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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환경 위기 경고한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 

눈앞의 기후재앙 지구적 결단이 필요하다 

인류 마지막 생존 게임, 시민의식 변화와 새 정치 비전 시급
과도한 좌절·공포는 역효과, 과학에 근거한 예지로 극복해야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이 10월 11일 경희대학교 본관 회의실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 이사장은 기후변화 문제를 사회과학자·교육자 입장에서 접근한다.
조인원(趙仁源) 경희학원 이사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하고 이후 학자·교육 행정가로 일했다. 경희대학교 총장(2006~2018)에 이어 현재 경희학원 이사장이다. 그런 그가 기후변화 분야 ‘파퓰러라이저(popularizer, 어떤 문제를 대중에게 알기 쉽게 알리는 사람)’로 나섰다.

조인원 이사장의 주요 저서로는 [국가와 선택](1996), [포월의 초대: 탈권위, 탈현대의 새로운 정치담론을 찾아서](2006), [정치의 미래: 그 이상향을 탐색하다](2008), [미래대학 라운드테이블](2010), [정치와 정치 그리고 정치](2012), [내 안의 미래](2016) 등이 있다. 조인원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다음이 요지.

정치학자·교육행정가로 활동해 오셨는데,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는지.

“특별한 사연은 없다. 그간 체험해 온 기후변화의 여파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끌렸다. 한겨울에 얼어붙지 않는 한강. 나날이 심해지는 여름철 폭염. 한반도 인근 어장의 변화. 이젠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이런 뉴노멀(new normal) 현상들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규범(new norm)’을 요구한다.

지구적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되풀이되는 극한의 기상이변이 과거보다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북반구 곳곳 기온이 섭씨 40~45도를 웃도는 여름철 열파 현상. 규모와 강도, 빈도를 나날이 더해가는 대형 폭풍과 홍수. 해수면 상승과 예상치 못한 침수 지역 확대. 매우 빠른 속도로 유실되는 극지방 빙권. 이 모두 부분적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더욱 극심해진 지구온난화·기후변화의 여파다.

이런 현상들은 수백 년 전 산업화 시대 개막 이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산업활동·경제활동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런 일들이 더 자주, 더 크게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는 더 이상 자연발생적인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역사와 문화, 체제의 문제다. 다른 말로 시민과 지도자들, 교육과 정치가 함께 풀어내야 할 문제다. 그것이 제가 기후변화에 관심을 쏟게 된 이유라면 이유다.”

[주거에 부적합한 지구: 온난화 이후의 삶(The Uninhabitable Earth: Life After Warming)](2019)의 저자인 데이비드 월리스-웰스는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지금은 우리가 공황 상태에 빠질 때(Time to Panic)’에서 기후변화 실상이 심각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공포 분위기 조성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황 상태는 역효과를 낳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우(杞憂)와 대재앙에 대비하는 사고가 가치 있는 시점에 있다…. 공포는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으며, 심지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의 주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같은 내용을 그분이 잡지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봤다. 위협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는 기후재앙의 가능성에 대처하기 위해 전제되는 인간 심리의 문제를 다룬 기고문이다. 기후변화는 그 자체도 심각하지만 이에 수반하는 ‘문명 붕괴’ 가능성, 최근 학계에서 논의되는 ‘여섯 번째 대멸종’ 사건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두면 우리 모두 ‘공포’를 느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는 흔히 ‘고통’을 떠올리기보다는 ‘희망’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고통보다는 희망’이 범례로 통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때로는 다른 각도에서도 봐야 한다. 도래할 미래가 매우 엄중하고 치명적인 미래라면, 이에 상응하는 마음 준비도 필요하다. 전쟁 대비가 필요한 일촉즉발 상황이 그런 때일 것이다. 공동의 대응, 전폭적인 동원과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공포심도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근거 없는 희망이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듯이, 불안과 좌절, 정신적 공황을 불러오는 공포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과학에 근거한 예찰(豫察)과 예지가 필요하다. 이에 근거한 개인적·사회적·지구적 고군분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희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후변화를 주제로 세계평화의 날 기념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올해 9월 19일 개최된 기념식에서 조인원 이사장은 ‘10년의 미래, 의식과 정치: 기후변화의 새 국면’이라는 주제 연설에서 “인간은 성장의 신화, 팽창의 역사를 써 내려오면서 유한 지구에서 무한한 욕망을 꿈꾸며 기후변화라는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해결책 또한 인간의 욕망을 활용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친환경적 성장(environment-friendly growth)’의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닌가?

