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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화제] ‘코리안 몬스터’ RYU, ‘코리안 특급’ PARK 넘을까 

지금처럼만 5~6년 던지면 통산 125승에 도달? 

김효경 중앙일보 기자 kaypubb@joongang.co.kr
관절와순 수술 뒤 하루 4시간 운동 소화… 7% MLB 복귀 확률 극복
로버츠 감독 “류현진을 올스타전 (선발투수로도) 생각하고 있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5월 8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둔 뒤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2·LA 다저스)이 미국 진출 7년 만에 최고의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 6월 14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올 시즌 15경기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9승1패 평균자책점 1.36을 기록 중이다. 다승과 평균자책점 모두 내셔널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MLB) 전체 1위다(6월 14일 현재, 이하 기록 마찬가지).

미국 언론들도 류현진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류현진이 작년 8월 빅리그에 돌아온 이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레그 매덕스에 비견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고 밝혔다.

류현진을 보면 떠오르는 또 한 명의 투수가 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46·은퇴)다.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정상급 투수로 활약하며 ‘최초’라는 수식어를 연이어 쌓아 올렸다. 박찬호가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도 이어졌다. 개척자 박찬호처럼 류현진은 금자탑을 세울 수 있을까.

류현진보다 14년 위인 ‘공주고 에이스’ 박찬호는 고향 팀 빙그레(현 한화)가 아닌 한양대 진학을 선택했다. 그때만 해도 특급 유망주들은 프로에 직행하지 않고, 대학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었다.

‘황금세대’로 불렸던 92학번 동기들 대부분이 그랬다. 박찬호보다 한 수 위로 평가됐던 휘문고 임선동은 연세대, 신일고 조성민은 고려대로 갔다. 빙그레는 김영덕 감독이 직접 박찬호를 만나 설득하면서 당시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계약금 5000만원을 제시했지만 박찬호는 가계약을 마친 한양대와의 의리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박찬호의 한양대 진학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한양대 2학년이던 1993년 8월 미국 버펄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박찬호는 1승3 세이브를 올리며 활약했다. 특히 최고 시속 156㎞의 빠른 공을 던졌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박찬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박찬호는 계약금 12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0억원)을 내민 LA 다저스의 손을 잡았다.

박찬호는 미국 진출 당시 다리를 높게 드는 투구폼이었다. 국내 야구에서는 다소 금기시된 자세지만, 자신의 우상인 놀란 라이언이 쓴 책을 보고 이를 흉내 냈다. 1994년 MLB 사상 17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데뷔전을 치른 박찬호는 제구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두 경기 만에 마이너리그 더블A로 내려갔다.

마이너리그 생활은 힘들었다. 영어는 물론 문화 차이가 박찬호를 괴롭혔다. “마늘 냄새가 난다”는 동료의 말에 화가 나 치즈를 먹기 시작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박찬호에게 귀중한 경험이 됐다. 극단적으로 높게 올렸던 다리를 다소 내리는 대신 밸런스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美에서 완성된 박찬호, 완성 후 美로 간 류현진


▎5월 13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 선발등판한 류현진이 더그아웃에서 상대 타자 분석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 : LA 다저스 포토 블로그
박찬호는 은퇴 후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며 “하지만 야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그때의 경험으로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박찬호와 달리 류현진은 한국에서 완성된 투수다. 2006년 인천 동산고를 졸업한 류현진은 신인 지명회의 2차 지명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한화에 지명됐다. 연고팀 SK는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 경력을 꺼려 1차 지명에서 류현진을 선택하지 않았다. 류현진이 한화에 가게 된 건 팀과 선수, 모두에게 행운이었다.

당시 투수코치였던 고(故) 최동원은 가을 마무리 훈련에서 류현진을 보고 한눈에 재목임을 알아챘다. 투구폼 교정과 함께 ‘류현진을 선발로 쓰자’고 김인식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건의했다. 5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뛰다 돌아온 구대성은 류현진에게 서클체인지업 그립을 알려줬다.

구대성은 “귀찮게 계속 묻길래 공을 잡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자기 것으로 바꿔서 금세 익히더라”고 회상했다. 구대성에게 배운 체인지업은 류현진을 한국 프로야구를 호령하는 최고의 투수로 만들어준 필살기였다.

류현진은 해외 진출의 길도 스스로 열었다. 류현진은 2008 베이징올림픽(금메달)과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에 출전해 활약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호투를 펼친 류현진을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그냥 둘 리 없었다.

