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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두 개의 이념으로 쪼개질 나라, 일본 

일본 정치의 미래는 극우와 극좌에 의한 포퓰리즘 

선진국의 1인1표 선거 제도가 분노 부추기는 선동주의 자양분 기능
일본 정치인들 민족주의 부추켜 국내 정치의 한계 감추려 해


▎7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루게릭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레이와신센구미 소속)가 국회에 진출하게 됐다. / 사진:연합뉴스
8월 1일부터 5일까지 열린 임시 국회에서는 지금껏 보지 못한 이색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번 임시 국회의 주역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도, 에다노 유키오 대표가 이끄는 입헌민주당도 아닌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이하 N국당)과 ‘레이와신센구미’(이하 레이와)였다.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온 듯한 심정입니다. 격투기 선수가 링에 오른 심경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N국당 대표의 8월 1일의 첫 등원 소감은 감격에 벅차 있었다. 그리고 국회 의사당 앞에서 10차례 이상, 선거운동 내내 그가 수없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쥔 오른손을 들어 보이는 포즈를 취했다.

“NHK를 때려 부수자!”

한편 레이와의 두 초선 의원, 중증 장애인인 후나고 야스히코 의원과 기무라 에이코 의원도 항상 많은 카메라에 둘러싸이는 등 뚜렷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첫 등원 소감을 물었을 때 기무라 의원의 답변도 이어졌다. “천장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기무라 의원은 침대 같은 거대한 휠체어를 이용해서 똑바로 누운 채 이동하기 때문에 그가 보는 것은 언제나 천장이다. 참고로 나는 30년째 일본 국회를 출입하고 있지만, 천장을 바라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5일 간의 일본 국회 모습을 바라보면서, 현재 유럽과 미국 정계에서 몰아치고 있는 선풍이 마침내 일본에도 상륙한 것임을 실감했다. 그것은 극우와 극좌의 대두이다.

극우란 N국당이고, 극좌란 전직 참의원이자 배우 출신인 야마모토 다로가 이끄는 레이와이다. 이들 이색 신당은 가까운 미래에 일본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꿔 버릴 만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 같다.

N국당을 ‘극우’라고 부르는 것은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를 격투기 선수라고 진단하고 있는 다치바나의 상대는 현재는 NHK뿐이지만, ‘때려 부수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향후 N국당이 극우 정당으로서 성장할지 어떨지를 우리는 주시해야 할 것이다.

유럽 정치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 정치학자 마스조에 요이치(전 도쿄도 지사)가 얼마 전 [히틀러의 정체](쇼가쿠칸 신서)라고 하는 흥미로운 저서를 출판했다. 왜 지금 히틀러인가 하는 것에 대해 마스조에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에서도, 트럼프 선풍, 이민이나 난민을 배척하는 극우 정당의 대두, 영국의 EU로부터의 이탈 등 포퓰리즘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중략) 히틀러는 현재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반복되겠지만 나는 이 N국당과 레이와 붐은 결코 일과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2년여 뒤에 치러지게 될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의 약진을 하면서 일본을 뒤흔들 가능성이 작지 않다.

‘3개의 불균형’ 부른 미국 글로벌리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 4일 후쿠시마시에서 참의원 선거 첫 유세에 나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는 N국당과 레이와의 주장이 현재의 세계 정치의 조류와 매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20세기 후반을 통해 전 세계로 전개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 측이 승리로 끝났다.

