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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하노이 ‘노딜’ 이후 北·美 샅바 싸움의 행로 

평양 보통강변 푸에블로호가 대화로 가는 열쇠 될 수도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06년 BDA 사태로 ‘돈줄’ 죄 본 볼턴이 선박 제재 주도
어니스트호-푸에블로호 맞교환하면 교착 국면 타개 가능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오른쪽)가 5월 21일(현지시각) 유엔본부 브리핑룸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의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압류에 대해 즉각 반환을 요구했다. / 사진:AP/연합뉴스
하노이 회담 노딜의 후폭풍이 간단치 않다. 회담 주역이었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휘하 실무일꾼들의 문책설이 남측에서 보도된 이후, 과거와 비교해 체중이 줄고 핼쑥한 모습의 김영철이 50여일 만에 북한의 공식 행사에 등장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김영철과 대미 특별대표인 김혁철의 행방에 관심을 보인다. 미국 정보당국은 CNN을 통해 김영철과 실무자들이 완전히 숙청되진 않은 것 같다는 신중한 정보를 내보냈다. 미국은 협상을 잘못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2차례나 만난 김영철을 숙청했다는 첩보에 대해 의아해한다. 아무리 독재 국가지만 자신의 대통령과 친서를 주고받은 인물을 문책성 차원에서 혁명화 교육까지 시킨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

3주 만에 공개 활동을 재개해 자강도 군수공장 7곳을 현지 지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이어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김정은은 이번 현지지도에서 “일하는 태도가 틀려먹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대단히 실망하게 된다”며 간부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김정은은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간부들의 사상관점이라며 간부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당 근로단체부를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노동신문이 연일 ‘반당·반혁명분자와 배신자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강조한 것과 무관치 않다. 그의 강한 질책은 하노이 회담의 노딜 이후 체제 단속과 동시에 현장에 대한 해이해진 군기 잡기의 일환이다.

후폭풍은 미국과 북한 간에도 몰아치고 있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5월 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불법적으로 우리 화물선을 점유해 미국령 사모아로 끌고 갔다”며 “미국의 일방적 제재와 영토 밖에서의 국내법 적용은 국제법에 따라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앞으로 전개될 국면에 미칠 결과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화물선을 지체 없이 반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의 자산 몰수소송, 전례 없는 조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3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개막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이 영상에는 최근 ‘강제 노역설’이 나왔던 김영철 당 부위원장(붉은 원)의 모습이 나왔다. / 사진:연합뉴스
김성 대사가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의 반환을 촉구한 기자회견을 한 지 하루 만에 제네바 주재 북한대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는 5월 22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북한 선박 억류가 북·미 관계 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며 선박 반환을 요구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우리를 미국식 힘과 압박의 논리가 작동하는 곳 중 하나라 생각했다면 가장 큰 오판이 될 것”이라 비판했다. 또 선박 압류가 “(북·미 관계의)가장 큰 이슈이며 (압류가) 주권침해이기 때문”이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국제법을 악의적으로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도 이어갔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 제재 해제라는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리도, 미국도, 국제사회도 상황이 다시 악화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미국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는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미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은 5월 14일 외무성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 선박 압류를 “6·12 조·미(북·미) 공동성명의 기본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최대의 압박으로 우리를 굴복시켜 보려는 미국식 계산법의 연장”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8일엔 유엔에 서한을 보내 “미국법에 걸어 우리 무역 짐배(화물선)를 미국령 사모아에 끌고 가는 불법 무도한 강탈 행위는 미국이야말로 국제법도 안중에 없는 날 강도 같은 나라임을 스스로 드러내 놓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기존의 미국 대북제재에 대한 반발과는 강도와 차원이 다르다. 북한의 전방위적 ‘여론전’은 선박 압류가 힘의 논리에 기반을 둔 미국의 주권 침해라는 논거를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부당성을 부각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향후 하반기로 예상되는 북·미 대화 재개 전에 유리한 명분을 쌓기 위한 방편이다. 특히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조달하는 궁정경제의 돈줄인 석탄 수출 선박을 추가로 미국이 나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선제조치로도 해석된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은 미국이 제재 위반 북한 화물선에 대해 자산 몰수소송이라는 ‘행동’을 시작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사소송 방식에 의한 선박 몰수 시도는 향후 촘촘한 압박을 예고한다. 그동안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적발된 북한 또는 타국 선박들은 억류 조치에 그쳤다. 이전까진 미 재무부가 제재 위반에 연루된 선박을 발표하고 조사하는 수순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법무부가 나서 어니스트호에 대한 법적 조치 개시를 밝혔다.

