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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시진핑의 ‘21세기판 대장정’ 파장 

미국과의 무역전쟁 신(新)냉전시대를 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0년 대선 앞둔 트럼프 압박 통해 타협 가능성 엿봐
中, 서방 경제체제 대안으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고수


▎2017년 12월, 베이징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악수를 하고 있다.
중국 장시성 간저우시 위두현에는 대장정(大長征) 기념탑이 있다. 대장정은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 홍군이 장제스의 국민당군과의 내전에서 수세에 몰리자 1934년 10월 17일 이곳에서 출발해 368일 동안 12개 성, 18개 산맥, 24개의 강을 건너 무려 1만2500㎞를 행군해 1935년 10월 20일 산시성 옌안으로 피신한 것을 말한다. 당시 공산당은 도망가는 와중에도 곳곳에서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해 무상 분배하는 등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결국 공산당은 국민당을 굴복시키고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대장정은 공산당에게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홍군은 출발할 때 8만6000여 명이었지만 도착했을 때 600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국민당은 공산당을 소탕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공산당은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금도 미래를 열어나가는 결단을 할 때 대장정을 강조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5월 20일 이곳을 방문해 대장정 기념탑을 참배하고 헌화했다. 그는 현장 연설을 통해 “우리는 홍군이 여정을 처음 시작했던 시간을 기억하고자 대장정의 출발점에 와 있다”면서 “우리는 새로운 대장정을 시작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시 주석의 연설은 대장정이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 승리해 중국 공산당 정권을 수립하는 혁명에 성공했듯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시 주석은 중국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국이 되기 위한 ‘중국몽(中國夢)’을 제시한 바 있다. 중국몽을 실현시킬 수단이 제4차 산업혁명이다. 시 주석의 21세기판 신(新)대장정 선언은 제4차 산업혁명을 향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비장한 의지 표명이다.

시 주석은 같은 날 미국과의 무역협상 책임자인 류허 부총리와 함께 이곳에 있는 희토류 공장인 진리(金力)영구자석과기유한공사도 방문해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간저우는 중국 내 주요 희토류 산지이자 가공 공장이 밀집한 곳이다.

희토류 카드 본격적 만지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 20일 1934년 공산당의 대장정 출발지인 장시성 위두현의 대장정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시 주석의 이런 행보는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의 예언을 떠오르게 했다. 덩샤오핑은 1992년 남방 시찰 때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었다. 당시 덩의 발언은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를 수단으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듯이, 중국도 언젠가 첨단 산업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전략자원이 있다는 점을 예측한 것이었다.

시 주석의 언급대로 중국은 희토류(稀土類, rare earth elements)를 중요한 전략적 자원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 중 70.6%인 12만t을 생산했다. 호주(2만t)는 물론 미국(1.5t)도 희토류를 생산하지만 중국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미국은 연간 기준 1만1000t 규모의 희토류를 수입하는데 중국이 80%를 공급하고 있다.

희토류는 말 그대로 희귀한 흙이란 뜻으로, 21세기 첨단 산업의 비타민이라고 불린다. 열과 전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전기·전자·광학 등 4차 산업 분야에서 사용된다. 특히 스마트폰·반도체·전기차·광학렌즈·특수자석·석유화학 촉매제 등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스텔스 전투기·미사일·레이더·야간투시경·레이저 등 각종 군사용 장비와 무기를 제조하는 데도 사용된다. 때문에 희토류는 첨단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전략자원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 지도부는 그동안 시 주석 주재로 비밀리에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완전 결렬됐을 때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는 물론 앞으로 무역전쟁에 따른 경제 전쟁을 어떤 식으로 벌일지 논의해왔다. 중국 정부의 각 부처는 시 주석의 절친이자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 101중학교 동창인 류 부총리의 지휘로 미국에 대한 보복 카드를 면밀하게 검토해 공산당 정치국에 제시했다.

