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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북한 헌법 개정으로 본 김정은의 야심 

절대권력 보장받고 한국 향해 ‘굿모닝 미사일’ 

北, 4차례 헌법 개정 통해 김정은에게 군 통수권자와 국가원수 지위 부여
‘무적의 군사 강국’ 실현 위해 미국 묵인 아래 미사일·방사포로 대남 도발 일삼아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 앉은 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북한은 4월 헌법 개정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국민의 대표 자격을 부여했다. / 사진:평양공동취재단
북한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헌법(전문 171조)이 석 달 만에 공개됐다. 2019년 북한 헌법 개정은 인적 수집 정보인 휴민트에 의한 정보 획득이 아니라, 7월 11일 북한의 자발적 공개에 따라 알려지게 됐다. 지난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헌법을 개정한 지 3개월이 지나도 평양에서 공개하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는 것이 국정원 등 국내 정보기관들의 대북정보 수집 능력이다. 687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대한 대북 정보망의 직간접적인 접근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이들이 북한의 고위층 간부들로서 외부에 내용을 함구하지 않고 발설하다 적발될 경우 극형에 처해지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북한의 최대 정치행사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남한 정보기관의 ‘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다. 1949년 9월 최고인민회의 1기 1차 회의에서 북한 헌법이 제정된 이래 14차례의 제정과 개정이 이뤄졌지만 제대로 적시에 파악된 사례는 전무하다.

남한 정보기관의 무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북한 헌법 개정안을 분석하는 것은 늦게나마 김정은의 최근 도발적인 행태는 물론 미래 외교 행보를 예측하는 데 필수적이다. 남한의 국회 격인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2011년 12월 30일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4번째 헌법 개정을 했다. 집권 8년 동안 4차례 헌법을 개정했으니 평균 2년에 한 번씩 바꾼 셈이다.

김정은, ‘북한의 대통령’이 되다


▎2013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되기 전, 재판을 받고 있는 장면이 북한 [노동신문]에 실렸다.
2019년 북한 헌법 개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이 맡고 있는 국무위원장 직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된 부분이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내나라]가 공개한 북한 헌법 제6장 국가기구 부분의 제2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항목에 있는 헌법 제100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라고 규정했다.

앞서 북한은 2016년 6월 헌법을 개정하며 신설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라고 규정했다. 2019년 헌법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임을 헌법에서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2016년 헌법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은 ‘전군’을 지휘하는 ‘최고지도자(supreme leader)’였다. 새로 설립된 최고 통치 기구인 국무위원회(the State Affairs Commission)의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원수를 뜻하는 ‘국민 모두의 최고 대표(the supreme representative of all the Korean people)와 통수권자(commander-in-chief)’라고 밝혔다. 김정은의 인민군 통수권을 명시한 102조에는 ‘무력 총사령관’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등장했다. 개정 전에는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규정했다. 실질적인 핵보유국의 최고지도자 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 헌법 개정 전까지 북한을 대표하는 명목상 국가수반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었다.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공식화한 것은 집권 2기를 맞아 헌법과 실제 권력을 일치시켜 외형상 정상 국가를 지향하는 차원의 조치로 풀이된다. 다른 국가 정상과의 회담이나 조약의 비준 ·폐기 등 국가의 대표 역할을 국무위원장이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서명 권한의 실효성을 김 위원장에게 부여한 것이다.

