어벤져스] 역시 비슷하다. [어벤져스]를 보고 인증샷을 남기고, 인증 글을 남기는 것은 하나의 놀이이며 다른 의류 행사와 콜라보한 티셔츠를 입는 것 역시 하나의 놀이다. 휴대폰 케이스, 피규어, 볼펜 등과 같은 상품(Goods)을 사서 소유하는 것 역시 하나의 놀이다. 나 혼자만의 오타쿠적이며 마니아적인 놀이 문화보다 대중적으로 소통하고 무리의 일원으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성향에 마블의 영화 캐릭터, 어벤져스의 세계관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마블 어셈블리에 대한 관객들의 벅찬 기대감과 감동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2008년 이후 학습해오고, 얼굴을 익혀왔던 마블 세계관의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한 스크린 안에 한꺼번에 등장했을 때, 보아왔던 만큼, 알아왔던 만큼의 반가움과 효과를 거두었다. 하나씩 레고 블록처럼 동떨어져 있던 세계들이 조립을 통해 하나의 완성체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관객들은 마치 자발적으로 그 세계를 구축한 듯한 환상적 동일시를 경험하는 것이다.

쿠키 영상을 통해 미리 알려진 새로운 마블 캐릭터는 기시감 있는 친근한 캐릭터가 된다. 마블은 아이언맨의 성공 비결을 다른 캐릭터 구축에도 녹여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진지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와 나름의 인간적 결함을 가진, 인간적 영웅의 하마르티아(hamartia)다. 하마르티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을 설명하기 위해 썼던 용어다.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더 우월하지만 그조차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결함이 바로 하마르티아다.

결함 있는 영웅들과 함께한 12년 추억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맞붙은 마블의 대표적인 슈퍼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왼쪽)와 아이언맨. 이들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끝으로 마블 영화에서 퇴장할 것으로 보인다./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마르티아를 말한 이유는 단 하나다. 완벽한 영웅보다 약간의 결핍을 지닌 실수하는 주인공에게 관객이 훨씬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블의 영웅들은 멋지고 완벽한 캐릭터라기보다 실수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인간적 캐릭터에 가깝다.

신이지만 토르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형제 ‘로키’, 완벽한 신체를 얻었지만 그래서 잃어야 했던 연인과 친구 때문에 어둠을 간직한 ‘캡틴 아메리카’, 대단한 지적능력에 파괴력까지 갖췄지만 스스로 통제하는 법을 몰라 쩔쩔매는 ‘헐크’, 수트를 입으면 고층 빌딩을 날아다니는 영웅이지만 벗고 나면 고작 찌질한 고등학생에 불과한 ‘스파이더맨’, 전자 발찌를 찬 전과자 출신의 영웅 ‘앤트맨’ 등 그들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은 인물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실제 삶에서도 그렇듯 사람은 장점 때문에 친구가 되는 게 아니라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나눈다. 마블이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마블은 인물의 단점을 매우 인간적인 면으로 재해석하고 우리와 가까운 다정한 공감 지점을 제공한다. 영웅이며 때론 신이기도 하지만 우리 평범한 인간보다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캐릭터, 그러나 진지하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어려운 용어를 써서 자기만의 늪에 빠지는 인물이 아니라 농담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매력적 인물들, 이 전략을 통해 마블은 각각의 캐릭터를 매끄럽게 한다.

[엔드게임]에서 이별을 고하는 캐릭터를 보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캐릭터는 소멸이지만 정말 다정했던 친구와 이별하는 기분이었다”는 관람 후기도 그래서 가능하다. 말하자면 [어벤져스]는 상품으로 구매했으나 추억이 쌓인,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추억이 된 것이다.

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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