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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목민관 열전] 김승수 전주시장이 말하는 ‘도시재생 방법론’ 

“기억을 유통하는 도시가 성장한다” 

60년 된 성매매 집결지,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모델로
“원도심 100만 평 재생해 ‘아시아 문화심장터’로 한 걸음 더”


▎김승수 전주시장은 9월 4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전주형 도시재생 방법론’을 설명했다. 김 전주시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된 독립서점 ‘물결서사’는 과거 성매매 업소로 쓰이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2016년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 수가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1999년 김완주 당시 전주시장이 침체된 도심을 되살려보자며 팔을 걷어붙인 지 17년 만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전주를 찾은 관광객 수가 30만 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이제 전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이 곳이 전국구 관광지로 떠오르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주민들이 시(市)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1977년 이곳을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해 기와집 외에는 건물을 짓거나 개조할 수도 없도록 규제했다. 이후 20여 년간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한옥마을은 실상 판자촌과 다름없는 허름한 모습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1999년 전주시가 내놓은 답은 ‘주민참여를 통한 도시재생’이었다. 시는 예산만 지원하고 어떤 곳을, 어떤 사업자가 개발할지는 주민들이 결정하도록 했다. 한옥 신·증축에 최고 5000만원을 지원했다. 2008년 전주시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 약 9700만원이었으니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렇게 새로 단장한 한옥이 한두 채씩 들어서면서 오늘날 전주 한옥마을의 모습이 갖춰졌다.

김완주 시장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김승수 현 전주시장은 한옥마을의 성공방정식을 현장에서 익혔다. 그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일까. 2014년 민선 6기 전주시장에 당선된 그는 1999년의 한옥마을보다 더한 험지를 찾아 나섰다. 전주시청 맞은편, 외딴 섬처럼 펼쳐진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善美村)’이었다.

선미촌은 1950년대 현재 전주시청 자리인 전주역 주변에 사람이 모이면서 형성됐다. 호황기엔 65개 업소가 성업할 정도로 규모가 상당했다. 그런데 60여 년간 뿌리내린 이곳을 45세에 불과한 시장이 바꾸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을 통해서 바꾸겠단다. 업주들은 코웃음 쳤다. 지난 9월 4일 선미촌 내 한 독립서점에서 [월간중앙]과 만난 김승수 시장은 “(부당이익을 몰수하겠단 내용의) 공문을 처음 보냈을 때 업주들이 ‘어린놈이 까분다’며 콧방귀를 뀌는 분위기였다”고 당시를 곱씹었다.

사업을 착수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선미촌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김 시장은 “지난달 초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 프로젝트 인증사업’에 선정됐다”며 강조했다. “성매매 집결지를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 가운데선 국내 최초”라는 것이다. 5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김 시장에게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그의 ‘도시재생 방법론’을 들었다.

도시재생에서 문화재생으로 진화


▎김승수 시장이 서노송예술촌 내 폐쇄된 성매매 업소 옆에서 문화재생사업의 콘셉트를 설명하고 있다.
8월 28일 전주에서 ‘2019 동아시아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선미촌 사례를 발표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이었나?

“성매매 집결지는 전 세계 모든 도시가 품고 있는 문제다. 그러나 선미촌에선 이를 공권력에 의한 강제 단속이나 집단 철거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른바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라 해서 문화예술의 힘을 빌려 도시의 기억과 여성의 인권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선미촌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했다. 참신성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협치성도 높게 평가받았다. 지역 주민과 인권단체 관계자, 문화예술인 등이 참여하는 ‘선미촌 정비 민관협의회’가 사업 추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시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선미촌 일대에서 과거 성매매 업소로 이용하던 건물과 빈 건물 등 6채를 사들였다. 확보한 공간들을 지역 예술가들과 주민공동체의 활동 공간 등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서서히 주변 환경을 바꿔 자연스럽게 업종 전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모델로 꼽힌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이곳 독립서점도 한때 성매매 업소였다고 들었다.

“그렇다. 성매매 업소로 쓰이다 방치된 건물을 시에서 사들였다. 지금은 시인, 서양·동양화가, 영상 크리에이터 등 각기 다른 분야를 전공한 7명의 예술인이 이곳을 운영한다. 이분들이 다달이 돌아가면서 문화예술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다. 성매매 집결지인 일대를 예술촌으로 변모시키는 데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실 이곳을 매입할 때가 가장 어려웠다. 사려고 이곳 건물주와 접촉하면 다른 업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더라. 가만 안 두겠다는 압박 아니었겠나. 이곳이 돌파되면서 예술촌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올랐다. 예술가들이 모이고,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성매매 업주와 건물주, 종사자 여성, 그리고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이해를 조정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철거 후 재개발이 더 쉬운 방법일 텐데.

“경찰 동원해서 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쉽다. 건물주들에겐 아파트 지어서 개발이득을 나눠주면 된다. 실제로 이곳 건물주들이 아파트나 게스트하우스로 재개발하자고 제안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도시재생을 하기로 결심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잘 보존해낸 도시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허물고 아파트를 올릴 때보다 사람들이 더 모인다. 구글이 지난해 미국 뉴욕의 100년 된 벽돌 건물인 ‘첼시 마켓’을 24억 달러에 매입한 것이 좋은 예다.”