특히 향후 4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비핵화 합의에 도달했을 때 합의문의 서명 주체로서 김정은 위원장의 역할 또한 공식화한 의미로도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헌법상 북한의 국가원수와 군 통수권자로 명기됨으로써 미국과 평화협정(a peace treaty)을 체결할 경우, 형식상 실질적인 서명 당사자가 됐다. 이른바 법과 권력의 불일치 현상을 시정해 대내적으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법치국가를 지향하는 이미지를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제 집권 8년 차에 수많은 권력 도전을 물리치고 김정은 위원장은 꿈꿔 왔던 ‘북한의 대통령(the president of North Korea)’이 됐다. 실질적인 북한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결국 무적의 군사 강국 실현이다. 외교와 군사의 두 가지 카드는 김정은 통치의 양대 축이 될 것이다. 북·미는 물론 북·중과 북·러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을 수시로 개최하고 주기적으로 변종 형태의 신형방사포와 미사일로 힘을 과시하는 김정은은 국내 통치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2019년 개정 헌법도 종전 헌법과 마찬가지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돼 있다. 개정 헌법에서 국무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모두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국무위원장이 대내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이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신임장 및 소환장 접수라는 상징적인 외교 업무와 관련해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로 한정했다.

따라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평양에 부임하는 외국 대사나 외빈을 접대하는 제한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는 김일성, 김정일 및 김정은 3대에 걸쳐 40년 이상 권력을 유지해 처세의 달인이라 지칭되던 김영남 전 의장의 역할보다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북한 헌법 개정은 김정은 권력의 완성을 의미한다. 2012년 헌법에서는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위해 선대 김정일의 업적을 강조하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신설했다. 2016년 헌법은 노동당 중심의 운영을 위해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직을 폐지하고 국무위원장을 신설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9년 헌법에는 국무위원장에 ‘국가 대표’ 위상을 추가했다. 김정은은 국무위원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선군정치를 표방했던 김정일 시대의 국방위원회는 국방 분야에 집중하며 국정을 통제했던 반면, 국무위원회는 국방·외교·경제 등 모든 국정 현안을 관리한다.

국무위원장의 권한은 국가의 전반적인 사업 지도와 중요 간부 임명·해임,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전시상태 및 동원령 선포 등을 할 수 있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권좌를 이어받아 2013년 12월 면종복배(面從腹背)의 고모부 장성택을 전격 처형한 데 이어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서방정보기관과 접촉하며 금지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이복형 김정남을 독가스로 암살하는 등, 백두혈통의 직계 및 방계 권력을 냉혹하게 제거했다. 이어 각각 4차례의 북·중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및 3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대내외에 3대 세습 지도자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집권 1기의 권력 구축 단계를 지나 권력 공고화 단계인 ‘김정은 2기 체제’ 출범에 맞춰 개정한 헌법을 통해 김 위원장의 법적 지위를 국가수반으로 공식화했다.

2019년 헌법은 기존 헌법과 같이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했다. 북한 헌법은 서문에서 북한을 ‘정치사상 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 강국’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은 핵무기와 함께 재래식 무기(conventional arms) 현대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적의 군사 강국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김 위원장은 7월 21일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돌아보시며 함의 작전 전술적 제원과 무기전투체계들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했다”면서 “잠수함은 동해 작전수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작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잠수함 외부에 부식되고 긁긴 흔적 때문에 신형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최대 3기 탑재가 가능한 최소 2000t 이상의 잠수함이 건조되거나 러시아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지난 4월 4000t급 잠수함 건조를 지시했다.

이것은 미사일인가? 방사포인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에 제해권을 빼앗긴 북한군은 남포 앞바다의 초도는 물론 평안북도 철산군 앞 신미도 섬까지 포기했다. 북한은 휴전 이후 해군력을 증강하기 시작해 1970년 초 들어 잠수함 부대를 창설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국의 [제인 연감] 등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골프급과 로미오급을 포함해 40여 척의 퇴역 잠수함을 사들였다.