유망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2009 WBC 이후 국제 유망주 랭킹에서 류현진을 5위로 평가했다. 류현진은 2012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입찰)을 통해 2573만7737달러(약 300억원)의 이적료를 한화에 안기고,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최초 사례였다.

박찬호와 달리 류현진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았다. 스프링캠프에서 치열한 5선발 경쟁을 펼쳤고, 시범경기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2013년 4월 3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데뷔전에선 6.1이닝 동안 10안타를 맞고 3실점했고, 닷새 뒤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선 6.1이닝 2실점으로 첫 승리를 따냈다. 류현진은 그해 시즌 14승을 올리며 클레이턴 커쇼-잭 그레인키(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함께 선발 삼총사로 우뚝 섰다.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한국 프로야구도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게 류현진이었다.

류현진은 한국 시절 자신의 루틴(경기 전 준비하는 습관이나 일정한 형태)을 유지했다. 보통 선발 등판 이틀 전에 하는 불펜피칭을 하지 않았다. 러닝 훈련에도 비중을 두지 않았다. 2013년 스프링캠프 러닝 훈련에서 가장 뒤처져 미국 기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류현진은 기자에게 “내가 느린 게 아니라 미국 애들이 빠른 것”이라며 “내가 하던 대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운드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자 류현진에 대한 악평도 사라졌다.

1996년 중간계투와 선발을 오간 박찬호는 97시즌 풀타임 선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내며 다저스 간판 투수로 발돋움했다. 박찬호의 무기는 불 같은 강속구였다. 마이너리그 시절엔 최고 시속 101마일(약 163㎞)까지 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식 경기에서 기록한 최고 구속은 99마일(159㎞)로 집계됐다. 박찬호는 시즌 후반, 경기 막판에도 ‘악’ 하는 기합 소리를 내며 빠른 공을 뿌렸다.

당시 메이저리그 중계를 맡은 해설위원들은 박찬호의 포심패스트볼을 ‘라이징 패스트볼’이라고 표현했다. 공의 힘이 좋아 중력을 거스르며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공을 떠오르게 할 순 없다. 대신 빠른 회전 수의 공을 높은 코스로 던지면 다른 투수의 공보다 ‘덜 떨어지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여기에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커브를 섞으면 타자의 시각에서는 직구는 더 위력적이고 솟아오르는 것 같다.

박찬호가 20대 시절 포심패스트볼 다음으로 많이 던진 구종이 바로 파워커브였다. 당시 박찬호가 던진 커브는 웬만한 투수의 직구와 같은 빠르기인 시속 140㎞에 이르렀다. 2000년부터는 슬라이더와 커브의 중간 형태인 ‘슬러브’를 장착해 위력을 더했다.

열정의 朴, 냉정의 柳


▎류현진의 모교인 인천 동산고 주변에 조성된 ‘류현진 거리’. / 사진:연합뉴스
박찬호 이후에도 여러 명의 동양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대만 출신 왕첸밍(39)은 2007년 아시아인 단일 시즌 최다승인 19승을 올렸다. 마쓰자카 다이스케(39·일본)는 2008년 2점대 평균자책점(2.90)을 기록하며 18승3패를 거뒀다. 구로다 히로키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명문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에서 뛰며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다.

하지만 이들 중 박찬호처럼 타자들을 힘으로 압도한 투수는 없었다. 다저스 시절 박찬호는 ‘약물의 시대’에 거구의 타자들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펼치는 전형적인 ‘파워 피처’였다. 2001년엔 랜디 존슨에 이어 탈삼진 2위(218개)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박찬호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볼넷이다. 박찬호의 통산 볼넷/삼진 비율은 1.88이다. 가장 좋았던 2001년에도 2.40을 기록했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라고 보긴 어려운 수치다. 볼넷을 연발해 주자들을 내보낸 뒤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넘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류현진은 박찬호와는 대척점에 있다. 류현진의 직구는 빠르지 않다. 통계사이트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류현진의 2019시즌 포심패스트볼 평균 속도는 90.4마일(146㎞)이다.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118명 중 99위다. 최고 구속도 150㎞ 언저리에 머무른다. 팔꿈치와 어깨 수술을 받기 전엔 95마일(153㎞)짜리 공도 곧잘 던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컨디션이 나쁠 땐 1회 직구 구속이 140㎞대 초반에 머물 때도 있다.

