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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정치이슈] 충격의 여권… 문 대통령과 진보진영의 과제 

핵심 지지층에서 벗어나 국민 전체로 시야 넓힐 때 

■ 중도·보수층 신뢰 잃고, 조국 엄호한 차기 주자들마저 내상
■ ‘조국 사태’에 가려진 경제·안보 실정 부각되면 총선도 막막
■ 여권 일각에선 야당과 연대·협치 통한 국정동력 회복 의견도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눈을 감은 채 참석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청와대에 몸담았던 한 정치권 인사가 광화문 인근에서 월간중앙과 만난 건 10월 11일 오후.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이 인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대로 가면 망해. 망한다니까. 민심 이기는 권력 없는 법인데 고집을 부려도 너무 부려. 그러다 박근혜도 망했잖아.” 이 인사는 “10월 말에는(조국 법무부 장관이) 내려오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0월 29일 국회 본회의에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올라 있는 사법 개혁안을 상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인사가 ‘10월 말’을 운운했던 배경인 셈이다. 사법 개혁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사법 개혁’의 기수를 자임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소임을 다한 걸로 보고 뒤로 물릴 수 있다는 뉘앙스였다.

뜻밖에도 조 전 장관은 10월 14일 전격 사퇴했다. 가족 수사로 인해 국민에게 송구하지만,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을 다했다는 취지로 사퇴 변을 남겼다. 하루 전인 10월 13일 검찰개혁을 위한 고위 당·정·청 회의를 주도하고, 10월 14일 당일에도 사퇴 3시간 전에 ‘검찰 개혁안’을 발표한 터라 많은 여권은 물론 지켜보는 국민도 다소 의아해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다음 날인 10월 15일 청와대에 몸담았던 정치권 이 인사를 다시 만났다. 그는 “고개 한 번 돌리고 나면 저수지 하나만큼씩 표가 빠져나가는데 항우 장사인들 당해낼 재간이 있었겠냐”며 “일각이 여삼추(如三秋)인 상황에서 더 기다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조 전 장관은 10월 14일 오후 2시 별도의 기자회견 없이 입장문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 5시 38분 조 전 장관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조국 수호’에 팔을 걷어붙였던 청와대가 급히 돌아선 까닭은 무엇일까?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국 카드를 밀어붙였다가 사퇴 의사 표명 3시간여 만에 사표를 수리한 문 대통령의 마음은 어땠을까?

민주당 수도권 초선 의원의 해석이다. “민심은 누가 뭐래도 지역구 의원들이 가장 잘 안다. 요즘 지역구 가기가 무서울 정도다. 만일 내일이 선거일이라면 민주당은 필패(必敗)다.” 민주당 전략기획파트 당직자는 “조 전 장관의 사퇴는 총선을 준비하는 의원들이나 예비후보들에게는 ‘앓던 이 빠진 격’일 것”이라고 거들었다.

종합하면 청와대와 민주당 모두 ‘조국 사태’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큰 위기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현역 의원들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조국 장관을) 빨리 정리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실제로 ‘조국 사태’ 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졌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10월 7~8일, 10~11일 성인 남녀 25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야의 지지율은 박빙이었다. 민주당 35.3%, 자유한국당 34.4%로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소 격차로 좁혀졌다.

일반 여론도 여론이지만 점점 멀어져 가는 중도층의 마음은 여권에 더 무서운 현실로 다가온다. 리얼미터가 10월 7~8일 전국 유권자 1502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자신을 중도층이라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민주당 지지율은 30.9%로 전주(前週)보다 4.3%포인트 하락했다. 한국당은 전주 대비 0.4%포인트 떨어진 32.2%였다.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중도층 지지율에서 한국당이 민주당을 앞선 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 여론 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독선 이미지 뒤집어쓴 文, 마음의 門 열까


▎자유한국당 ‘문 실정 및 조국 심판 국정감사 중간 점검 회의’가 10월 15일 국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나경원 원내대표, 김성원 대변인, 박맹우 사무총장. / 사진:연합뉴스
여권으로서는 등돌린 중도층을 다시 끌어안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민심 이반을 자초한 문재인 대통령의 향후 포석에 여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실 두 달여 동안 온 나라를 흔들었던 ‘조국 사태’도 문재인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인사와 불통·독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광화문 집회와 관련해 “조국 장관의 특권과 반칙에 좌절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질책했다.