현재 70여 척의 잠수함 전력을 보유한 북한 해군력은 잠수함 전력이 열세인 남한 해군에 비대칭전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을 잠수함에 탑재하기 위한 신형잠수함과 SLBM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이 SLBM 잠수함의 5년 내 실전배치를 완료할 경우, 남한의 대응 및 요격 능력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인 안보 불안을 야기할 것이다. 부산 해운대와 제주도 중문 앞 해상에 북한 SLBM 잠수함이 수시로 출몰할 수 있다는 가정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북한은 지난 5월 2차례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7월 들어 3차례의 방사포와 단거리 탄도미사일, 8월 들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남한의 새벽을 깨우는 정체불명의 발사체는 이제 횟수가 무의미한 상시 상황이 되면서 ‘굿모닝 미사일’이 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체에 대한 정확한 기술적 분석이 미흡한 상태에서 섣부른 정무적 판단이 뒤섞이며 체계적인 실체 파악은커녕 북한의 사후 발표에 당국의 판단이 농락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의 군사 도발에 우왕좌왕하는 정무적 판단의 한축은 북한의 도발을 축소 내지 깎아내려 북한을 가능한 한 자극하지 않으려는 청와대다.

북한이 두 차례 발사했다는 신형 400m 대구경조종방사포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 능력의 현주소를 시사한다. 북한이 쏜 발사체를 두고 한·미 군 당국은 신속하게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는데, 북한은 다음 날 신형 방사포라며 사진의 모자이크를 조금씩 벗겨 냈다. 김정은이 시찰하는 사진만 보면 다연장로켓으로 북한식 명칭은 방사포다. 하지만 한·미 군 당국이 밝힌 마하 6.9의 비행속도와 비행방식은 기존 방사포보다는 미사일에 근접했다.

지난 5월 2차례, 7월 25일 북한이 쏜 북한판 이스칸데르, 즉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처럼 속도가 빨랐고 하강하다가 재상승하는 풀-업(pull-up) 기동을 했다. 북한 발사체는 외모는 방사포, 속도와 기동은 미사일이었다. 지난 5월에는 북한이 분명히 이스칸데르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서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는데도 우리 정부는 탄도 미사일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불편했던 것인지, 불상의 발사체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새로운 종류이긴 해도 방사포를 쐈는데 한·미는 유례없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탄도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북한이 사진을 공개하자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이다. 전자는 알면서도 모른 척, 후자는 모르면서도 아는 척했다가 하루 만에 북한에 뒤집기를 당했다.

중국의 방사포(WS-2D)를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급 신형방사포로 추정된다. 논란의 핵심은 북한의 비대칭 무기의 개발 속도가 한·미 당국의 정보 판단을 능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시대 국정의 핵심은 ‘무적의 군사 강국’으로 실질적인 무력증강을 도모하는 것이다.

2대 지도자 김정일 시대는 선군정치를 통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는 실질적인 군비 확충에 주력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관계에서도 강 대 강 구도를 지향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 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8월 8일 ‘세계적인 군사 강국 조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정은 원수님의 탁월한 영도 밑에 불패의 군사 강국의 위용을 세계만방에 떨쳐 나가는 우리 공화국의 모습은 진보적 인류의 격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협상 앞두고 한·미 양국 자극하는 北


▎4번째 개정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군사와 외교에 관한 권력을 집중시켰다. / 사진:연합뉴스
7월 26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에 대한 우리 군의 평가 번복과 관련해서는 의문점이 적지 않다. 300㎜ 방사포(Multiple Rocket Launcher)와 단거리 탄도미사일(Short-range ballistic missile launches)은 엄연히 다른 무기체계인데 이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사거리는 유사할 수 있으나 탄두 무게와 속도, 비행궤적, 파괴력 등에서 차이가 있다. 또 모두 차량형 이동식 발사대에서 발사되지만 이동식 발사대의 모양과 크기, 발사관을 세우는 방식 등이 다르다. 방사포와 탄도미사일은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레이더 빔 반사 면적(RCS)에서도 차이가 있다.

