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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분석] 차려 준 밥상도 못 먹는 한국당의 진짜 문제는? 

조국에 질린 국민이지만 한국당은 안중에 없어 

정의·공정·평등이라는 헌법 가치 등한시했던 과거 반성해야
혁신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 사상 첫 선거 4연패 당할 수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9월 10일 서울 신촌에서 거행된 ‘문재인 정권 순회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을 놓고 여야가 사활을 걸고 맞붙은, 이른바 ‘조국대전(大戰)’. 반대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9월 9일 임명을 강행했다.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은 일제히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거셌다.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정권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이 오늘 장관 임면권을 마음대로 남용·오용·악용한 것은 역사가 엄중하게 심판할 것이다.” 한마디로 여권이 전투에서 이겼을지 모르나 전쟁에서 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대통령의 독주를 앞장서 막은 한국당이 종국적으로 ‘조국대전’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얘기인 셈이다. 그러나 당장의 민심 흐름은 한국당의 장담과는 다소 딴판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한국당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조국 블랙홀 호재 불구… 한국당 지지율 21%로 뚝.’ [한국일보] 9월 9일 자 2면 기사 제목이다. 장관 인사청문회가 끝난 직후인 9월 7일 이 신문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당의 정확한 지지도는 제목보다 0.5% 포인트 더 낮은 20.5%. 1위인 더불어민주당의 38.7%에 18.2% 포인트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당의 이번 지지율은 6월 7일 같은 신문이 같은 회사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당시(25.9%)보다도 5.4% 포인트 줄어든 수치였다.

반면 한국당이 ‘조국 악재’로 민심 이반을 자신했던 민주당의 지지율은 석 달 전(38.7%)과 동일했다. 한국리서치는 “인사 파동이 나면 야당은 보통 반사이익을 얻는데 한국당은 이 국면에서 전혀 이득을 못 보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같은 날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다. 9월 1주(2~6일) 한국당 정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0.1% 포인트 오른 29.2%였다. 하지만 리얼미터의 7월 이후 한국당 지지율은 28~29% 박스권을 계속 맴도는 형국이었다. 같은 기간 민주당 지지율이 41.5%에서 38.6%로 하락했지만, 이를 거의 흡수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민심의 오독” vs “일관성”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이 8월 27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정부 정책 난맥상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자유한국당
장관 임명 강행 이후(9월 9일~11일) 시행한 여론조사 역시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물론 한국당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0.9%포인트 상승한 30.1%를 기록, 3주 만에 다시 30%대로 올라섰다. 민주당도 똑같이 0.9% 포인트 오른 39.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양당의 간극이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조사에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 역시 3주간의 보합세를 멈추고 전주 대비 0.9% 포인트 오른 47.2%로 집계됐다. 부정평가는 0.1% 포인트 오른 50.0%를 기록했다. 아무리 여권 지지층 결집 덕분이라고 해도 대통령 지지율의 반등세는 한국당이 공언한 ‘정권 종말’과는 분명 다른 흐름이다. 무엇보다 추석 연휴 민심 대이동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한국당 지지율의 정체 내지 횡보는 향후 정국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당 안팎에선 반박 목소리도 없진 않다. 먼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팽배한 불신론이다. 지난해 당시 홍준표 대표는 특정 회사를 콕 집어서 ‘집권당 띄우기’를 하고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올해도 한국당은 지난 5월 공식 논평을 통해 “집권당 대표 말 한마디에 여론조사 결과까지 뒤바뀌는 세상”이라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선 공개적 불평은 삼가고 있다. 과거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의혹 제기가 오히려 정치적 시비와 역공을 자초한 탓이다. 그럼에도 사석에선 “여론조사와 다른 민심의 흐름이 분명히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또 하나의 반박 논리는 시기상조론이다.