승자가 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오는 21세기는 계속해서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실제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아메리칸 스탠더드에 기초한 글로벌리즘을 전 세계에 전파해 나갔다. 예를 들자면, 조지 W 부시 Jr. 정권은 ‘중동의 민주화’를 위해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다.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에도 시장경제를 뿌리내리려 했다.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의 경찰국’인 미국에 대항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앞으로 최대의 적은 국가가 아니라 알카에다 등의 테러집단이라고 규정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미국식의 글로벌리즘이 온 세상에 침투해 감에 따라, 예상치 못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은 글로벌리즘의 부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글로벌리즘이 불균형적으로 전파됐기 때문에 각국 사회에 다양한 격차를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불균형은 주로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자본(돈)이 인재(사람)와 자원(물건), 기술(서비스)보다 먼저 침투해 버린 것이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미국이 거액의 자본을 투자해 각국 도시 번화가에 차례로 스타벅스가 들어서면서 주변의 작은 찻집들을 무너뜨리는 식이다. 일본에서 한때 화제를 모았던 ‘하게타카 펀드(외자계 사모펀드)’의 도래도 그중 하나로, 이로 인해 일본 금융기관은 도태돼 갔다.

둘째, 경제 분야에서 글로벌리즘이 정치 분야와 군사 분야에서의 글로벌리즘보다 먼저 침투해 버렸다. 즉, 경제적으로는 미국 방식을 받아들이지만, 정치적 및 군사적으로는 그 나라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는 나라가 수없이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1992년 제14차 공산당 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채용하고 이듬해 헌법을 개정하여 “국가는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실행한다”(제15조)고 명시했다. 이는 정치는 구 소련식 사회주의를 견지하지만, 경제는 미국식 시장경제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같은 시기에 상하이와 선전에 증권거래소를 개설해 국유기업을 상장시키기도 했다.

셋째, 지역 글로벌리즘의 불균형 확산이다. 미국발 글로벌리즘은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골고루 침투하면서 동시에 개발도상국에도 확산됐다. 이때 아시아 지역에서 큰 폭의 확대를 보였지만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등 기타 지역에서는 뒤처졌다. 덧붙여 말하자면, 같은 아시아 지역이라고 해도, 중국에서는 급속히 진행되었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진행이 더뎠다.

이러한 ‘3개의 불균형’의 결과,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리즘은 21세기 초에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세계를 이끌어버린 것이다.

극우와 극좌의 득세는 미·일 닮은꼴


▎일본 참의원 선거일인 7월 21일 한 유권자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쓴 채 후쿠오카시(市) 투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것은 개발도상국 세계에 있어서는 중국의 대두였다. 중국은 미국이 뿌린 글로벌리즘이라는 먹이를 먹고, ‘거대한 용’으로 성장해 갔다고도 말할 수 있다.

미국은 지금에 와서 화웨이를 무너뜨려 중국의 부상을 막으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소련을 무너뜨린 직후 중국을 작정하고 무너뜨렸다면 지금과 같은 거대한 용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성공이라고 하는 ‘3개의 산’을 거치면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그 경제 규모는 이제 미국의 3분의 2까지 추격해 오고 있다.

그런 중국은 2013년에 시진핑 시대에 들어가면서 ‘체격에 맞는 역할’을 세계에서 찾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그해에 시 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 즉 중국과 유럽을 육로로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해로로 연결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구축이다.

시진핑이 이끄는 신시대의 중국은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먼저 패권을 내세우려 했다. 2015년 말에는 ‘일대일로’를 보완하듯,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를 베이징에 설립했다.

한편, 미국이 아메리칸 스탠더드라는 글로벌리즘을 세계에 침투시키려 함에 따라 선진국 측, 즉 미국 자신과 유럽 사회도 ‘변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국내 불균형이 사회적 격차를 키웠고, 그 결과 ‘경제 양극화’와 정치 사극화‘를 낳았던 것이다.

‘경제 양극화’는 20세기의 산물이었다. 중산층이 감소하고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못 가진 자로 분화한 것이다. 그것은 몇 년 전에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파리 경제대학의 피케티 교수의 ‘피케티 이론’에서 자세하게 설명된다. 즉, 시대의 변천과 함께 사회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사극화’는 20세기 후반에 주류였던 ‘정치적 양극화’를 대신하는 것이다. 미소 냉전 하의 20세기 후반 서방 사회는 중도 우파 정당과 중도 좌파 정당이 쌍두마차로 정치를 주도하고 있었다. 미국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영국에는 보수당과 노동당, 독일은 기민당과 SPD(사회민주당), 프랑스는 다소 복잡하지만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 블록과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블록이다. 각국은 종종 정권교체는 있었지만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의 쌍두마차 체제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덧붙여서 일본도 중도우파인 자민당과 중도좌파인 사회당이 주도하는 시대가 길었다.

