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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대기자의 ‘셰익스피어 이야기’(1)] 로맨틱 코미디 '한여름 밤의 꿈' 

“참된 사랑은 순탄히 흐른 적이 없다” 

세 쌍의 뒤죽박죽 뒤엉킨 러브스토리 해피엔딩… 인간 운명은 꿈속에서도 마냥 자유롭지는 않아

연재를 시작하며…
글로벌 문학의 최고봉은 셰익스피어(1564~1616)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경우 셰익스피어는 [성경]과 호메로스와 더불어 트로이카를 이룬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서구 특히 영국의 패권을 물려받은 현 패권국가 미국이 영어를 쓰기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과대평가됐다는 의견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능한 한 빨리 셰익스피어를 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65세는 넘어야 셰익스피어를 읽을 자격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왜 셰익스피어일까. 셰익스피어를 직접 읽어볼 수밖에 없다. 이번 연재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그의 주요 작품속으로 들어간다. 소개만 할 뿐이다. 직접 연극을 보고 직접 희곡을 읽어보고 직접 판단하는 주인공은 언제나 독자다.


▎존 시먼스(1823~1876)가 그린 ‘허미아와 라이샌더’(1870). / 사진:소더비
로맨틱 코미디인 [한여름 밤의 꿈]을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소개한다.

-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지은 희곡. 숲속 요정들의 도움으로 두 쌍의 젊은이들이 사랑을 이루어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모두 5막으로 되어 있다.”

- “멘델스존이 작곡한 관현악곡. 셰익스피어가 지은 같은 이름의 작품에 붙인 곡이며, ‘결혼 행진곡’은 그 한 부분이다.”

사랑도 인생도 결국엔 봄이나 여름에 꾸는 꿈이다


▎[한여름 밤의 꿈]의 한글판 표지.
우리는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신부·신랑이 퇴장할 때 ‘한여름 밤의 꿈’을 듣는다. 그런데 ‘한여름’이란 무엇일까.

‘한’은 여러 단어에 ‘크다·정확하다·한창이다’는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접두사 한이 붙은 단어로는 한가득·한가운데· 한가위·한걱정·한길·한바탕·한시름·한낮·한밤 등이 있다.

한국(韓國)의 ‘한’또한 ‘크다·정확하다·한창이다’와 연관성이 깊을 것이다.


▎에드워드 포인터(1836~1919)가 그린 ‘헬레나와 허미아’(1901). / 사진:구글 아트 프로젝트
‘한’은 한봄(봄이 한창인 때), 한여름(더위가 한창인 여름), 한가을(한창 무르익은 가을철), 한겨울(추위가 한창인 겨울)의 경우처럼 계절 구분에도 쓰인다.

꿈이란 또 무엇일까.

인생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일장춘몽은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꿈을 꾸기 위해서는 ‘일장(一場)’이 필요하다. 일장은 “어떤 일이 벌어진 한 판”이다. 일장에서 장(場)은 마당이다. 마당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셰익스피어에게 마당은 무대(stage)였다.

장(場) 중에서도 최고의 한마당은 난장(亂場)이다. “여러 사람이 어지러이 뒤섞여 떠들어 대거나 뒤엉켜 뒤죽박죽된 곳”인 난장은 우리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꿈속 세상은 뒤죽박죽이다. 난장판이다. 현실 세계와 달리 공간·시간·인과율이 마구 엉켜 있는 게 꿈 세계다.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을 중국에서는 ‘중하야지몽(仲夏夜之夢)’으로 번역했다. 중하(仲夏)는 “여름이 한창인 때라는 뜻으로, 음력 5월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중국어 번역 ‘중하’가 ‘한여름’보다 영어 ‘midsummer’에 더 가깝다. midsummer는 양력 6월 21일경에 떨어지는 하지(夏至)를 가리킨다. 반면 ‘한여름’은 ”더위가 한창인 여름”이다.

꿈이란 무엇인가.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이요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요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작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했지만 “꿈은 아편이다”라고 할 수도 있다. 종교나 꿈은 결코 ‘헛된 기대나 생각’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고등 종교는 문명과 사실상 동의어였다. 목사인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1929~1968)는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아포리즘으로 세상을 바꿨다.

루서 킹 목사의 꿈은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이 없는 세상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꿈’은 ‘자유 연애결혼’라 할 수 있다. 계급과 신분, 재산의 차이는 ‘자유 연애결혼’을 방해한다.

상당수 부모들이 계급·신분·재산의 차이를 빌미 삼아 자식들의 결혼을 반대한다. (21세기인 오늘도) 전형적인 경우로는 ‘나이 많고 못생긴 부자 사위’를 바라는 부모와 ‘젊고 잘생기고 가난한 남편감’을 바라는 자식 사이에 갈등이 있다.

