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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 그랜드 CEO in KOREA(5)] ‘뉴 롯데’ 향한 신동빈 롯데 회장의 집념 

“기존 사업구조와 업무방식 완전히 바꿔라!”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석유화학 집중, 글로벌 M&A 전략으로 롯데의 재도약 이끌어내
금융사 처분, 호텔롯데 상장 추진 통해 투명한 지주회사 꿈꾼다


▎신동빈 롯데 회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5월 14일(한국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롯데케미칼의 31억 달러 투자에 트럼프가 화답한 것이다. / 사진 : 롯데그룹
5월 15일 대한민국 대다수 일간지는 약속이나 한 듯 1면에 같은 사진을 올렸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 국내 언론 지면을 장식한 것이다. 트럼프가 “매우 기쁘다”는 코멘트와 함께 올린 이 사진에는 뜻밖에도 신동빈(64) 롯데그룹 회장이 등장했다. 국내 대기업 총수 중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사례는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된 결정적 배경은 롯데의 미국 투자였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 연간 10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총 사업비는 31억 달러(약 3조6000억원)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롯데케미칼의 공장 준공식(한국시간 5월 10일)에 맞춰 다음과 같은 축하 서신을 보냈다. “31억 달러에 달하는 이번 투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이자 한국 기업이 미국 화학공장에 투자하는 것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미국과 한국에 서로 도움이 되는 투자이자 한·미 양국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어 14일엔 백악관이 신 회장을 비롯한 롯데 경영진을 초청, 트럼프와의 면담의 시간을 제공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좋은 투자였다. 전통이 있는 건물이니 잘 보존해 달라”는 과거 롯데그룹과의 인연을 돌이켰다. 트럼프가 말한 건물이란 2015년 롯데가 매입한 ‘롯데뉴욕팰리스’ 호텔을 일컫는다. 이 건물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서가 깊은 건물이었다. ‘제2의 백악관’이라 불리는 뉴욕의 랜드마크다. 매년 UN총회가 열릴 때마다 정·재계 인사가 모이고,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곳이었다. 뉴욕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신동빈 회장이 적극 나서 성사된 거래였다.

신 회장의 백악관 방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 롯데’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표시등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 강자, 케미칼의 날개를 더하다


▎신동빈 회장(가운데)은 5월 10일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롯데케미칼의 석유화학 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에서 두 번째)도 참석했다. / 사진 : 롯데그룹
재계 5위 롯데그룹은 4개의 축으로 움직인다. ▷유통 ▷석유화학·건설 ▷식·음료 ▷관광·서비스 부문이 그것이다. 이 중 지금까지 롯데의 위상을 만들어준 핵심 엔진은 유통이었다. 오프라인에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 롯데아울렛, 편의점(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 등이 아성을 쌓았고 온라인에서도 롯데홈쇼핑, 롯데e커머스 등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온라인 사업 강화를 위해 유통 온라인몰 8개를 하나로 통합했고, 롯데로지스틱스,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물류 계열사도 결합을 통해 국내 2위 규모(연 매출 3조원)로 발돋움했다. 신 회장은 2001년 [유통을 알면 당신도 CEO]라는 저서를 펴낼 만큼 이 분야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인간이나 조직은 이런 성공 경험에서 탈피하기 어렵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집하다간 도태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신 회장과 롯데는 자신들이 가장 잘해온 유통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선택과 집중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그것이 석유화학(케미칼) 분야다.

현 시점에도 롯데가 유통의 강자인 것은 불변이었지만 업황은 갈수록 험악해지고 실적 확장도 한계에 다달았다. 동남아 등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 캐시카우를 확보했지만 중국에서 ‘사드 악재’에 갇혔다. 주한미군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경북 성주 롯데 소유 골프장 부지에 배치한 것이 중국을 자극한 것이다. 소방법 위반 등을 명분 삼아 2017년 3월부터 중국 내 롯데마트에 영업 정지 처분이 잇달았고, 결국 롯데는 2018년 중국에 있던 롯데마트를 모두 철수시켰다. 2017년까지 중국 전력에 112곳에 달한 매장을 전부 매각하거나 폐점했다.

다만 2008년 중국에 진출한 백화점 중 산둥성 웨이하이, 스촨성 청두, 랴오닝성 선양 등 3곳은 현재 운영되고 있다. 롯데가 중국시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유통 인프라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청두의 주상복합 건설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다. 선양 주상복합 프로젝트도 최근 허가를 얻었다.

