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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말하는 홍콩의 미래 

“홍콩 잃고 싶지 않다면 자치권 보장하라” 

‘중국화’ 노력에도 홍콩에서 가장 반중(反中)의식이 강한 세대로 성장한 20대들
“중국 테두리 안에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암흑’과도 같아”


▎홍콩 도시의 화려한 건물들 사이를 시위대가 가득 메우고 있다.
지난해 홍콩 정부는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서 홍콩이 범죄인의 도피처가 되는 허점을 막아야 한다”며 ‘범죄인 송환법’ 추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는 이는 홍콩의 ‘미래 세대’인 20대 청년들이었다.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 행진의 향연을 펼치는 그들은 스스로를 “블랙 세대(black generation)”라 칭한다.

중국의 품에 안긴 오늘날의 홍콩은 과거 경제적 풍요와 정치·사회적 자유를 마음껏 누렸던 그 시절의 홍콩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나마 홍콩 도시를 가득 메운 화려한 마천루들은 지금 청년들이 감히 꿈꿀 수 없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경제 쇠퇴에 대한 걱정에 더해 이들은 홍콩이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지난 6월 마침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기로에 선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이 원하는 홍콩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들의 행진은 어디서 멈출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자 시위대의 리더 조슈아 웡(黃之鋒, 23)을 포함해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홍콩 대학생 2명(웡 홍·25, 존 렁·22)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슈아 웡은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지도자이자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의 주역으로 홍콩 청년들에게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시위대의 최전방에서 ‘Save HongKong(홍콩을 구하라)’을 외치는 그는 감동적인 연설로 시위대의 사기를 북돋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으로 불러 달라”


▎조슈아 웡(黃之鋒,왼쪽 둘째)이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조슈아 웡과 함께 인터뷰에 응해준 웡 홍(25)은 홍콩중문대(CHUK)에서 화경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졸업반 학생이다. 마지막 인터뷰이 존 렁(22)는 홍콩시티대학교(CityU HK) 3학년에 재학 중이며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홍콩의 이른바 최고 명문대를 다니는 이들도 홍콩의 현실 앞에 자신들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말한다. 생김새는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홍콩 ‘민주화’라는 똑같은 염원을 품고 거리로 나섰다.

한국을 보며 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됐다는 이들이 꿈꾸는 홍콩의 미래상, 청년의 희망을 7월 초 전화와 전자메일을 통해 들어봤다.

현재 홍콩 시위 진압 과정에서 부상자가 나온다고 들었다. 시위 현장의 상황은 어떤가?

“경찰이 홍콩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고 있다. 그들은 시위대의 다리 쪽이 아닌 머리 쪽을 쏘고 있으며, 우리는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 경찰은 현재 의도적인 과잉진압을 하고 있다.” _조슈아 웡

“경찰은 무력 진압을 통해 많은 부상자를 냈다. 하지만 부상자 수가 제대로 발표되지 않았다. 부상자들이 경찰에 신분이 노출될 수 있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르고 병원을 갔던 부상자들은 경찰이 마치 미리 소식을 들은 것처럼 곧바로 연행해갔다. 어느 입법회 의원의 지적처럼, 환자 자료 열람은 특정 요건에 부합해야 함에도, 경찰이 병원 전단 시스템을 뒤져 시위자의 신분을 알아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는 의료관리국이 경찰에 불법적으로 환자 정보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_웡 홍

반환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 젊은이들에게 ‘중국 중심주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주입해 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홍콩의 1020 세대는 반중(反中) 의식이 가장 강한 세대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인터넷에서 중국과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중국의 통치를 받는 우리는 그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미래에도 지금과 같이 정보를 마음껏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는 적지 않은 회의가 든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 더 깊숙이 관여한다면, 우리가 중국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통로가 막힐 것이다.” _웡 홍

“언론과 SNS를 통해 우리는 중국과 홍콩이 전혀 다른 국가임을 강하게 느낀다. 우리는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다.” _존 렁

단순한 목적의 시위가 아닌 것 같다. 무엇을 위해 거리로 나왔는가?

“우리는 시위를 통해 5대 요구사항을 주장한다. ▷범죄자 송환법 전면 철회 ▷시위대를 폭동이라고 규정한 정부의 공식 입장을 철회 ▷시위대 전원 석방 및 입건 취하 ▷권력을 남용하는 경찰 문책 ▷캐리람 퇴진이 그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홍콩의 진정한 자치권을 통한 민주주의 실현을 원한다. 그래야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홍콩 시민 모두가 1인 1 투표를 실현해서 홍콩 정부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캐리람 행정관은 베이징의 꼭두각시일 뿐이다.”_조슈아 웡

“이번 시위를 중지하려면, 홍콩은 중·영 공동성명의 내용과 홍콩 기본법에 의한 고도의 자치를 중국으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홍콩이라는 국제금융 도시를 끝내 잃게 될 것이다.” _웡 홍

“희망 보이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다”


▎시위대가 철제 상자를 이용해 홍콩 입법원 입구 유리창을 부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홍콩에 이민 온 중국인이 많다고 들었다. 향후 그들과 공존도 큰 숙제일 것 같은데.

