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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전 세계를 떨게 하는 예측불허의 1인자 

피아(彼我) 구분 없는 트럼프 결국은 재선과 돈이다! 

‘미국 우선주의’ 앞세워 동맹을 거래대상으로…노골적으로 한국 비난
불완전한 핵 해결→美 안전 보장·한반도 평화 정착 논리로 재선 노리나


▎동맹국·적대국 가리지 않는 행보로 전 세계가 트럼프 리스크(Risk)에 떨고 있다.
"한국에서 10억 달러(1조2000억원)를 받는 것이 브루클린 아파트에서 114.13달러의 임대료를 받는 것보다 더 쉬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 8월 9일 부동산 재벌 스티븐 로스 주최로 열린 대선 운동 모금행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어릴 적 아버지와 임대료를 수금한 일화를 돌이키던 끝에 나온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한·미 양국이 올 2월 주한미군 방위비 중 한국의 분담금을 전년 대비 8.2% 인상된 1조389억원에 합의한 것을 뜻한다. 당시 미국은 10억 달러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멋진 TV를 만들며 번성한 경제를 가졌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들의 방위비를 내야 하는가. 그들이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우의도 한껏 과시했다. 그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 우리는 친구다. 사람들은 김 위원장이 나를 만날 때만 웃는다고 말한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북한과 끔찍한 전쟁을 벌였을 것”이라고 자찬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친서에는 터무니없고 비싼 훈련(한·미 연합훈련)에 불평하는 내용이 많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처럼 입만 열면 한국을 비롯해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한다. 반면 김정은 등 독재국가나 권위주의 정권의 지도자들을 칭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전혀 믿지 않고 있는 지도자로 비쳐지는 이유다.

역대 美 대통령 중 가장 많이 협정 파기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왼쪽)가 올 3월,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서명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올 9월 4일 동맹국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봉쇄하면 미국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는 매우 강한 동맹을 많이 갖고 있고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동맹에 아주 큰 호의를 베풀고 있다”고 동맹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본·한국·필리핀을 돕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많은 경우에 이들은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우리는 절대 고마워하지 않는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을 돕고 있다”며 동맹국들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이 고마워하도록 요구할 지도자를 가진 적이 없다”면서 “나는 그들이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동맹국들이 군사와 경제 등의 분야에서 자국 이익을 지키려고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맹국들이 미국에 대거 수출하면서도 미국산 제품 수입은 꺼리고 있어 막대한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는 판단이다. 또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아끼고,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는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따라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이나 러시아 등 전통적인 적대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의 안보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의도도 숨어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보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구축해 온 글로벌 가치와 다자주의 체제, 무역 및 외교·안보 국제질서가 깨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기존의 협정을 가장 많이 파기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지구온난화는 허구이며 미국 제조업을 약화하려는 속임수”라면서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도 탈퇴했다. 미국 정부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와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도 회원국 자격을 버렸다. 미국 정부는 또 영국·프랑스·독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란과의 핵 합의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했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미국 정부는 캐나다 및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탈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를 통해 캐나다와 멕시코를 압박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합의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을 통해 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해서도 탈퇴를 불사하며 회원국들의 국방예산 증액을 요구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동맹국들을 압박하고 있다. 2018년 6월 캐나다 퀘벡에서의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에선 1975년 G7 정상회의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공동선언문이 채택되지 않았다. 당시 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장벽을 배격한다는 공동선언문을 내놨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 폐막 직후 트위터를 통해 자신은 이를 승인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공동선언문은 무효가 됐다.

올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비아리츠에서 열렸던 G7 정상회의에서도 공동선언문은 채택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G6 정상들이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는 공동선언문 채택을 아예 회피했기 때문이다. 대신 ‘개방되고 공정한 세계 무역과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과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와 불공정 무역관행 해소와 함께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WTO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공동성명만을 발표했다. 폐막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은 정말 성공적이었다”고 자화자찬했다. 올 8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도 지난해에 이어 ‘보호무역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들어가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2016년 3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시절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 때였다. 당시 트럼프 후보는 자신의 정책이 “고립주의 아니냐”는 질문에 “나의 정책은 고립주의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라고 답했다. 이후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후보의 캠페인 슬로건이 됐고, 2017년 1월 취임사에서도 사용함으로써 핵심 노선이 됐다.