일부 당 관계자들은 “현재 기록 중인 30% 안팎의 지지율(리얼미터 기준)만 해도 대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2015~2016년 사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 최대치가 25%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불과 3년 전 대통령 탄핵과 함께 한 자리 지지율이라는 궤멸적 상태로 빠졌던 것을 감안하라”고도 말한다. 떠났던 보수 ‘집토끼’는 어느새 옛집을 찾아서 돌아왔다는 얘기다.

다만 ‘조국 국면’에서 정권에 실망해 마음을 돌린 ‘산토끼’ 중도층을 잡아 와야 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공고한 대통령 지지율 40%의 벽을 깨는 한편 한국당의 탄핵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시간적 진화’ 내지 ‘숙성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이들의 결정 시한은 내년 4월 총선. 막상 정치적 기로에 놓이게 되면, 중도층이 집권세력을 선택할 리 만무하다고 자신한다. 경제와 안보를 망친 데다 ‘조국’을 통해 드러난 위선과 거짓의 민낯을 확실히 응징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그렇다면 대안은 한국당이라는 것이다.

정작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을 맡고 있는 김세연 의원 생각은 정반대다. 그는 9월 11일 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의구심을 일축했다. “극히 일부 조사를 제외하면 대체로 신뢰성을 의심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여의도연구원 조사를 포함한 대부분 조사 결과에서 일관성이 나타난다. (한국당 지지율 정체도) 다른 여론조사 기관 결과와 수준 및 추세에서 큰 차이 없다.”

추석 연휴 민심 동향과 관련해서도 비관적 전망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떨어질 거다. 하지만 한국당 지지율도 내려가거나 기껏해야 같은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라고 본다. 반사적 이익이 한국당으로 향하지 못해 무당층만 늘어나는 양상이다.” 그는 여론의 오독(誤讀)과 이를 바탕으로 한 근거 없는 낙관론이 지배하는 당내 분위기를 겨냥한 듯 이렇게 말했다. “서서히 고사해 가는 만성질환이 더 무서운데 한국당이 그렇다.”

나경원이 조국을 살렸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9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이 요구한 자료가 아니라며 조 후보자 가족관계증명서 복사본을 찢어서 던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당의 중장기 전략기획을 책임진 여의도연구원장의 작심 인터뷰는 ‘조국 정국’에서 드러난 지도부 전략 실패에 대한 당내 불만을 대변한 것으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사실 가족 사모펀드 투자 불법 시비에서 웅동학원 비리 공방을 거쳐 딸 특혜 입학 논란까지, 야당엔 ‘호박이 저절로 굴러온 형국’이었다.

여기다 그간 뱉어 온 말과 전혀 다른 조 장관의 처세가 드러나면서 민심마저 상당히 등을 돌린 상황. 누가 봐도 손쉽게 득점할 수 있는 찬스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원내전략 미스로 다 날아가 버렸다. 결과적으론 자책골까지 먹었다.

첫째 판단착오는 ‘조국 최대한 우려먹기’. 당초 민주당은 국회법 규정 등을 들어 8월 말까지 청문회 완료를 주장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가급적 빨리 끝내려는 입장이었다. 반면 한국당으로선 늦출수록 유리한 상황. 9월 2~3일의 이틀 일정을 제시했다.

힘든 드잡이 끝에 한국당 주장이 관철됐다. 그것도 장관 청문회로선 다소 이례적인 이틀 회기였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아내·어머니·딸 등 후보자 직계가족 증인 채택을 고집하며 비타협으로 일관했다. “9월 12일까지 얼마든지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다.” 추석 정국까지 염두에 둔 나경원 원내 대표의 엄포에 민주당이 발끈했다. 결국 9월 2일 청문회는 무산됐다.

그제야 나 원내대표는 증인 문제를 양보했다. 하지만 ‘버스 떠나고 손들기’였다. 기다렸다는 듯 그날 오후 조국 후보자 기자간담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일방적 해명이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여론은 다소 반전됐다. 다음 날 한국당 청문위원들이 대거 나서 반박 간담회를 가졌다. 메아리는 별로 없었다. “한국당의 정략적 욕심이 제 발등을 찍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둘째 전략 미스는 ‘맹탕 청문회’ 합의. 청문보고서 재송부 시한 하루 전인 9월 5일 민주당과 한국당은 다음 날 청문회 개최를 전격 합의했다. 즉각 당내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당초 이틀에서 줄어든 하루 회기. 여기다 증인과 참고인마저 자발적 참석 의사에만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임명 강행에 면죄부만 주는 제1야당”이라며 장제원 의원 등이 반발했다.