미 법무부는 5월 9일 “어니스트호는 북한 송이 무역회사의 소유로 나와 있으나 실질적으로 북한 인민군이 관리하고 있으며, 2016년 1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북한산 석탄을 외국 구매자에게 수출하고 북한에 기계류를 수입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적시했다. 또 “송이 무역회사 운영자인 권철암이란 인물이 2018년 3월 어니스트호 석탄 선적과 관련 75만 달러 이상을 미 금융계좌를 통해 송금했다”라고도 기술했다.

“어니스트호, 북한 인민군이 실소유”


▎미국이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압류한 북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사진:미 법무부
미국 법무부는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대북제재강화법 등에 따라 이 배를 몰수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 연방 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실제 몰수 조치를 위해 인도네시아에 지난해부터 억류돼있던 어니스트호를 5월 11일 미국령 사모아 섬으로 예인했다. 미국이 화물선을 사모아 섬으로 예인함에 따라 북한 당국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응은 강경했다. 미 법무부는 이날 “국제 제재를 위반해 불법 석탄 수출 혐의가 있는 북한 선박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나포해 압류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미 선박을 나포해 끌고 오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5월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도발 직후 전격 공개했다.

미국이 북한 선박을 나포해 압류한 것은 처음이지만 단순 나포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02년 미국은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화물선 소산호를 나포했다가 이틀 만에 풀어줬다. 당시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면서 이라크전 가능성에 대비했다. 북한 미사일이 테러조직이나 이란, 이라크 등 적대적인 국가들의 수중에 들어가는 사태를 크게 우려했다. 미국은 소산호가 북한 남포항에서 출발할 때부터 위성을 통해 추적해 화물의 정체를 파악했다. 이 화물이 누구에게 가는지 알아내기 위해 전격 나포 작전을 전개했다. 미국은 이 선박이 특정 국가의 영해에 들어가기 전에 인도양의 공해 상에서 스페인 군함의 힘을 빌려 나포했다.

미국은 이 선박을 나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화물이 예멘으로 향하고 있었던 사실을 파악한 직후 적법한 화물을 싣고 가는 배를 왜 나포하느냐는 예멘 정부의 항의를 받고 이 선박을 풀어줬다.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국기를 달지 않고 항해하는 선박은 누구든지 정선시켜 수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선박이 왜 국기를 달지 않았는지 또 왜 배 이름을 페인트로 지우고 미사일을 시멘트로 감췄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밝혔듯이 미국이 이 선박을 풀어준 이유는 “예멘이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을 받는 것을 금지하는 국제법 조항은 없기 때문”이었다.

1982년 제정된 유엔 해상재판소법에 따르면 어느 나라든 선박이 국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면 그 배를 세우고 올라가 수색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재판소의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았다. 또 국제법상으로 적법한 화물을 싣고 가는 이 배를 장기간 억류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고 이 화물을 주문한 예멘도 거세게 항의했기 때문에 미국은 배를 풀어줬다.

서산호 사건은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미국은 1992년에도 해군을 동원해 아라비아해에서 북한 화물선 대승호를 나포하려다 이 선박이 재빨리 이란의 항구로 대피하는 바람에 놓친 적이 있다. 이때 대승호가 싣고 있던 스커드 미사일은 시리아로 수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의 북한 선박 감시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소말리아에서 북한 선박 대홍단호가 해적에게 나포될 뻔했으나 이를 감시하던 미국 구축함 윌리엄스의 지원으로 해적을 제압하고 탈출할 수 있었다. 쌀과 무연탄을 싣고 두 차례 제주해협을 통과한 기록이 있는 대홍단호는 무기 수송을 위해 아프리카 케냐로 가던 중 해적의 공격을 받았고 이를 감시하던 미국 선박의 지원으로 풀려나자 미국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으로 과거의 중동국가에 대한 미사일 수출 선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2017년 12월에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는 제재 위반에 연관된 선박이 영해를 지나갈 경우 이를 ‘나포·검색·억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존 세머스 법무부 차관보는 “해당 제재 위반 선박은 운항이 정지된 상황”이며 “미 연방 집행관과 해안경비대의 협조로 미국 영해에 인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선박은 1만7601t으로 북한의 단일 선체 벌크선 중 최대 규모 선박 중 하나다. 북한의 불법 석탄을 수출하고 중장비 수입을 담당했다고 한다.