대신 류현진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공을 던진다. 올해 류현진은 13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동안 볼넷 5개만 줬다. 커쇼가 “류현진은 자다가 일어나서 던져도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고 평할 정도다. 물론 단순히 컨트롤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빅리그 투수라면 누구나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능력은 있다.

다만 한가운데가 아닌 스트라이크존 가장자리를 활용하는 ‘커맨드’를 가졌느냐, 가지지 못했느냐에서 승부가 갈린다. 구위로 타자를 압도할 순 없지만 류현진은 필요할 때 자신이 원하는 코스로 정확하게 찔러넣는 능력이 있다. 득점권 피안타율 (0.037)이 바로 그 증거다.

류현진의 또 다른 장점은 배짱이다. 류현진은 올 시즌 다섯 가지 구종을 활용한다. 포심패스트볼, 투심패스트볼, 컷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다. 이 중 위험 부담이 가장 큰 구종은 가장 느린 커브다. 장타를 맞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직구를 기다리던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는 좋지만, 실투를 던졌다가는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구종별 가치에서도 커브만 유일하게 음수(-1.93)를 기록했다. 커브를 던졌을 때 1.93점 정도를 더 허용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류현진은 강타자를 상대로 주저하지 않고 커브를 던진다. 6월 11일 LA 에인절스전이 그랬다. 류현진은 1회 초 1사 뒤 마이크 트라웃을 상대했다. 트라웃은 아메리칸리그 MVP를 두 번이나 차지한 MLB 최고의 타자다.

그런 트라웃을 상대로 류현진은 초구 시속 124㎞짜리 커브를 던졌다. 커브로 상대가 타이밍을 잡는 데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다음 타자는 앨버트 푸홀스. 푸홀스는 통산 644개로 현역 최다 홈런의 강타자다. 류현진은 푸홀스에게도 또다시 초구로 커브를 던졌다.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투구 패턴이다.

류현진의 아버지 류재천씨는 어렸을 때부터 “볼넷을 줄 바에는 홈런을 맞으라”고 가르쳤다. 한화 시절 류현진을 지켜본 한용덕 한화 감독은 “나도 마운드 위에서 위축되지 않는 편이었지만, 류현진은 내가 본 투수 중 최고였다”며 “절대로 타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던지는 투수가 류현진이라는 뜻이다.

최근 해설가로 변신해 마이크를 잡은 김병현은 “박찬호는 던졌을 때 다들 조마조마하게 봤을 거 같다”며 “류현진은 개인적으로 볼 때 너무 편하게 던져 재미가 없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역시 메이저리거 출신인 김선우는 “박찬호는 힘 대 힘 대결이라 공 하나하나마다 조마조마 떨릴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류현진은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타자를 피하고, 느린 변화구로 타자를 공격한다”고 설명했다.

변화로 시련을 이겨내다


▎2011년 12월 일구회 야구대상 시상식에서 당시 한화 류현진과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찬호는 2002년부터 허리 부상으로 고전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파워로 타자를 억누르지 못했다. 대신 박찬호는 빅리그에서 살아남고자 새로운 구종을 가다듬었다. 바로 투심패스트볼이다. 다저스 시절에도 박찬호와 절친했던 오렐 허샤이저 코치는 박찬호에게 투심 그립을 전수했다. 무브먼트가 뛰어나 포심패스트볼을 구사했던 박찬호의 투심은 춤추는 듯 변화무쌍하게 홈플레이트를 통과했다.

2006년 WBC 당시 일본 언론들은 박찬호에게 ‘어떤 변화구를 던졌냐’고 질문했지만 박찬호는 “변화구가 아닌 투심”이라고 답했다. 박찬호는 은퇴 즈음엔 서클체인지업까지 장착해 선수 수명을 연장했다.

늘 ‘마이 페이스’인 류현진은 딱 한 번 큰 변화를 결정했다. 2015년 왼 어깨 부상 이후 이듬해 왼쪽 팔꿈치 수술까지 받은 뒤다. 한국에서 뛰던 시절 류현진의 별명은 ‘류뚱’이었다. 키 191㎝, 체중 116㎏의 비대한 체격 때문이었다. 예전엔 싫어했던 웨이트트레이닝은 물론 유산소운동까지 하면서 체지방률을 낮췄다.