레이더를 통해 이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 분석이다. 특히 레이더는 해당 표적의 비행궤적과 속도 등을 연산해 실시간으로 해당 정보를 전달한다. 포탄과 탄도미사일은 그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 역시 레이더로 구분할 수 있다. 군 당국은 이번 미사일의 비행거리와 고도만을 밝혔을 뿐 속도와 비행시간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 군은 백두·금강 정찰기와 RF-16 정찰기 등 대북 정찰 항공기들과 대북 도·감청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비록 북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정찰위성과 북한 미사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탐지·추적할 수 있는 정지궤도 위성은 없지만 제한적이나마 사전에 도발 징후를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북한 도발에 대한 축소 의혹이 제기된다. 당초 군은 청와대에 “300㎜ 방사포 등 다양한 단거리 발사체일 가능성을 두고 분석 중”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개량된 300㎜ 방사포(대구경 다연장포)로 추정되나 정확한 특성과 재원은 정밀 분석 중”이라고 발표했다. 방사포에 무게중심을 둔 발언으로 남북대화 기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군의 보고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탄도미사일은 유엔 제재 대상이지만 포탄은 아니다. 특히 포탄은 유엔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청와대가 도발 축소를 위해 의도적으로 방사포로 평가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7월 28일 기자들과 만나 “당시 발표 때도 방사포 추정이라고 이야기했었다”면서 “한·미 간에 협의를 거쳐 내용을 미사일로 수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섣부른 정무적 분석의 다른 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트럼프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계속 묶어두기 위해 단거리미사일 발사를 용인하고 면죄부를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미사일 발사가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에게 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 약속을 어긴 게 아니란 어정쩡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정은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화약고에 기름을 붓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최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에 대해 과민반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지난 월말 호주 방문을 마치고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핵심은 외교의 문을 계속 열어 두는 것이라며 우리는 과민반응하지 않을 것(we’re not going to over react)”이라고 언급했지만 트럼프의 인내심은 향후 북한의 미사일 사거리가 최소 2000㎞를 넘어 일본 열도를 통과할 경우 현실의 벽에 부딪힐 것이다.

명칭조차 불분명하여 ‘홍길동 훈련’이라 불리는 한·미 연합도상 군사연습이 종료되는 광복절 이후 북·미 간의 본격적인 실무접촉이 재개될 것이다. 하지만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북한의 미사일과 방사포 도발이 중지되지 않을 것이다. 판문점에서 트럼프와 김정은 양 정상 간에 훈훈한 덕담이 오갔지만 실무 협상은 여전히 가시밭길로 덮여 있다. 오히려 미사일과 방사포의 사정거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정상회담 시한으로 설정한 연말로 다가갈수록 한·미 양국을 자극하는 도발의 수위와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미래 한국 안보를 무엇으로 담보할까?


▎북한은 방사포 발사로 한국을 연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묵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은 300㎜ 방사포를 비롯하여 수도권과 전방 지역을 겨냥한 5500여 문의 방사포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사거리 250㎞의 신형 방사포가 실전 배치되면 북한 방사포의 위협은 더욱 커지게 된다. 신형 방사포는 비무장지대(DMZ) 부근에 배치될 경우 수도권과 주한미군 오산·평택기지,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F-35 스텔스기가 배치된 청주기지는 물론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까지 사정권에 두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최신형 패트리엇 PAC-3로 요격이 가능하다고 군 당국은 주장한다. 다만 비행 마지막 단계에서 급상승 등 요격 회피 기동이 가능한 만큼 실전 상황일 경우 무적의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 결과를 점치기 어렵다. 북한군의 신형 400㎜급 방사포는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유효한 요격수단이 없다. 수평 변칙 기동으로 요격이 어려우며 미사일급 정확도로 동시에 수십에서 수백 발의 사격이 가능하다. 만약에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신형 400㎜ 미사일을 동시에 섞어 발사한다면 피해는 예측불허다.

북한은 재래기 무기 중에서 방사포·잠수함·전차·전투기 및 화생방 전력에서 한국보다 우세하며 한국이 보유하지 못한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5%를 국방비에 사용한다. 북한의 국방 예산 비율은 약 25%다.