시 주석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중국 굴기의 마지막 관문이자 역사적 기회로 보고 중국몽을 위해선 어차피 미국과는 맞붙을 수밖에 없었던 만큼, 지금을 기회로 삼자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무역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경우 2020년 대선을 의식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특히 올해 신중국 창립 70주년을 맞아 시 주석은 집권 2기의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 만큼 미국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자칫하면 1인 체제의 권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타협을 주장했던 류 부총리는 “중국의 경제 전망이 굉장히 낙관적이고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다”면서 시 주석의 강경노선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진창룽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중국은 희토류, 미국 국채, 중국 진출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 등 세 가지의 ‘킹 카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희토류를 보복 카드로 꺼내 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경제정책 계획과 집행을 담당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5월 28일 미국을 겨냥해 희토류를 보복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뒤이어 6월 4일에는 전문가 좌담회를 갖고 희토류 수출 통제 방안을 검토했다.

대두 금수 통해 ‘트럼프 표밭’ 농민 타격 전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월 20일 장시성 진리(金力) 희토류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 사진: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런민일보]를 통해 미국에 경고의 메시지도 보냈다. 런민일보는 ‘미국은 중국의 반격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5월 28일자)에서 역사상 두 차례 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표현을 동원해 강력하게 경고했다. 인민일보는 “중국의 희토류로 만든 제품을 이용해 중국의 발전을 방해하려 드는 것을 중국 인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미리 말한 적이 없다고 하지 말라”(勿谓言之不预)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표현은 1962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 전쟁 직전과 1979년 중국과 베트남의 전쟁 직전에 사용된 적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10년 동중국해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일본과 영유권 분쟁이 고조됐을 때도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로 일본을 압박한 적이 있다.

미국의 희토류 대중(對中) 의존도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갈수록 높아져 왔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희토류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미국에는 2015년 희토류 정련업체 몰리코가 파산보호신청을 한 뒤 현재 희토류 정련공장이 한 곳도 없고,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 광산에서 희토류 채굴만 이뤄지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카드를 꺼내 들 경우 미국으로선 피해가 불가피하다.

중국 정부는 무역전쟁과 협상 결렬이 모두 미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분명하게 밝히면서 단계적 보복 조치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는 6월 2일 ‘중·미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입장’이라는 제목의 백서를 발간하고 미국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특히 8300자 분량의 이 백서에서 무역전쟁 발생과 협상 결렬의 원인을 미국에 전가하면서 미국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백서는 “미국이 무역 전쟁을 촉발해 중국은 어쩔 수 없이 대응에 나섰지만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며 “지난해 2월 무역협상이 시작된 이후 대부분 합의를 이뤘지만, 미국이 여러 차례 공동 인식에 반하는 태도로 협상을 깨뜨렸다”고 강조했다. 백서는 “중국은 무역전쟁을 원치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며 “중국은 중대한 원칙적인 문제에 있어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왕서우원 상무부 부부장도 백서 발간 관련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실무적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미국은 불합리한 높은 조건을 고집하고 합의문에 중국의 주권과 관련된 내용까지 포함시키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왕 부부장은 “지난해 미국산 대두의 중국 수출은 50%, 미국 자동차의 중국 수출은 20%나 감소했다”며 “이런 통계를 보더라도 미국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해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인 미국 중서부의 ‘팜 벨트’(farm belt, 농장지대)의 농민들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대두(콩) 수입금지 조치를 가장 먼저 내리면서 선전포고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팜 벨트 지역 농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정부가 대두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대두 수입국이자 소비국이다. 중국은 매년 9600만t 이상 콩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이전을 기준으로 중국이 콩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브라질로 전체 수입의 52.8%를 차지했고, 그 다음은 미국 (35.1%)이었다. 중국은 매년 미국으로부터 140억 달러 어치의 콩을 수입해 주로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해왔다. 지난해 중국의 미국 대두 수입은 1660만t으로 절반이나 감소했다. 반면 브라질 대두 수입은 6600만t으로 30% 늘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의 무역협상을 진행하면서 미국산 대두 1000만t을 구매하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번에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했다.