그런데 21세기가 되어 구미에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파고들어 사회의 불균형과 격차가 커지면서 기존의 쌍두마차 체제에서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중도우파에서 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극우파가 파생되었고, 중도좌파에서도 역시 더 극단적 주장을 하는 극좌파가 파생되었다.

극우 정당과 극좌 정당은 초기에는 약소정당이라 할 만큼 보잘것없는 존재였으나, 사회 격차가 심화하면서 각국에서 승승장구했다.

미국에서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통적인 공화당 후보자들은 모두 주춤했다. 또 전통적인 민주당 대변인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민주당 대표 후보로 선출됐지만 역시 주춤했다.

이들을 대신해 부상한 것은 공화당 내의 극우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창하는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내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공언하는 극좌의 버니 샌더스 후보였다.

지금 미국에서는 내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만약 재선된다면 극우 정권이 계속될 것이고, 재선되지 않으면 민주당에서 나온 극좌 후보가 새로 대통령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공화당에서 차차기를 노리고 있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품페이오 국무장관 등도 어엿한 극우 정치인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추세가 당분간 계속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독·프·이탈리아를 거쳐 일본을 강타할 극단주의


▎아베 일본 총리는 참의원 선거 하루 뒤인 7월 22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청구권 협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극우와 극좌의 부상이 현저하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7월 24일 ‘영국의 트럼프’라 불리는 보리스 존슨 전 외상이자 전 런던 시장이 총리로 올라앉았다. EU에서 합의 없는 이탈을 외치는 존슨 총리의 모습은 트럼프 대통령과 판박이다. 원래 존슨이브렉시트(EU 이탈)를 주장한 것은 이민 배척을 요구하기 때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신조와 겹친다.

독일에서는 2017년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CDU/CSU 연합이 311석에서 246석으로 후퇴하고, 연립 내각을 구성한 중도 좌파 SPD도 193석에서 153의석으로 위축됐다.

반대로 눈부신 약진을 보인 정당은 이민 배척 등을 호소하는 극우 정당인 독일 대안당(AfD)으로, 무려 제로(0)석에서 94석으로 의석수를 늘려 원내 제3당에 올랐다. 히틀러의 나치당을 배출한 독일에서는 오랫동안 상상도 못했던 현상이다. 한편, 좌파당도 64석에서 69석으로, 녹색당도 63석에서 67석으로 의석을 불렸다.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4월에 열린 1차 투표에서 1위가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의 에마뉴엘 마크롱(24.0%), 2위가 극우 정당인 국민 전선의 마린 르펜(21.3%), 3위가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20.0%), 4위가 극좌파의 장 뤽메랑(19.6%)이었다. 이렇듯 극우와 극좌가 전통적인 공화당계 후보와 거의 나란히 선 것이다.

그 결과 극우 인사인 마린 르펜 후보가 그해 5월에 벌어진 결선 투표에 남았다고 하는, 몇 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결선 투표에서는 마크롱이 66.1%를 얻어 33.9%에 그친 르펜을 여유있게 제쳤지만 차기 2022년 대통령 선거에는 르펜 대통령의 탄생이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해 3월에 열린 총선에서 하원의 제1당인 극좌 성향의 오성운동이 109석에서 227석으로, 제2당인 극우동맹은 18석에서 126석으로 각각 대도약을 했다. 그 결과 양당의 당대표인 마테오 살비니와 루이지 디마시오가 공동 부총리가 됐고, 중도 성향의 피렌체대 법대 교수인 주세페 콘테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당연히 극우와 극좌의 연립정권은 파국을 맞이했고, 조기총선 체제로 돌입하면서 극우파인 살비니 총리가 탄생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이처럼 유럽과 미국에서는 극우파가 가장 현저하게 대두하고, 그 다음으로 극좌가 대두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은 언제 이런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을 모은다. 나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7월 21일의 참의원 선거를 주시하고 있었다.

