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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 (제1부 광복) 

제17장 국치일 행사 (4) 

서양 세력의 도래에 대한 반응들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었지만, 태평천국의 난과 동학란은 실패했고 무진전쟁은 성공했다. 그런 결과는 이후의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자연히, 동아시아의 근대 역사를 이해하려면, 서양 문명이 다른 문명들보다 크게 앞서게 된 사정을 먼저 살피고 이어 일본이 성공한 사정을 살피는 것이 합리적이다.
태평천국의 난은 청 왕조와 관리들이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아편전쟁에서의 참패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허망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태평천국의 과감한 개혁은 중국이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강대해질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사정에 힘입어, 청의 실력자로 등장한 한인 관료들과 지식인들은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양무운동’은 근본적 사회 개혁에 이르지 못했다.



동학란은 서양 문명을 거부하고 전통적 질서를 고수하려는 종교인 동학이 주도했다. 자연히, 동학란은 조선이 서양문명을 받아들여서 근대화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반어적으로, ‘척왜양’을 구호로 내건 동학란은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는 계기가 되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되는 과정을 촉발했다. 그 과정에서 근본적 개혁 조치인 갑오경장이 나오게 되어, 조선은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밟게 되었다. 이런 ‘타율적 근대화’는 조선 현대사의 중심적 특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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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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