지도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려대로 청문회는 ‘맹탕’으로 일관했다. 시간에 쫓기고 핵심 증인을 확보하지 못한 탓인지 한국당 의원 질문은 번번이 핵심을 빗나갔다. 숱한 의혹에도 ‘결정적 한 방’도 제시하지 못했다. 조 후보자가 요리조리 잘 빠져나갈 즈음, 한국당 홈페이지엔 난리가 났다. “답답하다”, “준비가 미흡하다”, “완패다” 등 비난 글이 쏟아졌다. 급기야 “나경원이 조국을 살렸다. 조국 구원투수냐”는 글까지 올라왔다.

전문가들도 관전평을 내놓았다. “이러다 조국보다 나경원이 먼저 물러나야 할 것 같다.”

정작 나 원내대표는 당당했다. “한국당이 이렇게 시간을 끌어 준 것은 검찰 수사를 돕기 위한 측면도 있다.” 실제 검찰은 청문회가 막바지를 치닫던 9월 6일 밤 자정 직전 조 후보자 아내를 전격 기소했다. 결과적으로 한국당을 대신해 검찰이 한 방 먹인 셈이었다. 졸지에 시선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로 쏠렸다. ‘조국대전’에서 시나브로 한국당도, 나 원내대표도 사라져 버렸다.

진작 사라진 인물도 있었다. 황교안 당대표였다. 청문 과정에서 사실상 존재감 ‘제로’였다. 원외인 데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다는 해명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책임을 묻는 소리는 묻히지 않았다. 그 역시 초반 조국의 ‘사노맹(남한사회주의자노동자동맹)’ 연루를 문제 삼아 사상 검증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조 후보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20대 청년 조국은 부족하고 미흡했다. 그러나 뜨거운 심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아픔과 같이하고자 했다.” 이 한마디에 사노맹 논란은 꼬리를 감췄다.

“너나 잘하세요”


▎안전사회시민연대가 9월 11일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아들 용준씨에 대한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했다. / 사진: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끝난 직후 그의 임명 여부 못지않게 뜨거운 뉴스가 등장했다. 한국당 청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장제원 의원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였다. 국회의원 아들이자 그 자신이 유명 래퍼라는 사실에다 운전자 바꿔치기 논란까지, 이게 시선을 모은 이유의 전부가 아니었다.

아들이 사고를 치기 불과 몇 시간 전, 청문회에서 장 의원은 조 후보자를 상대로 호되게 호통을 쳤다. “후보자 딸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3주 인턴을 한 것은 완벽하게 증거적으로 허위다.” 자식 관리 책임을 따져 물었던 장 의원의 말은 금세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사고 소식을 전한 기사엔 조롱성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적어도 조국 딸은 음주운전은 안 했다”, “조국한테 뭐라 할 자격 없다”, “누가 자식 교육 운운하나” 등. 쉽게 말해, “너나 잘하세요”의 공박이었다.

나 원내대표를 둘러싼 의혹이 급기야 아들에게까지 옮겨붙으며 논란이 확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사립고교를 다니던 나 원내대표 아들은 방학을 이용해 귀국했다가 엄마 부탁을 받은 서울대 의대 교수 배려로 의공학 실험에 참여했고, 그 결과를 미국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의공학 포스터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직접 기자들에게 해명했다. ▷학술논문이 아닌 미국 과학경시대회 참여 위한 실험이었고 ▷실제 대회에 나가 본인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수상했으며 ▷미국 고교 최우등 졸업의 본인 실력으로 대학에 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국 물타기’라고 비난했다. 다만, 서울대 의대 실험과 관련해선 방학 때 귀국하는 바람에 “실험할 곳이 없어(서울대 의대 교수에게) 부탁을 드린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해명 기사에 한 네티즌은 이렇게 따져 물었다. “서울대 실험실을 아무에게나 빌려 줍니까? 서민들에게도 빌려 줍니까?” 불법 여부를 떠나 서민들의 눈엔 그야말로 ‘당신들만의 대한민국’ 현실이 비친다. 보수 진보를 떠나 ‘배우고 가진 자’ 그들끼리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각종 특혜와 행운에 대한 진한 박탈감이 묻어 나온다.

