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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특별기고] 법무장관 임명에서 드러난 청와대 검증 시스템 파행의 전말 

조국을 살리려고 靑 인사검증 시스템 죽이나 

‘명백한 위법행위’로 후보자 적격 판단하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인사검증 무용지물
靑 인사검증 탈락 후보자가 “조국 장관도 통과했는데”라고 항의한다면 할 말 있나?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월 9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직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필자는 얼마 전에 모 언론사 데스크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놓고 내기를 한 적이 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조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바람에 필자가 이겨서 푸짐하게 술을 얻어먹었다. 알고 보니 주변에서도 조 후보자의 장관 임명 여부를 놓고 내기를 건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만큼 지난 1달여 동안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여부는 한국 사회를 휩쓴 최대 화두였다.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래 수많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봤지만 조국 장관만큼 임명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후보자는 본 적이 없다.

다른 후보자들과는 다르게 조 후보자는 인사 청문 요청안이 국회에 제출되자마자 각종 대형 의혹이 줄을 이었다. 부동산 위장매매 의혹, 사모펀드 문제, 위장전입 의혹, 딸의 장학금과 논문 문제, 대학 및 대학원 부정입학 의혹까지 번져 부정적인 여론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통상 일간지가 서너 개 지면 기사 전부를 조 후보자에 대한 의혹으로 덮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어떤 날에는 1~8면 모두가 조 후보자의 기사로 도배를 하는 때도 있었다. 기사 하나에 댓글이 수천 개씩 달리는 일이 예사였고, 비판 댓글에는 국민의 상실감과 배신감이 깊게 묻어 나왔다. 더구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이 후보자의 주변을 압수수색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여권도 총력전에 나섰다. 초기에는 여권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조 후보자를 옹호하던 분위기였으나 어느 시점 돌변해 청와대와 여당, 각계각층의 여권 지지자들이 총결집하는 모양새로 조 후보자를 감싸고 나섰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현재 검찰총장을 검찰개혁의 최적임자로 떠받들던 여권이 검찰 수사를 향해 ‘미쳐 날뛰는 늑대’, ‘내란음모죄 수사 수준’과 같은 격한 반응을 쏟아 냈다.

청와대의 200여 개 검증 항목은 어디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9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속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 가족관계증명서를 찢은 뒤 던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조국 사태’라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태는 험악한 지경으로 치달았다. 조국 후보자가 비록 법무부 장관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장관 자신뿐만 아니라 여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면서 3년 동안 약 1천 명에 이르는 고위공직자 후보들을 직접 검증한 경험이 있다. 동료 행정관들이 검증한 공직 후보자까지 포함하면 약 1만 명 정도의 검증 결과를 살펴보았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직업군과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들을 검증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국회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100명에 가까운 인사청문 후보자들을 지켜봤다. 장관 후보자들은 당연하고 국무총리 후보자, 대법원장 후보자,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등 대통령을 제외한 대한민국 최고의 공직 후보자들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다.

필자가 청와대에 재직하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청와대에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공직자들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학생이 시험을 치는데 출제 범위와 시험 문제도 모른 채 시험을 치르는 것과 똑같았다. 그래서 청와대를 떠난 후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과 공직자의 자기관리 방법을 담은 [공직의 길]이라는 책도 쓰게 되었다. 일부 부처에서는 장관의 지시로 국장급 이상 모두 책을 사 봤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많은 이가 연락해와 검증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최근 조국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도 주변에서 필자에게 많은 사람이 물어 왔다.

“청와대에서 조국 후보자 검증을 하기는 했을까?”

“과연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장관으로 밀어붙일까?”

필자도 궁금했다. 이런 ‘조국 사태’는 왜 일어나게 된 것이며,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해를 돕기 위해 청와대 인사검증 프로세스를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지금은 세부적으로 일부 변화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체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검증 과정을 유추하자면 이렇다.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 인사검증은 인사수석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로 검증을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는 가장 먼저 후보자에게 연락해 후보자와 배우자, 그리고 직계존비속의 서명이 포함된 개인정보 제공동의서와 부동산과 금융자산 보유내역, 논문 등의 자료와 200여 개 항목의 자기검증진술서 등을 제출받는 것으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된다.