“‘기후변화는 이 시대 결정적 위협이다’, ‘인류는 벼랑 끝에서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동원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시간이 다 돼 간다.’ 이 모두 세계 기후체계를 조사하고, 연구하고, 큰 관심을 두어 온 유엔과 국제사회 전문가, 로마 교황청에서 나온 공적 발언이다. 충격이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 것일까.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은 앞으로 10여 년이 관건이라고 한다. 산업화 이전 시기에 비해 지표 온도가 1.5도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한다. 에너지 구조를 지구적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1.1도 오른 상태다.

‘인간의 욕망을 활용해 문제를 풀어 가자.’ 맞는 말씀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선 더 그렇다. 로마클럽이 1970년대 초 발간한 [성장의 한계] 필진으로 참여했던 요르겐 랜더스는 최근 그런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다. 동의한다. 이를테면 탄소배출 제로인 멋진 전기차의 양산 체제를 갖추자는 것이다. 또 최근 탄소배출을 대폭 삭감하자는 미국 민주당의 ‘그린 뉴딜’ 정책도 훌륭하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자본주의적 욕망을 선용하는 것을 비롯해 에너지 구조를 재생에너지로 신속히 전환하는 정책을 조세, 규제, 국제협력 조치 등을 포함하는 모든 수단에서 강구해야 한다.”

이기심에 기반한 시장경제로는 기후 문제 풀기 한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2018년 8월 27일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 사진:안데르스 헬베리
기후변화 해결은 일차적으로 과학기술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문제 해결에 과학기술 못지않게 중요하거나 오히려 더 중요한 논리가 있을까?

“과학기술 못지않게 정치의 영역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지난 1980년대부터 대기 중 배출된 탄소가 지구온난화를 초래하고, 이로 인해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이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40여 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간 유엔을 중심으로 수많은 국제회의와 협약이 있었다. 그러나 현시점까지 ‘사람이 만들어 낸 지구온난화(Anthropogenic Global Warming)’의 효과적인 관리에 실패를 거듭했다. 몇 해 전 지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어렵사리 성사된 파리협약마저도 지금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를 선언했다. 이와 함께 190여 개국이 약속한 탄소 저감 노력마저 큰 진전이 없다.

어떤 사안의 공익적 측면은 알지만 내게 불편을 주는 일은 안 한다는, 님비(Not in My Backyard, NIMBY)도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노력을 방해한다. 얼마 전 어느 기후활동가에게 ‘님투’, 즉 ‘내 공직 임기 중에는 안 된다(Not in My Term of Office, NIMTOO)’는 말을 들었다. 공익을 위해선 중요하지만, 내 임기 중에는 대중이 원치 않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현실정치를 비난한 말이다. 최근 지구적 차원에서 포퓰리즘(populism)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기후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우리의 욕망도 이득도 사상누각이다. ‘표퓰리즘(票pulism)’이라는 말도 있지만, ‘표심의 정치’에 집중하는 현실정치에 새 기운이 필요한 때다.”

지난 5월 발간된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의 보고서(Existential Climate-related Security Risk: A Scenario Approach)가 전 세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또 보고서의 문명사적 의미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문사회과학적 의의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보고서는 IPCC가 깊이 다루지 않던 지구 기후체계의 위험 요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새롭다. 그런데 내용이 매우 무겁고 어둡다. 예를 들어 극지방 빙권(氷圈, cryosphere) 유실이라든지, 북극 지역의 메탄 방출 가능성, 장기 탄소주기 피드백 효과, 열대우림 파괴 등의 파장에 관한 심대한 내용들을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지구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1도 안팎으로 더 오르면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연쇄적으로 붕괴한다. 지구 기온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한마디로 인류 문명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다. 해안에 인접한 수많은 대도시들의 침수. 지구 과열현상으로 인한 극한의 기상이변. 최소 10억 명, 아니면 그 이상의 지구인구 대이동. 그런 가능성과 함께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내전, 국가 간 핵전쟁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된 내용이다.

이 시나리오의 시대적 의미는 크다고 본다. 이런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기후위기가 유엔이 전하는 것처럼 이 시대 ‘결정적 사안’이고, 인류 생존이 걸린 ‘실존적 위협’이라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정치인들과, 특히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힘 있는 나라들이 적극적이지 않다면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 또 이미 자원과 환경 차원에서 ‘지구적 한계’를 벗어난 지금, 산업문명의 수혜자인 우리 모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지구산업문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포괄적으로 성찰하는 이런 실존적 물음들이 이제 매우 시급한 현실적 과제로 떠올랐다. 호주 보고서는 그런 물음의 해법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문명사적 긴급성을 전한다.”