결국 늦었지만 일본에서도 모두에서 언급한 대로, 극우와 극좌의 선풍이 불기 시작했다. N국당과 레이와의 약진이다.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N국당은 1석을, 레이와는 2석을 겨우 획득했을 뿐이다. 하지만 N국당의 다치바나 다카시 대표는 7월 29일 북방 영토 문제로 일본유신회에서 제명된 마루야마 호타카 의원을 영입했고, 다음날인 30일에는 와타나베 요시미 참의원 의원(전 행정개혁담당상, 모두의 당 전 대표)과 함께 참의원 내의 ‘통일회파’(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 내에서 ‘증식’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다치바나 대표는 “NHK를 쓰러뜨리겠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는데, 그의 정견방송과 회견, 유튜브에서의 주장을 들어보면 NHK는 그가 쓰러뜨리겠다는 첫 상대이다. 본의 아니게 NHK에서 해고된 개인감정도 함께 들어 있기에 NHK 타도를 유일한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즉 다치바나 대표에게 NHK는 기존 권위·권력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NHK 타도를 유일한 공약으로 내세운 정당


▎1. 극단주의 정치 시대를 연 트럼프 미국 대통령. / 2. 영국 집권 보수당 대표 겸 총리로 선출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 3.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표.
만일 다치바나씨의 주장이 달성돼 NHK 수신료가 스크램블 방식(수신료를 내는 세대만 NHK 방송을 보도록 하는 방식)에 의해서 지불되는 시스템이 된다고 하자. N국당의 공약은 이것 하나뿐이니 이 정당은 소멸돼야 하는가?

이 경우 다치바나씨는 “N는 NHK인 동시에 Nation(국가)이다”라든지 “N국당은 Net세대를 대표하는 당이라는 의미” 등으로 말을 바꾸고 “지금의 일본 체제를 때려부수자!”라고 외칠 가능성은 없을까. 어쩌면 다치바나씨는 르펜, 살비니 같은 유럽의 극우 정당 지도자들과 제휴해 갈지도 모른다.

다치바나 대표는 당선 이후에도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8월 8일에는 국회 내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과거에 NHK직원으로 근무했을 때 NHK가 국회의원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 티켓을 뿌렸다고 폭로했다.

기자 회견을 마친 다치바나 대표는 도쿄 시부야의 NHK 본사로 향했다. 국회 의원회관에 NHK 설치를 신청하면서 수신료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NHK에 대한 이만한 도발은 없다. 앞으로도 이런 퍼포먼스를 거듭하며 자신의 주장을 유튜브로 확산시켜 사회 불만층을 파고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레이와’도 불과 2석을 차지했을 뿐이며, 더구나 두 의원 모두 중증의 장애인이기 때문에 눈에 띄는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의 중의원 선거를 향해 야마모토 다로 대표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8월 1일 밤 야마모토 대표는 도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오가는 신주쿠 역에서 연설을 했다. 이날의 주요 이슈는 다음날로 예정된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이었다. 야마모토 대표는 입추의 여지도 없이 모인 청중을 앞에 두고 절규했다. 한국에 관한 언급이기 때문에 좀 길더라도 강연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한·일 관계가 악화돼서 좋아할 사람은 누구냐는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아시아 나라들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는 분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있는 거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국가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같은 동네에 골칫거리인 사람이 있다면 ‘참을 수 없다’며 이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나라의 위치는 움직일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잘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깔보는 걸 참을 수 없다’ ‘부셔버려!’라고 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생각은 그만두자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도 잘 지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이득입니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총액은 6조 엔입니다. 이 6조 엔이 사라져도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말하세요. 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보다 6조 엔이라는 이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며 자기들이 하는 정치의 문제점에 연막을 치는 일, 국내 정치의 한계를 내셔널리즘을 사용해 감추려 하는 정치. 바로 지금이 아닌가요? 잘 지낼 수밖에 없잖아요? 이익이 6조 엔이나 된다구요.