롯데 내 누구도 공식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그룹의 무게중심이 석유화학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완연하다. 롯데에서 석유화학의 역사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케미칼의 전신은 호남석유화학이다. 신 회장은 1990년부터 이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원료를 외부조달에 의존했는데 공장 증설을 통해 구조를 바꿨다. 이 기간 호남석유화학의 재무상태와 경쟁력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후 신 회장은 장기인 적극적 M&A(인수합병)로 덩치를 키웠다. 현대석유화학 2단지와 KP케미칼을 인수했다. 호남석유화학은 2004년 1월 1785억원을 들여 KP케미칼 지분 53.8%를 인수했다. 현대석유화학 2단지는 롯데대산유화로 이름을 바꿨는데 2009년 호남석유화학과 합병했다. 그 합쳐진 회사가 바로 롯데케미칼이다.

그리고 2015년 10월 롯데 역사상 전례 없는 ‘빅딜’이 재계를 흔들었다.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 부문과 삼성정밀화학을 인수한 것이다. 이때 당시 롯데가 감당한 인수가격은 3조원이었다. 국내 화학업계 최대 거래이자 롯데그룹 창립 이래 가장 큰 규모의 M&A였다. 당시 신동빈 회장은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룹의 미래를 건 투자를 감행하는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줬다. 이로써 롯데케미칼은 숙원인 석유화학 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정밀화학 분야에 진출할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종합화학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글로벌로 눈을 돌릴 발판이 갖춰졌다.

‘소비만 유도하는 내수기업’ 틀을 깨다


▎신동빈 회장(왼쪽)은 2018년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났다. 신 회장은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낸다. / 사진 : 롯데그룹
신 회장은 ‘은둔의 황태자’로 불렸다. 실제 말수가 많지 않고, 예의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업에서는 공격적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M&A를 통해 내수기업 이미지가 강했던 롯데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롯데는 2019년부터 향후 5년간 국내외의 전 사업부문에 걸쳐 총 50조원의 투자를 감행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으로 백미를 장식한 롯데의 석유화학 분야 미국 진출은 신 회장의 지휘 아래 2012년부터 본격화됐다. 이 시점부터 셰일가스 TFT를 구성하고 북미 지역의 기반 사업 검토를 시작했다. 셰일가스는 석유의 대체 에너지로 각광받는 자원이다. 이전까지 채굴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미국에서 추출법이 개발되자 상황이 반전됐다.

그리고 롯데는 2015년 말 한국 화학기업 최초로 셰일가스 투자를 결정했다. 원료가 되는 에탄의 운송비용을 줄이고 사업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셰일 혁명의 본고장이라 할 미국에 에틸렌 설비를 건설했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2014년 하반기에 저유가 국면이 닥쳤다. 셰일가스는 원가경쟁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했다. 롯데가 추진하려고 했던 프로젝트도 근저에서 흔들렸다. 그러나 신 회장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유가는 다시 오를 것이고, 그러면 셰일가스 시장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가 2019년의 루이지애나주 31억 달러 공장 준공식으로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이에 앞서 롯데케미칼은 2010년 동남아시아 대표적 석유화학 회사인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현 롯데케미칼 타이탄)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전략을 실행했다. 롯데케미칼 타이탄은 2017년 7월 말레이시아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상장규모는 약 4조원으로 아시아 유화업계 최대 규모였다. 단숨에 말레이시아 전체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 30위 안에 진입했다. 인수 시점인 2010년 7월 매입 가격은 1조5000억원이었다. 약 7년 만에 기업가치가 2조5000억원 증가한 셈이다.

롯데케미칼 타이탄 공장은 말레이시아의 이웃나라인 인도네시아에 위치해 있다. 롯데는 공장 인근 부지의 토지 사용권을 추가로 매입했다. 이곳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투자액은 4조원으로 추정된다.

롯데케미칼의 투자 확대 기조는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롯데케미칼이 지분 40%, 현대오일뱅크가 지분 60%를 담당해, 합작사 현대케미칼을 만들었다. 이 회사는 5월부터 정유 부산물 기반 석유화학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대오일뱅크 대산 공장 내 20만 평 용지에 짓기로 했고, 약 2조7000억원이 투입된다.

이외에도 2017년 5월부터 원료 경쟁력 및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약 3700억원을 투자해 메타자일렌 제품 공장(울산)과 폴리카보네이트 공장(여수) 증설을 하반기에 앞두고 있다. 2018년 1월에는 500억원을 투자해 울산공장 PIA(고순도이소프탈산) 생산설비 증설을 시작했다. PIA는 원료 제품으로 전 세계 7개 업체만이 생산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롯데케미칼은 세계 1위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 공급물량을 기존 46만t에서 84만t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밖에 울산의 롯데정밀화학과 롯데BP화학도 공격적 투자를 통한 생산설비 증설을 발표했다.