‘반미 상징물’ 보통강변 푸에블로호


▎미국 국무부가 북한 불법 환적을 신고할 경우 최대 500만 달러(약 59억원)를 제공하겠다는 영문과 중국어 포스터를 공개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북한이 미국에 압류된 화물선의 반환을 요구하려면 1960년대에 나포했던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송환 문제부터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미·일 정상회담 준비차 일본을 방문 중인 볼턴 보좌관은 주일 미 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이 푸에블로호의 반환에 대해 논의할 적절한 시기일 것”이라고 북한의 주장을 일축했다. 볼턴의 발언으로 50여 년의 시차가 있는 2019년 미국의 북한 선박 나포와 1968년 북한의 미국 함정 나포가 미국과 북한 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푸에블로(Pueblo)호는 1968년 1월 23일 승조원 83명을 태우고 북한 해안에서 40㎞ 떨어진 동해 상에서 정보 수집 업무 수행 중 북한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됐다. 북한은 같은 해 12월 미국이 북한 영해침범을 사과하는 문서에 서명한 뒤 푸에블로호 승조원 82명과 유해 1구를 돌려보냈지만, 선체는 여전히 평양 보통강변에 전시해 두고 있다.

필자는 과거 평양 방문 시에 1995년부터 평양 보통강변 전승기념관에 전시된 푸에블로호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북측에 미국에 돌려주는 것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평양시민들에게 대미 적개심을 심어주고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선전도구를 미국에 돌려줄 의사는 없어 보였다. 또 동해에서 나포한 중량 106t, 길이 54m의 함정을 어느 방법과 경로로 원산항에서 대동강으로 이동시켰는지 필자는 질문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육상으로 이동시키기에는 너무 크고 혹시 제주도 남측 공해 상을 통해서 서해로 이동시켰는지, 오리무중이다.

사실 볼턴이 제기한 푸에블로호 반환 주장은 미국 내에서 민감한 문제다. 반환에 대한 주장이 가장 먼저 제기된 곳은 푸에블로호의 어원이 된 푸에블로시가 속한 콜로라도주다. 지난 5월 초 미 정부가 와이즈 어니스트호 압류를 발표하자 콜로라도주 지역 언론은 일제히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의 인터뷰 보도와 기고문 등을 통해 와이즈 어니스트호 와 푸에블로호를 맞교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콜로라도주를 지역구로 하는 콜리 가드너 공화당 상원의원도 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한의 화물선 반환을 대가로 북한에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미국의 요구 리스트에는 푸에블로호 반환도 올라야 한다”고 밝혔다. 가드너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서도 “1968년 북한에 나포된 푸에블로호는 김씨 정권이 수십 년간 미 국가안보 이익에 계속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며 “푸에블로호는 즉시 미국에 반환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의 대북제재 정책을 주도한 가드너 의원은 상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으로, 내년 재선에 가장 취약한 상원의원으로 꼽혀 지역 여론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에서 푸에블로호 반환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당시에도 제기됐다. 콜로라도주를 지역구로 하는 공화당의 스콧 팁 턴 하원의원과 좀 파소 공화당 하원의원은 각각 싱가포르 회담 전후로 북한에 푸에블로호 송환 요구를 촉구하는 별도의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에게 보냈다. 팁 턴 의원은 동시에 같은 내용의 결의안도 발의했고, 지난 2월 2차 미·북 정상회담 직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같은 서한을 보냈다.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반환한다면 미국에 선의를 입증할 수 있어 신뢰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의원들의 주장이었다.

팁 턴 의원은 2월 27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푸에블로호 반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미국과 평화로운 조건 아래 협력해 나가고 싶다는 선의를 보여주는 상징적 제스처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푸에블로호는 국제법상 공해 상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던 도중 북한에 불법으로 나포됐으며, 현재 평양에서 반미 상징물인 전리품으로서 선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피를 말렸던” BDA 계좌 동결


▎2006년 6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푸에블로호의 모습. / 사진:AP/연합뉴스
현재 미국에서는 당시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이 북한 정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진행되고 있다. 승조원과 가족들은 지난해 2월 납북 당시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이 북한 측에 있다며 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에는 법원에 재판을 신속히 진행해 달라고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만약 재판부가 거액의 배상 판결을 내릴 경우 와이즈 어니스트호 등 각종 몰수 소송과 맞물려 북한을 압박하는 미 사법부 차원의 또 다른 조치가 될 수 있다.

