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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위기 땐 다리까지 자르는 ‘둔갑의 귀재’ 문어 

 

몸 모양·색깔 순식간에 바꾸는 ‘바다의 카멜레온’
무척추동물 중 몸집 대비 뇌 가장 크고 지능 높아


▎문어는 부화 기간(5개월) 동안 지극정성으로 알을 보살피고 죽음을 맞이한다.
'여덟 가랑이 대문어(大文魚)같이 멀끔하다’란 말은 무엇이 미끈미끈하고 번지르르하거나 생김새가 훤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제 패거리끼리 서로 헐뜯고 비방하거나 자기의 밑천·재산을 차츰차츰 까먹음을 ‘문어 제 다리 뜯어먹는 격’이라 비유하고, 사업을 여러 갈래로 확장하는 것을 두고 ‘문어발식 경영’이라 한다.

그리고 ‘문어(文魚)’란 ‘글을 쓰는 고기’라는 뜻이나 문어가 글을 쓴다는 게 아니고 문어먹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먹물을 먹다’라는 말은 책을 읽어 글공부함을 의미하니 ‘먹물(잉크)’하면 배움이 많은 사람이나 글을 잘 쓰는 이를 이르는 말이 아닌가.

아무튼 문어 머리(실제론 몸통)에 먹물이 들었으니 그 동물은 글도 할 것이라 해 ‘문어’라 불렀을 것이다. 알다시피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점쟁이 문어’가 큰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의 별명이 ‘문어 영표’가 된 까닭을 알 것이다.

문어(octopus)는 두족류(頭足類, cephalopod)라 부른다. 괴이하게 머리에 발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통이 둥그스름하게 사람 머리를 닮았다 해 흔히 ‘문어 머리’라 부르는데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먹통(ink sac) 따위의 내장이 든 몸통이다. 문어는 몸통 다음에 머리가 있고, 거기에 여덟 개의 다리가 따라붙었다. 몸통·머리·발(다리)의 순서로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참 이상야릇한 몸(구조)이다.

문어(Enteroctopus dofleini )는 문어과(文魚科)에 속한 추운 바다에 나는 연체동물(軟體動物)로 몸무게가 10㎏ 이상의 것을 대문어(大文魚) 또는 대왕문어(大王文魚)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태껏 잡힌 것 중에서 가장 큰 놈은 50㎏으로 우리 집사람의 체중과 맞먹고, 벌린 팔(다리) 길이는 발끝까지 4.5m가 넘는다. 그놈들은 강원도 동해 어로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있는, 매년 4~12월에 고성 지역 어민들에게 한시적으로 개방되는 저도 어장에서 주로 잡힌다.

그런데 두족류 중에서 문어·주꾸미·낙지는 다리(팔)가 여덟인 팔완류(八腕類, octopus)이고, 오징어·갑오징어·꼴뚜기들은 10개인 십완류(十腕類, decapod)이다. 문어는 주로 암초지대에 살고, 뼈가 없는 말랑말랑한 몸을 가진 연체동물이라 몸을 유연하게 비틀고 오그려 좁은 틈새에도 잘 기어든다. 또한 날카로운 키틴(chitin)질의 날카로운 부리가 팔의 중앙부에 있다.

문어는 환경에 따라 체색을 잘 바꾸기에 ‘바다의 카멜레온(sea chameleon)’이라 불린다. 몸 빛깔이 대체적으로 적갈색 또는 회색이다. 살갗의 색소 세포에는 노랑·빨강·갈색·귤색·흑색 등의 색소가 있어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붉으락푸르락 제 맘대로 체색을 바꾼다. 또한 근육을 자유자재로 또르르 말거나 주르르 펴서 가시돌기나 해초, 울툭불툭한 바위 모양도 만들어낸다. 너부시 엎드려 다른 바다 동물이 모두 무서워하는 바다뱀이나 장어흉내를 내기도 한다.

은신처 찾는 본성 이용해 항아리로 포획

주로 물고기나 새우게(갑각류), 고둥이나 조개(패류)를 먹는데 먹이를 잡으면 집으로 가져가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집 앞에는 까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잔뜩 널려 있다. 그런가하면 사람·물고기·새·물개·상어·고래와 같은 포식자(捕食者)의 먹잇감이다.

이들은 쭉 뻗은 깔때기(funnel)를 통해 내뿜는 물의 분사 운동으로 헤엄친다. 위장(僞裝)해 몸을 숨기고 경계색(警戒色)으로 겁주며, 죽는 시늉도 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검은 색소인 멜라닌(melanin) 먹물을 뿜어버려 천적의 후각 기능을 마비시킨다. 오도가도 못 할 지경이 되면 제 다리를 스스로 잘라버리고(자절, 自切) 내빼기도 한다.

문어는 무척추동물 중에 지능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고, 신경도 1㎜나 되어 신경생리학(神經生理學) 실험에 단골로 쓰인다. 다른 물체에 쩍쩍 달라붙는 문어발의 빨판(suction cup)을 모방해 주방기구인 흡착걸이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문어는 몸집 대비 뇌 크기가 무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크다. 즉, 뇌가 엄청 커서 기억력이 좋고, 따라서 눈도 아주 크게 발달해 척추동물인 어류의 것과 비슷하다. 두족류는 종류에 따라 눈동자의 모양이 다르다. 가령 문어는 직사각형인 반면 갑오징어는 W자형이고 오징어는 둥글다.

문어 몸은 좌우대칭이고, 다리 사이에 질긴 막이 있으며, 오른쪽 셋째 다리를 짝짓기에 쓰니 그 끝에다 정자를 모운 덩어리(정포, 精包)를 얹어 암컷의 몸 안에 넣어준다. 수컷은 교접(교미)하고 얼마 뒤에 죽지만 암컷은 40일 후 1만여 개의 수정란을 바위 밑에 달라 붙인다. 그 뒤 암컷 어미는 부화할 때까지 5개월 동안 곁을 지킨다. 특히 기다란 발을 설렁설렁 흔들어 산소가 많은 물을 흘려주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문어의 끔찍한 모성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렇게 오래 보살피기를 하다 보면 지칠 대로 지친 어미는 눈까지 거슴츠레해지고 알의 부화와 동시에 시나브로 죽고 만다.

문어잡이는 주로 통발로 하지만 ‘문어항아리’를 쓰니 이는 문어가 은신처를 찾는 본성을 이용한 것이다. 바다 깊게 항아리(요새는 튼튼한 플라스틱 재질의 항아리를 사용함)를 내려 1~2일을 둔 후 끌어 올린다. 물고기들은 항아리가 움직이면 도망치지만 문어는 그럴수록 옹송그리고 벽에 찰싹 붙으니 항아리에 들었다면 백발백중으로 잡힌다. 그런데 단지가 아무리 커도 딴 놈은 얼씬도 못 하게 하는 탓에 딱 한 마리씩만 들어있다.

문어를 살짝 데쳐 어슷썰기로 삐져, 하얗고 넓적한 살점을 초고추장이나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 문어숙회(文魚熟膾)는 그야말로 별미다. 그것 말고도 문어요리에는 죽·초무침·연포탕·문어초밥 등 다양하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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