그해 겨울 류현진의 훈련을 도왔던 국가대표 트레이너 출신 김용일 코치는 “예전에는 류현진이 재능과 감에 의존했다”며 “하지만 수술 뒤에는 하루 4시간씩 고된 운동을 묵묵히 소화했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류현진은 관절와순 수술 뒤 7%에 그친다는 MLB 복귀 확률을 뒤엎고, 건강하게 돌아왔다.

2001년 7월 11일,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인 세이프코필드. 72번째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의 주인공은 칼 립켄 주니어(59)였다. 당시 마흔한 살이었던 립켄은 역대 최다 연속 출전 기록(2632경기)을 세운 뒤 은퇴를 예고했다.

그리고 립켄은 0 대 0으로 맞선 3회 선두타자로 나왔다. 구장을 가득 메운 4만7364명의 팬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립켄은 초구를 때려 왼쪽 담장을 넘는 홈런을 만들어낸다. 1983년부터 19년 연속 올스타전에 나섰던 립켄은 이 홈런 한 방으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전 MVP까지 차지했다.

립켄의 화려한 피날레를 도운 조연이 박찬호였다. 박찬호는 전반기 8승 5패 평균자책점 2.80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올스타전에 나서는 영예를 누렸다. 랜디 존슨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가 첫 번째로 상대한 타자가 립켄이었다. 박찬호는 립켄을 상대로 초구 높은 직구를 던졌고, 립켄은 그대로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박찬호는 ‘서비스’ 차원에서 홈런을 맞아 준 게 아니냐는 질문에 “내 올스타전 첫 투구였다”며 웃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변이다. 어쨌든 박찬호는 이어진 이반 로드리게스-스즈키 이치로-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범타로 처리하고 이닝을 마무리했다. 립켄과는 달리 당대 최고 타자들과 최고 무대에서 정면승부를 펼쳐 이겼다.

메이저리그 7년 차를 맞는 류현진은 아직까지 ‘별들의 무대’에 선 적이 없다. 하지만 각종 지표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첫 출전이 기대된다. MLB 올스타전 출전 선수는 국내 리그와 달리 타자만 투표로 선발한다. 13명의 투수는 감독이 결정한다. 내셔널리그 올스타를 이끌 감독이 다름 아닌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다. 로버츠 감독은 이미 여러 차례 류현진의 선발등판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올스타전 선발 & 사이영상 가능할까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류현진이 박찬호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지금처럼 좋은 성적을 이어간다면 선발투수로 등판할 가능성도 있다. ESPN 등 미국 매체들은 류현진을 내셔널리그 선발투수 후보로 꼽고 있다. 정작 류현진은 “아직은 올스타전 이야기를 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을 올스타전 (선발투수로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투수 중에선 박찬호와 김병현(2002년)이 올스타 무대를 밟았지만, 선발투수로 나서진 못했다. 리그 최고 투수들이 함께 서는 경기에서 가장 먼저 나선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다.

일반적으로 선수들은 장기계약을 맺을 때 올스타전 출전 인센티브 조항을 넣기도 한다. 지난해 생애 첫 올스타로 뽑힌 추신수가 그랬다. 추신수는 계약서에 따라 10만 달러(약1억원)의 보너스를 받았고, 아메리칸리그가 승리하면서 승리수당(약 2만 달러)도 받았다. 하지만 류현진은 올스타전 관련 보너스 조항은 넣지 않았다. 올해 올스타전은 7월 10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다.

박찬호가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쳤지만 사이영상 투표에선 1표도 얻지 못했다. 양대 리그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은 정규시즌이 끝난 뒤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기자단 투표로 결정한다. 팀당 두 명씩 배정된 야구 전문 기자 60명(내셔널리그 30명, 아메리칸리그 30명)이 참여한다.

기자 한 명당 네 명의 선수에게 투표할 수 있는데 1위는 7점, 2~4위는 4-3-2-1점씩 수여한다. 이후 총점이 가장 높은 선수가 수상자로 결정된다. 아시아 선수로는 2006년 왕첸밍, 2013년 다르빗슈가 2위까지 오른 게 최고 기록이다.

투표는 사람이 하지만 대략적인 예상은 가능하다. ESPN은 투구 이닝, 평균자책점, 삼진, 팀 성적 등에 점수를 매겨 사이영상 예측 포인트를 발표한다. 6월 14일 현재 류현진은 106.2점을 얻어 내셔널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개인기록도 좋은 데다 다저스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면서 마이크 소로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81.1점), 잭 데이비스(밀워키 브루어스·79.5점) 등 2위 그룹을 크게 앞서고 있다.