시민적 관심과 정치적 결단 없으면 멸종 못 피해


▎조인원 이사장은 NGO 활동가이기도 하다. 조 이사장이 9월 19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개최된 UN 세계평화의 날 38주년 기념행사에서 “10년의 미래, 의식과 정치: 기후변화의 새 국면”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고 있다. / 사진:경희대학교
이런 시나리오는 어떤가. ‘결국 세계 각국과 국제사회는 산업혁명 이전 기준으로 2도 상승을 막지 못한다. 그 결과 수백만 환경난민, 각국 GDP 급락 등 엄청난 재앙이 가시화된다. 기후변화 재앙을 피부로 목격한 세계 각국과 시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온 지구인이 중지를 모아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한다….’


▎조인원 이사장과 이리나 보코바 전 유네스코(UNESCO) 사무총장(2009~2017)의 대담을 담은 [지구의 운명 평화로 가는 길](2018). / 사진:경희대학교
“중지를 모았으면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 유엔도 금세기 말까지 2도 상승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막아 보자고 한다. 그런데 그 목표는 규범적인 처방이다. 기후학자들은 물론이고 유엔마저도 종전의 산업화 방식이 계속되면 불과 몇 십 년 내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이 2도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티핑 포인트들’이 붕괴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은 훨씬 더 줄어든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2020년까지 경로를 바꿔야 한다’, ‘기후변화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고 말하는 이유다. 시간이 관건이다. 말씀대로 그동안 ‘지구적 각성’이 일어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 300년 후 미래에서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을 바라보다(The Collapse of Western Civilization)]의 저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는 시간의 흐름을 뒤집은 시나리오를 말한다.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서술 양식을 빌려 오늘의 역사를 회상한다. 요지는 인위적 기후변화의 징후가 너무도 뚜렷한 20세기, 21세기를 살다 간 그 시대 사람들이 재앙의 가능성은 충분히 인지했지만 결국 풀어내진 못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시대를 살다 간 지식인·일반인들이 갖고 있던 인식 구조와 삶의 방식, 체제의 문제다.

이런 양극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의 선호는 물론 말씀하신 ‘극적인 각성’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선 지금과 다른, 아주 크게 다른 시민적 관심과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국제사회나 민족국가체제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기후변화 대응 체제는 이미 실패했다는 평가도 있다. 세계의 시민, 지구의 시민인 개개인이 앞으로 더 크게 닥칠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응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 개개인은 어떤 윤리 기준을 가지고 구체적 행동을 해야 할까?

“개개인의 윤리 기준과 행동 양식은 중요하다. 내가 소비하는 에너지,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지구산업문명이란 거대한 삶의 질서, 경제사회 질서, 산업문명의 구조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지구적 차원의 노력이 관건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기후학자들은 대기 중 지구온난화 가스를 포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 제시하는 것처럼 첨단기술을 활용해 적정 태양열을 우주로 다시 내보내야 한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부정적인 효과와 불확실성 때문에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개개인이 내리는 선택은 미미해 보인다. 수십 년 넘게 학계가 주장해 온 국가와 정치 차원의 결단, 에너지원의 구조 변동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본다. 다수의 생각과 표심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정치에 그 선택의 중요성을 적극 권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느 기후과학자의 말대로 인류의 생존과 안위에 관한 ‘마지막 게임’을 치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시민의식의 변화가 중요하다. 새로운 정치비전과 국정의제의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미래는 오늘의 세상 정치 아니라 우리 후손들의 소유물


▎10월 12일 일본 도치기현 도미오카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제19호 태풍 하기비스의 피해지에 고립된 주민들을 구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태풍 피해를 키우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민주주의 제도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한계가 있다면 어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가. 일부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전문가 중심 통치체제나 권위주의적 정부가 기후위기 해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민주주의는 국민의 안위와 행복 추구에 관련된 사안들을 자유로운 의사 표현, 견제와 균형, 다수의 선택에 의한 지배로 풀어 가는 정치제도다. 그런 점에서 좋은 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의 기후위기 대처가 그 예다. 앞서 언급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다. ‘기후변화는 거짓(hoax)이다’라는 논리와 함께 그런 선택을 했다.

