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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입체분석] 파국으로 가는 한·일 갈등의 근원과 해법 

외교의 생명은 룰(rule) 골대를 옮기지 말라!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한·미·일 동맹 균열은 지역 리스크 고조시켜 경제 성장에도 찬물
정권 바뀔 때마다 합의 번복 관행 깨고 일관성으로 믿음 심어줘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6월 28일 오전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인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요즘에 말 잘 못 했다간 매국노로 찍히게 십상이어서…”

수도권의 한 대학 교수는 한·일 관계 해법에 관해 조언을 부탁하자 정색을 하며 말을 아꼈다. 국제문제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이슈가 있을 때 곧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기 의견을 내놓곤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저 혼자 욕먹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이게 학생들이 반발하고, 학교까지 영향을 미치니까… 지금처럼 악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선 어떤 말도 먹히지 않을 거예요. 청와대까지 나서서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다시피 하잖아요.” 그는 “총칼만 안 들었지, 전시 상태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대부분의 전문가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이름을 노출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거듭한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유독 일본 문제만큼은 이성이 작용하지 않는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가 전쟁 전야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이다. 청와대는 전시 벙커를 연상케 한다. 7월 15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어는 긴장을 고조시킨다. “결국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 전남 무안으로 내려간 경제투어 현장에선 “전남 주민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했다.

참모들은 앞다퉈 “결전” 의지를 국민에게 독려하고 있다. 이번 사안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조국 민정수석은 연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강경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파한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날(15일) 조 수석은 “이번 대통령님의 발언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하다”며 대통령의 발언 전문을 올렸다.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 나온 [죽창가]도 올렸다. 김남주 시인의 동명 시에 음을 붙인 민중가요다. 동학운동의 기치는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다. ‘일본과 서양세력을 배척하여 의병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를 외곽에서 지원하고 있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부의 준비 부족과 감정적 대응을 걱정하는 이들을 향해 “아베를 편드는 듯한 발언을 하는 분들”로 매도한다. “도쿄로 이사를 가시든가”라는 비아냥을 서슴지 않는다. 그를 따르는 이들의 ‘토착왜구’, ‘친일파’ 낙인찍기가 이어진다.

경제와 통상, 외교의 사령탑은 선동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 수석의 페이스북 활동을 두고 “우리 정부의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 표현”이라고 두둔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국에 없다.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HF, 에칭가스) 등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발동한 건 7월 4일이다. 강 장관은 일주일 뒤(10일)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떠났다. 외교부는 강 장관이 아프리카 현지에서 주재국들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에티오피아·가나·남아프리카공화국 3개국을 방문하고, 현지 주재 외교관들을 불러 모은 회의에서 당부한 것에 대한 의미 부여다.

죽창 들고 사지로 나서라는 정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12일 전남도청에서 열린 전남 블루이코노미 경제비전 선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관심은 일본의 의도 찾기에 쏠려 있다. 정부가 규정한 일본의 조치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경제 보복’이다. 문 대통령은 7월 10일 30대 그룹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상 프레임은 완성된 셈이다.

우리 정부가 말하는 ‘정치적 목적’이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의미한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본이 반발하긴 했지만, 외교 관계 파국을 감수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었다.

게다가 일본 정부도 개인 청구권은 완전히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주장은 아베 정권의 억지이거나 오해일 뿐이다. 일본 내에서 법적 근거를 갖춘 입장은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이다.

1991년 8월 야나이 순지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은 의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이 법적 의미에서 청구권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고노 다로 현재 일본 외무상도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의회에서 답변을 한 적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도 2007년에 내놓은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에서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우리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기능을 겸하는 사법부의 정점이다. 최종적인 법 해석의 권위를 갖는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강제징용 당시 자행된 강제 연행, 강제노동 등 반인권적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청구권 소멸 시효가 완성됐다는 일본 기업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일본 최고재판소의 해석이 우리 대법원의 해석과 다른 결정적인 부분은 ‘청구권’과 ‘소구권(訴求權)’을 분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구권은 보편적 권리지만, 소구권은 법적인 절차를 구해 보장받을 실효적 권리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따른 ‘청구권 포기’란 소구권, 즉 권리행사를 위해 재판을 구할 권리로 좁혀 해석했다. 피해자의 배상 요구에 대해 “채무자가 임의로 자발적인 대응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법리에 따라 법적으로 강제하진 않았지만, 개별 기업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피해 배상 노력을 기울이라고 주문했다. 일본 기업들도 최고재판소의 이런 판단을 존중해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 성의를 보였다.