빅데이터로 고객의 가치를 재설정하다


▎2017년 10월 12일 롯데지주 출범식이 열렸다. 롯데지주를 통해 신동빈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안정화될 수 있다. / 사진 : 롯데지주
신 회장은 2019년 롯데 사장단회의(VCM)에서 “기업이 맞이하게 될 미래의 변화는 도덕경에 나오는 ‘대상무형’(大象無形)이라는 말처럼 그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한하다”라며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과 형태를 무너뜨릴 정도의 혁신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신 회장이 꺼낸 화두가 “기존 사업구조와 업무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혁신하는 비즈니스 전환(Business Transformation)”이다. 그 구체적 방법론으로 ▷전략 재수립 및 실행계획 구체화 ▷디지털 전환에 기반한 비즈니스 혁신 ▷‘빠른 실패’를 독려하는 조직문화를 제시했다.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알을 깨고 나와, 비로소 롯데에 ‘신동빈 컬러’가 입혀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아오야마 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신 회장은 뜻밖에도 롯데가 아닌 노무라 증권 런던 지점에 입사했다. ‘다른 회사에서 평사원으로 먼저 일해보라’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의중이 작용했다. 이때부터 신 회장은 선진 기업들의 재무관리와 국제금융 시스템을 체득했다. 숫자에 강한 신 회장 특유의 경영스타일이 이 시절부터 확립된 셈이다.

이후 신 회장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1990년 롯데케미칼(당시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한국롯데에서 경영자 수업을 본격 개시했다. 2004년 10월 롯데의 그룹 컨트롤타워라 할 정책본부 본부장으로 취임하며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신 회장 등장을 모멘텀으로 롯데는 M&A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며 그룹 규모를 확장해 나갔다. 2004년 우리홈쇼핑(4667억원), 2007년 대한화재(3526억원), 2008년 케이아이뱅크(25억원), 2009년 두산주류(5030억원), 2010년 바이더웨이(2740억원), GS리테일 백화점·마트 부문(1조3000억원), 말레이시아 타이탄(1조5000억원) 등을 인수했다.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 스케일은 더 커졌다. 1조원을 넘긴 M&A만 4건에 달한다. 하이마트(1조2480억원), 케이티렌탈(1조200억원), 더뉴욕팰리스호텔(8억500만 달러) 그리고 삼성그룹 화학 부문(3조원)이 그것이다.

숫자로 판세를 읽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면 돌아보지 않고 돌격하는 신동빈 스타일에서 가장 중시될 요소는 정보, 특히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일 것이다. 롯데가 이미 최강의 지위를 점하고 있는 유통 부문에서도 신 회장은 근거 있는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첨단 ICT(정보통신기술)와 그룹이 보유한 빅데이터 자산을 활용해 고객을 재정의하자는 관점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롯데는 AI(인공지능)에 눈길을 돌렸다. 2016년부터 IBM과의 업무 협약을 맺은 롯데제과는 외부 데이터와 내부 매출, 제품 정보 등을 분석, 의사결정에 적용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2017년의 빼빼로 신제품 시범 출시였다. 이어 2018년 8월 AI 트렌드 예측 시스템인 ‘엘시아’를 개발해 현장에 도입했다. 엘시아는 인공지능을 통해 수천만 건의 소셜 데이터와 판매 데이터, 날씨, 연령, 지역별 소비패턴 및 각종 자료들을 고유의 알고리즘으로 조합해 식품 관련 트렌드에 최적합한 신제품을 추천해줄 수 있다.

롯데백화점은 2017년 12월 AI 챗봇을 런칭했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고객 맞춤형 상품 제안 서비스를 제공한다. 롯데e커머스도 올해 안에 AI 관련 전문인력을 100명 이상 확충할 예정이다.

지주회사 통한 한국 롯데 독립 플랜


▎신동빈 회장이 집무실이 있는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출근하고 있다. 신 회장은 평소에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닌다. / 사진 : 롯데그룹
신 회장은 2015년부터 일관되게 옴니채널 전략을 실행 중이다. 온라인·오프라인·모바일 쇼핑채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고객이 마치 하나의 매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쇼핑환경과 사용자 경험을 융합하는 전략이다.

신 회장의 또 다른 숙원은 한국 롯데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구성하는 일이다. 소위 ‘원 롯데(one lotte)’ 플랜이다.