중국은 (이익이) 얼마나 될까요? 일본은 중국에도 총 14조8879억 엔을 수출합니다. 물론 중국에서도 (물건이) 들어옵니다. 이렇게 큰 거래가 있다는 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죠.

“한국 죽어라 외쳐도 한국은 죽지 않는다”

그러니까 잘하라는 말입니다. 잘할 생각이 없다면, 정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외교의 실패가 전쟁입니다. 전쟁하지 않기 위해서 정치가 있습니다. 상대국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 피차일반이죠. 그걸 뛰어넘는 게 어른 아니겠습니까? 그걸 넘는 게 정치잖아요?

그 나라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국제사회를 통해 계속 소송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른의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아서 (한국이 협의에 응하지 않아서) (화이트국제외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이렇게 큰 손실이 생깁니다. 이렇게 큰 손실이 나는 거라면 그만두자는 거지요. 정말 단순하거든요. 국익을 위해서는 냉정하게, 양국 간에 균열이 생기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 죽어라!’라고 관중 중에 말하는 분이 계시지만, 한국은 죽지 않습니다. 일본이 죽지 않는 것처럼. 아마 당신은 (한국과) 교류가 없겠지요. 저는 연예계에 있었습니다. 야마모토 다로, 16세 때부터 연예계에서 일했고, 여러 작품에 출연했는데, 그중에는 한국에서 촬영한 것도 있어요. 일본 영화인데 한국에서 촬영한 것도 있고, 한일 합작품에도 출연했습니다.

3개월 혹은 반년 동안 한국에서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한국 스태프라든가, 많은 분과 교류가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계 사람들은 엄청나게 일본 영화에 영향을 받았더군요. 무슨 영화를 보고 자랐느냐, 존경하는 영화인이 누구냐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여러 일본 영화인의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상대로서 서로 존경하며 일을 해 나간 겁니다.

저는 영화라는 세계에서 그런 교류를 했지만, 아마 그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교류가) 있을 거예요. 교류가 있다면 한국에 대한 감정도 달라질지도 모르겠네요. ‘한국 죽어라!’라고 말하는 분들이 최근 한 달 안에 불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르고(웃음), 김치를 먹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좀 냉정하게 가자’ 라는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익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주의한 발언으로 양국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설령 상대방은 했다고 하더라도, 일본 측은 어디까지나 신사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룰입니다. 일본은 성숙한 나라인 거겠죠? 성숙한 나라라면 그런 대응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연설을 들은 많은 관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거듭 강조하지만 포스트 글로벌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대의 조류는 극우와 극좌에 의한 포퓰리즘 정치이다. 이 세상은 이념의 시대에서 정념의 시대로 변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은 어떤 사람도 평등하게 한 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분노하는 다수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쉽다. 그 ‘분노한 다수’가 가장 많이 향하는 것이 극우이며, 다음으로 많이 향하는 것이 극좌이다.

마스조에 요이치는 저서 [히틀러의 정체]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히틀러가 집권한 것이 1933년인데, 그 당시의 상황에 지금의 세계가 너무나도 닮은 것에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1930년 9월 독일 총선에서 가장 많이 의석수를 늘린 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극우의 나치당이다. 12석에서107석으로 대약진했다. 이어 극좌의 독일 공산당도 54석에서 77석으로로 도약했다. 그후 독일의 역사는 내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제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다시 포퓰리즘의 위험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20세기의 역사를 반복할지 어쩔지는 전적으로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 현대] 특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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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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