자녀 의혹 불똥은 황 대표에게도 튀었다. 9월 5일 오전 주요 포털사이트 실검(실시간 검색어)에는 ‘황교안 자녀 장관상’이 상위권에 올랐다. 황 대표의 두 자녀는 중·고교 시절 함께 장애우 친구 맺기를 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한 지 넉 달 만에 장애인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 중 연세대 법학과에 진학한 아들이 이 상을 일종의 스펙으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그럼에도 현 상황에서 ‘산토끼’ 또는 ‘중도층’ 민심이 한국당 지지를 꺼리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역시 정치적이다. 민주당 정권의 이중성에 분노하고 독선을 응징하고 싶지만, 그 정치적 대안으로 한국당을 선뜻 선택하기엔 망설임이 여전히 큰 탓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회 탄핵 이후 2년 10개월, 야당이 된 지 2년 4개월. 그동안 한국당은 집권당을 대신할 대안정당으로서의 존재를 국민에게 확실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말인 셈이다.

또 한 번 대안 부재 증명


▎김문수 전 경기지사(오른쪽 둘째)가 8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정진석 의원실
먼저 탄핵에 대한 반성 또는 책임에 여전히 어정쩡한 태도가 첫째 걸림돌이다. 황 대표는 올해 초 전당대회 경선 당시 탄핵 결정 존중 여부를 묻는 말에 ‘세모’로 답변을 유보했다. 이젠 ‘아예 나와 상관 없다’는 식의 ‘오불관언(吾不關焉: 나와 상관없는 일)’ 주장을 펴고 있다.

8월 28일 자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런 입장을 분명히 했다. “탄핵은 내가 입당하기 이전의 일이다. 그걸 언제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덮을 건 덮고, 넘을 건 넘어야 한다.” 정치행위로서의 국회 탄핵절차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는 탄핵 사태 당시, 국무총리였다. 박근혜 집권 4년 1개월간 내내 국무위원을 지낸 유일한 인사이기도 하다. 당연히 탄핵 사태를 초래한 국정운영 파행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따른다.

