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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의 ‘인간혁명’] 美 대선판 흔드는 40대 아시안 앤드루 양 

‘노동의 종말’ 앞두고 기본소득을 꺼내 들다 

“12년 후 미국 노동인구 3분의 1 실직… 생존책 마련해야”
각종 복지비용 통일 가능해 보수 일각에서도 환영 목소리


▎2020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후보로 나선 앤드루 양(44)이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양은 9월 말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8%를 차지하며 4위로 뛰어올랐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40대 아시안 남성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대만계 기업인 앤드루 양(44)입니다. 출마 당시만 해도 이름 없는 군소 후보였지만 지난 9월 주요 후보들만 참석 가능한 TV 토론회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의 뒤를 바짝 쫓으며 차세대 주자로 성장하고 있죠. 미국의 정치전문미디어 [폴리티코]는 “앤드루 양의 후원자가 20만 명을 넘었고 1분기 만에 후원금이 2배 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돌풍은 핵심 공약인 ‘보편적 기본소득(UBI)’ 덕분입니다. 18세 이상 모든 미국인에게 월 1000달러씩 주겠다는 거죠. 나중에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로 주는 게 목표입니다. 방송 후 그의 지지율은 급상승했습니다.

양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정말 가능한 걸까요. 아니면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포퓰리즘일까요. 오늘 ‘인간혁명’은 멀리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부터 현재까지 논의된 기본소득의 내용과 실현 가능성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은 불평등이 심화된 미래사회를 그립니다. 주인공 웨이드가 사는 2045년 오하이오의 콜럼버스는 빈민가처럼 묘사되는데요. 사실 이곳은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공동 주거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컨테이너를 쌓아놓은 듯한 트레일러 촌으로, 전쟁 난민 지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미래사회의 사람들이 빈민 또는 난민처럼 그려지는 이유는 뭘까요? 핵심 원인은 바로 일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대다수의 사람은 실직 상태에 놓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 배경인 오하이오는 IT기술의 발달로 쇠락한 미 북동부의 공장지대인 러스트 벨트(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등) 중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지난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가 ‘제조업 부활’ 공약으로 돌풍을 일으켰죠.

노동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의 유일한 낙은 ‘오아시스’라는 게임에 접속해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오아시스’는 일종의 가상현실로 그 안에선 이미 사라져버린 인간의 여러 직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은 일상적으로 AR·VR을 착용하고 온라인에 접속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집을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게임 속 아바타를 구매하는 데 탕진하죠. 가상현실에서 통용되는 게임머니는 현실에서 실제 화폐처럼 쓰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처럼 미래를 그린 많은 영화가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를 묘사합니다. [블레이드 러너]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셀]은 화려한 도시와 빈민가를 대비해 보여줍니다. 도심의 초고층 빌딩엔 네온사인과 홀로그램으로 반짝거리는 광고판들이 수두룩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기업들의 마케팅이 넘쳐나고 소비를 부추기지만 정작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는 별로 없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구매력 또한 사라진 ‘노동의 종말’ 시대기 때문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직업 증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묘사된 오하이오 콜럼버스 시의 시가지 모습. /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2017년 2월 스페이스엑스·테슬라모터스의 CEO 일론 머스크는 두바이에서 열린 ‘월드 거버먼트 서밋(World Government Summit)’ 행사에서 “미래는 AI의 상용화로 인간의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AI가 현존하는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거란 이야기죠. 머스크는 지난해 3월 세계 최대의 민간 우주로켓(길이 70m, 폭 12.2m) ‘팰콘 헤비(Falcon Heavy)’를 쏘아 올린, 지구인 중에서 미래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인물입니다.

