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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 한반도 안보의 새 변수, 중거리 미사일(INF) 경쟁 

신냉전 신호탄? 힘의 균형 바꾼다 

미, 한국·일본에 배치할 경우 러·중 단교 등 강력 반발 예상
북핵 저지 못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INF 통해 현상 변경 꾀할 수도


▎미국이 아시아 배치를 추진 중인 이동식 지상발사 크루즈미사일 BGM-109G 그리핀(Gryphon). / 사진:미국 국방부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조약에서 지난 8월 2일 최종 탈퇴하면서 세계는 새로운 미사일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같은 날 호주에서 “냉전 시기 군축조약(INF)에서 탈퇴한 만큼 태평양 지역에 몇 달 안에 중거리 재래식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며 “동맹국 및 파트너국과 긴밀히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INF 조약을 종료한 지 16일 만인 8월 18일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캘리포니아 샌니콜러스섬에서 재래식으로 설정된 지상발사형 순항미사일의 비행시험을 실시했다. 미사일은 500㎞ 이상을 날아 표적을 정확하게 맞혔다고 한다. 미국은 이어 2023년까지 중거리 탄도미사일도 개발해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다.

에스퍼 장관의 발언은 곧바로 반발과 우려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타스통신]이 고위 관리를 인용해 “만일 미국이 동아시아에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하면 러시아도 대응조치를 할 것”이라며 “미국 미사일을 배치한 국가는 러시아의 잠재적 핵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중국도 8월 5일 자 [환구시보]에 “미국이 동아시아 국가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 동아시아 지역엔 치열한 핵무기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했다. [환구시보]는 특히 한국과 일본을 겨냥해 “한·일은 미국의 총알받이가 되어서도, 중국의 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상정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 배치 지역은 일본과 한국, 호주와 동남아 국가, 팔라우제도 등으로 보고 있다. 이에 한국과 일본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이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성주 배치를 놓고 중국의 극렬한 반대를 겪었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응해 한국 관광을 중단시키고, 중국에 있는 롯데마트 등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사드 여파가 발생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한·중 관계는 여전히 냉랭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 중국은 한국과 단교할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국이 한·미동맹에서 앞으로 겪을 방위비 분담금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이어 미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한·미 간의 최대 동맹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비해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국과의 관계와 한·미동맹을 놓고도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유럽에서 처음 시작한 INF 사태는 이제 동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핵군비 통제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INF 조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중거리 미사일 조약 최종 탈퇴를 결정했다.
INF 조약은 1987년 12월 8일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유럽에서 핵군비 통제를 목표로 합의한 양자 군축조약이다. 1988년 6월 1일 발효했으며, 지속기간은 무기한이었다. 이 조약에 따라 사거리 500∼5500㎞ 사이의 모든 지상 발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그 발사기, 관련 구조 및 지원체계를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은 2692개의 중거리 미사일을 상호 검증 과정과 현지 사찰을 거쳐 파괴했다. 이 조약은 올 8월까지 32년간 지속됐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INF 조약을 체결한 것은 미·소의 핵무기 경쟁 가속화를 막기 위해서였다. 소련은 1970년대 중반 미·소의 핵전력 균형이 어느 정도 달성됐다는 인식이 들자 소련이 구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SS-4(사거리 2080㎞)와 SS-5(3700㎞)를 SS-20(5000㎞)으로 교체했다. 이 바람에 유럽에서의 핵균형이 일시에 교란되고, 소련의 핵 위협이 질적 및 양적으로 커졌다. 유럽의 안보질서가 무너질 분위기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슈미트 서독 총리 등과 회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급기야 1979년 11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장관회의에서 소련의 새로운 중거리 핵 장착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2가지 계획을 내놓게 됐다. 첫째로 소련과 중거리 미사일 군비통제 협상을 추진하고, 둘째로 소련 SS-20에 대응할 수 있는 미국의 중거리 핵 장착 지상발사 순항미사일(464발)과 탄도미사일인 퍼싱-2(108발)를 유럽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핵탄두를 장착하고 있는 퍼싱-2는 사거리 1770㎞에 정확도(CEP, 원공산오차) 30m인 강력한 미사일이었다. 그러자 다시 소련이 불리해지는 상황이 됐다.