후보자가 제출한 개인정보제공동의서를 첨부하여 후보자의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법원, 검찰, 국세청, 경찰, 행정안전부 등 약 14개 기관을 대상으로 각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30여 종류의 자료를 모두 제출받게 된다.

후보자가 쓴 논문이 있을 경우에는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를 활용해 표절 여부를 꼼꼼히 살피게 된다. 땅 투기 의혹이나 농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현장에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고서를 만들기도 한다. 가능한 모든 자료를 검토해 위법사항이나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사항을 중심으로 최종 보고서를 만들게 되는데 분량이 많을 때는 A4용지 5장을 넘을 때도 있다. 그리고 보고서 마지막에는 각종 문제점을 간략히 종합하고 후보자의 적합 여부를 행정관 회의를 통해 최종 판단하게 된다.

청와대 행정관들은 조국 검증에 최선을 다했을 것


▎조국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의 딸 표창장 발급 의혹을 조사해온 동양대 진상조사단 권광선 단장이 조사내용 발표 전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만들어진 보고서는 민정수석실 내부의 결재라인을 거쳐 확정되고, 이 자료가 인사수석실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인사추천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인사추천 위위원회에서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서를 기초로 다시 한번 후보자 적합 여부를 논의하게 되며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현재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은 과거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4가지 평가 기준이 있었는데, 첫째 ‘문제없음’, 둘째 ‘다소 부담’, 셋째 ‘부담’, 넷째 ‘문제 있음’ 순이었다. ‘문제없음’이란 공직자로 임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자질이나 도덕성 문제에서 우수하다는 의미이고, ‘다소 부담’은 약간의 문제 소지는 있지만 공직자로 임명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리고 ‘부담’은 가능한 한 공직자로 임명하지 말라는 의미이고, ‘문제 있음’은 공직 후보자로서 자격이 없으니 임명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필자가 만약 청와대에서 조국 후보자를 검증했더라면 ‘문제 있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사모펀드 문제는 공직자의 도덕성을 넘어서 위법 가능성까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 경남선경아파트와 해운대 빌라 문제는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 가능성이 있고, 특히 딸의 대학과 대학원 입학 문제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큰 논란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위장전입 의혹, 논문 표절 의혹, 강릉 임야 투기 의혹 등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면 ‘문제 있음’ 외에는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조국 후보자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많은 사람이 필자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말이 “청와대에서 과연 조국 후보자의 인사검증을 했을까?”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청와대에서는 당연히 인사검증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자신 있는 후보라도 청문회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검증하지 않고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내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단계는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수준에서 후보자의 자질과 위법성, 그리고 도덕적으로 문제 될 만한 사실들을 밝혀내는 기술적 검증 과정이다. 보통 청와대 인사검증을 얘기할 때는 바로 첫째 단계를 말한다,

둘째 단계는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검증한 결과를 놓고서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다시 한번 검토하고,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대통령께 보고한 후 재가를 받는 과정이다. 인사추천위원회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관하며 민정수석, 인사수석, 정무수석 등 청와대 최고위직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느 검증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1단계인 공직기강비서관실 인사검증은 담당 행정관이 본인 책임하에 직접 검증을 해야 하고 만약 하나라도 부실한 검증 사실이 드러나면 자신이 문책을 받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필자의 청와대 근무 시절도 그랬다. 동료 행정관이 실수로 논문 표절 1건을 누락했는데도 심한 질책을 받고 경위서까지 제출했을 정도다. 특히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들은 각 기관에서 차출된 최고의 실력자들로 구성되기에 조국 후보자의 각종 의혹은 충분히 사전에 검토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국정원 ‘세평보고서’를 안 받았다면 정보 왜곡 가능


