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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보수 진영 4인4색(황교안·유승민·안철수·박근혜)의 통합 계산법 

문재인 독주가 보수의 구심력을 키우다 

친박·비박의 과거 앙금보다 더 강력한 반문(反文) 연대 압력
황교안의 기득권, 유승민의 자존심, 안철수의 모호성, 박근혜의 분노가 변수


▎보수 통합의 주요 플레이어로 주목받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부터).
'화들짝’. 지난 8월 7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이하 존칭 생략) 인터뷰에 깜짝 놀란 보수 정치권 표정을 응축한 단어다. 인터뷰 요지는 “유승민과 통합 안 하면 한국당의 미래는 없다”는 것. 바른미래당은 즉각 발끈했다. 당권파인 사무총장 임재훈은 “나 원내대표는 잠꼬대 같은 말을 더 이상 하지 말고 한국당이나 잘 추스려라”고 타박했다. 유승민계인 최고위원 하태경은 “(나경원의) 일방적인 러브콜이고 좀 불쾌하다”며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한국당은 공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내 기류는 묘하게 흘렀다. 비박계 장제원은 “‘청량제’ 같은 인터뷰”라며 “통합의 대상으로 유승민 의원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것은 당이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한 ‘용기 있는 구상’”이라고 추켜세웠다. 반면 친박계 김진태는 “당내 의견이 전혀 모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저렇게 불쑥 개인 의견을 던지는 건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우리공화당 공동대표 조원진은 “배신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국당 대표 황교안의 반응은 즉각 전해지지 않았다. 일부 매체는 교감 없이 나온 나경원 발언에 황교안 측이 적잖은 경계심을 내보였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3당 6색’. 같은 정당 내에서도 계파 간 극명한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향후 보수통합을 둘러싼 해법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보수 통합의 이유


▎지난 3월 국회에서 정부의 인사 정책을 규탄하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나 원내대표는 최근 유승민 의원을 포함하는 보수대통합 필요성을 제기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보수 정치권 전반적 기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형태로든 통합이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강하게 흐르고 있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먼저 1987년 현행 헌법체제 이후 선거역사가 보여 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실증적 경험이다. 보수 입장에서 보면 1990년 3당 합당을 통한 보수대연합으로 정권재창출과 14, 15대 총선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1997년 여당 후보 이회창과 이인제의 분열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맞선 야권에 사상 첫 정권교체를 허용한 데 이어 2002년 대선 역시 자민련과의 연대를 거부한 이회창의 고집 탓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카드에 또 졌다. 반면 극심한 당내 갈등과 대립에도 이명박·박근혜가 끝내 한 배를 탔던 2007년과 2012년의 두 차례 대선에선 승리를 거뒀다. 연이은 집권의 오만함 탓이었을까. 친박과 비박의 피 터지는 집안싸움은 2016년 총선에서의 충격적 패배에 이어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파면 사태로 이어졌다. 좀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지지율에 대한 우려도 통합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황교안의 대표 취임 이후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던 한국당 지지율은 장외투쟁이 한창이던 5월 둘째 주 최고치(한국갤럽 25.0%, 리얼미터 34.8%)를 찍은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급기야 7월 넷째 주에는 한국갤럽 19.0%, 리얼미터 26.8%를 기록하며 심리적 저항선인 20%대와 30%대가 각각 무너졌다. 같은 주 더불어민주당은 한국갤럽 39.0%, 리얼미터 43.3%의 지지율로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간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한국당 주장대로 폐기되고 현행 소선거구제가 관철된다 해도 이런 상황이라면 내년 총선은 해보나마나다. 극적 반전을 위해서라도 보수 세력 전격 통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합, 황교안 마음먹기에 달렸다?

여기다 7월 들어 한국당 지지율 발목을 잡은 이른바 ‘친일 프레임’ 때문에라도 “보수가 뭉쳐야 한다”는 절박감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의 일방적 경제보복 조치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 데 대해 한국당은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문재인 정부의 무능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의 내부비판, 특히 일본이라는 상대에 대한 국민감정까지 작용하면서 한국당은 오히려 적전분열을 꾀하는 ‘친일 세력’으로 어느새 자리매김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 (여당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자신했을까. 보수 분열에다 친일 ‘딱지’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최소한 보수 세력 내 결단만으로도 극복이 가능한 분열부터 수습하는 데서 반전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통합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통합의 물꼬와 방향을 선도해야 하는 ‘키맨(key man)’들의 입장과 이해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탓이다.