푸에블로호 반환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도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가끔 이뤄졌지만, 북한이 상당한 액수의 보상금 등을 요구해 미국이 응하지 않았었다. 이제 북한의 최대 단일 벌크선을 미국이 억류한 만큼 북한도 미국의 푸에블로호 송환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2019년 미국의 북한 선박 나포는 2005년 9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계좌 동결을 연상시킨다. 재일조선인총연합 기관지 [조선신보]도 5월 24일 북한 선박 나포가 BDA 사건을 연상시킨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재무부는 북한의 비핵화가 부진하자 2005년 9월 불법자금 세탁 혐의로 마카오 BDA 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BDA 은행을 이용하던 북한의 해외금융 거래가 순식간에 막혔다. 미국 금융제재의 파장을 우려한 각국 업체들이 북한과의 거래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BDA 북한 소유 계좌 50여 개에 예치돼 있던 2500만 달러는 동결됐다. 이 돈은 당시 김정일의 통치자금이었다. 북한은 그 어떤 제재보다도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예금을 인출하지 못한 김계관 당시 북한 6자회담 대표는 “피가 마른다”고 토로했다. 미국과 북한의 1년 반에 걸친 물밑 협상 끝에 미국이 2007년 4월 BDA의 북한 계좌 동결 해제 방침을 밝혔고 북한은 동시에 ‘2·13 합의’ 이행을 약속했다.

단순한 계좌의 인출이 아니라 비핵화 조치에 북한이 나서는 조건을 조율하며 물밑에서 치열한 기싸움을 전개하느라 문제 해결에 18개월이 소요됐다.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60일 내 이행해야 할 초기 단계 조처를 하는 데 장애물이 걷힌 거라고 본다”며 “금융문제를 넘어서 ‘2·13 합의’ 목적인 비핵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금융계좌 동결의 문제 이면에는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 간에 갈등이 내재해 있었다.

추가 도발, 추가 화물선 억류로 대응


▎미국 해안경비대 소속 경비함인 버솔프함이 4월 6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입항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BDA 사건은 북한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으면 김정은의 통치자금에도 화살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사건이다. 2005년 당시 BDA 북한 계좌 동결 등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한 신보수주의(네오콘) 그룹의 핵심 멤버가 현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 당시 유엔 주재 대사였다. 그는 이미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북한이 막대한 배상을 요구한 푸에블로호의 송환을 제기했다. 미국의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 억류는 미·북 간 비핵화 협상에서 제2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양국이 북한 선박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향후 3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등 향후 양국 간 관계를 전망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나포된 선박의 송환 및 미사일 발사와 3차 정상회담 개최 등 미·북 양국 관계는 미국이 강경 대응을 계속하는 시나리오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미국이 와이즈 어니스트호 문제에서 강력히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대북 제재의 허점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 버팀목인 미국 달러 결제망에서 북한 자금이 유통됐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몰수 소장에 따르면 와이즈 어니스트호는 2018년 3월 14일 평양 남포항에서 석탄 2만5000톤을 싣고 출항했다가 같은 해 4월 2일 인도네시아에서 억류됐다. 석탄과 선원들은 돌려주는 대신 배를 압류한 뒤 몰수를 추진하는 근거를 1974년 제정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상 특정 불법 행위를 촉진하기 위한 돈세탁 혐의라고 기재하고 있다.

그런데 와이즈 어니스트호가 운항과 정비 등에 달러 송금 제휴 계좌로 미국의 뉴욕 은행 두 곳을 활용했다. 2016년 11월~2017년 1월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하역과 정비 부품을 구매하는 청구서와 이메일에선 뉴욕 남부의 첫 번째 은행 지점을 활용한 증거들이 발견됐다. 지난해 3월 석탄 밀수와 관련해선 모두 75만 달러를 뉴욕의 두 번째 은행 계좌를 통해 송금했다. 석탄 선적지를 남포가 아니라 러시아 나홋카로 기재한 허위 문서를 활용했다. 미 재무부와 법무부가 물러설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이 계속된다면 이미 나포한 와이즈 어니스트호 는 물론, 추가로 감시 중인 북한 화물선을 나포하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미국은 각종 선박 운항 정보를 통해 2∼3척을 근접 감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북한 석탄 2만6500t을 싣고 공해 상에서 54일간 표류하던 북한 선박 동탄호가 베트남에 간신히 하역할 예정이라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도한 것은, 동남아를 항해하는 모든 북한 선박을 미국 등이 감시하고 있다는 신호다.