‘한여름 밤의 꿈’은 계급·신분·재산의 차이를 일단 무시해버린다. 오로지 맞사랑(서로 주고받는 사랑)과 짝사랑(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한다.

‘한여름 밤의 꿈’은 (1) 두 쌍의 귀족 자제들의 결혼 (2) 왕과 여왕의 결혼 (3) 부부싸움 중이던 또 다른 왕·여왕 커플의 화해로 끝난다. 주인공들은 모두 왕족·귀족이다. 계급·신분·재산상의 차이가 거의 없다.

소풍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결혼식 기다린 테세우스


▎에드워드 헨리 랜드시어(1802~1873)가 그린 ‘티타니아와 보텀’(1848~1851). / 사진:구글 아트 프로젝트
극이 시작할 때 고대 아테네의 군주 테세우스는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와 결혼을 4일가량 앞두고 있다. 테세우스는 아마존 종족을 정복했다. 히폴리테는 일종의 ‘전리품’이다. 그런데도 둘 사이에 별다른 갈등은 없다. 테세우스는 히폴리테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히폴리테여, 나는 그대를 내 칼로 구애했소. 그리고 그대의 사랑을 상처를 입힘으로써 얻었소(Hyppolyta, I have wooed thee with my sword. And won thy love by doing the injuries.)” 21세기 기준으로 좀 이상하다.

소풍을 기다리는 초등학생처럼 결혼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테세우스 앞에 골치 아픈 민원이 들어온다.

명망 있는 귀족 이지어스가 나타나 딸 허미아가 귀족 자제 드미트리어스와 결혼하도록 압력을 넣어달라고 요청한다. 아버지는 드미트리어스를 사위 삼는 게 꿈이다. 딸은 라이샌더와 결혼하는 게 꿈이다. 라이샌더도 허미아와 결혼하고 싶다. 맞사랑이다.

드미트리어스도 허미아와 결혼하는 게 꿈이다. 하지만 허미아는 드미트리어스가 별로다. 드미트리어스의 사랑은 짝사랑이다. 짝사랑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또 다른 짝사랑이 있다. 허미아의 절친인 헬레나가 드미트리어스를 짝사랑한다.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어스 둘 다 귀족이다. 하지만 허미아는 라이샌더만 사랑한다. 헬레나는 키가 크고 금발이다. 허미아는 키가 작고 머리는 검은색이다. 그 외에 다른 예비 신부로서 자격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어스 모두 허미아를 점 찍었다. 왜일까.

인간의 선호(選好) 감정은 미스터리다. 그냥 싫고, 그냥 좋은 경우가 많다. 연애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이상하게 싫거나 좋은 상관·부하가 있다. 똑같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더 애틋한 자식이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은 더 아픈 손가락,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진실을 감춘다. (셰익스피어는 많은 경우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미스터리를 드러낼 뿐이다.)

이지어스는 딸 입장에서 나쁜 아빠다. 아테네 군주 테세우스 앞에서, 허미아가 국법에 따라 드미트리어스와 결혼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 중에서 양자택일하라고 압박한다. 현명하고 온건한 군주인 테세우스도 나라의 전통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테세우스는 한 가지 옵션을 더 제시한다. 여사제가 되어 평생 독신으로 사는 것.

드미트리어스와 결혼하는 것도, 죽는 것도, 여사제가 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기로 약속한다. 일단 숲에서 만나기로 한다. 허미아에게 헬레나는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절친이었다. 헬레나는 드미트리어스와 사랑에 빠졌기에 그의 0.1초 미소가 아쉬웠다. 헬레나는 드미트리어스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허미아의 도피 계획을 밀고한다.

이 두 쌍이 들어간 숲은 한마디로 난장판이 된다.

숲에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가 테세우스·히폴리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 있었다. 오베론 왕에게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잠든 사람의 눈꺼풀에 뿌리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 보는 동물이나 사람을 미치도록 사랑하게 만드는 묘약이었다.

마침 오베론-티타니아 커플은 부부싸움 중이었다. 오베론은 부하 퍽에게 명령해 아내 티타니아에게 물약을 뿌리도록 명령한다. 잠에서 깨어난 티타니아는 당나귀 머리를 한 보텀을 사랑하게 된다. 숲에서 마침 평민들이 테세우스의 결혼식을 축하할 연극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중 보텀이 가장 개성 있는 인물이었다.