2001시즌을 마친 박찬호는 FA 자격을 얻었다. 당시 박찬호의 대리인은 ‘악마의 에이전트’로 유명한 스코트 보라스였다. 박찬호는 다저스를 떠나 텍사스와 5년 총액 6500만 달러(770억원)에 계약했다. 당시 기준으론 역대 투수 2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계약이었다. 17년 동안 미국에서 박찬호가 벌어들인 돈은 8785만6945달러(계약금 포함)다. 무려 1000억원 가까운 거액을 벌어들인 것이다.

류현진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2013년 다저스와 6년 계약(3600만 달러, 약 425억원)을 맺은 류현진은 지난해 FA 자격을 얻었다. 다저스는 부상 경력을 감안해 다년 계약 대신 류현진에게 퀄리파잉 오퍼(QO)를 제시했고, 류현진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류현진은 연봉 1740만 달러(약 205억원)에 단년(單年) 계약을 맺게 됐다. 대신 올 시즌이 끝난 뒤 다시 한 번 FA로 풀린다.

올해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서 류현진의 몸값은 폭등하고 있다. CBS스포츠는 2020년 FA 랭킹을 매기면서 류현진을 5위로 평가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류현진이 이번 겨울 계약기간 3~4년, 연봉 2000만~2400만 달러(약 237억~284억원) 수준의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술 경력이 있어 5년 이상 장기 계약은 쉽지 않지만 박찬호의 역대 수입을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년 전 시세와 물가 등을 고려하면 몸값으로 박찬호를 뛰어넘었다고 보긴 어렵다. KBO리그에서 7시즌을 뛴 뒤 미국으로 건너가 30대가 된 뒤 처음 FA가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다.

그럼에도 넘기 어려운 대기록

류현진이 정말 뛰어넘기 어려운 박찬호의 업적은 바로 통산 승수다. 박찬호는 1997~2001년, 2005년까지 통산 6번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면서 100승 고지를 밟았다. 이후 허리와 장 출혈 등 부상에 시달린 박찬호는 선발과 불펜을 오갔다. 소속팀도 뉴욕 메츠-필라델피아 필리스-뉴욕 양키스 등 여러 차례 옮겼다. 그리고 2010년 10월 2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으로 통산 124승을 달성했다. 노모 히데오(일본)가 갖고 있던 동양인 최다승(123)을 뛰어넘은 것이다.

미국 생활을 마친 박찬호는 2011년 일본 오릭스를 거쳐 2012년 고향 팀 한화에 입단했다. 당시 류현진은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두 선수가 유일하게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시기다. 박찬호는 류현진에게 메이저리그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건네주며 “꼭 125승을 달성해야 한다”며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덕담을 해줬다. 류현진도 “내가 해야 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류현진은 미국 진출 이후 6시즌 동안 40승을 거뒀다. 데뷔 첫 2시즌 동안 각각 14승씩 올렸지만 부상 여파로 4년 동안은 12승에 머물렀다. 2015년은 단 1경기도 뛰지 못했고, 최근 세 시즌도 제대로 끝까지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지난겨울 김용일 트레이너를 미국으로 초빙하는 등 몸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덕분에 대퇴 내전근 부상으로 12일간 부상자 명단에 등록됐을 뿐 꾸준히 등판하고 있다. 다치지만 않는다면 올해 또는 내년쯤 60승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술적으로 류현진이 박찬호를 뛰어넘으려면 10~15승씩 5시즌 정도를 더 소화해야 한다. 쉽지 않은 숫자다. 내년이면 류현진의 나이는 만 33세가 되기 때문이다. 50세까지 현역으로 뛴 제이미 모이어를 롤모델로 삼았던 박찬호도 결국 37세에 빅리그 생활을 끝마쳤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박찬호의 124승은 메이저리그에 직행하지 않은 류현진에게는 도달하기 힘든 목표”라면서도 “올 시즌 류현진을 보면 제구력만으로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공은 빠르지 않더라도 지금의 능력을 5~6년 정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며 “현재 다저스처럼 야수들의 능력이 뛰어난 팀에서 뛴다면 전혀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라며 조심스럽게 기록 경신 가능성을 점쳤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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