80%가 일자리를 잃게 될 거라는 머스크의 전망은 이미 현실이 돼가고 있습니다. 요즘 식당가에 가면 별도의 계산원 없이 직접 음식을 주문하는 키오스크가 보편화 돼 있습니다. 국내업체인 배달의 민족은 AI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로봇카페를 오픈했고, 테이블 사이를 ‘자율주행’하는 서빙 로봇도 개발했습니다. 이 밖에도 드론을 이용한 택배, 상담 전문 채팅봇 등 기계와 AI의 일자리 침투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보스포럼은 2020년까지 5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2033년까지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스즈키 타카히로는 자신의 책 [직업소멸]에서 “30년 후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일자리를 잃고 소일거리나 하며 살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국내 연구 결과도 비슷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십여 년 후 현재 사람이 수행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은 AI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2030년 국내 398개 직업이 요구하는 역량 중 84.7%는 AI가 인간보다 낫거나 같을 것이라는 설명이죠. 전문영역으로 꼽히는 의사(70%)·교수(59.3%)·변호사(48.1%) 등의 역량도 대부분 AI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미래 인간의 일자리는 대폭 사라질 전망입니다. 문제는 직업이 천천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 버린다는 거죠. 미국에선 1880년대 처음 등장한 엘리베이터 도우미가 1950년대 12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1960년대 6만 명으로 반 토막 난 뒤 얼마 후 사라졌습니다. 국내에서도 ‘안내양’으로 불렸던 버스 차장이란 직업이 존재했으나 1980년대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자동문과 하차벨이 개발됐기 때문이죠.

‘직업 증발’이 대표적으로 예고된 업종 중 하나는 운수업입니다. 자율주행기술 탓입니다. 일반 자가용의 경우 상용화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노선이 일정한 화물트럭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은 자율주행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자동화와 AI의 확산으로 소수의 관리 인력만 필요하게 되고,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자가 거의 없는 경제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술발전은 늘 인간의 일자리를 소멸시켰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만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 인간은 언제나 산업을 발전시키고 시장을 확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기술혁명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지금까지의 기술발전이 인간의 신체를 확장하는 것이었다면 미래의 기술혁명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는 다리가 발달해 수레바퀴에서 자동차, 비행기 등으로 확장됐습니다. 눈이 발달해 모니터와 망원경 등으로 발전했죠.

그러나 AI 기술혁명은 인간의 신체는 물론 지적노동까지 대체합니다. ‘직업 증발’이 예고되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지적노동을 하는 직업 중 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일자리가 전문직입니다. 2016년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처음 도입한 AI 의사 ‘왓슨’은 수십만 명의 환자 데이터와 1500만 쪽에 달하는 의학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 의사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식의 양이죠.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왓슨은 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단 8초 만에 내립니다.

왓슨과 같은 AI 의사가 많아질수록 인간 의사의 수는 줄어들 것이며, 남아 있다 해도 그 역할이 달라질 겁니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자신의 임상 경험과 의학 지식만으로 처방과 진단을 내렸지만, 앞으로는 왓슨을 활용해 환자와 소통하고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수술도 마찬가지죠. 이미 사람 손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정교한 수술은 전용 로봇인 ‘다빈치’가 하고 있습니다.

법조인도 마찬가집니다. 30년 동안 법관을 지낸 강민구 부장판사(전 법원도서관장)는 변호사의 업무를 예로 듭니다. 그는 “유능한 변호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법조문과 해당 판례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였다”며 “하지만 법률지식에 있어 인간 변호사는 앞으로 AI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2016년 미국 뉴욕의 유명 로펌 ‘베이커드앤드 호스테들러’에 처음 도입된 AI 변호사 ‘로스’는 초당 1억 장의 법률 문서를 검토해 개별 사건에 가장 적절한 판례를 찾아내 추천합니다.

앤드루가 쏘아 올린 ‘생존’ 공약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미 자동차 제조사 포드와 손잡고 지난해 3월 중국 광저우(廣州)에 자동차 자판기를 선보였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이처럼 ‘노동의 종말’이 다가오기 때문에 인간의 ‘먹고 사는’ 문제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러나 기본소득 제도를 무작정 도입하기 어려운 것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 때문입니다. 전 국민에 대한 기본소득은 노동 의욕을 떨어뜨리고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란 이야기죠.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래 사회는 인간의 노동 자체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복지’가 아니라 ‘생존’의 측면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고마자와대 이노우에 도모히로 교수는 [모두를 위한 분배: AI시대의 기본소득]이란 책에서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한 선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위한 터전을 마련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기존의 복지정책은 수급자에게 소득이 생기면 수급액이 줄어 일할 의욕을 해치지만 기본소득은 그와 정반대”라고 지적합니다.