사실 선박 감시는 미국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대북제재다. 미국은 북한이 2018년 1~5월에 20척 이상의 선박을 동원해 총 89차례에 걸쳐 ‘선박 대 선박 이전’ 수법의 유류 밀거래를 통해 최소 75만9793배럴의 정제유류를 획득한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은 북한이 안보리가 정한 연간 상한 50만 배럴을 초과했으므로 더는 북한에 유류를 제공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추가 정보를 요구하며 ‘6개월 보류’를 주장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7월 북한산 석탄의 한국 반입과 관련해 사실상 한국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를 위반한 선박들이 한국 항구에 32차례나 입항하는 동안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최근 일본 외무성은 이례적으로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호주 및 뉴질랜드 등 7개국이 합동으로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을 단속 중인데 한국은 불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지난해 7월 19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유엔 제재를 위반해 북한 정권을 계속 지원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독자적 행동을 취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세컨더리 보이콧의 적용을 예고했다.

독자 대응체계 구축하고 현상금까지


▎대북제재 강경 노선을 주도하는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왼쪽).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한국의 소극적인 북한 선박 감시에 대응해서 독자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미 해안경비대 소속 구축함(4500t)급 경비함인 버솔프함이 서해에 배치돼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 단속에 나서고 있다. 미국 본토 연안을 책임지는 해안경비대 함정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연안에 배치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버솔프함은 헬기·무인정찰기에다 고속 잠수정을 탑재해 불법 환적 중인 북한 선박을 나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버솔프함 배치 사실을 밝힌 시점도 주목된다. 2017년 60여 건 수준이던 불법 환적 의심 동향이 지난해 130여 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이 중 10여 건을 우리 군이 적발했지만 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를 주저해 온 사실이 드러난 직후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해상 작전은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라 잘 공개하지 않았으나 6월 들어서는 공개적으로 대북제재 의지를 명확히 하면서 중국도 제재에 동참하라는 압박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와 함께 미 국무부도 때맞춰 “대북 압박 캠페인은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 등 제보자에게 최대 500만 달러(약 59억원)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마침내 불법 환적 북한 선박에 대한 현상수배 포스터가 붙었다. 선박 나포와 동시에 미국은 북한의 자금줄을 철저하게 조이고 있다.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5월 29일 북한과 관련된 미국 내 자산 약 7436만 달러(885억원)를 동결했다고 밝혔다. 해외자산통제실은 ‘2018 테러리스트 자산보고서’에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북한·이란·시리아 등 3개국의 미국 내 자산 총액 2억1683만 달러를 동결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북한 관련 자산 동결액은 7436만 달러로, 2017년에 동결했던 북한 자산액 6340만 달러(755억원)보다 1096만 달러(130억원) 늘었다.

BDA 사태는 2500만 달러에 달하는 큰 액수가 북한 지도부와 직접 연결돼 있었지만, 이번 선박 억류는 북한 지도부에 그 정도로 심한 재정적 압박을 가하진 않는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궁중경제(court economy)를 지탱하는 석탄 등 광물류를 수출하는 선박이 연이어 나포된다면 북한 입장에서 오히려 BDA 사태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촘촘한 그물망 감시로 남포와 원산항에서 출발하는 화물선을 24시간 감시한다면 어느 국가도 내놓고 해상에서 북한과 불법 환적을 시도하거나 위장 수출입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야흐로 선박 나포와 몰수로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과 미사일로 응수하는 양국 간의 치열한 샅바 싸움이 무더운 여름 내내 지속할 것이다. 양국이 와이즈 어니스트호와 푸에블로호를 맞교환하는 선박 간 빅딜을 통해서 신뢰를 구축하면서 3차 정상회담의 활로를 개척할지 아니면 미국의 추가적인 선박 나포와 추가적인 탄도미사일로 강 대 강 구도가 지속할지가 삼복더위가 지속하는 동안 양국 간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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