1985년 3월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새 서기장이 되면서 미국과 INF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됐다. 그해 가을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SS-20 탄두와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에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 탄두 사이에 균형을 맞추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미국도 관심을 가졌다.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이 1981년 제안했던 제로옵션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미·소 정상은 포괄적인 중거리 미사일 제거에 합의했고, 1987년 12월 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INF 조약에 서명했다. 그 결과 유럽에서 중거리 미사일을 모두 제거하는 제로옵션을 넘어 전 세계의 미·소 중거리 미사일을 없애는 ‘글로벌 더블 제로옵션’을 달성하게 됐다. 그때 레이건 대통령은 “이 역사적인 합의는 이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긴급 현안을 다루는 데 기여하는 협력관계의 시작”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냉전 최고의 군축 성과로 치던 INF 조약에서 미국의 탈퇴는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걱정해 오던 러시아의 도발적 행위에 대해 트럼프가 과감하게 결정을 내린 것뿐이다. 러시아가 2008년부터 새로운 순항미사일을 실험하고 있다는 첩보가 오바마 행정부 2기(2012∼2016) 때부터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의 고테뮐러 군비통제관이 2013년 처음으로 러시아 관리에게 순항미사일 시험이 INF 조약 위반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미 국무부는 매년 발표하는 ‘군비통제, 비확산, 군축이행 보고서’에서 2014년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생산과 실험의 문제점을 적시했다. 2016년에는 [뉴욕타임스]까지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보도했다.

같은 해 11월 미국 요청으로 13년 만에 INF 특별검증위원회를 제네바에서 개최해 러시아의 조약 위반 사실을 제기했으나, 러시아는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핵무기 없는 세상’ 비전의 명예에 손상이 올까 부담으로 INF 조약 탈퇴까진 결심하지 않았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자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신형 순항미사일을 작전부대에 배치했다”며 “이는 조약 위반”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로 대선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우호적이었던 트럼프의 마음이 상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미 국무부는 같은 해 4월 문제의 미사일이 ‘INF 조약 위반’이라고 보고서에 명시했다. 이 미사일은 그해 말 나토 명칭으로 SSC-8, 러시아 명칭으론 9M729로 확인됐다. 이 신형 미사일은 러시아가 2006년 배치한 이스칸데르-M과 유사한 형태이나 사거리 500∼2500㎞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이 미사일로 2개 대대를 만들었는데, 1개는 러시아 서남부에 위치한 카푸스틴야 지역의 실험장에, 나머지 1개 대대는 확인되지 않는 제3의 장소에 배치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9M729 미사일을 지난해 말까지 100기가량 생산했다.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중국과 북한 요인도 커


▎우리 공군의 지대공 미사일 천궁이 2017년 11월 충남 보령 대천사격장에서 첫 실사격 발사됐다.
2018년이 되자 러시아의 INF 조약 위반에 강경대응을 촉구해 온 미 의회가 ‘2019 국방수권법’을 내놓았다. 국방수권법에는 ‘러시아의 중대 위반 시 미국은 법적으로 INF 조약 운용 전체 혹은 일부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 반영됐다. 그리고 의회는 미 행정부로 하여금 올해 1월 15일까지 러시아의 중대한 INF 조약 위반이 미국을 구속하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처럼 일이 이렇게 커지자 트럼프는 ‘2018년 10월부터 러시아에 60일 이내 러시아가 조약을 준수하지 않으면 미국은 조약을 중지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러시아는 뻔뻔하게도 ‘증거를 내라’며 사실을 부정했다. 오히려 ‘강한 러시아’를 표방해 온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무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해 배치하는 등 미국의 탈퇴에 맞대응하겠다는 식이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올 2월 1일 INF 조약을 중지하고, 6개월 뒤 탈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의 INF 조약 탈퇴는 참여 상대국인 러시아가 준수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비참여국인 중국의 원인이 더 크다는 인식도 많다. INF 조약 준수 의무가 없는 중국은 조약의 제약을 받지 않고 중거리 미사일에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다. 해리 해리슨 주한 미국대사는 태평양사령관 시절 “중국이 INF 조약 참여국이면 탄도 및 순항 미사일 2000발 가운데 95%가 조약 위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10월 1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벌인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둥펑-41 등 ICBM 외에도 둥펑-26(사거리 4000㎞)과 둥펑-21D(3000㎞) 등 다양한 중거리 미사일을 선보였다. 둥펑-26은 중국에서 괌까지 날아간다고 해서 ‘괌 킬러’로, 둥평-21D는 ‘항모 킬러’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이런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중국 동남지역에 집중 배치해 미국 군사력의 접근을 견제하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은 280여 개의 핵탄두를 갖고 군비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이 이와 같이 중거리 미사일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국가전략 차원이다. 중국의 ‘일대일로(육상길+바다길)’ 전략 가운데 해양전략의 핵심은 제1도련선(필리핀-대만-오키나와-일본 남부를 이은 선) 구축이다. 중국은 2025년 이후엔 제1 도련선과 중국 해안 사이에 미 해군의 진입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미 항공모함과 함정들이 제1도련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진입할 경우에는 탄도미사일로 격파한다는 전략이다. 이른바 AD/AD(반접근/거부) 전략이다.