물론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2000년 개혁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팻 뷰캐넌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당시 뷰캐넌은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인종주의 발언을 쏟아내며 강력한 국경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런 뷰캐넌을 “히틀러 숭배자”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자신의 슬로건으로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온 미국 우선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인권·법치·자유무역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퇴보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역할도 쇠퇴하고 있다. 이에 대해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저서 [혼돈의 세계(A World in Disarray)]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 혜택보다는 짐을 주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첫 대통령”이라며 “미국은 세계질서의 중요한 보존자(principal preserver)에서 중요한 파괴자(principal disrupter)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스 회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들고나와 동맹국들이 미국과의 관계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며 “세계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고 강조했다.

“한·미 연합훈련 불필요”… 비핵화 협상·방위비 증액 포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만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의 초점은 결국 ‘돈’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더는 세계의 호구가 아니다”라면서 미국 국익과 돈을 결부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미 연합훈련을 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8월 26일 G7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가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 직전 기자들에게 “한·미 연합훈련은 완전한 돈 낭비(a total waste of money)”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지만,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이후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고려해 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은 연합훈련에 화가 나 있었다”면서 “나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훈련 때마다 수억 달러가 지출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0일에도 “김 위원장의 친서 내용에 연합훈련 중단 요청이 들어 있었다”면서 “연합훈련은 터무니없고 돈이 많이 든다(ridiculous and expensive)”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합훈련 소요 비용을 한국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양국 군이 실시해온 연합훈련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처럼 ‘값비싼 워 게임’은 아니다. 지난 2014∼2018년을 기준으로 매년 연합훈련에 투입된 비용은 800∼1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매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지휘소연습(CPX)은 참가 인원도 대폭 줄고, 대규모 무기·장비가 동원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 미군 전략자산(핵추진항공모함 전단, 전략 폭격기 편대)의 한반도 전개 훈련도 지난해 이후 중단됐다. 심지어 한·미 양국은 북한과 비핵화 협상 국면을 의식해 키리졸브 연습, 독수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등 3대 대규모 연합훈련을 모두 폐지 또는 축소한 뒤 명칭을 바꿨다. 올 3월 상반기 훈련 때는 ‘19-1 동맹’이라는 명칭으로 대체 실시했으나 8월 하반기 훈련에선 ‘동맹’이란 이름마저 빼는 등 북한을 의식한 행보를 보여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비용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함에 따라 앞으로 실제 병력이 참가하는 훈련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폐지 또는 중단을 자주 거론하는 배경에는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재개해야 하는 정치적 필요성과 한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토마스 컨트리맨 전 미국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담당 차관대행은 “한·미 연합훈련은 양국 방어에 모두 중요하다”며 “북한의 공격 위험과 비교해 결코 비싼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에반스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도 “한·미 연합훈련은 돈 낭비가 아니다”며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한 중요한 투자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北 핵보유국 인정·주한미군 철수도 배제 못 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위)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 사진:중앙포토, 로이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잇따른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작은 미사일 실험을 했을 뿐이고, 많은 국가가 실험하는 것”이라면서 북한 정권을 비호하기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도를 넘어서는 북한 감싸기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가 재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점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이번 미사일 발사가 미국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고 말했다”면서 “그들(남·북한)은 아주 오랫동안 분쟁을 겪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면 한국 등 동맹국이 위협을 받아도 괜찮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보다는 미국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켰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국민의 지지를 받아 재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트럼프 리스크’(risk)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재선을 위해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미국 본토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위협만 하지 않는다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한국에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릴 것을 요구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에 있는 주한미군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주한미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입장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을 재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방위비 분담금도 많이 내지 않는 한국의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고 오판할 수도 있다.