탄핵과 함께 ‘동전의 양면’으로 거론돼 온 친박당 논란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과 예결위원장 등 국회직에 친박계 인사들이 잇따라 자리를 차지하자 비박계 복당파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여기에 홍준표 전 대표도 가세했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모두가 힘을 합쳐도 이기기 어려운 판인데 극우만 바라보면서 나날이 도로 친박당으로 쪼그라들고 있으니 국민이 점점 외면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나 인사권을 쥔 황 대표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고 친박을 키워야겠다는 뜻을 가지고 (당에) 오지 않았다”며 또다시 면피론을 펼쳤다. 이어 “우리 당에 친박이 70%, 비박이 30%라고 말을 하던데, 그러면 (당직에도) 친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잊을 만하면 잇따르는 막말 자책골도 대안정당과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든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 운동으로 된 것이다.” 이종명 의원은 이 발언으로 지난 2월 당 윤리위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당 소속 의원이다. 마지막 징계 절차인 의원총회가 사건 7개월이 지났는데도 열리지 않은 탓이다. 당내에선 누구도 이를 시비 삼지 않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당의 처사 덕분일까.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막말은 조국 정국에서도 어김없었다. 8월 30일 부산집회에서 나경원은 “문재인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이라고 공격했다. 여론은 차갑게 대응했다. “역시 한국당이 믿을 구석은 지역주의와 북한뿐인가.” 자신을 정치 구태에 옭아매는 그의 헛발질에 이번에도 당내는 조용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조국 정국’이 차려 준 ‘밥상’마저 엎어 버린 한국당에 쏟아지는 우려다. 조국 장관 임명 직후 한국당은 원내·외 병행 투쟁을 선언하며 현충원 참배에 이어 광화문 광장에서 출퇴근길 시민을 대상으로 피켓 시위를 벌였다. 다음 날엔 신촌·왕십리역·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을 돌며 7시간 동안 게릴라 집회를 가졌다. “모처럼 야당의 결기를 보였다.” 응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잡은 지도부에게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원내 전략은 여전히 엇박자를 내보였다. 당장 큰소리쳤던 조국 해임건의안에 제동이 걸렸다. 당초 한국당(110석)은 바른미래당(28석)뿐 아니라 그간 범여권으로 분류됐던 민주평화당(4석)과 거기에서 이탈한 대안정치연대(9석) 마저 조국 후보자의 장관 임명에 반대한 상황을 보고 다소 낙관했다. 가결 정족수인 원내 과반을 가뿐히 넘는 154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적 기반인 호남 민심을 고려한 민평당과 대안 정치연대는 진작 발을 빼 버렸다. 여기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직접 찾아온 황 대표의 읍소에도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단죄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며 연대를 일축했다.

조국이 박근혜를 이길까


▎지난해 6월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오른쪽)와 김성태 원내대표가 여의도 당사에서 6·13 지방선거 방송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정조사도 쉽지 않다. 원내 1당인 민주당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의 협조 없인 조사 일정, 증인 채택 등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9월 30일부터 국정감사가 3주간 예정된 상황에서 대여 투쟁력만 분산할 수 있다는 당내 이견도 만만찮다. 특검도 청와대 등 여권이 협조할지 미지수다.

그나마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보수대통합 가능성이다. 조국 임명에 분노한 보수층 민심이 무엇보다 분열된 보수세력이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도 모처럼 공개적 목소리를 내며 정치적 기지개를 켰다. “이 정부가 지독한 오기로 국민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야당이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나서야 한다. 지금부터 국민의 저항권으로 이 정권을 끝장내야 한다.”

이 발언이 나오자 ‘조국 국면’을 계기로 보수대통합의 물꼬가 트이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기대가 제기됐다. 그러나 유 의원은 통합에 나름대로 전제를 분명히 했다. “보수 정치도 온 국민이 원했던 정의·공정·평등이라는 헌법 가치를 등한시했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 진지한 자세로 그런 가치를 실현할 때 국민이 보수를 돌아볼 것이다.” 탄핵에 대한 한국당의 책임과 자성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자 정가에선 이런 우스갯소리가 등장했다. “글쎄, 조국이 박근혜를 이길까?” 아무리 조국 문제가 급해도, 한국당 친박계와 우리공화당이 박근혜를 버리면서까지 유승민과 손잡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사실 박근혜로 상징되는 탄핵 문제가 현 정국에서 가지는 파급력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조국 사태로 문재인 정권을 이탈한 민심이 보다 더 오른쪽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결정적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 대표 역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 도입 여부를 지켜본 뒤 보수통합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통합을 하더라도 선거제도 변경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여러 보수당이 각개약진해서 나중에 힘을 모으는 게 낫다는 계산이 자유한국당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산토끼’들로선 보수의 진정한 반성과 그를 바탕으로 한 혁신이 가능할 때 표를 던질 수 있다. 반대로 조그마한 기득권에 안주하며 적당한 반대투쟁으로 반사적 이익을 꾀한다면, 그들은 아예 투표를 포기해 버릴 수도 있다.

이게 실제화되면 보수로선 여권 심판은커녕 사상 초유의 ‘선거 4연패(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도 당할 수 있다. 보수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조국 사태가 보수에는 ‘절호의 찬스’이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jwhn20@naver.com

201910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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