중국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미 항모 세력뿐만 아니라 괌과 오키나와에 배치된 미군 전력까지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한 한반도와 일본에 배치된 미군에 대해서도 탄도미사일로 견제하고 있다. 백두산 뒤쪽 퉁하 지역에 위치한 중국 미사일 부대에는 둥펑-15와 21D가 배치돼 있는데, 둥펑-15(사거리 700㎞)는 유사시 한국을, 둥펑-21D는 한국을 돕기 위해 동해에 전개한 미 항모 세력에 대한 타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 영향권이 중국 본토에서 한반도와 오키나와, 괌, 동남아시아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2017.12)에서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적었다. 미 국가국방전략(NDS) 보고서(2018.1)도 “중국은 군사력 현대화, 영향력 확대, 약탈적 경제정책 등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며 “원칙과 규범에 근거한 국제질서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대응책으로 일본·호주·인도 그리고 한국과 인도·태평양전략을 추진 중이며, 한국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일환으로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잠재 대상국들은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중국과 등질 수도 없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다 한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까지 걸려 있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북한은 1000발가량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200∼300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이다. 스커드 C(사거리 800㎞)와 노동미사일(1300㎞) 등 준중거리(MRBM) 200여 발과 무수단(4000㎞)과 화성-12(3700㎞)미사일 등 중거리(IRBM) 수십 발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북한 중거리 미사일들은 모두 한국과 일본은 물론, 오키나와와 괌까지 닿는다. 한국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유사시 미군이 한국을 도울 경우 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미군도 타격 대상이다. 미국의 북한 탄도미사일 견제는 당연하다.

북한 SLBM과 중거리 탄도미사일도 심각한 문제


▎지난 10월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실시된 열병식에 등장한 중거리 저공 방어 미사일 홍치(HQ)-6A.
더구나 북한은 올해에만 11번에 걸쳐 수십∼수백㎞에 이르는 다양한 단·중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 가운데는 러시아제 이스칸데르-M을 모방한 탄도미사일도 있었고,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3형도 포함됐다. 특히 10월 2일 원산 앞바다에서 발사된 북극성-3형은 최고 고도 910㎞에 이르면서 450㎞를 비행했다. 북극성-3형을 정상 각도로 쏘면 1900㎞ 이상 날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분사된 화염의 직경도 커졌다. 고체연료를 사용했고, 사거리와 탄두 중량이 더 늘어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극성-3형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해 보면 사거리를 8000㎞ 이상 확대할 여지도 있다고 한다. 서울과 도쿄 및 오키나와, 괌과 하와이, 심지어는 미 본토 캘리포니아 해안까지도 닿는 사거리다.

중거리 미사일급인 북극성-3형은 한·미·일 모두에게 더욱 부담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북한의 이 미사일은 핵심적인 핵전략으로 2차 보복능력(세컨드 스트라이크)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저장고는 한·미 정보당국이 거의 파악하고 있다. 미국은 언제든 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로 빠른 시간 안에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잠수함은 제외다. 북한은 유사시 위기라고 판단하면 SLBM을 실은 잠수함(고래급)을 미리 출항시켜 동해 바닷속에 숨겨 둔다. 그래서 미국이 지상에 있는 북한 탄도미사일을 제거하더라도 북한의 SLBM 잠수함은 살아남는다. 북한은 핵 장착 북극성-3형으로 서울과 도쿄, 괌과 오키나와 등에 대량보복을 할 수 있다. 미국·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도 SLBM이 세컨드 스트라이크를 제공하기 때문에 핵잠수함을 운영하는 것이다.

북한 SLBM의 2차 보복력에 가장 부담인 국가는 미국과 한국이다. 미국은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핵우산을 제공한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미 대통령이 북한 SLBM에 의해 대규모 인명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부담을 안고서도 북한 공격명령에 서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미 핵우산(확장 억제전략)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한·미 안보연례협의회의(SCM)에서 공언하는 ‘핵우산 보장’이 무용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미동맹엔 위기가 온다. 북한이 SLBM 등으로 한·미를 협박하면서 남북관계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SLBM은 김정은의 최종병기다.

냉전시대 핵무기에 의한 상호 파멸을 줄이기 위해 미·소가 체결했다가 폐기된 INF 조약은 세월이 지나 동아시아로 넘어왔다. 그러나 냉전시대 유럽에선 미·소가 전략 핵무기의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일시적인 불균형 상태가 된 중거리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INF 조약 체결에 성공했지만, 동아시아는 그 반대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핵무기는 미국이 월등한 위치에 있지만, 중거리 미사일은 중국이 우위다. 미국은 INF 조약으로 이미 중거리 미사일을 모두 폐기한 상태인 데 비해, 중국은 2000발에 가깝게 보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북한도 300발가량 되는 중거리 미사일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중거리 미사일 해법은 냉전 때 유럽의 INF 조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셈법이 필요하다.

