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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입 대신 빨판으로 피 빨아 기생하는 칠성장어 

 

강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와 알 낳고 생애 마감
먹장어는 식용에다 가죽으로 쓰여 씨가 마를 지경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했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다묵장어.
순수 자연과학 분야인 생물학을 전공하는 생물학과 학생들은 학과의 특성에 맞게 봄·가을 2박3일 정도로 제주도, 울릉도나 설악산, 동해안 채집을 간다. ‘생물학과’란과 명칭도 새로운 유행에 맞춰 ‘생명과학과’로 바뀌었고, 열기도 옛날만 못하지만 말이다. 채집을 하느라 몸이 어스러지고 노그라지지 않을 수 없지만 저녁이면 모두 모여서 단합대회를 한다. 선후배끼리 단합과 친선을 도모하고, 사제 간의 벽을 허물며, 교수들끼리도 오랜만에 흉금을 터놓고 한 잔하는 퍽이나 귀중한 일정(모임)이다.

동해안 하천 채집에서 빠짐없이 만나는 물고기에는 칠성장어가 있다. 칠성장어(七星長魚, Lethenteron camtschaticum)는 칠성장어과에 속하고, 우리나라에는 같은 속(屬)에 다묵장어(L. reissneri ) 한 종 더 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칠성장어(Lamprey)와 다묵장어(Sand Lamprey)는 비록 꼴이 뱀장어와 비슷할지언정 분류상으로 어류인 뱀장어와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칠성장어는 몸이 갸름하고 길어서 어류(魚類)인 뱀장어를 빼닮았으나 턱이 없고, 입이 둥글어 어류가 아닌 원구류(圓口類)로 분류한다. 당연히 뱀장어는 아래·위턱이 있기 때문에 진짜 어류이지만 칠성장어는 입 대신 빨판(Sucker)으로 다른 물고기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기생생활을 하기에 어류보다 하등한 동물로 취급한다. 하지만 다들 몸통이 된통 길어서 ‘~장어(長魚)’란 이름이 붙었다.

다시 말해 칠성장어는 턱(뼈)이 없는 대신 입 가장자리에 딱딱한 꼬마이빨이 무수히 들러붙어 있는 빨판을 가지고 있고, 또 혀에도 각질(角質)의 이빨이 있어 먹이를 찢어 체액을 세차게 빤다.

칠성장어는 무엇보다 눈 뒤 양편에 별 모양의 일곱 개 아가미구멍(새공, 鰓孔)이 있어서 칠성(七星)이라 이름 붙었고, 식도 아래로 통해 있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줄잡아 13~32㎝ 남짓이지만 어떤 것은 60㎝에 200g이나 되는 놈도 있다고 한다. 몸에 비늘이 없고,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 같은 짝지느러미가 없으며, 오직 꼬리 근방에 제1,2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만 있다.

피부에는 끈적끈적하고 미끈미끈한 점액질이 분비되고, 등은 청갈색이며, 배는 희다. 성어(成魚)는 연어·송어·은어들에 기생하지만 새끼물고기(치어, 稚魚)는 기생하지 않고 진흙을 먹거나 작은 무척추동물을 잡아먹는다. 그런데 동해안의 횟집 수조에 넣어둔 은어(銀魚)가 가엽도다! 은어 배때기에 칠성장어가 뒤룽뒤룽 매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볼썽사납게도 부황(附缸)을 뜬 것처럼 벌겋게 피 빨린 자국이 깊고 우묵하게 은어 배에 남아있는 것도 볼 수 있다.

다 자란 칠성장어 놈들은 3~6월경에 바다에서 하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강자갈에 8~11만 여개의 알을 붙여 낳고는 곧바로 숨을 거둔다. 먼저 수컷이 빨판으로 강바닥의 자갈을 파헤쳐 알자리를 만들면 암컷이 자갈에 알을 붙이는데 알은 착착 달라붙는 점착성으로 검은 초록빛이다.

‘바다 밑 청소부’라 불리는 먹장어

칠성장어는 강에서 살다가 바다로 내려가고, 거기에서 얼마 동안 산 다음 다시 강으로 올라와 산란하는 회귀성어류(回歸性魚類)다. 회귀성어류에는 바다로 내려가 산란하는 강해성어류(降海性魚類)와 강으로 올라와 알을 낳는 소하성어류(溯河性魚類)가 있는데 칠성장어는 후자에 속한다.

칠성장어는 북으로 캄차카반도에, 남으로는 한국과 일본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양양 남대천, 강릉 연곡천, 삼척 오십천에만 분포한다. 기름기가 많아 상업적으로 중요한 식용어종으로 치고, 생존력이 강해 웬만한 공해에도 끄떡 않는 당찬 놈이다.

예나 지금이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칠성장어를 잡아 튀기거나 구워 먹으니, 모처럼 우리 학생들도 처음 채집할 적엔 역겹고 꺼림칙해했던 칠성장어를 스스럼없이 송송 썰고 토막 내어 지지고 볶느라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다음은 칠성장어와 같은 속의 다묵장어 이야기다. 다묵장어는 칠성장어와 생리·생태가 아주 흡사하지만 칠성장어에 비해 덩치가 반에 지나지 못하고, 육봉형(陸封形)이다. 육봉형(Land-locked Fish)이란 말은 본래 바다에 사는 습성이었으나 산천어처럼 담수(민물)에 적응해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산란기는 4~6월이고, 모래나 자갈이 깔린 강바닥을 파고 산란하며, 알을 낳고 나면 잠시 서성대다 시나브로 죽는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한강 이남의 모든 곳에 분포했고, 세계적으로는 중국북부·연해주·사할린·일본 등지에 산다. 그러나 근래에는 강원도의 강릉·철원·정선·고성과 경북의 김천·봉화 등 외진 두멧골 일부에만 겨우 몇 마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바다에는 같은 원구류인 먹장어(Eptatretus burgeri )가 있다. 흔히 흑장어(黑長魚) 또는 곰장어(꼼장어)라는 부르는 것으로 민물에 사는 두 종과는 다른 속이다. 먹장어(Hagfish)는 비늘이 숫제 없고, 아가미가 훤히 드러나며, 뜨고 가라앉는 데 관여하는 부레가 퇴화했다.

또 죽어 가라앉은 물고기시체 같은 것을 먹기에 ‘바다 밑 청소부’라 불린다. 그리고 600m 넘는 심해에 살기에 눈이 퇴화했는데, 빛이 500m 근방까지만 들어가므로 그 아래는 말 그대로 암흑천지다. 그래서 칠흑 같은 깊은 바다에 산다하여 먹장어라 불렀을까 아니면 눈이 멀었다고 먹장어라 했을까?

먹장어는 뼈가 물렁물렁하고, 살코기가 기름진지라 ‘꼼장어구이집’에서 인기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먹장어를 거의 다 수입해 그 껍질로 핸드백·구두·가방·지갑들을 만든다. 그래서 그 수가 턱없이 줄어 이제는 보호해야 할 처지가 됐다 하니 두말할 것 없이 온통 우리 책임이라 하겠다. 이 또한 멸종위기로 만들 참인가?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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