“원래 홍콩인들은 중국 이민자에 대해 그리 큰 반감을 갖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이민자와 홍콩 시민들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자원’을 두고 벌이는 경쟁 때문이다. 매일 150명의 중국인이 홍콩 거주권을 획득하고 있다. 하루에 150명이라는 숫자는 그들의 자식들도 고려해봤을 때,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들의 유입은 홍콩 인구 구조에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미 홍콩 사람들은 중국인들에게 자원을 많이 잃었다. 특히 홍콩의 토지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어 주택 가격이 정상적인 시민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 많은 서민이 공공 주택에 크게 의존해 왔지만, 이제는 그것조차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거주증을 가지고 온 중국인들로 인해 의료 공급 시스템에도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홍콩인들은 주로 공영병원을 이용했는데, 현재 공영병원의 인력 공급 또한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_웡 홍

홍콩 청년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실상은 무엇일까?

“홍콩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와 취업 기회, 그리고 국민으로서의 대우를 잃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이번 시위가 실패한다면 홍콩 정부는 주체적인 통제력을 상실하고, 중국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정말 두렵다.” _존 렁

“범죄자 송환법을 시작으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 표현의 자유는 국민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다. 정부의 통치모델에 문제가 생기면 국민은 비판과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발언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민주주의 국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가의 중심은 국민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_웡 홍

앞으로 10년 후의 자신을 어떻게 그리는가. 낙관적인가 아니면 비관적인가?

“20대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본다. 생활비 지출은 엄청난데도, 생활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수입은 줄어들고, 노동 시간은 길어지며, 정부는 관리능력을 상실해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충만하지 않다. 영원히 중국의 테두리 안을 못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크다.” _존 렁

홍콩 중문대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중 51%가 해외 이주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적은 숫자가 아닌데…. 정말로 홍콩을 떠나고 싶은가?

“맞다. 대부분의 홍콩 젊은이들은 이민을 가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대량이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민 문턱이 매우 높고, 최근 난민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가 우리를 쉽게 받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이민을 하려면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홍콩의 청년들은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_존 렁

“한국 민주주의 본받고 싶어”


▎1. 홍콩 중문 대학교(CHUK) 환경과학과 졸업반 학생 웡 홍. / 2. 홍콩시티 대학교(CityU HK) 전자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존 렁. / 사진:웡 홍, 존 렁
사회주의 중국과 민주주의 홍콩의 궁극적 동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반환 이후 시진핑 주석의 정책들이 홍콩과 중국의 평화로운 공존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억압 아래서도 우리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_조슈아 웡

일부 한국 언론에서는 홍콩 청년들이 한국의 촛불 혁명을 본받아 민주주의 항쟁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는데…. 한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촛불 혁명을 잘 알고 있다. 특정한 목표를 이루고자 국민이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내가 더 주목했던 부분은 23주간의 집회가 대부분 평화롭게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목소리가 정부에 충분히 전달됐다는 사실이다. 홍콩도 한국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원한다.” _조슈아 웡

“한국의 민주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80년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개선하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생활의 질을 개선했고, 전제 통치를 통해 행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절대권력은 직권남용과 부패를 조장했다. 그 이후로 한국은 대통령 친인척에 의한 부정부패나 정경유착을 막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촛불 혁명을 통해 최근에는 비교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정부의 운영이 투명해지고, 국민의 목소리가 의정활동에 반영되면서 주권재민이 구현되고 있다고 본다.” _존 렁

한국도 공산주의라는 북한과 분단된 채 함께 살고 있다. 두 체재 간 절충의 미학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홍콩은 중국 지배에 있는 입장이다. 남한과 북한은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의 예와 완벽하게 비유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북한은 스스로 인권보장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려는 노력(continue opposing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이 필요하고 남한도 있는 힘껏 이것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홍콩과 같은, 아니 더 심한 혼란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 주민이 인권을 쟁취하는 필연적인 과정일 것이다.” _조슈아 웡

끝으로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게 바라는 것이 있나?

“아시아권 나라들이 우리에게 힘을 좀 더 보태줬으면 좋겠다. 한국에도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한국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잘 알려졌지만, 여전히 홍콩 사태에 대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고 느낀다. 더불어 한국의 대중들도 홍콩사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의 소망을 품고 그 중요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_조슈아 웡

-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lake806@naver.com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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