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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특별기획 | 현장르포] 아물지 않은 상처, 포항 지진 그 후 

기약 없는 미래와 무관심에 이재민 마음이 타들어 간다 

지진 발생 2년 다 되도록 복구 안 돼 임시 거처로 떠돌이 생활
사고 수습 장기화에 몸과 마음 지칠 대로 지쳐 분노 폭발 일보 직전

깨진 유리, 텅 빈 상점, 곳곳에 금이 간 채 위태롭게 서 있는 건물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주택가 놀이터에는 어른 키만 한 풀숲이 녹슨 그네를 덮었다. 2017년 11월 15일 경상북도 포항시를 할퀴고 간 지진의 상처는 600일이 넘는 지금까지 아물지 않았다. 주민들은 한평생의 추억과 그날의 공포가 공존하는 보금자리 주변을 여전히 맴돌고 있다. 이곳에서 지진의 공포는 현재진행형이다. 포항시 북부에서 진도 5.4의 지진이 발생한 지 623일째 되던 7월 31일 피해 현장을 찾아갔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구호소. 주민들이 작은 텐트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600일이 넘었다.
KTX 포항역에 내리자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혔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포항지역의 한낮 기온은 36.5도를 넘었다. 포항시 외곽을 도는 영일만대로에 올라 10분쯤 달리자 오른쪽 길가에 문제의 지열발전소가 보였다. 지질자원개발업체 넥스지오가 2016년부터 운영해 온 곳이다. 정부연구조사단은 지난 3월 포항 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소를 무리하게 가동한 탓이라고 발표했다. 지진 이후 발전소는 가동을 멈췄다. 넥스지오는 자금이 바닥나 파산 수순을 밟고 있다.

발전소는 생각보다 작았다. 높이 30m쯤 돼 보이는 크레인 타워와 사무용 가건물 몇 개가 전부였다. 굳게 잠긴 출입문 안쪽에는 타공용 시추봉 수십 개가 녹슨 채 마당에 쌓여 있었다. 빛바랜 우편물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작은 개 두 마리가 안에서 낯선 취재진을 경계하듯 바라봤다. 털이 헝클어졌지만 굶주려 보이진 않았다. 정기적으로 사람이 와서 먹이를 주는 듯했다.

지열발전소는 지하 5000m 깊이까지 구멍을 뚫어 고압으로 물을 주입하고 높은 지열로 생긴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는다. 물이 주입되면 지하는 마치 압력솥처럼 내부 압력이 높아진다. 이때 단층을 만나면 엉뚱한 곳으로 압력이 표출되고, 지반을 자극해 지진이 발생한다. 활성단층은 지열발전소의 가장 큰 위협 요소다. 본지진이 일어나기 전 활성 단층의 존재를 암시하는 이상 현상이 꾸준히 관찰됐지만 넥스지오 측은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도 주민들은 지열발전소가 지진의 원인이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지진 발생 1년 4개월 만에 인재(人災)로 밝혀졌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생활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임시 거처를 떠돌며 공포에 몸서리치다가 잠을 설치기 일쑤다.

영일만 품은 민가촌에 온기 사라지고 적막만 감돌아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의 지열발전소는 2017년 11월 15일 지진 발생 이후 폐쇄됐다.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포항시 북부의 농경지대인 흥해읍 일대다. 영일만을 굽어보는 너른 들판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촌락이 형성됐다. 이름(흥해, 興海) 그대로 바다와 들판의 자원이 풍부해 인심이 넉넉한 고장이다. 지열발전소를 지나 7번 국도 동해대로를 타고 2㎞쯤 달리면 나타나는 흥해읍 약성리 일대다.

살가운 정이 넘쳤던 마을에는 온기가 사라지고 적막이 감돌았다. 지진에 약한 오래된 단층가옥과 저층 아파트, 다가구주택이 많아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컸다. 마을 입구 어귀에 있는 흥해초등학교는 건물 개축공사가 한창이었다. 지진 여파로 학교 건물이 흔들려 구조물 보강이 시급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지진의 상흔은 마을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학교 뒤에는 컨테이너로 된 임시주택 단지가 있다. 방 한 칸과 작은 거실 겸 주방이 전부인 단층주택 33동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벽걸이형 에어컨이 하나씩 달려 있지만,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막기엔 벅차 보였다. 이곳 외에도 컨테이너형 임시주택 80여 동이 더 있다.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다.