▎검찰 관계자들이 8월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 운용사 사무실 압수 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 상자를 옮기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 조국 후보자의 각종 의혹을 밝혀내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필자도 이미 지난해 3월 전자관보에 공개된 조국 민정수석의 재산을 보고서 가족들이 사모펀드에 10억5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한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경남선경아파트 매입자와 조국 후보자의 모친이 전세로 거주하는 빌라의 소유주가 동일인이었기에 위장매입을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인사검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재산 공개 내역을 10분 정도만 들여다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인사검증에서 주요 대상이 되는 인물들은 후보자의 배우자는 물론, 직계존비속도 포함된다. 그래서 웅동학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나 장학금과 관련된 의혹들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언론 보도를 보면 딸이 부산대 의전원 재학 시절 이미 학내에서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다고 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혹들은 사정 기관이 제출하는 세평(世評) 보고서를 통해 파악되는 게 상식이다.

웅동학원을 둘러싼 문제점들도 후보자의 모친이 이사장이었기 때문에 운영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점은 없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검증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필자가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에는 후보자와 그 가족들을 둘러싼 ‘세평(世評) 보고서’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두 개 기관에서 동시에 받아 크로스 체킹을 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국가정보원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구멍이 생기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두 개 기관에서 자료를 받아 크로스 체킹을 하게 되면 기관 간의 자존심이나 경쟁심 때문에 보고 내용의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더구나 왜곡된 정보 보고가 올라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필자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결정한 책임은 2단계 인사검증의 구성원들에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올해 3월에도 장관 후보자 7명 중에서 2명이 인사청문회를 앞둔 국회와 언론의 검증과정에서 도덕성 등의 이유로 중도하차를 했다. 당시에도 청와대의 부실검증이 도마에 올랐으며, 민주당 지도부조차도 “청와대 검증이 더 철저해져야 한다”, “깊은 성찰과 자성의 계기로 삼겠다”는 등의 입장을 밝혔었다.

만약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인사검증이 부실하여 그러한 참사가 일어났더라면 아마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내부에서 대대적인 개편 작업과 함께 좀 더 완벽한 인사검증 시스템으로 보완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공직기강 비서관실에서는 철저한 검증을 했으나 그 결과를 놓고 과연 장관 후보자로서 적합한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이 안이한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데 더 큰 무게를 두고 싶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강력히 밀어붙였을 가능성도 있다.

필자가 청와대 근무 시절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불가’하다는 보고서를 올렸으나 대통령이 이러한 의견을 무시하고 본인이 꼭 쓰고 싶은 사람이라며 인사를 강행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들이 민정수석을 찾아가서 “대통령을 설득하시라”고 건의했고, 당시 모 민정수석은 서류철을 들고 대통령 집무실로 찾아가 강력히 설득한 끝에 대통령이 후보자 지명을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인사권자가 후보자를 선택할 때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령 A 후보는 도덕성은 높으나 직무수행 능력에 있어서 문제가 있고, B 후보는 도덕성에는 좀 모자라지만 직무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때 인사권자로서 어떤 후보를 선택하는가는 정말 어려운 문제다. 물론 도덕성도 뛰어나고 직무수행 능력도 뛰어난 후보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후보자를 고를 때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법, 체면 또는 위신을 손상하는 공무원 징계


▎9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지원 의원이 조국 후보자 딸이 받았다는 표창장 사진을 보도진에게 공개하고 있다.
조국 후보자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더라면 민정수석 임명 당시와 이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인사검증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정상적인 정권 이양기를 거쳤기 때문에 시간 부족으로 민정수석 임명 당시 제대로 된 인사검증을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기 위해서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인사검증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조국 후보자가 민정수석 재직 시에 사전 인사검증을 거쳤든, 민정수석 퇴직 후에 인사검증을 거쳤든 본인의 문제점을 몰랐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담당 행정관이 검증 과정에서 각종 의혹에 대해 꼼꼼히 묻고 소명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다만, 조국 후보자 또한 본인의 흠결을 너무 안이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8월 14일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이 국회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언론으로부터 사모펀드 문제, 경남선경아파트 위장 매매 의혹, 위장전입 의혹 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언론 보도에 대해 조 후보자 측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이뤄진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딸의 논문과 대학-대학원 입학 문제 등이 불거져 나왔을 때도 ‘송구하지만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정수석을 지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합법과 불법을 따지는 것은 일반 국민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공직자라면 합법, 불법을 넘어서는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이 있다. 국가공무원법에도 공직자는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체면 또는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징계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혼도 자유지만 주변에서 손가락질받는 이혼은 공직자에겐 흠결 사항이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이혼 경력이 있던 공직 후보자를 검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후보자의 전(前) 장인 되는 사람이 후보자의 결혼 생활과 이혼 과정을 A4 10장 분량의 손편지로 적어 청와대로 보내며 “이런 사람은 고위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하소연해 왔다. 확인해 보니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 그 후보자를 고위공직자 승진에서 탈락시킨 적이 있었다.