다행히도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과거와 달리 미국의 시민 약 70%가 ‘기후변화가 심각하다’,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미 행정부는 탄소배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석유와 셰일가스 시추·채굴 사업을 계속 인가해 주고 있다. 미국인의 안위와 행복의 존재 기반을 심각히 해칠 수 있는 그런 선택을 왜 하는 것일까. 오작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 아닌가 한다. 민의의 흐름이 결정적 폐해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기후변화보다는 경제와 성장, 사적 이익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속적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다.

일사불란한 권위주의 체제는 그 점을 보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선 권위주의가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역사가 말하듯이 정치에 부여된 과도한 권력은 너무도 많은 폐해를 노정했다. 기후변화 같은 현대사회의 위기 상황에선 성장과 부, 현실정치의 논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제도나 연구기관을 추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모든 국민의 안위와 행복, 중장기적 국익에 결부된 사안과 영역에서 그렇다.”

‘컬럼버스의 달걀’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듯이, 모든 문제는 일단 해결된 다음에는 쉽게 보인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의 컬럼버스의 달걀은 어디서 출현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난감한 질문이다. 답을 알면 좋겠다. 그러나 짤막하게 말씀드리면, 인간사 모든 일의 시작은 사람이다. 우리들의 의식, 마음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 ‘극복해 가야 한다’, ‘서로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물론 우리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주할 미래를 온전히 예측할 길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지구적으로 확산된 마음으로 세상 정치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미래는 정치의 소유물이 아니다. 인류와 지구를 위한 시민의식이 한곳으로 모이면 역사는 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의식 속에 인간과 자연, 문명과 세계의 ‘전일적 사관(holistic view of history)’이 함께했으면 한다. 초연결(hyperconnectedness)의 가능성과 그것의 인간적 의미가 함께했으면 한다.”

미래로의 비상한 책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그레타툰베리(2003년생)와 같은 새로운 세대와 기성세대는 이제 건널 수 없는 인식의 격차를 노정한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연대가 가능할까?

“지난 연말부터 당시 15세였던 그레타 학생의 활동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기후위기의 실상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런 내용의 말을 이어 간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우리 미래를 훔쳐가고 있어요.’ ‘경제성장의 동화에 사로잡혀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엔 관심이 없어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몇 주 전 그레타 양은 유엔 청년기후정상회의(UN Youth Climate Summit) 참석차 뉴욕으로 향했다. 교통수단이 지구촌 화제가 됐다. 지구온난화의 주원인인 탄소 발자취를 줄이기 위해 보트를 타고 영국 항구도시 플리머스에서 뉴욕 유엔본부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유엔 사무총장이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기후위기에 관한 강경한 소신을 다시 한번 세상에 전했다. 이전 과정에 드러난 그레타 학생의 기후위기에 관한 지식은 상당해 보였다. 기후위기 그리고 또 매일매일 수백 종이 멸종을 거듭하고 있는 지구 행성의 생태위기에 관해서 최근 유엔 보고서를 비롯한 연구 동향을 두루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미래세대와 기성사회의 인식 차이가 극복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가 한다. 세계 수백만 청소년을 거리로 이끄는 유례없는 새로운 기후 현실. 최근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기후위기에 관한 수많은 정보와 연구 결과들. 이 비극적 현실에 관해 기성세대는 더 알아야 한다. 자신을 위해, 또 미래세대의 미래를 위해. 그레타의 말이 맞다. 미래는 ‘미래세대의 것’이다. 위기 대처를 위한 새 지평을 반드시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인식의 지도가 필요하다. 삶의 가치와 문화를 살피고, 정치의 요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남길 유산이 무엇인지. 지구의 환경과 자원, 자연을 활용해 이룬 산업문명의 질서는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또 이를 축으로 통치의 기반을 마련해 온 ‘세상 정치’의 미온적 현실 대처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 가야 할 것인지. 크고 중하고 매우 현실적인 우리의 실존이 걸린 문제들을 되새기면서 미래 세대의 분노로 가득한 절규를 귀담아듣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엔 기성세대, 기성정치의 책임의식이 있다. [책임의 원칙: 기술문명시대의 생태학적 원리](1979)의 저자인 철학자 한스 요나스(1903~1993)의 말처럼 정치와 사회의 근본 책무는 미래세대에 ‘합당한 삶의 조건’을 물려주는 일이다.

지난달 일로 기억된다. 북극 지역 온도가 치솟았다. 그린란드 어느 곳에선 단 하루 동안 수십억 톤의 얼음이 녹아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7월 한 달 얼음 유실 총량이 약 3000억 톤에 이른다고 한다. 충격적인 일이다. 같은 기간 아프리카 중서부 산림에서 약 5000회, 남미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4만~5만 회의 산불이 났다. 이 모두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운명을 좌우할 매우 중요한 티핑 포인트들이다.