황교안의 기득권


▎7월 6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우리공화당의 태극기집회. 우리공화당은 탄핵 찬성 국회의원들의 축출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보수 통합의 첫 번째 열쇠는 황교안의 기득권 포기 여부다. 만물의 이치가 그렇듯, ‘비워야 채워지는 법’이다. 황교안은 치열한 경선을 통해 원내 110석의 제1야당 당권을 따냈다. ‘정치초짜’ 우려를 털어내고 단숨에 당을 장악하며 정치적 힘을 배가시켰다. 자기 선거인 양 뛴 4월 경남 통영·고성 보선에서 승리로 향후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패스트트랙 정국 때 장외투쟁을 이끌며 유약한 관료 이미지 대신 강단 있는 야권 투사로 거듭났다. ‘원외 대표’라는 한계를 오히려 역이용, 틈만 나면 ‘민생대장정’에 나서며 국민 접촉면도 더욱 넓혔다.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최소한 범보수 진영에선 압도적 1위를 고수하며 ‘황교안 대세론’을 낳았다. 시나브로 보수의 차세대 희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보수 통합이 ‘황교안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겉으로 드러난 황교안의 마음은 보수 통합에 아주 적극적이다. 당 대표 당선 일성이 ‘대통합’이었다. “(전당대회) 승리의 기쁨은 이 자리에서 끝내고 (중략) 혁신의 깃발을 더욱 높이 올리고 자유 우파의 대통합을 이뤄 내겠다.” 현실정치에 발을 디딘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실제 대통합 필요성을 절감했다. 4월 경남 창원 성산 보궐선거에서 한국당 후보가 불과 504표 차이로 낙선한 것. 함께 출마한 애국당(우리공화당의 전신) 후보의 득표수는 838표. 같은 보수라는 뿌리를 감안했을 때, 단일화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직후 황교안은 “처음부터 이 당에 들어올 때 통합을 말했는데 제한적인 통합을 얘기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박근혜의 추종 세력도 껴안는 대통합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했다.

황교안이 ‘박근혜와의 단절’을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

현재까지 상황은 대통합과는 반대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황교안의 ‘러브콜’에 조원진은 ‘탄핵 5적’ 정리부터 요구했다. 유승민의 복당 불허뿐 아니라 탄핵 찬성 후 탈당했다 돌아온 당내 비박계 핵심부터 내치라는 것이었다. 친박계 홍문종은 6월 탈당과 함께 우리공화당 입당을 선언하며 통합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오직 본인 대권 행보에만 관심” 있는 황교안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비박계 역시 뿔이 나긴 마찬가지다. 대통합이 비박계의 탄핵 찬성에 대한 정치적 반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최근 비박계를 중심으로 ‘도로 친박당’ 불만이 터져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주요 당직을 사실상 독점한 친박계가 당장은 반성문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결국 공천 국면에서 탄핵 책임론으로 자신들을 솎아내려는 속내라는 것이다. 물론 황교안은 “나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다”며 펄쩍 뛰었다. 그럼에도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치된 목표를 가진 모든 분과 구존동이의 자세로 대통합을 이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반발과 논란에도 보수 대통합의 명분과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황교안의 이런 판단에는 먼저 우리공화당의 반발을 잠재우고 결국엔 흡수할 수 있다는 나름의 자신감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공화당의 정치적 기반은 ‘박근혜 동정론’. 우리공화당은 2008년 총선 때 ‘친박연대’ 돌풍의 바탕이 된 ‘박근혜 마케팅’이 통하리라 자신한다. 한국당 관계자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헛된 꿈, 꾸지 말라”는 것이다. 2008년 박근혜는 ‘미래권력’이었지만 이젠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공화당이 정치적으로 기댈 언덕이 없다면, 선거를 전후해 사실상 한국당으로 흡수되는 형태로 소멸될 수도 있다. 황교안이 진짜 이런 셈법을 갖고 있다면,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왜, 과감히 ‘박근혜와의 단절’을 선언하지 못할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승민 세력뿐 아니라 안철수 등 당 밖 중도세력 포용을 위해 문호를 확 열어젖히지 못할까.