앤드루 양의 월 1000달러 ‘보편적 기본소득(UBI)’ 공약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UBI가 “기술발전으로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자율주행 트럭의 기술적 완성도는 이미 98%에 달해 350만 명의 미국 트럭 기사들을 위협하고 있고 소매상점·콜센터·패스트푸드점 등 다른 일자리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앞으로 12년 후면 현재 일하고 있는 미국인 3분의 1이 실직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양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합니다. AI와 자동화로 혜택을 보는 기업들로부터 부가가치세(VAT)를 걷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아마존을 예로 듭니다. “연간 2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아마존이 세금은 내고 있지 않다”며 “아마존 때문에 수많은 점포가 문을 닫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세금 0달러”라고 말합니다. 아마존을 비롯한 페이스북·구글 같은 IT기업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없앤 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UBI에 대한 또 다른 재원으로 양은 ‘테크 체크(tech check)’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제공한 개인정보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자는 겁니다. 대기업들이 쿠폰 몇 개 쥐여주고 개인정보를 가져다 큰돈을 버는 잘못된 프레임을 깨자는 거죠.

그는 “미래사회의 개인정보는 원유보다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면서 알래스카 주민들의 ‘오일 체크(oil check)’를 예로 듭니다. 알래스카 주 정부는 1974년부터 유전 수입을 영구기금으로 만들어 모든 주민에게 원유 배당금을 지급합니다. 현재 기금 규모는 약 440억 달러에 달해 미래세대까지 충분히 줄 수 있습니다.

양은 지난달 TV 토론회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시대 최대의 난제 중 하나는 트럼프가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가 하는 것”이라고요. 그러면서 “(트럼프 당선의 원인은) 러스트 벨트 같은 지역에서 400만 개의 일자리가 기술과 자동화로 사라진 게 주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이변이 아니라 기술혁명에 따른 사회변화의 흐름을 다른 정치인들이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양은 “미국 건국 당시부터 토머스 페인은 ‘시민 배당금’이란 제도를 주장할 만큼 UBI는 가장 미국적인 제도”라며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실제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1516년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도둑질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면 어떤 처벌도 이를 막을 순 없다”며 “끔찍한 처벌 대신 모두에게 일정 수준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해법”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방직산업이 급성장해 지주들이 소작농을 쫓아내고 양을 키우면서 큰돈을 벌었지만, 서민들은 기아에 허덕였습니다. 모어는 이를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로 풍자했죠.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모어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


▎배달의 민족이 지난 7월 선보인 미래형 식당 ‘메리고키친’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조리된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앞서 앤드루 양이 언급한 미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페인도 [토지정의]에서 토지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공유자산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므로 토지에서 나온 지대소득 중 일부를 기금으로 마련해 성년에게 공평하게 배분하는 ‘시민 배당금’을 주장했죠.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도 [진보와 빈곤]에서 “공공재산인 토지에서 나온 소득은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역시 생전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했죠.