포항시가 집계한 이재민은 803가구, 2000여 명에 이른다. 이재민들은 컨테이너 임시주택과 LH가 제공한 국민임대주택, 흥해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구호소 등에 뿔뿔이 흩어져 복구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곧 돌아갈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지낸 게 어느덧 햇수로 3년째다.

주민들이 떠난 마을은 고요했다. 오래된 가옥의 벽은 손가락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갈라져 있었다. 집을 두른 담장은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었다. 곳곳에 응급 복구한 흔적이 지진의 상처를 도드라지게 했다.

5층짜리 3개 동이 있는 대성아파트는 한눈에 봐도 건물이 뒤틀려 기울어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추후 재건축하기로 합의하고 모두 집을 비웠다. 빈 아파트 입구에는 쇠사슬이 걸렸고, 경찰이 설치한 임시 초소가 지키고 있다.

대성아파트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한미장관맨션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벽에는 크고 작은 균열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나 있었다. 군데군데 벽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 움푹 팼다. 건물 밑에는 낙하물 사고를 막기 위한 그물망이 설치돼 있었다. 건물 모서리의 바닥 곳곳에 한 뼘가량 땅과 벌어진 틈이 보였다. 지진 때문에 땅이 꺼지면서 생긴 것이다. 불안한 주민들은 대부분 관에서 마련해 준 임시 거처나 친척집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미장관맨션은 지난해 포항시가 실시한 안전점검에서 4개 동 모두 사용 가능한 수준인 C등급을 받았다. 이후 주민들이 구조진단업체에 의뢰한 조사에서 2개 동은 D등급, 2개 동은 E등급 판정을 받았다. D등급은 긴급 보수·보강이 필요한 수준이고, E등급은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 위험한 상태를 뜻한다. 아직 철거 후 재건축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대로 사용하는 건 무리해 보였다.

건물은 그렇다 쳐도 수십 년을 이웃해 살아온 주민들이 겪은 충격의 크기까지 등급을 매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민들은 집 안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했다. 마을에서 만난 박모(74) 할아버지는 “불안증 때문에 도저히 집에서 잘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위태로운데 또 지진이 오면 건물이 버틸 수 있겠느냐”며 “낮에만 잠깐씩 집에 들러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밤에는 체육관에서 잔다”고 말했다.

마을 언덕배기에 있는 흥해체육관에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주민과 학생들의 함성과 응원 소리가 있어야 할 이곳은 지진 이후 본래 역할을 잃었다. 초기에는 200여 명의 주민이 이곳으로 대피해 머물렀다. 지금은 외지로 흩어지고 30여 명이 남았다.

실내 온도 40도 육박, 두 번째 여름 맞는 임시 구호소


체육관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입구와 중간문 사이 공간은 공동식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식탁과 전자레인지, 정수기 등 간단한 주방기기들만 비치했다. 매 끼니때 급식차가 와서 음식을 제공한다.

실내는 200여 개의 분홍색 텐트가 다닥다닥 붙어 경기장 바닥과 2층 관중석을 채웠다. 어른 두 명이 누우면 몸을 뒤척이기 빠듯할 정도의 크기다. 지붕에서 새는 빗물을 받는 양동이도 군데군데 놓여 있다. 바닥에는 얇은 매트를 깔았다. 허리와 관절이 약한 노인들에게 딱딱한 냉바닥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인근 보건소나 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게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일상이다.

대형 냉방기가 찬 바람을 토해내고 있지만, 한낮의 찜통 같은 내부 열기를 식혀 주기엔 역부족이다. 더구나 텐트 문을 닫으면 내부는 찜통이 된다. 한낮 최고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날도 많다. 2층 관중석은 더 심하다. 천장이 높아 찬 공기가 2층까지 올라오지 못해서다. 2층 텐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열대야가 계속되는 여름에는 1층으로 내려와 빈 텐트에서 겨우 잠을 청한다.

체육관에서 만난 신순옥(68)씨는 2층에서 지낸다. 텐트 앞에는 작은 화분과 열대어가 사는 어항이 놓여 있었다. 화초를 가꾸고 물고기를 돌보는 게 신씨의 유일한 낙이다. 작지만 자기만의 공간을 주기에 더워도 2층을 떠나지 않는다.

“욕해도 됩니까?”

“어떻게 지내시느냐”는 물음에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날카로운 반문이 돌아왔다. “감옥입니다, 감옥. 지진 나고 처음엔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와서 위로도 해 주고 그랬는데 된 게 뭐가 있습니까. 사진이나 찍은 게 전부 아입니까.” 신씨의 표정이 냉랭했다.