美 기업 ‘블랙리스트’ 통해 화웨이 제재 맞대응


▎중국은 세계 희토류 시장에서 미국이 수입하는 물량의 80%를 공급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희토류 광산./사진:중국 글로벌타임스 캡처
중국 정부가 미국 팜 벨트에서 생산되는 콩을 수입하지 않으면 농가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해 팜 벨트의 농가소득은 2013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쥔 중국 농업농촌부 부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농부들을 위한 지원 계획을 밝혔지만 그런 지원만으로는 미국 농부들이 중국 시장을 잃는 데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면서 “미국 농민들은 이제 중국 시장을 영원히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수출을 독려해온 액화천연가스(LNG)에도 25%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정부는 6월 1일자로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 5140개 품목에 5~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는데,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한 품목에 LNG를 포함시켰다. 중국은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입국이기 때문에 미국 LNG의 수입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25%의 관세를 부과해 사실상 수입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대신 중국 정부는 카타르·러시아·모잠비크 등에서 LNG 수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런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LNG 수출 증가는 미국의 일자리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중국을 비롯해 각국에 자국산 LNG 수입을 늘릴 것을 촉구해왔다. 미국 LNG의 전체 수출량 중에서 중국 비중은 지난해 12%에 달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 기업에게도 공격의 화살을 날렸다. 미국 정부의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의 화웨이(華爲)에 대한 거래 금지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 정부는 미국 기업들에 대해 사실상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거래를 제한하기로 했다. 중국 상무부는 외국 기업들에 대해 거래를 제한하는 ‘신뢰할 수 없는 실체 명단’을 만들고, 명단에 올릴 4가지 기준을 밝혔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중국 실체(기업이나 개인, 조직)에 봉쇄, 부품 공급 중단, 다른 차별적 조치를 취하는 행위 여부, 둘째 비상업적 목적으로 시장규칙과 계약정신을 위배했는지 여부, 셋째 중국 기업이나 관련 산업에 실질적인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 넷째 국가 안전에 위협이나 잠재적인 위협을 가했는지 여부 등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외국 기업과 개인 및 조직 등은 중국의 대외무역법·반독점법·국가안전법 등에 근거에 필요한 법률과 행정조치를 받게 된다.

중국 정부는 6월 4∼5일 주요 글로벌 IT기업들을 불러 미국 정부의 요구대로 자국 기업들과 거래 금지 조치에 협력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에 불려간 기업들에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델, 시스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핀란드 노키아 등이 포함됐다. 장모난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 수석연구원은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중지한 퀄컴·인텔·구글·ARM 등이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면서 “해당 기업들은 상업윤리를 저버리고 미국 정부의 방침을 따르며 미국과 함께 중국 제재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 싱크탱크다.

중국 정부는 또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국 인터넷 이용자에 대한 데이터를 국외로 보내는 것을 금지할 계획이다. 화웨이 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같은 미국 기업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핵심기술 보호를 위해 미국과 비슷한 ‘국가기술안보관리 목록’을 만들기로 했다.