“감정에 치우쳐 실리·명분 모두 놓쳐”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 사진:청와대
우리에게도 여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일본 정부의 처음 입장은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쪽이었다. 올해 1월에는 ‘외교적 협의’, 5월에는 중재위원회 개최를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 요구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6월에 우리 정부가 양국 기업이 출연한 재원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이른바 ‘1+1’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일본은 단 하루 만에 이를 거절하고 제3국 중재위 설치를 새 카드로 내밀었다.

우리 정부는 최근 양국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1+1+α’ 수정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이후의 일이다. 국제법에 밝은 한 중견 변호사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우리 정부의 오판과 실기(失期)도 한 원인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정치적 이유로 개인 청구권 소멸을 주장하는 아베 정권과 청구권의 실체는 인정하는 일본 정부·사법부 입장을 구분해 대응했어야 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우리가 맺은 한·일 청구권 협정은 중국과 일본이 맺은 조약에 비해 불리한 처지다. 중국은 개인 청구권이 포함된다는 명시 조항을 넣지 않았지만, 우리는 개인 청구권까지 포함시켰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채권이 모두 소멸됐다는 재산권조치법까지 만들었다. 우리 법으로 일본의 실질적 배상을 강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법원 판결로 명분과 역사적 정당성은 확보했으니 외교적으로 일본을 설득해 실리를 챙기는 현실 감각을 갖고 접근했다면 쉽게 풀렸을 문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일 간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방식에 있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한·일 협정에 개인의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세웠다. 이는 가까이는 지난 정부, 더 나아가 1965년 이래 50년 넘게 유지해온 한·일 청구권 협정에 관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의 변화를 뜻한다. 단순히 우리 정부가 공식 성명을 내는 것으로 바뀔 일이 아니다. 이른바 ‘65년 체제’를 뛰어넘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정립을 뜻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비판적 여론에 정부 여당 내에선 “을사늑약도 국가 간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는 소리와 다를 게 뭐냐”는 감정적 대응이 나온다. “불합리한 규정이 있다면 국가 간 약속이라도 바로잡는 게 정부의 책무”라는 반박이다.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 소명으로 삼고 있는 ‘적폐 청산’ ‘과거사 바로잡기’와 맥락이 연결된다.

그러나 국제 관계를 갱신하는 문제는 국내 법률 몇 가지 손보는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국제법과 관례를 따라야 하고, 상대방과 이해관계가 조율돼야 한다. 쌍방이 동시에 명분을 갖춰야 하는 윈-윈 게임이다. 설령 협상 테이블에서 합의가 이뤄졌더라도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밀한 논리를 갖고 차분히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히거나 명분이 있다는 우월의식이 구체제의 전환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2007년 12월 28일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맺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정부 간의 공식적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서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적폐 청산하듯 국가 간 약속 뒤집어 불신 자초


▎지난해 12월 26일 부산에서 열린 위안부 이슈 관련 집회 참가자들이 모형 노동자상을 일본영사관 맞은편 소녀상 옆으로 옮기고 있다.
합의가 이뤄진 지 불과 3년 만이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고작 6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이 합의에 따라 설립한 화해 치유재단 해산 작업에 돌입했다. 여성가족부는 한 달 뒤 재단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지난 7월 3일에 해산 등기가 완료됐다. 일본 정부가 낸 출연금 10억엔(100억원가량)의 처리 방안에 대해 외교부는 “일본 정부와 추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의 일방적 조치는 가뜩이나 수출 규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일본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관방부 부장관은 “한국 정부의 재단 해산 방침은 한·일간 합의에 비춰볼 때 심각한 문제”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는 과정에 서둘렀던 점이 있었다”고 전제한 뒤 “문재인 정부가 곧바로 해산을 결정한 것도 성급한 조치였다”고 지적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의 지적대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일 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국민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데 이보다 좋은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2006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1년 전만 해도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양국 정상이 ‘한·일 우정의 해’로 지정하는 등 우호적이었던 분위기가 급랭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를 두고 그해 지방선거를 의식한 여론 다지기란 해석이 나왔다. 지방선거 결과 광역단체장 16명 중 한나라당이 12명, 기초단체장은 67%에 이르는 155명을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서울과 6대 광역시 구청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전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광복절을 앞둔 2012년 8월 10일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최초였다. 취임 초부터 일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독도 방문은 여러 뒷말을 낳았다. 당시 MB정권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치인 18%로 레임덕이 가속화하고 있었다.