오베론 왕은 우연히 헬레나와 드미트리어스가 옥신각신하는 말을 들었다. 헬레나에게 측은지심을 느낀 그는 퍽에게 드미트리어스의 눈에 약물을 뿌리라고 명령한다. 퍽은 실수로 드미트리어스가 아니라 라이샌더의 눈에 약을 뿌렸다. 라이샌더가 잠에서 깼을 때 눈에 보인 것은 헬레나였다. 퍽은 실수를 바로잡고자 원래 명령대로 드미트리어스에게 약을 분사했다. 드미트리어스 또한 처음 본 것은 헬레나였다.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3쌍의 합동결혼식으로 끝나


▎윌리엄 블레이크 (1757~1827)가 그린 ‘오베론·티타니아· 퍽과 춤추는 요정들’ (1786년경). / 사진:테이트
사랑의 묘약 때문에 ‘전과 후(before and after)’가 완전히 달라졌다. 두 남자 모두 허미아를 사랑하던 상황에서, 두 남자 모두 헬레나를 사랑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결국 [한여름 밤의 꿈]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테세우스-히폴리테, 허미아-라이샌더, 헬레나-드미트리어스가 합동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한여름 밤의 꿈’은 1594년 혹은 1595년에 집필됐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거의 같은 시기다. 비극으로 끝나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달리 [한여름 밤의 꿈]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마도 귀족의 결혼식 축하 공연을 위해 쓴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여름 밤의 꿈]의 극중극(劇中劇)인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가장 통탄할 코미디와 가장 잔인한 죽음(The Most Lamentable Comedy and Most Cruel Death of Pyramus and Thisbe)’은 비극이다.

권력은 사랑에 간섭한다.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에서 설정한 아테네에서도 숲에서도 권력은 사랑에 간섭한다. 양쪽 세계 모두 정치적이다.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다. 근대화 이전에 권력의 정점은 군주다. 아테네의 군주 테세우스는 처음에는 이지어스의 손을 들어준다. 극의 마지막에서는 허미아-라이샌더 편을 들어준다. 숲의 군주 오베론 또한 사랑에 개입한다. 허미아-라이샌더, 드미트리어스-헬레나 커플을 만든 것은 결국 오베론의 개입이다. 주권재민의 시대에는 과연 ‘자유연애 결혼’이 권력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까.

사랑의 세계는 마술의 세계이자 지극히 이성적인 세계


▎조지프 노엘 패턴(1821~1901)이 그린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다툼’(1849). / 사진:구글 아트 프로젝트
이성과 감정도 사랑에 개입한다. 아테네가 상징하는 도시는 이성, 숲이 상징하는 자연은 비이성을 상징한다. 아테네는 낮, 숲은 밤이다. 아테네는 코스모스, 숲은 카오스다. 흥미로운 점은 아테네보다 숲속에서 오히려 인과율이 더 잘 작동한다. 아테네에서는 귀족 자제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끌린다. 숲 속에서는 사랑의 묘약이 원인, 사랑이 결과다.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사랑은 마법·마술이다. 매직이다. 사랑에는 분명 비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랑은 이성적이기도 하다. 숲에서 드미트리어스와 라이샌더 둘 다 헬레나를 좋아하게 되지만, 헬레나는 반기지 않는다. 두 남자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변화에도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사랑에도 변덕이 있다. 남자도 여자도 변덕스럽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드미트리어스는 헬레나에서 허미아로, 허미아에서 헬레나로 그를 눈멀게 하는 대상이 바뀐다. 반면 대조적으로 헬레나와 허미아의 사랑은 바뀌지 않는다. 마법의 영향 하에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는 당나귀 얼굴을 한 보텀을 사랑한다. 둘 사이에는 에로틱한 기운이 흐른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둘의 불륜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사랑과 관련해 여성은 남성과 달리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성들이 바라는 신화에 동조한 것일까.

세상은 자유와 평등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랑의 영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사랑의 평등’은 영원히 누릴 수 없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은 맞사랑을 향유하고 어떤 다른 사람은 짝사랑만 해야 하는 것일까.

당시 사람들은 상당수가 숲의 요정을 믿었다. 요정은 “서양 전설이나 동화에 많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닌 초자연적인 존재”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으로 유명한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근대를 탈마술화(Entzuberung·disenchantment)라는 개념으로 살폈다. 근대가 탈마술화라면, 어쩌면 탈근대는 재마술화의 과정을 거쳐야 할지 모른다. 마침 숲은 상상력의 세계다. 소위 제4차 산업시대나 인공지능(AI) 시대에서 생존과 가장 밀접한 것은 상상력이다.

시대를 초월해 극 중의 다음 두 마디는 항상 옳은 것 같다.

-“사랑은 눈을 통해 보지 않는다(Love looks not with the eyes).” - 헬레나

-“참된 사랑은 순탄히 흐른 적이 없다(The course of true love never did run smooth).” - 라이샌더

※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중앙일보에 지식전문기자로 입사, 심의실장과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서강대·한경대·단국대 등에서 강단에 섰다.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등이 있다.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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