‘트럼프 리스크’ 때문에 동맹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비롯해 이란 등 적대국들도 상당히 당황해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 대한 엇갈린 입장을 내놓으며 글로벌 경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관세·기술·통화 전쟁을 넘어 양국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경제패권 싸움이다. 이 싸움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재선되더라도) 이후는 물론 향후 수십 년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 전쟁을 자신의 재선 여부와 관련해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들은 미·중 무역 전쟁이 자칫하면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중국에 유리한 결과로 끝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의견 수렴 건너 뛴 독단 결정 잇따라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 정부가 9월 1일 자로 중국산 제품 1120억 달러(135조 6900억원)어치에 대해 1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조치를 들 수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7월 30·31일 상하이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중국 정부가 미국산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 고위급 대표단은 상하이 협상에서 농산물 수입 확대 의사를 표시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수입 규모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고위급 대표단으로부터 협상 내용을 보고받고 격노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대규모로 사들이기로 합의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올 6월 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했을 때 시 주석이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팜 벨트 지역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텃밭이다. 이 지역의 주요 농산물은 대두(콩)이다. 미국의 콩 생산량 비중은 전 세계의 35%에 달한다. 팜 벨트 지역에서 생산된 대두는 미국 전체의 95%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일리노이와 미네소타를 제외한 팜 벨트 지역 8개 주에서 승리하면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참모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제조업 무역정책국장의 지지만 받으면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서라면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어떤 조치라도 내릴 수 있고, 타협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가 8월 5일 중국을 25년 만에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추가 관세 부과 조치에 따라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자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하고 스티븐 므누신재무장관에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재무부는 그동안 주요 교역국들을 대상으로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뒤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환율보고서’를 발표해왔다. 이번 조치는 무려 2개월을 앞당긴 것이었다. 당시 미국 재무부가 성명을 통해 므누신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으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고 밝힌 것도 행정부 내 의견 수렴 과정을 건너뛴 채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입증했다. 미국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정책 결정, 특히 중국과 무역 전쟁 행보가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불확실성을 던져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8월 23일에는 평소 ‘친구’라고 부르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의 유일한 질문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의장과 시 주석 중에 누가 우리의 더 큰 적이냐는 것”이라며 두 사람을 향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재선 대비한 오락가락 행보에 전 세계 우려 증폭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재선에 성공하려면 경제 정책의 성과를 치적으로 내세워야 한다. 그런데 성과를 내려면 미·중 무역 전쟁을 타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시 주석의 협력이 필요하다.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완화를 위해서는 파월 의장의 협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시 주석과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가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 둘을 적으로 지칭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적이라고 부르며 친선의 가식을 내려놨다”며 “중국을 향해 더욱 대결적인 전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사흘 만인 8월 26일 시 주석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불렀다. 당시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모두 두 차례 통화했다”면서 “그들이 협상하고 싶어 한다”고 강조하면서 시 주석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통화한 적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므누신 재무장관도 “통화”라는 단어 대신 “소통이 있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오락가락 행보에 각국 증시는 널뛰기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내년 미국 대선 이전에 무역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국 정부 관리들은 거의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지 깰 수 있는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시 주석에게 조언하는 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합의는 재앙이자 최악의 거래”라면서 이란과의 핵 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 왔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9월 4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 가능성을 묻는 백악관 출입 기자들에게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고 밝혔다. 반면 이란 정부는 “미국이 제재를 해제해야 양국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이란에 강경한 입장을 바꿔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는 것 역시 재선을 고려해 외교적 성과를 얻어내려는 의도 때문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혹시라도 이란에 양보 조치를 하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말 그대로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는 셈이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콜 사인 혼돈(Call Sign Chaos)]이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한국의 사례를 들며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매티스 전 장관은 “동맹이 있는 나라는 번창하고 동맹이 없는 나라는 쇠퇴한다”면서 동맹국을 ‘거래 대상’으로 치부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했다. 아무튼 대통령학 전문가인 더글러스 브링클리 미국 라이스대 교수가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독특한(suigeneris:라틴어에서 파생된 영어) 대통령”이라고 언급했듯이 각국은 ‘트럼프 리스크’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듯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910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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