체육관 생활이 길어지면서 신씨에게 온갖 질환이 찾아왔다. 두 번의 대상포진으로 한동안 심하게 앓았다. 실내 공기가 좋지 않아 피부병도 생겼다. 딱딱한 바닥 생활에 허리와 관절이 망가졌다. 신경안정제와 진통제, 관절염 치료제 등 네댓 종류의 약을 달고 산다.

체육관에서 지내는 이재민들은 대부분 60~80대 노인이다. 신씨처럼 불면증과 각종 질환을 겪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늙은이들이 살면 얼매나 산다꼬.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러다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죽으면 그땐 누가 책임집니까.” 신씨 옆에 있던 친구가 한마디 거들었다.

정부는 발 빼고, 여·야는 책임 공방


▎흥해읍 한미장관맨션은 건물이 금가고 벽체가 떨어져 나가 낙하물 방지망을 덧댄 채 정부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주민들의 바람은 언제쯤 이뤄질까. 안타깝게도 기약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드러나면서 보상과 복구 방법을 두고 셈법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피해 규모는 당초 추정치보다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가옥 파손 등 직접 피해액 추정치만 846억원이다. 공장 가동 중단, 상가 폐업, 부동산 가치 하락, 지역 경기 침체, 정신적 피해 등 간접 피해 규모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한국은행 포항본부는 직간접 피해액을 3323억원으로 추산했다. 역대 지진 중 가장 큰 규모다. 보상과 복구가 늦어질수록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지역에선 간접피해액이 14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피해 보상을 받을 길은 요원하다. 당장 유발지진의 책임자인 넥스지오 측은 보상 여력이 없는 상태다. 주민들은 관리 감독의 책임을 물어 정부와 넥스지오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경상북도가 집계한 소송 규모는 공식적인 참여자가 3만 명에 이르고, 3만 명이 추가 소송을 준비 중이다. 최웅 재난안전실장은 “정부가 국민 6만 명과 싸워야 하느냐”며 “정부의 품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와 소송 결과가 나와야 보상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진 발생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연기해 가며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 여·야 간 정치적 공방에 골몰해 온 국회도 지진 피해자들의 민생은 뒷전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 7월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1·15 포항 지진 특별법과 피해배상을 위한 포럼’에서 “포항 지진은 인재라는 정부 합동조사단 발표 이후 정부의 즉각적인 사과와 피해 배상을 기대했지만,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인 대처로 포항시민들은 지진 당시보다 더 큰 상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정부와 국회를 향한 항의 표시로 삭발한 이강덕 포항시장.
다행히 8월 들어 비로소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1743억원의 지진 특별대책비가 확보됐다. 이재민들은 이를 반기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특별법 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무겸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특별법이 없으면 일반 민사소송에 따라 피해 주민들이 공무원 등 국가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면서 “감정 절차나 인과관계 입증 작업 등으로 피해 구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판부별로 결론이 다르게 나올 수 있어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내놓은 특별법 4건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특위 구성 여부를 두고 여·야 의견이 엇갈리면서 법안 처리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공원식 ‘11·15 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여·야가 주민의 피폐한 삶을 정상화하려는 노력보다 책임소재에 대한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범대위는 지난 4월 2일 포항 시내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특별법 제정에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해 왔다. 결의대회에는 1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이 시장도 결의대회에 참석해 서재원 포항시의회 의장과 함께 삭발로 항의를 표시했다.

세 번의 막을 기회 무시한 뒤 강진 찾아와


▎흥해체육관 안에 주민들의 옷가지가 걸려있다.
포항 지진공동연구단 부단장인 양만재 박사는 “어느 정권의 책임이 크냐를 따지는 건 의미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기관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양 박사는 지진이 발생한 뒤부터 지열발전소 운영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파헤쳐 왔다. 8월 1일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포항 지진으로 우리나라에서 지열발전 연구는 사실상 재기 불가능한 상태”라며 “수많은 징후가 있었는데도 이를 묵인한 비양심적인 학자들이 문제를 키웠다”고 말했다. 양 박사가 추적한 지열발전 사업 과정을 되짚어 보면 곳곳에서 허술함이 드러난다.

우선 정치권과 일부 시민들 사이에 오가는 이전 정권의 책임 공방은 의미 없는 소모적 논쟁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현 정부까지 계속 진행돼 온 사업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순간만 잘라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다.