롯데그룹은 창립 50주년을 맞은 2017년 롯데지주를 설립했다. 롯데지주는 롯데그룹의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토대에 해당한다. 현재 그룹 지배구조에서 최상단에 위치하는 호텔롯데는 일본 주주의 지분율이 99%에 달한다. 이 때문에 ‘롯데가 한국회사인가 일본회사인가’라는 국적 논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2015년 9월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호텔롯데는 한국 상법에 따라 세금도 한국에 내고 있고 근무하는 사람도 대부분 한국 사람이다. 한국 기업이 맞다”라고 말했다. 다만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롯데지주가 지속적으로 계열사를 편입하고 있음에도, 호텔롯데가 또 하나의 지주회사 노릇을 하고 있는 구조다.

이런 고리를 끊기 위해 롯데는 3단계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그룹 내 금융계열사 처분→호텔롯데 상장→롯데지주와 호텔롯데의 합병’이 그것이다.

금융계열사 처분은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사를 소유할 수 없다’는 공정거래법을 따르기 위한 절차의 일환이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기본 2년(최대 4년) 안에 분리를 마무리해야 한다. 롯데지주가 2017년 10월 출범했으니 2019년 10월까지가 시한이다.

롯데그룹이 품고 있는 금융사로는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그리고 롯데캐피탈이 있다. 이 중 롯데카드는 MBK파트너스·우리은행 컨소시엄에 매각될 예정이다. 매각금액은 1조38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롯데손해보험도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롯데캐피탈은 유예 기간을 연장시키거나 호텔롯데로의 지분이전을 할 수 있다.

그 다음 수순은 호텔롯데를 상장시켜 일본 지배력을 덜어 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동안 호텔롯데 상장이 탄력을 받지 못한 건 실적 부진 탓이었다. ‘사드 파동’ 이후 호텔롯데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롯데면세점의 영업 이익이 쪼그라든 것이 치명적이었다. 제 값을 받지도 못하는 타이밍에 상장을 강행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중국의 제한 조치가 풀리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회복되고 있다. 호텔롯데는 2018년 흑자 전환했고, 상장의 분위기는 호전됐다. 다만 롯데는 그 방향성은 불변이지만 구체적 시기에 관해선 조심스럽다.

신격호의 소공동에서 신동빈의 잠실로

어쨌든 호텔롯데 상장은 성사 시기의 문제일 뿐 예정된 수순이다. 그 이후에 롯데지주가 호텔롯데와 합쳐야 진정한 지주 체제가 완결될 수 있다. 롯데지주는 2018년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롯데 석유화학 계열사들을 편입시켰다. 지난해 7월에는 롯데지주 자회사인 롯데정보통신을 상장시켰다. 기존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해소해 신 회장의 경영권을 공고화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신동빈 회장과 형인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의 경영권 다툼은 2015년 불거졌다. 한국 롯데의 매출은 대략 100조원이고, 일본 롯데는 매출 4~5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배구조 상, 그룹의 정점에 위치한 호텔롯데 최대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다. 이 롯데홀딩스의 경연진과 주주들이 신동빈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 주된 이유로는 신동빈 회장의 경영성과를 빼놓을 수 없을 터다. 2004년 매출 23조원이었던 한국 롯데는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을 맡고,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래 매출 92조원(2016년 기준)으로 급성장했다.

신 회장은 2018년 2월 면세점 사업자 선정 관련 청탁과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이로 인해 롯데홀딩스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일본 주주들은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신 회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뒤, 경영에 복귀했다. 신 회장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의 공백기, 롯데그룹의 투자, 채용, M&A, 지배구조 개선 등 주요 의사결정은 사실상 올 스톱 상태였다. 역설적으로 신 회장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체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후 돌아온 신 회장은 2013년까지 50조원 투자 계획과 7만 명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그룹 내에서 준법경영 의식이 대폭 강화됐다.

동시에 신 회장은 2018년 12월 그룹 임원인사를 통해 ‘신동빈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이로써 아버지 신격호의 사람들이 2선 후퇴했고, 세대교체가 마무리된 것이다.

2017년 10월 잠실에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됐다.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랜드마크 빌딩이자 ‘신동빈 뉴 롯데’의 상징이 됐다. 신 회장은 이 롯데월드타워에 집무실을 마련했다. 롯데의 핵심 부서들도 입주했다. 신격호의 소공동 시대가 마감되고, 신동빈의 잠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신 회장이 추구하는 ‘뉴 롯데’의 핵심가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사업구조 혁신, 디지털화, 글로벌 경쟁력, 그리고 투명경영으로 신동빈의 롯데는 변화하고 있다. 선택이 아니라 그렇게 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투영돼 있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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