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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돋보기] 통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경제가 좋아진다는 대통령의 인식은 희망 사항 

라정주 사단법인 파이터치연구원 원장(경제학 박사)
‘평균치’ 근거로 낙관론 펴는 정부, 세부 지표의 위기 신호는 외면
통계 현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경제 체질 개선 가능


▎사진:gettyimagesbank
"(한국의) 성장률이 OECD 상위에 속한다. 내년에는 OECD 중 1위가 될 거란 전망도 있다. 작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높았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3월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의에서 한 발언이다. 일자리와 투자, 생산 등 경제 성적표가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반박하면서 각종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통계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180도 달라진다. 특히 ‘의도’가 곁들여지면 분석은 왜곡을 넘어 조작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과 괴리된다.

이 총리의 ‘OECD 1위’ 발언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슬로바키아(3.6%), 아일랜드(3.45%), 이스라엘(3.3%), 룩셈부르크(3.21%) 등 OECD 국가 중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가 한국(2.6%)보다 높은 나라는 여러 곳이다. 다만 규모가 우리와 비슷한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 ‘3050’ 클럽 국가에 국한한다면 맞는 말이 된다. 이 경우 비교 대상 국가들이 자본주의 성숙기에 접어들어 이미 저성장세를 보여 왔다는 차이를 밝혀야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이 총리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낙관했다. 문 대통령은 5월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열린 KBS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또 5월 14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대회’에서도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 두 사람의 경제 낙관론은 실체가 있는 걸까. 이를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 역시 통계다. 체감은 개인들의 처지와 판단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통계는 해석을 달리하더라도 그 자체는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통계 자료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공개된 것만 갖고도 두 사람의 발언의 객관성은 얼마든지 평가할 수 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중 가장 큰 논쟁은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과 관련돼 있다.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정부를 비판하는 쪽과 두둔하는 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그런데 양 진영에서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통계는 거의 동일하다. 하나의 통계를 놓고 서로 자기 주장이 맞다고 다투는 것이다.

경제 좋아진다지만, 통계는 ‘흐림’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노동시장 격차 완화와 소득주도성장’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먼저 실질 GDP(국내총생산) 지표를 통해 현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을 평가할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수단은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기 전인 2017년의 실질 GDP 성장률을 살펴보자. 실질 GDP 성장률은 경제성장률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거시 경제지표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최근 공개한 세계경제전망(2019년 4월 기준) 보고서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 전후의 성장률 변화를 알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7년 실질 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3.1%로 36개 OECD 국가 중 13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이 16.4%나 급격하게 올라간 2018년의 실질 GDP 성장률은 어떻게 변했을까. 2018년의 실질 GDP 성장률은 2.7%로 18위를 기록했다(17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IMF의 추정치이다). 2017년에 비해 0.4% 하락했고, 순위는 5계단 떨어졌다. 이 총리의 말처럼 ‘상위권’이라고 볼 수도 없고, 2017년에 비해 순위는 오히려 더 하락했다.

경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대통령의 인식도 사실이라기보다 희망 사항에 가깝다는 사실은 실질 GDP 성장률만으로도 입증된다. OECD가 집계한 올해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에 따르면 한국은 전기 대비 -0.4%로 31개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0.8%, 0.5%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보였으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4분기보다도 오히려 경제가 후퇴하는 부진한 성과를 보인 것이다. 거시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문 대통령의 주장과 배치되는 결과다.

또 다른 거시 경제지표들을 좀 더 살펴보자.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전기 대비 민간소비 증감률(실질)은 2017년 1분기 0.3%에서 2분기 1.3%까지 크게 증가했다가 올해 1분기에는 0.1%까지 하락했다. 민간소비 증감률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기점으로 하락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민간소비가 살아날 것이란 예상을 뒤집는 결과다.

제조업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설비투자 증감률(실질) 역시 2017년 1분기 4.6%에서 2019년 1분기 -9.1%까지 크게 하락했다. 건설투자 증감률 또한 2017년 1분기 3.4%의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었으나 2018년 3분기에 -6%까지 큰 폭으로 하락했다가 올해 1분기 들어 -0.8%로 회복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된 직후부터 시작된 하락 추세는 여전한 모습이다.

정부가 자신 있게 말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일자리 통계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만9000명 늘면서 정부 목표치인 15만 명을 뛰어넘었다. 덕분에 고용률도 61.5%로 지난해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생산가능인구로 분류되는 15세에서 64세 인구의 고용률은 67.1%로 1989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수치만 보면 분명 고용 상황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일자리가 없다는 시중 여론은 그저 주관적인 불만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경고가 거짓이 되는 셈이다.

정부가 말해주지 않는 통계의 함정


▎문재인 대통령은 2월 14일 자영업·소상공인 초청 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의견이 충분히 대변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함정이 숨어있다. 분야별로 나눈 지표를 보면 보다 솔직한 일자리 상황이 드러난다. 전 산업의 취업자 수는 2016년 1월과 2017년 12월에 각각 25만4000명, 25만7000명을 기록했다.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뒤인 2018년 2월에는 10만4000명으로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지더니, 6개월 뒤(2018년 8월)에는 3000명까지 급락했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경제의 중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유독 취업자 수가 오히려 늘어난 분야가 있다.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 업종이다. 이 분야의 취업자 수는 2016년 1월과 2017년 12월에 각각 2만9000명, 2만2000명 수준이었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 뒤 2018년 4월에는 14만3000명까지 늘었다. 올해 2월에는 23만7000명 수준에 이르렀다. 사실상 전체 취업자 수 증가세를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 업종이 주도한 셈이다.