바로 여기서 황교안의 기득권이 작용한다는 의심이 생겨난다. 박근혜와의 절연이 공연한 평지풍파와 자칫 자기부정의 결과로 이어질까라는 걱정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정치경력 ‘제로’의 황교안이 단숨에 ‘보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것이 오롯이 그만의 노력과 능력 덕택은 아니다. 여전히 당내 최대 조직세를 구축하고 있는 친박계의 음양에 걸친 지원이 큰 힘이 된 게 공공연한 비밀. “빚진 게 없다”면서도 탄핵 책임론 앞에 서면 움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부 측근들은 “향후 공천 때 책임의 경중에 기반한 ‘개혁 공천’으로 잘못된 과거와 단절할 것”이라고 귀띔한다.

이에 대해 즉각 반론이 나온다. 심판관으로서의 황교안 자격론이다. 박근혜 정부 내내 법무장관, 총리로 국정을 보좌했던 그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중도외연 확장을 위한 문호개방을 망설이는 것에도 정치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유승민과 안철수는 차기 대권경쟁에서 강력한 라이벌. 제압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기 전에는 섣불리 손을 내밀 수 없다. 두 사람의 입장에서도 황교안의 지배력이 발동되는 한국당에 백기투항식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예 제3지대에서 새로운 중도보수신당 창당을 통한 의기투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어렵다면 한국당에서 독자생존이 가능할 수 있는 정치적 지분을 보장하라고 할 것이다. 황교안으로선 공천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이 걸릴 뿐 아니라 주도권마저 빼앗길 수도 있다. 당내 비주류가 4선 관록의 유승민 또는 한때 ‘새 정치’ 돌풍 주역 안철수와 손잡을 경우 두 사람의 꺾인 날개가 다시 활개를 칠 수 있다.

추석 여론조사 결과가 보수 통합의 분기점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강성 친박을 껴안는 명분과 자신의 정치적 아킬레스를 덮고 잠재적 라이벌 견제라는 실리까지 챙길 수 있는 대통합론은 황교안의 ‘꽃놀이패’다. 형식 논리로도 강성 우파에서 중도까지 모두 아우르겠다는 통합의 명분에 누구도 반발하기 쉽지 않다. 비박 입장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모두가 공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라 아무런 대안도 없이 황교안 체제를 흔들 수도 없다.

그러나 정치적 고비마다 대통합을 외치면서도 굼뜨기만 한 그에 대해 당 안팎의 불만은 비등하고 있다. 나경원이 다소 뜬금없이 유승민과의 통합을 공개 거론하고 나선 것도 그런 불만으로 읽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최근 당 지지율 하락과 함께 황교안 지지율마저 여권 잠재주자 이낙연에게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황교안 대세론’에 균열이 계속 커질 경우 통합의 구심점도 흔들리게 마련. 당장 한국당 총선 승리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다. 일각에선 황교안 체제 붕괴와 비상대책위원회 가동 시나리오를 흘리고 있다. 물론 아직까진 그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관건은 역시 추석 여론조사다. 황교안으로선 역전까진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반등의 계기를 보여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기득권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 한다. 황교안이 과연 그런 결단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유승민의 자존심


▎2018년 1월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오른쪽)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대구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나경원의 언급으로 유승민은 졸지에 보수 통합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이다. 다소 매몰찬 반응까지 내보였다. “(나경원을)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다.” 모두가 ‘그러면 그렇지’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자존심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유승민. 누구의 등쌀에 떠밀려 움직일 인물이 아니다. 2015년 4월 8일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행한 국회 연설과 그 이후 파장은 유승민 자존심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이다. 연설에서 그는 먼저 대통령이 주장한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직격했다. 대안으로 ‘중부담-중복지’를 제시한 뒤 증세 방침을 시사했다. 당을 친서민으로 분명히 ‘좌클릭’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새누리당 의석에서 웅성거림이 커질 때쯤 그의 목소리가 정점을 쳤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저는 매일 이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진다. 저는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었다.” 말이 끝나자 야당 의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유승민, 자존심만 내세우기엔 나라의 ‘위기’ 심각