본인의 자산 운용도 건전하고 안전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 투기하거나 손실 가능성이 큰 위험한 투자는 금기시된다. 왜냐하면 혹시나 투자 과정에서 큰 손실을 보거나 많은 빚을 지게 되면 공직자 본연의 업무수행에 지장을 받게 되고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필자가 청와대에 근무할 기간에도 고위험 금융상품인 파생상품에 1억원가량 투자한 공직자에게 매각 완료 후 승진하도록 조치한 적이 있다.

조국 후보자의 배우자가, 그것도 민정수석 재직 시절에 고위험 금융상품에 본인의 재산 5분의 1이나 되는 10억5000만원을 투자하고 74억원이나 되는 금액을 투자하기로 약정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장관 후보자로서 자질을 의심받을 수 있다. 또 딸과 관련된 문제 등도 본인의 서울대 교수 시절에 일어났다. 서울대 교수도 고위공직자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공직 후보자들이 법률 위반이 아니라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낙마했는지는 조국 후보자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도 합법적으로 받은 수임료가 너무 과하다는 지적을 받아 총리 후보에서 물러났다.

필자는 조 후보자의 답변 중에서 석연치 않거나 나중에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높은 발언들을 찾아봤다.

조국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무산될 상황이 되자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배우자와 자식들이 투자했던 사모펀드 운용사인 (주)코링크PE에 대한 답변에서 “코링크란 이름 자체를 이번에 알게 됐고, 사모펀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후보자로 지명되고 난 뒤에 보도 나고 본 거 같다”고 말했다. 관보에 게재된 재산 공개 내역에서도 보지 못했느냐는 질문에는 “재산의 상당 부분이 제 처여서 세 번 모두 처가 신고했다”고 답변했다.

그래서 2018년과 2019년 3월 전자관보에 각각 공개된 조 후보자의 재산 공개 내역을 찾아보니 배우자와 딸, 아들의 예금 부문에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라는 회사명이 뚜렷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명의로 제출한 이번 인사청문요청안에는 예금기관과 예금 종류를 적는 칸에 ‘블루코어 밸류업1’, ‘납입출자금’이라고 각각 적혀 있었다.

공직자 재산 신고시 후보자 본인의 이름을 적고 날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9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철회를 촉구하며 피케팅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공직자 재산 신고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재산 신고 방식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필자도 20여 년간 재산 신고를 해 본 경험이 있지만 재산 신고를 할 때마다 규정이 조금씩 바뀌면서 매번 감사관실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을 정도다. 특히 처음 재산 신고를 하는 사람은 펀드가 예금 부문에 포함되는지, 아니면 유가증권의 일종인지도 잘 모르며, 전세는 어떻게 기재해야 하고 자동차 가액은 또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고서 제대로 신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조 후보자는 재산 신고 경험이 없는 배우자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자신은 보지도 않았다고 하니, 재산 신고를 해 본 사람이라면 믿기 어려운 말이다. 게다가 본인의 재산이 공개된 관보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은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공직자 재산 신고는 온라인상으로 하기 때문에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가능한 것은 맞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요청안의 재산 내역 작성은 온라인상에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보통은 후보자를 위해 마련해 둔 사무실에서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게 되며, 재산 신고 마지막 장에 ‘국회의장 귀하’라고 쓰여 있는 바로 윗부분에 후보자 본인의 이름을 적고 날인하게 된다.