이 업종에는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저임금 단순노동형 단기 일자리가 포함돼 있다. 노령 인력을 주축으로 한 가로정비사업이나 얼마 전 논란이 됐던 ‘대학교 강의실 소등 알바’와 같은 것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발생한 ‘고용참사’를 국민의 세금으로 봉합했을 뿐이지, 취업자 수가 예년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전체 취업자 수가 늘어 구직난이 완화됐다’는 해석은 눈속임이자 의도적인 왜곡에 가깝다.

이번에 발표된 5월 고용 동향에서도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의 고용률이 67.1%를 기록해 1989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제조업 취업자 수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7만3000명 줄어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또 경제 활동의 주력계층인 30대와 40대 취업자 수는 각각 7만3000명과 17만7000명씩 감소했다. 3040 취업자 수는 2017년 10월부터 20개월째 감소 중이다. 반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전년 대비 35만4000명 증가했다. 이 중 65세 이상 취업자가 20만 명을 차지했다.

정부 발표와 국민의 체감 괴리가 가장 큰 분야 중 하나가 물가다. 밥값, 장바구니 비용 등 “월급 빼고 안 오른 게 없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들리지만 정작 정부가 내놓는 소비자물가지수는 더 떨어졌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5%였다. 최저임금이 인상되기 전인 2017년의 상승률(1.9%)보다 더 낮아졌다. 체감 물가와 소비자 물가의 괴리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평균’의 함정 때문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식당 종업원과 같은 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의 인건비를 상승시킨다. 식당은 늘어난 인건비를 감당하려고 음식물 가격을 인상한다. 즉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근로자의 인건비 상승분이 음식값에 반영돼 체감물가가 오르는 것이다. 농·축·수산물, 유통 등 노동력 중심 업종에서 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가격 상승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반면 공산품은 불경기로 인해 수요가 줄어든다. 수요가 줄면 가격은 내려간다.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생활 물가는 높아졌지만, 전체 지수에서 비중이 큰 공산품의 가격이 내려가면서 평균값을 끌어내린 것이다. 이런 차이를 생략한 채 단순 지표 정보만 제공된다면 국민이 체감하는 불경기는 ‘엄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는 여론 조성이나 정책 판단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최저임금 올리자 저소득층 소득 감소 ‘부메랑’


이 같은 착시 요인을 걷어내고 물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다. 평균값이 아닌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기준이 되는 460개 품목에 대한 변동계수를 계산하는 방법이다. 변동계수는 460개 품목에 대한 소비자물가지수의 표준편차를 평균으로 나눈 값이다. 표준편차를 평균으로 나누는 이유는 월별 비교를 위해서다. 즉 비교 단위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기 전인 2017년에는 변동계수가 1월에 0.127에서 4월에 0.109로 하락했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 후인 2018년에는 0.107에서 0.137로 증가했다. 최저임금을 10.9% 인상한 2019년에도 1월에 0.126이었던 변동계수가 4월에 0.139로 상승했다. 이 같은 추이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소비자물가가 상승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따져봐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리려고 했던 정부 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지다. 이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부작용을 차치하고라도 저소득 층의 소득 증대 효과가 나타난다면 정부의 정책 목표가 어느정도 달성됐다고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근로자가 많이 포함된 소득 하위 20% 가계의 전년 동기 대비 소득 변화율을 나쁜 순으로 순서를 매기면, 가용한 총 61개 분기 중에서 1위는 2018년 4분기로 -17.7% 감소했다. 2위는 2018년 1분기로 -8.0% 줄었고, 3위는 2018년 2분기로 -7.6% 하락했으며, 4위는 2018년 3분기로 -7.0% 감소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포함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가장 많이 감소한 1위부터 4위까지의 시기가 모두 2018년도 4개 분기란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처럼 가장 공신력 있고 널리 쓰이는 몇 가지 통계만으로 살펴본 경제의 속살과 정부 발표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생산·소비·투자·고용·물가·분배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낙관론에 젖어 있을 만한 형편이 아니다. 경제 통계를 구축하는 이유는 경제 현상을 객관적이고 정확히 진단, 보다 나은 정책을 펼치기 위함이다. 일부분만 발췌해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다 바람직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영·수 세 과목 중 국어는 100점, 영어는 80점, 수학은 30점 맞은 학생에게 평균 70점이어서 보통 수준은 되니 괜찮다고 한다면 그 학생은 발전이 있을까. 현명한 부모라면 과목별 강약점을 따져서 부족한 과목에 집중해 개선되도록 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통계도 마찬가지다.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쉬운 평균치에 집착하면 올바른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이는 결국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 기회를 놓치는 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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