우리는 지금 호모 사피엔스 역사상 기록적인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참담한 지구온난화의 시간대다. 사람들 희로애락의 근간인 땅과 하늘과 바다가 우리가 내뿜는 탄소에 의해 빠르게 안정을 잃어 가고 있다. 선택의 순간이다. 그 선택은 역사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성세대의 몫이다.”

새로운 기후변화 패러다임을 위해 교육보다 중요한 것을 찾기 어렵다. 앞으로 초등·중등·고등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경희학원의 경우는 기후변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생애주기 전체를 위해 이뤄지는 현대사회의 교육체계가 점점 더 실용과 편익, 전문성과 세분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더 똑똑한 개인, 경쟁력 있는 사회, 더 많은 성장과 팽창의 기회를 지향하면서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 얻은 것은 그 어느 때와도 비할 수 없는 산업화·문명화로 인한 삶의 편익과 효율이다. 또 과학기술은 이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확장된 공간이다. 그러나 산업화·문명화가 빛을 발할수록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우리 삶의 근간인 자연과 환경, 그리고 기후가 어느 분의 표현처럼 ‘성난 야수’로 돌변하고 있다.

경희학원, 시민·국제 사회 잇는 온라인 플랫폼 구축 착수


▎‘빙하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지구온난화로 원래 크기의 80~90%를 잃어 ‘사망선고’를 받은 알프스산맥의 피졸 빙하 장례식(9월 22일)에 시민들이 참석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기후와 생태에 관해 누구보다도 많은 최신 연구 성과를 접하고 있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이런 말로 개회사를 했다. ‘자연이 분노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셈이다’, ‘자연은 항상 우리가 파괴한 만큼 우리에게 돌려준다.’ 실로 지구상엔 최근 들어 수백만, 수천만 명의 피해자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인도적·사회경제적 피해는 숫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거대하다.

우리는 지금 유사 사례가 없는 인위적 기후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류의 미래는 과연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을 더 심각히 물어야 하는 시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물음은 ‘종말론’에 대한 경멸, 멸시로 인해 금기시하던 주제다. 그러나 이젠 학계와 국제사회에서, 또 종교계까지도 ‘문명의 종언’, ‘지구운명의 날’과 같은 거친 표현을 사용한다. ‘벼랑 끝 위기’의 긴박성을 말하고 있다.

크게 변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늘의 현실이다. 나와 타자, 나와 자연, 나와 세계의 ‘분리’를 전수하는 교육에서 인간이 자연과 우주의 일부라는 교육,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초연결의 세계’에 속해 있다고 가르치는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환경과 자연이 외생 요인, 외부 비용이란 근거 없는 학문적·사회적 전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신화’를 되풀이하면 할수록 ‘인간적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하는 지구행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으로 다가설 수 있다. 인간과 사회, 인간과 경제, 인간과 정치, 그리고 특히 인간과 자연에 관한 ‘의식의 지도’, ‘현실의 지도’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 교육의 긴급한 과제다.

경희학원은 그간 그런 사유세계를 고민해 왔다. 앞으로 더 깊이 있게, 더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이 문제를 고민해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인간의식과 정신세계, 지구적 운명과 새로운 문명 가능성에 관한 교육·연구·실천 프로그램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관심사는 기후변화 같은 시급한 지구적 현실을 시민사회·국제사회와 소통하는 온라인 플랫폼 구축이다.”

기후변화 해결에 관한 비관론과 낙관론이 있다. 조인원 이사장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기후변화는 지구적 차원의 명운이 걸린 긴급한 현안이다. 촌각을 다투는 문제다. 그러나 지구와 인류가 필멸의 길을 갈 것이라는 비관론도, 모든 것을 과학기술이 풀 수 있다는 생각도 온당치 않다. 지구행성과 같은 복잡계(複雜界, complex system)의 미래는 누구도 온전히 예측할 수 없다. 과학기술이 연금술을 펼칠 수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의미 있는 일은 신뢰할 수 있는 과학을 믿고 중지를 모으는 것이다. 신속하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기후위기의 극복을 위한 행동에 힘을 싣는 일이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시간이 다 돼간다’, ‘마셜플랜처럼 거대한 동원체제가 필요하다.’ 진실을 말하려는 과학자, 책임 있는 국제기관의 이런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개인과 사회, 국제사회 차원의 용단이 필요한 시간이다. 기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시민적·지구적 관심이 필요하다.”

- 글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 whanyung@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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