조 전 장관을 비롯해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현 정부 들어서만 22명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10명, 이명박 정부 때는 17명, 노무현 정부 때는 3명이었다.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독선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비판한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은 소통의 대명사였다. 그는 2017년 대선 당시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을 공약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조국 사태’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소통과는 거리가 먼 행보로 일관했다. 그는 조국 일가(一家)와 관련한 여러 의혹이 거세게 일던 9월 1일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 “공정의 가치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장관 낙점에 절망한 절반 이상의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기는 순간이었다. 야당에서는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공격했다. 자기 얘기를 남 말 하듯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 ‘유체이탈 화법’은 현 여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할 때 자주 쓰던 문구다.

여권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국민의 신뢰를 많이 잃었고, 그게 국정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형국이다. 표면적으로 여권은 ‘조국 감싸기’ 과정에서 까먹은 지지율을 검찰개혁 완수를 통해 회복한다는 입장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조국 전 장관 사퇴 다음 날인 10월 15일 “하늘이 두 쪽 나도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 국민의 명령을 받는 것이 민주당 본연의 역할”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여권 내부를 한 꺼풀 더 들어가 보면 사정은 판이하다. 원망의 기류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한다. 사석에서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예컨대 대통령이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야당과의 협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식이다.

민감한 사안이라며 익명을 원한 민주당 의원은 “최근 광화문·서초동 집회가 ‘국론 분열 아니다’는 문 대통령 발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완고한 이미지를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취임 초와 비교했을 때 문 대통령의 이미지가 가장 실추된 분야가 있다면 그건 바로 소통에서 불통으로 바뀐 스타일”이라고 지적했다.

변해야 산다는 당위성에는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도 공감하지만, 지금까지 보여 온 모습에 비췄을 때 ‘셀프 변신’에는 한계가 있을 거란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집권 후반 기에 접어드는 지금 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변화에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정기남 동국대(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는 “현재 긍정적인 시그널은 위기감 빼고는 크게 눈에 띄는 게 없는 것 같다”면서 “당이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문가들은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국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지층 결집만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국정동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공정의 가치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국론 분열 아니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대체적인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며 “진정성 있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청와대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의 인적 쇄신도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꿈 같은 희망으로 막 내린 ‘조-윤’ 조합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0월 14일 오후 서울 방배동 자택으로 들어서며 누군가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발표한 공약 1장 1호는 ‘적폐청산’, 그다음은 ‘권력기관 개혁’이었다. 권력기관의 대표 주자는 검찰이다. 검찰개혁은 문 대통령의 공약을 대표한다고 할만하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방점을 찍은 건 참여정부 때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개혁을 둘러싼 참여정부와 검찰의 대립 결과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문 대통령은 다른 저서 [운명]에서는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사법개혁과 함께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고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다. ‘민주적 통제’는 현재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을 주요 골자로 한다. 문 대통령은 법무부가 검찰을 견제하자면 법무부 장관의 임기를 2년 이상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국면에서 ‘칼’을 쥐고 앞장선 게 아이러니하게 개혁 대상인 검찰이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좌천됐던 윤석열 검사의 서울중앙지검장 중용이 인사 개혁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2018년 3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끝에 구속됐다. 또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적폐 수사, 금융권 채용비리 수사 등도 모두 검찰 소관이다. 대통령 공약에서 개혁 대상이었던 검찰은 ‘개혁의 칼’로 쓰이면서 한층 예리해졌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수석비서관 인사 등을 통한 인적 쇄신에 나섰다. 국정운영의 새로운 동력 마련을 위한 조치로 풀이됐다. 특히 문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 조국-검찰총장 윤석열-민정수석 김조원 라인을 예고하며 강력한 검찰개혁 의지를 다졌다. ‘조-윤-김’ 조합이 공식화하면서 각종 개혁 작업은 더 속도를 내리라는 기대를 낳았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이 전격 사퇴하면서 ‘조-윤-김’ 조합이 붕괴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지만 꿈 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조국 수호’에 나섰던 유시민·이낙연의 득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낙연 국무총리,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부터)이 10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방안 논의를 위한 당·정·청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한 청와대 소식통은 지나친 명분 집착이 이런 사달을 낳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태생부터 이질적인 조국-윤석열 조합으로 검찰개혁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나이브(naive)한 접근 아니었냐는 비판도 보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검찰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안다. 대통령이 선호하는 사람들로 검찰 수뇌부를 구성하면 개혁이 잘 진행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자체가 다소 안이했던 것 같다.”