더 복잡한 셈법이 필요한 향후 중거리 미사일 문제


▎러시아 국방부가 지난 1월 공개한 노바토르(SSC-8) 중거리 크루즈 미사일과 발사 차량.
따라서 중거리 미사일 감축 또는 폐기를 위한 국제적인 합의가 이뤄지기까지는 좀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국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지역에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는 게 시작이다. 현재로선 한국과 호주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 오키나와와 팔라우제도에는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외신에선 보도되고 있다. 중국이 일대일로 차원에서 제1도련선을 장악하면 일본과 한국의 해상수송로가 막힌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적극 동참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인도·태평양전략의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전략 차원에서 오키나와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전망이 불투명한 북한 비핵화협상이 올해 말로 결렬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북한은 비핵화 조건으로 한·미연합훈련 완전 폐지와 주한미군 및 한국군에 첨단무기 배치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한·미연합방위체제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한국군의 사실상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핵무장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따라서 한·미는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상태에서 북한 비핵화협상이 올해 말 결국 결렬되면 북한은 표변할 가능성이 크다. 핵억지력을 갖춘 북한은 그동안 말한 대로 핵무기로 한국을 협박하면서 ICBM 발사와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 이에 사회적 불안감이 극에 달한 한국이 미군 전술핵의 나토식 공유 또는 재배치에 협의하거나, 나아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도 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땐 한국의 생존이 걸린 사활적인 분위기가 조성돼 중국의 압박은 한국 국민의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북핵 위협 가중 땐 INF 입장 변화도


▎미국과 일본, 필리핀, 인도 등 4개국 군함이 지난 5월 영유권 분쟁해역인 남중국해를 항행하는 연합훈련을 했다. / 사진:연합뉴스
결과적으로 INF 조약 문제는 중국 미사일과 북한 핵·미사일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동아시아에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에서 이 지역에서 미사일 경쟁을 더 격화되고, 안보 불안정성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국소적인 무력 갈등이나 충돌 가능성도 우려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안보 불안은 진자의 원리와 같다. 에너지가 증가해 불안정성이 커진 뒤에야 다시 감소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미국도 이런 원리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북한, 심지어 일본까지 탄도미사일로 무장하면 동아시아와 함께 유럽, 인도·파키스탄의 남아시아 등을 포함한 범세계적인 중거리 미사일 감축 또는 폐기로 분위기를 잡기를 바랄 것이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고 희망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그렇다 쳐도 한국의 처지는 다르다. 당장 1000개의 북한 탄도미사일과 최근 발사한 SLBM인 북극성-3형이 우리에겐 심각한 현안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해선 한국도 대응능력이 있다. 한국군은 북한 탄도미사일에 버금가는 양의 탄도미사일과 지·해·공 순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군의 미사일 숫자는 북한보다 약간 적지만, 정확도는 월등히 우수하다. 미사일 대결로만 본다면 한국군이 더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 핵미사일이다. 미국은 북핵에 대해선 핵우산을 포함한 맞춤형 확장억제력으로 대응해 주겠다며 한국 정부를 안심시키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북한이 북극성-3형 등 SLBM으로 세컨드 스트라이크 능력을 확보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핵을 사용한 북한의 세컨드 스트라이크에 의한 대량살상 부담을 안은 미국이 핵우산을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한국으로선 북핵을 억제할 수 있는 별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 4월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회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원탁 회의를 주재했다. / 사진:연합뉴스
정상플랜A와 비상플랜B와 C를 마련해야 한다. 플랜A는 국방부가 주장해 온 능동적 억제전략의 적극적 시행이다. 먼저 이스라엘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시설(원자로)을 공습해 파괴한 것처럼 시험운전하는 북한 신형 잠수함을 동해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동해 깊은 바닷속에 수장하는 방안이다. 일종의 예방적 선제공격이다.

그러나 현 정부로선 결심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다음으로 유사시 북한의 SLBM 공격 대비다. 그땐 북한 SLBM 잠수함이 기지에서 나오기 전에 해군 잠수함과 스텔스기, 특수부대 등으로 파괴해야 한다. 이를 놓치면 미·일과 함께 동해상에서 북한 잠수함을 찾아내 격침해야 한다. 북한 잠수함을 추적할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북한 SLBM을 해상에서 요격할 수 있는 SM-3 미사일도 필수 항목이다. 이를 위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복원은 기본이다.

플랜B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명확하게 보장받는 것이다. 미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거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처럼 한·미가 미 전술핵무기 공동운영시스템을 갖추는 방법이다. 마지막 플랜C는 한국의 핵무장이다. 북한 비핵화가 내년 초에 완전히 결렬되면 북한은 핵무기로 한국을 겁박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부가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으면 핵무장 목소리가 커질 소지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플랜C에 대비한 행정적 준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한국이 최악의 상황에 놓이면 핵무장도 불가피하다.

- 김민석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kimseok@joongang.co.kr

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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