대통령 박근혜는 격분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사상 초유의 여당 원내대표 ‘찍어내기’로 치달았다. 쫓겨나면서도 그는 오히려 당당히 말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제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이 말이 “매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나름의 확고한 정치신념과 원칙에 기초한 유승민의 자존심은 그를 개혁보수의 선두 주자로 내몰았다. 박근혜 탄핵 찬성, 바른정당 창당, 2017년 대선 출마, 안철수와의 중도보수 통합, 바른미래당 대표 손학규와의 노선 갈등까지. 이 모든 과정에도 부러질지언정 절대 굽히지 않는 그의 신념과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당연히 향후 보수 통합과정에서도 유승민의 자존심은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속된 말로, 그가 통합에 ‘꽂히면’ 이를 밀어붙이는 강한 추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친박을 비롯한 적잖은 보수인사들은 그 자존심을 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다. 절대권력 대통령과 ‘맞짱’도 불사하는 정치적 도발(?)이 사실은 유승민의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의심마저 숨기지 않는다.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차세대 개혁보수 리더로 발돋움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머지 동료들은 졸지에 ‘수구꼴통’이 돼 버리는 모양새가 됐다. 상당수 친박이 그에게 배신론을 들먹이는 이유다.

그러나 유승민은 냉정하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수구 보수’의 인적 쇄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보수 가치 혁신을 내세우며 단 한 걸음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선(先)혁신, 후(後)통합’ 기조다. 아직도 세력적 우위에 있는 친박들로선 죽었다 깨어나도 그와 손잡을 순 없다. 이 답답한 국면을 깨기 위해 나온 게 나경원의 ‘무조건 뭉쳐야 산다’는 선통합론. 친박 무마를 위한 카드로는 유승민의 수도권 험지 출마를 내밀었다.

이에 유승민은 짐짓 차가운 반응을 내보였지만, 그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자존심만 내세우기엔 나라의 ‘위기’가 심각한 탓이다. 그는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무능과 독선의 2년”으로 규정한 입장문을 밝혔다. “경제와 안보, 나라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함께할 정치세력이 없었던 것이다. 보수중도 개혁을 기치로 자신이 만들었던 바른미래당은 심각한 내분으로 정치적 식물상태. 혁신 노력조차 없는 한국당으로 무턱대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일.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나경원을 신호탄으로, 기다렸다는 듯 비박과 원외 수도권위원장들은 저마다 한국당 복당을 채근할 태세다. 나라의 안위를 명분 삼고, 애끓는 동료들의 손짓을 기회로 전격 통합으로 유턴할 찬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여건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 당장 황교안의 화끈한 구애가 없다. 무엇보다 그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 그러기엔 그의 자존심이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안철수의 모호성


▎지난 5월 건국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년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박형준 동아대 교수(왼쪽 둘째). 박 교수는 최근 황교안·유승민·안철수 3인 연대를 제안했다.
보수 통합론과 관련해 유승민 못지않게 급부상한 인물이 있다. 바로 안철수다. 지난해 서울시장 도전 실패 뒤 독일로 훌쩍 떠났던 그는 8월 말 또는 9월 초 돌아올 예정이다. 이미 보수 정치판에선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어엿한 정치적 실체로 복귀한 느낌이다. 얼마 전 보수 재편 시나리오로 나돈 ‘5인 신당설’에 느닷없이 그가 등장한 게 대표적 사례. 유승민·김무성·원희룡·남경필과 함께였다. 그를 빼곤 모두 보수정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 굳이 그가 낀 이유는 중도 가치 때문으로 보인다. 친박을 제외한 신당이 만들어진다면 보수에다 중도까지 아울러야 승산이 있다는 셈법인 것이다.

황교안·유승민·안철수 3인 연대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역할은 ‘중도보수신당’ 구색 맞추기쯤으로 인식됐다. 이젠 그를 아예 보수 통합 주류로 떠올리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나경원 발언으로 보수 진영이 요동치면서 여기저기서 “안철수도 함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당 비박 중진 김영우는 나경원에 적극 찬성하면서 “안철수와의 의기투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모든 보수 세력을 담는 보다 큰 그릇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예 ‘황교안·유승민·안철수 3인 연대’를 전 보수 차원에서 추진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보수의 혁신과 통합을 내건 ‘플랫폼 자유와 공화’ 모임을 이끄는 이명박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의 발상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의 진보 연대 불가론과 함께 결단을 이렇게 촉구했다. “안철수는 지금 권력에 대한 가능성을 키워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안철수 선택에 따라 국면이 확 달라질 수 있는 시기다. 그가 중도·보수 통합 과정에 함께한다면 시너지를 낼 것이다. 안철수가 문재인 정권 세력과 함께할 수 없는 건 분명하지 않나.”