‘아시아 문화심장터 100만 평 사업’으로 도약


▎지난해 8월 7일 전주 한옥마을 승광재를 찾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남색 남방). 승광재에 사는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분홍색 한복) 황실문화재단 총재가 승광재 벽에 걸린 사진들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전주시
그렇다면 전주라는 도시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주의 경쟁력은 전주라는 도시 그 자체, 전주다움에서 기인한다. 전주보다 크고 인구가 많고 돈이 많은 도시는 대한민국에 얼마든지 있지만 전주만큼 ‘자기다움’을 간직한 도시는 많지 않다. 사람·생태·문화·일자리를 중심으로 전주다움을 잃지 않고 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꿔 가장 인간적인 도시, 전주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하겠다.

특히 중앙동·풍남동·노송동·완산동·서학동 등 약 330만㎡(100만 평) 규모의 원도심은 후백제 도읍이자 조선왕조 발상지라는 역사를 품은 지역이다. 이곳이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망가지는 일을 막으려고 2017년부터 ‘원도심 아시아문화심장터 100만 평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구도심 100만 평에는 전라감영 복원, 서노송예술촌 재생사업, 서학동예술마을 도시재생, 전통문화 중심의 도시재생, 보행 친화적 문화거리 조성 등 문화예술 콘텐트를 강화해 100가지 색깔을 간직한 지역으로 키워 나가고 있다.”

성장 엔진의 하나로 도시재생사업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나 시민들에겐 여전히 제조업에 대한 열망도 있을 것 같은데.

“전주다움이 전주의 가장 큰 경쟁력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제조업 기반이 절실하다. 다행히 지난 10여 년간 씨앗을 뿌린 탄소섬유 산업이 최근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지난 8월 20일 효성이 전주에 소재한 자사 탄소섬유 공장에서 신규투자 협약식을 열었다. 2028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생산량을 10배 늘리겠단 내용이다. 일본의 소재 기업 도레이 사가 전 세계 탄소섬유 생산량의 40%를 담당하는 상황이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탄소섬유 등 100대 핵심 전략품목에 7조~8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자해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화답했다.”

왜 하필 탄소섬유인가?

“이동하는 모든 것은 철을 소재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철의 가장 큰 약점은 무겁다는 거다. 무거울수록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강해질수록 무게를 줄이는 게 중요한 일이 된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강하면서도 훨씬 가볍다. 이런 성질 덕에 수소차의 수소 저장용기 소재로도 쓰인다. 용기 안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도 터지지 않고 찢어진다고 한다. 여러모로 21세기 산업의 쌀로 불릴 만하다.”

특례시 지정, 균형발전 고려해야


▎김 시장은 “신도시는 신도시답게, 원도심은 원도심답게 성장해야 한다”며 “개발에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주 탄소섬유 산업의 씨앗은 전임 송하진 시장 때 집중적으로 뿌려졌다. 송하진 전 시장은 2003년 국내 유일 탄소 소재 연구기관인 전주기계산업리서치센터(현 한국탄소융합기술원)를 출범시켰다. 2011년엔 효성의 탄소섬유 생산 공장을 유치하기도 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 시장은 도약의 그랜드 청사진을 그렸다. 인터뷰 이틀 전인 9월 2일 국토교통부는 66만㎡(약 20만평) 규모의 ‘전주 탄소소재 국가산업단지’를 최종 승인했다. 김 시장이 지난 5년간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결과다. 2024년까지 2000억원을 들여 탄소 소재 관련 기업 70개와 10여 개의 연구개발 기관, 그리고 20여 개의 지원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김 시장은 “한국탄소융합기술원 내 상용화센터에 연구개발에 필요한 장비가 마련돼 있다”며 “독자 연구개발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도 전주의 탄소섬유 인프라를 이용해 커나갈 수 있다”고 자부했다.

전주시민들이 시장에게 아쉬워하는 점을 하나만 꼽아 달라.

“단연 경제다. 청년 일자리가 여전히 부족하다. 전주시 경제를 지탱할 여러 축을 구상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본부가 전주에 들어오면서 그중 하나인 금융도시 구상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달 국민연금의 해외 채권 보관기관인 지정된 뉴욕멜론은행(BNY Mellon)에 이어 국민연금의 해외자산 수탁기관으로 지정된 호주의 스테이트스트리트(SSBT)가 전주에 사무소를 열었다.”

기초 지자체라는 지위가 근본적인 한계로 지목되기도 한다.

“최근 정부가 인구 100만 명 이상 도시를 특례시로 지정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기초 단체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광역시 수준의 행정·재정적 자치권을 부여하겠단 내용이다. 그런데 인구 100만 명을 기준으로 삼으면 수도권 세곳(수원·용인·고양)만 특례시로 지정받게 된다. 전북과 같이 광역시가 없는 탓에 국가예산 배분에서 소외당해 온 도(道)는 발전이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주는 관광도시이고 도청 소재지인 데다 혁신도시가 있어 행정서비스 수요가 상당히 많다.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광역시 없는 도의 도청 소재지는 특례시 지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1시간여 이어진 인터뷰를 마치고 서점 밖으로 나왔다. 김 시장은 서점 앞 공터에 홀로 선 고목 한 그루를 가리켰다.

“선미촌 현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밑둥이 드러날 정도로 부러져 있던 나무다. 그런데 이게 오동나무라더라. 옛날에 아버지가 딸을 가지면 가장 먼저 심는 나무였다고 한다. 시집갈 때 가구해서 보내주려는 거다. 다시 살아날까 싶었는데, 5년 새 아주 장성했다.”

되살아난 오동나무는 김 시장의 시정철학과 겹쳐졌다.

“도시도 이 나무처럼 직선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나쁜 환경을 만나면 쇠퇴하기도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살아난다.”

- 전주=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 사진 오종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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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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