국내 정치 고비 때마다 한·일 관계 끌어들여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위안부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친중 외교를 강화하면서 일본과 경색 국면이 지속됐다. 주일 대사의 임기는 2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교체된 대사는 4명에 이르렀다. 우리 외교부에 일본 네트워크가 구축되기 어려운 사정이다. 중국이 지난 4월에 9년 만에 교체된 청융화(程永華) 전 주일 대사의 경우 일본에서 근무한 연수만 통산 25년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일본 때리기’가 베트남 하노이 북·미 회담이 결렬된 직후부터 본격화했다고 보고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하노이 담판 결렬 뒷전에 일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회담 결렬에 대해 전 세계에서 제일 좋아한 사람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였다”며 일본을 끌어냈다. 한 정치평론가의 분석이다.

“지지층을 결속하고 여론을 장악하려면 누구나 공감하고, 사회적 스트레스를 분출할 ‘공공의 적’ 내지 이벤트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적폐 집단이 그 역할을 했다. 적폐 청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남·북·미 정상회담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일본이 그 대상이다. 현 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의도도 한몫했겠지만, 적어도 현 정부가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내 정치에 한·일 관계를 이용하는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7월 21일은 우리의 국회의원 총선거에 해당하는 일본 참의원 선거일이다. 아베 총리가 속한 자민당은 외교안보 공약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자민당은 2012년 정권 복귀 이후 주요 선거 때마다 경제정책 핵심인 ‘아베노믹스’를 부각시켰다.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은 긍정적 여론(40%)보다 부정적 여론(47%)이 더 높은 상황이다. 박명희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7월 9일에 발행된 ‘의회외교 동향과 분석’ 제4호에서 아베 정권의 수출 규제 조치가 선거 국면에서 “소비세 인상과 연금 문제 등 국내적 쟁점을 희석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번 수출 규제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그동안 한·일 관계가 냉각기를 거칠 때마다 양국은 가급적 외교적 대응으로 문제를 다뤄왔다. 역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깊은 골이 있지만 서로 협력하며 공생해온 상호 의존 관계란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직후 일본은 광공업 생산량이 전쟁 개시 이전보다 30%, 농업 생산은 60% 감소했다. 일본 경제가 부흥의 발판을 마련한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미국의 병참기지로서 일본이 미군에 제공한 군사물품 규모만 25억 달러에 달했다. 이를 밑천 삼아 1956~1970년 사이 일본의 산업시설 투자 규모는 7배로 늘었고, 1969년에는 국민총생산(GNP)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도약했다.

한국전쟁 후 경제 개발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도움도 상당하다. 1965년 한·일 협정의 대가로 일본은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유상자금,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8억 달러 규모의 자금원조를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연간 수출액은 1억7000만 달러였다. 이 돈은 포항제철(현재 포스코)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쓰였다.

“무모한 원균 되지 말고 길게 내다보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서도 일본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담보하는 기본 틀은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미국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한쪽 편만 들을 수 없는 동북아 정책의 핵심 파트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워싱턴을 찾아간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에게 미국 정부 측이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이유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규제가 계속될 경우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했다. 일본이 보복성 무역 규제를 강화할 경우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일본과 무역 전쟁을 벌인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을까? 지표를 비교해보면 분명 위험한 접근방식이다.

경제 규모에서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격차는 크다. 세계은행과 한일경제협회 등에 따르면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일본이 4조9710억 달러인 반면, 우리는 1조6190억 달러로 3분의 1 수준이다. 1인당 GDP도 일본은 3만9286달러, 우리는 3만1362달러다. 외환보유고는 우리나라가 4037억 달러인데 반해 일본은 우리의 3배 규모인 1조2583억원이다. 대일본 수출의존도는 5.3%로, 지난해 대일본 무역으로 우리가 입은 적자는 241억달러에 이른다.

일본 금융기관이 한국 기업에 제공한 여신 규모는 지난해 9월 기준 586억 달러에 달한다. 여신을 제한할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수출 규제 조치가 장기화하면 최악의 경우 GDP가 8.5%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자세를 굽히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협상 테이블에선 당당하되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살펴 전략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게 취재 중 만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전문가는 “한국민의 격앙된 감정의 근원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 정부도 자신들의 법원 판결을 존중해 자국 기업들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독려하고, 이를 양국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경제전문가는 문재인 정부에 “일희일비를 경계하고 미래를 내다보라”고 조언했다. “아베 총리는 12년 동안 총리를 지낸 노련한 정치인이다. 그와 정치적 능력을 두고 다투는 건 의미가 없다. 2021년이면 아베의 임기도 끝난다. 이후를 내다봐야 한다. 지금 전면전에 나서는 건 심정적으로는 12척을 거느린 이순신 장군의 결연한 의지일지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사지(死地)로 뛰어드는 무모한 원균을 떠올리게 한다.”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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