‘조국 수호’ 대열에는 청와대와 여당은 물론이고 내각과 외곽부대도 동참했다. 대표적인 인사로 내각의 이낙연 국무총리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꼽을 수 있다.

여권의 유력한 잠룡으로 언급되는 유 이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특유의 입담을 과시해왔다. 유 이사장은 지난 1월 유튜브 채널에서 “반지성적인 혹세무민 뉴스를 바로잡기 위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밝혔다. ‘제대로 된 언론’ 역할을 하겠다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야당 등으로부터 ‘혹세무민’, ‘자가당착’, ‘궤변론자’ 등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유 이사장은 10월 12일 제주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강연에서는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또는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이라며 “이제는 검찰이 수사를 마무리 지어야 할 시점”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수사 기록도 보지 않은 사람이 왈가왈부하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식의 반론이 제기됐다. 서병수 전 부산 시장은 페이스북에서 유 이사장을 향해 “싸가지 없는 소리를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로 검찰을 난도질하며 법원을 욕보이고 언론을 단죄하고 있다”고 유 이사장을 직격했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국 사태’에서 유 이사장은 ‘조국 수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을 통해 유 이사장은 친문 진영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그로서의 위상을 더욱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얻었다. 반면 보다 큰 틀에서 보면 독선적이며 진영논리에 기울었다는 이미지가 굳어짐으로써 중도 확장성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진단도 따랐다.

정기남 교수는 “독선적인 이미지는 어차피 과거부터 그의 구성요소였기에 유 이사장으로서는 ‘조국 사태’에서 크게 잃은 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조국 사태는 그간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유 이사장을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결과로 이어졌다. 어쩌면 그가 유일하게 남는 친문의 대선주자가 될지도 모른다.”

반면 민주당의 한 전략통은 “유 이사장은 그동안 방송 활동을 통해 까칠한 이미지를 벗고 부드럽고 합리적인 캐릭터를 부각하는 성과를 거뒀다”면서 “하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그는 유연성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상당 부분 상실했으며 종국에는 진보진영의 빅마우스로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진보 지지층은 속 시원하다고 좋아하겠지만, 보수 내지 중도층에서는 점수를 많이 까먹었다.”

역대 최장수 총리인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 출범 후 정중동 행보를 이어 왔다. 국내 정치 현안과는 거리를 두면서 주로 민생을 챙기는 낮은 자세로 존재감을 키워 왔다.

그런 이 총리도 ‘조국 사태’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든 느낌이다. 이 총리는 9월 2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검찰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 수색과 관련해 “여성만 두 분(조 전 장관 부인과 딸) 있는 집에서 많은 남성이 11시간 동안 뒤지고 식사를 배달해 먹는 것은 아무리 봐도 과도했다는 인상을 준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차기 주자들 전력 누수 막을 수 있을까


▎2017년 5월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 둘째)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하고 있다.
이에 야당은 총리가 가짜뉴스를 생산한다고 공박했다. 당일 조 전 장관 자택에는 조 전 장관 아들과 변호인단도 있었고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 측에도 여성이 2명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두고두고 기자 출신인 이 총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 총리는 전날만 해도 조 전 장관이 압수수색을 나온 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두고 “아쉬움이 있다. 적절하지 않다”고 조 전 장관을 비판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평가가 엇갈린다. 총리로서 민심을 대변하는 역할이 아쉬웠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지지층에 확실하게 어필했다는 긍정 평가도 있다.