정작 안철수는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 그의 생각을 알고자 잔뜩 촉각을 세웠던 언론과의 접촉마저 철저히 피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누구보다 답답한 쪽은 역시 그가 만든 바른미래당이다.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당권파 문병호는 “조기에 귀국해 바른미래당을 총선 승리의 길로 이끌어 달라”고 읍소했다. 쉽게 해석하면, 보수 통합과 거리를 둬 달라는 얘기다.

비당권파 하태경 역시 조기 귀국을 종용하면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정치권의 갈등이 정리되고 정계 개편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돌아오면 오히려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보수 재편 과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야 살길이 열린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사실 ‘안철수의 모호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혜성같이 정계에 등장했던 2011년 서울시장 보선 때부터 출마 여부를 두고 여러 사람 애를 태웠다. 2012년 문재인과의 단일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2016년 총선 국민의당 돌풍, 2017년 바른미래당 창당, 2018년 서울시장 선거까지. 정치적 고비마다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특유의 모호함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전법을 구사했다.

그래서 나온 반대세력 측에선 나온 말이 ‘간보기 정치’. 보수 통합 국면에선 그의 모호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진보를 거쳐 중도까진 몰라도, 보수와의 통합은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그로선 정치적 대모험일 수밖에 없다. 결과가 안 좋을 경우 ‘정치인 안철수’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명분도 명분이지만, 그에 걸맞은 정치적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수의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확실한 기회와 안정적 여건 말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누가 이를 장담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보수 통합의 새로운 고민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의 배신자론


▎한때 국정을 함께 이끌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현재 보수 통합 논의에서 일단 우리공화당은 논외의 대상으로 보인다. 물론 황교안은 8월 6일 경북 영천에서 “(한국당, 바른미래당, 우리공화당) 셋으로 나뉜 우파가 총선까진 하나 돼야 한다”며 대통합을 역설했다. 바로 다음 날 나경원이 유승민과 통합을 언급했다. 우리공화당에게 향하려던 당과 언론의 시선이 순간 유승민에게로 돌아가 버렸다.

살아 있는 변수 박근혜의 선택은?

‘의문의 1패’를 당한 우리공화당으로선 부글부글 끓었다. 공동대표 홍문종이 공개적으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다음 총선에서 (중략) ‘죽을 각오로 (한국당+바른미래당과) 맞서 싸우겠다.” 정작 보수 안팎에선 의례적 반발쯤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이 분노가 박근혜의 심정을 대변한다면 상황은 의외로 심각할 수 있다. 정치인 박근혜를 만든 8할, 그 이상이 배신에 대한 분노였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10·26사건으로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뒤 겪어야 했던 염량세태를 배신으로 규정했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믿음과 신의를 한번 배신하고 나면 그 다음 배신은 더 쉬워지면서 결국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박근혜 저서 [절망은 나를 단련 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배신자들에 대한 분노를 곱씹으며 복수의 칼을 갈아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집권 후에도 배신을 준거로 세상을 판단하는 버릇은 버리지 않았다. 툭하면 국민들에게도 배신자 심판을 주문하곤 했다. 때문에 탄핵에 앞장선 배신자들을 그가 용서하리란 만무한 일. 단순히 대통합 거부가 아니라 배신자들과 손잡은 보수 정파 모두와 정말 “죽을 각오”로 싸울 수 있다. “‘박근혜 뜻에 따라’ 당명을 채택했다”는 우리공화당이 있는 한 옥중투쟁의 한계쯤은 가볍게 뛰어넘을 것이다. 우리공화당 입장에서도 배신자들과의 전쟁 독려가 담긴 ‘박심(朴心)’은 지지층을 모으고 당을 유지하는 ‘절대무기’다. 보수 통합 과정에서 박근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주요 변수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 jwhn20@naver.com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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