지열발전 사업의 타당성에 관해 논의가 시작된 건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열에너지 개발을 위한 심부 물리탐사’ 보고서를 통해 포항시 흥해읍 지역에서 지열발전소 입지 선정에 필요한 조사 활동을 벌였다. 이후 이 지역에서 심층지열수를 활용한 전기에너지 활용과 지열수 자원 실용화 기술개발 사업이 추진된다. 지질자원연구원이 2010년 지열발전소 공모사업을 시작할 때까지 221억원의 연구 예산이 투입됐다. 연구원은 2006년 ‘지열에너지자원 개발, 활용 기술 및 동향’ 보고서에서 지열발전 사업을 ‘포항의 미래’로 규정했다. 이후에도 각종 논문을 통해 ‘지열발전소가 원자력과 화력발전을 대체할 유일한 에너지기술원’이라고 강조했다.

장밋빛 전망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2011년 4월 넥스지오가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국책사업자로 선정된 뒤 지열발전소 건설에 나서면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지층이 안정화된 흥해지역은 지열발전소를 짓기에 최적지로 꼽혔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힘입어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양만재 박사는 “정치적 이유를 배제하더라도 지질 조건이 좋았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업지를 정할 때 활성단층 유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용과 민원 때문이었다.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정보도 주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넥스지오 측은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미소지진을 ‘지진’이 아닌 ‘진동’으로 표현했다. 지진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첫 번째 징후는 2016년 초 지열정 굴착 과정에서 나타났다. 4~5㎞ 깊이로 굴착하는 과정에서 이수(泥水, 진흙물)현상이 확인됐다. 이수현상은 학계에서 단층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양 박사는 “사업에 참여했던 스위스 학자가 한국 학자들에게 이를 알렸지만 심각하게 여기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2016년 12월 29일 2차 물 투입이 이뤄진 뒤 진도 2.3의 지진이 발생했다. 일반적인 미소지진의 강도를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단층 유무에 관한 정밀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2.0 이상 지진이 발생하면 ‘신호등 체계’라는 위험관리 매뉴얼에 따라 물 주입량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관계기관에 이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그런데 지진이 발생하자 넥스지오 측은 2·5로 기준을 높이 대상 기관 중 포항시를 제외했다. 매뉴얼이 변경됐다는 사실도 정부 조사단 조사를 통해 뒤늦게 밝혀졌다.

“연구윤리 저버린 학자들의 비양심도 근절돼야”


▎양만재 포항 지진 공동연구단 부단장은 지진의 전조를 업체가 무시하고 관련 학자들이 묵인해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2017년 4월 3차 물 투입을 전후해 진도 3.1의 지진이 발생했다. 약한 지진이 계속 이어진 것은 우리나라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김광희 부산대학교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2015년 11월 이전까지 지진활동이 없다가 이수 누출이 확인된 직후부터 미소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면서 “물 주입 시기와 미소지진 발생 시간이 일치하고, 물 주입이 계속되면서 발생하는 지진의 규모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정부조사단과 전문가들은 업체 측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지열발전 과정에서 지진을 경험했던 스위스 바젤 사례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2006년 5월 지열발전 사업을 시작한 스위스 바젤은 6개월 뒤 규모 2.0, 2.7, 3.4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자 물 투입을 즉시 중단했다. 바젤 지열발전소는 3년간의 조사 끝에 사업 중단이 결정됐고, 지금까지 단계적으로 압력을 감소시키는 조치를 지속하고 있다.

문제는 포항 지열발전소의 경우 지진 발생 이후 지금까지 물 투입을 중단한 것 외에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포항 지진 본진은 지열발전소가 아닌 다른 지점에서 발생했는데도 정부는 발전소만 통제한 채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향후 발생 가능성이 있는 여진은 정부가 통제하는 곳보다 훨씬 넓은 곳에서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층을 안정화하고 폐쇄된 지열발전소를 관리하는 데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지금으로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을 가리는 문제 역시 1, 2년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다. 유발지진이라는 게 조사로 밝혀졌지만 보상 책임과 규모를 확정 지으려면 법정에서 다시 한번 공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기약할 수 없는 끝. 고령의 이재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기도 하다.

양 박사는 “또 하나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했다. 바로 학자들의 연구윤리에 관한 문제다. 여전히 지열발전사업에 직간접 연구로 참여했던 일부 학자들은 유발지진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양 박사는 이렇게 강조했다. “민·관·NGO가 탈원전,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업체가 원하는 대로 연구 결과를 만들어 준 학자들의 비양심적인 행태가 이번 일을 계기로 근절돼야 한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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