우군 러시아와 반미(反美) 공동 전선 구축


▎2018년 3월 열린 제13기 1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시 주석 장기 집권의 길이 열린 결정적 순간이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블랙리스트에 올려 처벌할 첫 시범 케이스로 국제 운송업체인 페덱스(FedEx)를 겨냥하고 있다. 페덱스는 5월 화웨이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부친 택배 2건과 베트남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로 보낸 택배 등 모두 4건을 원래 목적지가 아닌 미국으로 잘못 보냈다. 중국 관영언론 매체들은 “중국은 외자기업이 와서 발전하는 것을 환영하지만 전제는 중국 법률 법규 시장규칙 계약정신을 준수하고 중국 소비자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반독점 기구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미국 포드자동차의 중국 합작 법인인 창안 포드에 대해 반독점 행위로 1억6280만 위안(277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국가시장관리총국은 창안 포드가 2013년부터 충칭 지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 판매상들에게 최저 가격을 요구함으로써 판매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 같은 행위가 자국의 반 독점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도 중국 정부가 자국 내에서 영업 중인 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보복 카드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 정부에 ‘비대칭’ 보복 카드도 꺼내 들었다. 우선적으로 유커(중국인 여행객)와 유학생을 제한하는 조치를 들 수 있다. 중국 문화여유부는 6월 4일 미국행 유커들에게 여행 안전 주의보를 내렸다. 미관광·숙박업계는 향후 유커 방문이 중단될 경우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미국을 찾은 유커는 전년 대비 5.7% 감소한 290만 명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쓴 돈은 363억5200만 달러(42조8700억원)나 됐다. 유커들은 미국에서 평균 6000~7000달러를 쓰는 등 다른 외국인 관광객보다 50%나 많은 돈을 지출하며 ‘큰 손’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중국 교육부도 6월 3일 미국에서 공부하려는 학생들에 대해 ‘2019년 제1호 유학 경계령’을 내렸다. 현재 학생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 수는 36만9364명이나 된다. 중국인 유학생은 미국 내 전체 외국인 유학생(110만여 명)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내는 학비는 매년 13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주요대학들은 이런 조치로 재정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맞서 ‘우군 만들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6월 5일~7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사실상 동맹 수준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신시대 전면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격상시키면서 외교·안보·경제·기술 등 각종 분야에서 반미(反美) 공동 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특히 양국은 5G 동맹까지 맺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러시아 최대 유·무선 통신사인 모바일텔레시스템즈(MTS)는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년까지 러시아 전역에 5G 네트워크를 설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다면 시 주석과 중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와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중국 공산당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의 휴전회담에서 승리(?)했던 경험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의 기관지인 [학습시보]는 6월 5일 ‘한국전쟁 휴전회담 당시 상황을 돌아보자’라는 제목의 1면 논평에서 “2년 넘게 걸린 한국전쟁 휴전회담 때 중국이 보여준 정신과 결단력이 오늘날 상황과 관련 있다”며 “중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력과 경제력, 외교적 압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싸우는 공산당 정신을 발휘했다”고 강조했다.

정치·경제 통제하는 시진핑, 경제적 여파 적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6월 5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국빈방문 중인 시진핑 국가주석을 안내하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시 주석은 6월 4일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은 모든 위험과 도전에 대처할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갖고 있다”며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4가지 이유를 피력했다. 구체적으로 ▷풍부한 자원 잠재력 ▷강력한 내수시장 ▷연구개발(R&D) 투자로 인한 신산업 경쟁력 ▷공산당의 강한 리더십 등이다.

시 주석은 14억 인구, 9억의 노동력, 1.7억 명의 고등교육 및 기능을 갖춘 인재, 전 세계 최대 규모 중산층, 1억이 넘는 시장 주체(개인 사업자 포함)를 자원의 잠재력 사례로 꼽았다. 시 주석은 또 지난해 내수의 경제성장 공헌도는 108.6%로 이 가운데 최종 소비의 공헌도는 76.2%라면서 주로 내수가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R&D 투입 규모가 세계 2위이고, 전략 신흥산업과 공유경제 등으로 대표되는 신성장 동력이 끊임없이 커지는 것을 발전 활력의 사례로 들었다. 특히 시 주석은 조정과 통제 능력을 내세우면서 공산당의 영도로 역량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정치적 우위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의 언급처럼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를 자신하는 이유는 정치적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실제로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할 때 무역전쟁의 경제적 여파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시 주석은 공산당을 장악하고 있으며 각종 언론 매체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정책에 대해 비판받지 않는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과 기업들의 불만에 대처해야하고 민주당과 언론들의 견제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또 미국 정부보다 경제를 훨씬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로 타격 입은 산업을 지원하도록 은행에 명령하거나 국영 기업을 통해 무역전쟁의 고통을 분산시킬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민간기업이나 은행에 이런 지시를 내릴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시 주석과 중국 정부의 이른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authoritarian capitalism)’가 미국 등 서방의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자 서방의 금융·무역 시스템 편입을 거부하고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고수해왔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온 것은 서방의 금융체제 탓이며, 서방의 민주주의는 쇠락해 중국에 맞지 않는 모델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서방의 룰에 맞춰 체제를 바꾸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계획을 적극 추진하면서 동남아와 중앙아 및 아프리카 각국을 자국 경제권에 편입시키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 주석과 중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와의 무역전쟁을 봉합하더라도 앞으로 미국 등 서방과의 체제 대결은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신대장정을 선언하고 장기전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New Cold War)은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고, 과거 냉전보다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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