국방비 절대 액수는 한국이 크지만 북한은 무기 개발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전작권 환수 로드맵으로 껍데기만 남은 한·미연합연습은 컴퓨터 지휘소(CPX) 통제훈련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어만 하고 반격은 하지 않으니 대학생들이 즐겨 하는 배틀필드(Battle field) 게임보다 못하다.

9·19 남북군사합의의 선의만을 믿고 자진 무장해제의 길로 들어선다면 미래 남한 안보는 무엇으로 담보할 것인가? 지난달 독도 상공 항공식별구역(ADIZ)에 난입한 중·러의 전투기는 구한말 경복궁에 난입한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와 다를 바가 없다.

2017년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당시 미국 국방 장관이 “한반도에서 분쟁 가능성을 낮추려면 미군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페렌바크(T.R.Fehrenbach)의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을 읽어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전쟁을 준비하지 않은 미국을 되돌아보는 미국판 징비록(懲毖錄)인 이 책은 마지막 807쪽에서 “한국전쟁의 교훈은 이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한반도의 38도선에서 포성이 멈춘 지 10년 만인 1963년 이 책을 발간한 저자는 전차대대 중대장에 이어 중령 계급장을 달고 한반도의 전선을 누볐다. 그는 세계 양대 세력이 충돌해 200만 명이 사망한 한국전쟁은 ‘힘을 시험한 전쟁이 아니라 의지를 시험한 전쟁’이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서방은 공산권 지도부의 야망과 의도를 오판했고 공산권 지도부는 서방의 대응을 판단하는 데 실수했다.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은 군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망각하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상기시켜 준다고 고든 설리번(Gordon Sullivan) 전 미 육군참모총장은 지적했다.

평화경제 선언 다음 날 벌어진 미사일 협박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반도 주변 열강들로부터 대한민국이 이렇게 고립된 것은 1948년 제헌헌법 제정 이후 처음이다. 1965년 국교 수교 이후 최악의 한·일 관계를 시작으로 한·중, 한·러는 물론 한·미 관계 역시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사면초가, 고립무원 단계를 떠나 정치와 군사는 물론 경제위기로 비화하고 있다.

2019년 한반도 정세는 해법이 쉽지 않은 고차방정식과 같다. 국제정세를 무시하고 오직 평양과의 관계 개선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2년 전 국정판단이 오늘날 위기의 서막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가가 만만찮다.

남과 북이 지난해 9월 19일 요란한 축포와 함께 서명한 군사합의서 제1항에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북한은 연일 드러내놓고 대남 적대행위를 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를 사문화(死文化)하고 나선 것이다.

미사일 발사가 9·19 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청와대 안보실장의 발언은 평양을 향한 일편단심 사모곡인가? 평화 경제론으로 대일(對日) 결사 항전을 독려한 다음 날 아침, 저고도 정밀타격 능력을 자랑하는 미사일로 응답하는 주체가 평양지도부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일본경제를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발언한 지 하루 만에 북한은 군사도발로 반응했다. ‘맞을 짓을 하지 마라’, ‘한·미 군사연습을 계속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라며 미사일로 협박하는 당사자와, 경협으로 단숨에 극일(克日)하겠다는 주장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9·19 군사합의는 일장춘몽으로 치부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얼마 전 방문한 칭화대 정문 표석과 캠퍼스 곳곳에 붙어 있는 ‘자강불식 후덕재물(自疆不息 厚德載物)’이라는 슬로건은 풍전등화 상태인 한국의 안보에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았다. ‘스스로 쉼 없이 강하게 만들고 덕을 많이 쌓아야 재물이 들어온다’라는 의미다. ‘자강불식 후력재안(自疆不息 厚力載安)’이다. ‘스스로 쉼 없이 강하게 만들고 힘을 많이 쌓아야 안전이 보장된다’라는 창작 문장으로 무더위 속 답답한 마음을 달래 본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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