민주당 전략통은 “이 총리는 중도와 보수로의 확장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핵심 지지층에는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 총리가 ‘조국 사태’에서 보여 준 언행은 친문 지지층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조국 대망론’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조국 법무부 전 장관은 10월 14일 사퇴하면서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개혁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 데 조 전 장관 자신이 순교자 역할을 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민주당 전략통의 말을 참고할 만하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면 조 전 장관은 죽은 카드다. 장관직도 한 달여 만에 물러난 사람이 무슨 대선주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최종적인 검찰 수사 결과 조 전 장관의 결정적 흠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회생의 길이 열리게 된다. 핵심 지지층들 사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해 천추의 한을 남겼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마저 전철을 밟게 할 수는 없다’는 여론이 비등해질 수 있다. 조국은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다. 게다가 그는 지금 여권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PK(부산·경남) 출신이다.”

하지만 이는 희망 사항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이번 조국 전 장관 전격 사퇴에는 극도로 악화한 PK의 여론도 한몫했다는 전언이다. 그렇게 보면 조 전 장관의 권토중래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채진원 경희대(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그동안 조국을 띄워서 장사해 보겠다는 사람들은 반성하고 뒤로 물러서 있어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만 조국에 분노했던 중도층이 다시 (여당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권은 그간 여러 차기 주자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내상을 입거나 경쟁 대열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그나마 유력하게 거론되던 조국 전 장관에 이어 엄호에 나섰던 유시민 이사장, 이낙연 총리마저 중도층이 보기에는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 여권 입장에서는 당장의 안정적 국정운영 기조 확보도 중요하지만 차기 주자들의 전력 누수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손실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키는 대통령에게… 거국적·통합적 국정운영 필요


▎2006년 3월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오른쪽)이 회의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도 고민이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핵심 지지층은 되레 결집했으나 중도층과 비판적 지지층은 이탈했기 때문이다. 중도층과 비판적 지지층을 다시 불러오는 게 국정동력을 회복하고, 나아가 내년 총선 승리의 관건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우선 여권 관계자들은 조 전 장관의 사퇴가 정부·여당의 지지율 반등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 기대한다. 조 전 장관이 예상보다 빨리 물러남에 따라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민심을 되돌릴 전기를 찾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민주당 수도권 초선 의원은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로 갈렸던 국론도 다시 봉합되지 않겠냐”며 “검찰개혁, 민생과제를 잘 풀어 나가면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은 다시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대가 곧 현실이 되는 건 아니다. 검찰개혁은 야당의 협조가 필수인데 각 당의 이해득실이 다른 만큼 실제 국회에서 법안으로 통과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민생과제도 구호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 반전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 경제 활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진단이다. 북·미 관계나 남북관계도 소강상태라 낙관하기 어렵다.

신율 명지대(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도층은 조국 전 장관 사태에 실망해 (정부·여당에) 등을 돌렸고, 사회 균열은 심각한 수준이라 단기간에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 문제나 경제 부문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 한 정치 실종 상태가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보진영의 한 원로급 인사는 “민주당은 조국 사태 이전보다 이후를 더 걱정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면서 “그동안 조국 사태로 가려져 있던 경제와 외교의 난맥상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 민심은 더 싸늘하게 식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여권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경제는 갈수록 내리막이고, 그동안 호평을 받던 남북관계 등 외교·안보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국면으로 가고 있다. 내년 총선으로 다가설수록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민주당 의원 중에서도 내심 야권까지 아우르는 거국적·통합적 국정운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골수 친문 지지층 눈 밖에 날까 봐 내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처럼 사석에서는 모두 일대 혁신을 말하면서도 공적인 발언은 삼가는 게 여권의 현주소다. 이 원로의 말대로 여권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지지층의 동의가 전제돼야 할지 모른다. 친문 세력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문 대통령이고, 향후 정국 대응의 키도 문 대통령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권의 총체적 혁신과 국정기조 변화도 문 대통령의 의중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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