따라서 인사청문요청안에 포함되어 있는 재산 신고 사항을 조 후보자의 배우자가 직접 작성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인사청문요청안의 각종 서류는 후보자도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조 후보자도 사모펀드 부분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조국 후보자를 지명하기 전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당연히 했을 것이다. 검증 과정에서 청와대 검증 담당 행정관이 조 후보자에게 사모펀드에 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면 이는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며,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만약 담당 행정관이 절차에 따라 사모펀드의 투자 경위 등에 대해 조 후보자에게 물어봤는데도 조 후보자가 기자간담회장에서 “언론보도 보고 나서 ‘코링크’를 처음 알았다”고 답변했다면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딸의 단국대 의대 논문 제1저자 관련 의혹에 대한 답변에서도 “당시 1저자, 2저자 판단 기준이 좀 느슨하거나 모호하거나 책임교수의 재량에 많이 달려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1970~1980년대에는 연구윤리라는 개념이 다소 희박했지만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과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의 논문 표절 논란을 거치면서 국내 연구윤리는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단국대에서도 2007년 7월 20일 학내 연구윤리규정을 제정했다. 당시 규정을 보면 연구 부정행위에 ‘부당한 논문 저자의 표시’ 항목이 있었으며, ‘연구내용 또는 결과에 대하여 과학적·기술적 기여를 한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논문 저자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거나, 과학적·기술적 기여를 하지 않은 자에게 감사의 표시 또는 예우 등을 이유로 논문 저자의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국내 학술지에 조 후보자 딸이 제 1저자로 표시된 논문의 제출 시기는 2008년 12월로 단국대 연구윤리규정이 적용되고 있었던 시점이다. 책임교수는 과학적·기술적 기여도를 엄격히 따져 논문 저자 순서를 표시해야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연구윤리에 대해서도 남다른 지식을 갖고 있던 조 후보자가 논문 저자의 순서를 책임교수의 재량으로 돌리는 답변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근 조 후보자 딸의 논문을 게재했던 학회에서는 결국 해당 논문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인사 청문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 자리도, 존재할 이유조차도 상실한 청와대 인사검증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국민에게 던진 말이다.

‘연좌제 금지의 원칙’에 따라 배우자나 자식이 처벌받는다고 해서 공직자를 함께 처벌할 수는 없지만, 공직자 본인의 사회적·윤리적 책임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고위공직자들이 가족의 잘못으로 공직자 본인이 사직하거나 비판을 받는 일은 쉽게 접할 수 있다.

공직자윤리법 또한 본인뿐만 아니라 직계존비속의 재산까지 모두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법에서도 후보자의 배우자와 자녀들의 병역, 재산, 납세 자료를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즉, 고위공직자의 인사검증 범위는 최소한 배우자롤 포함한 직계존비속이라는 의미이며 실제 그렇게 해 왔다.

조국 장관의 임명으로 이제부터는 공직자의 배우자나 가족이 아무리 불법을 저지르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했어도 공직자 본인이 “나는 개입한 적 없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아무런 문제로 삼을 수 없게 되었다.

본인 스스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지금 제기되는 여러 문제점들이 조국 장관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백한 위법행위’를 기준으로 후보자 적격 여부를 판단한다면 청와대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인사검증은 형해화할 수밖에 없다.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명백한 위법행위’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조국 후보자는 개혁성이 강해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도덕성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국회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조명균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여·야 모두 개인 신상보다는 정책 질의로 일관했고, 인사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역대 국회 인사청문 대상자 중에서 조국 후보만큼 많은 의혹이 제기된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청와대 판단 기준으로 볼 때 이 정도 의혹이라면 중도 하차하는 게 상식이다.

이 기준과 상식이 이제 무너진 것이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는 일상적으로 2급 이상 고위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등을 대상으로 인사검증을 한다. 앞으로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탈락한 후보자가 “조국 장관도 통과했는데, 나는 왜?”라고 항의한다면 청와대에서는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조국 사태 이후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이제 형식적인 절차로만 남았을 뿐 설 자리도, 존재할 이유조차도 상실한 채 빈껍데기만 남게 될 운명이다.

- 박재홍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공직의 길] 저자

201910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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