현실에서도 기본소득은 이미 몇몇 나라에서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2016년 스위스는 정부가 매달 30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국민 다수(76.9%)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액수를 줄이는 등의 방향으로 재논의 되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월 7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시범 실시하기 시작했고요.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구단체인 ‘어젠다 2050’은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 방안’을 주제로 2017년부터 여러 차례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며 현실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별도의 부가세를 부과하는 방안, AI와 같은 로봇의 기계세를 신설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모임 대표인 김세연 의원은 “기본소득은 기술발전이 가져올 미래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라며 “기존에 있던 각종 복지비용을 모두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기 때문에 행정비용이 크게 줄어 예산 절감 효과도 있다”고 말합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IT 기업의 오너들도 기본소득의 취지에 공감합니다. 특히 로봇세를 거두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모든 노동자엔 세금이 부과된다, 이들처럼 로봇에게도 세금을 매겨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소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뜻 보면 로봇세 도입 시 세금을 가장 많이 내야 할 것 같은 기업인들이 긍정적 입장을 보이는 게 이상합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도 기본소득은 꼭 손해만은 아닙니다. 실직한 노동자의 임금만큼 로봇세를 내면 비용이 많이 증가하지 않죠. 또 영화 [공각기동대]의 미래 사회처럼 좋은 상품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구매할 소비자가 없다면 기업 활동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적절한 크기의 시장이 유지되고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은 필요합니다.

실제 유럽의회에선 2016년 ‘로봇세’ 도입을 논의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무산되긴 했지만, 이듬해 2월 로봇에게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전자인간’이라며 법적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로봇에게 인격권을 주고 언젠가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둔 거죠. 과세하기 위해선 먼저 일반 사람과 같은 ‘시민격’, 기업과 같은 ‘법인격’ 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의회의 마디 델보 법제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은 “로봇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민격을 부여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기계들이 많이 생겨나는 현실을 기존 법률 체계가 따라갈 수 없어 모든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획득하며 큰 화제가 됐죠.

정치 아웃사이더 앤드루 양의 돌풍, 어디까지?


▎테슬라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오른쪽)가 지난 8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에 참석해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로봇세가 도입될지, 기본소득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될지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점 한 가지는 미래의 인간은 분명히 ‘노동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때의 인간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방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앞으로 인간은 AI와는 차별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게 될 거라는 점이죠.

이와 같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앤드루 양 이전에도 심도 있게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제도권 정치에서 기본소득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원래 양은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한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유명인과 협업해 기부금을 모으는 ‘스타기빙닷컴(stargiving.com)’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건강관리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사업가로서 경력을 쌓았죠. 최근에는 ‘벤처포 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 VFA)’라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청년들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당시 양은 VFA로 2025년까지 1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죠.

정치 ‘아싸’였던 그를 ‘슈퍼루키’로 만든 것은 UBI 공약입니다. 구체적인 데이터와 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했습니다. 지난 방송 토론 후 10가구를 추첨해 월 1000달러씩 UBI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자 무려 45만 가구가 신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소셜 미디어 ‘레딧’의 공동 창업자인 IT 거부 알렉시스 오하니언은 “너무 좋은 아이디어다, 양이 할 수 없다면 내가 (UBI 지급을) 하겠다”고 트윗을 날렸습니다.

일론 머스크도 “나는 양을 지지한다, 그는 자신이 고스(goth)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고스’는 세상의 종말 등 어두운 소재를 다루는 록 음악의 한 형태로 최근에는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청년들을 일컫습니다. 이외에도 트위터의 CEO인 잭 도시, 영화배우 니컬러스 케이지 등이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죠.

내년 미국 대선까지는 아직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트럼프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리고 각종 성 추문으로 구설에 올라도 여전히 굳건해 보입니다.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서 생계와 일자리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그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호 ‘인간혁명’에서 살펴본 것처럼 트럼프의 제조업 살리기 정책은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앤드루 양의 돌풍이 계속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의 감소,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가 계속될수록 트럼프의 대항마로 그를 필요로 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트럼프가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가 하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앤드루 양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기술혁명으로 인한 ‘노동의 종말’이 어쩌면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욱 빨리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첨단 IT 국가라는 수식어는 큰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제일 먼저 기계가 일자리를 뺏어갈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각종 취업 지원 정책으로 관련 예산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노인들의 단기 일자리만 늘어난 것은 불확실한 경기의 여파도 있지만, 기술혁명의 탓도 큽니다.

“최저임금 인상, 자동화 부추겨”

특히 지난 2년간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가뜩이나 사라져 가는 인간 일자리의 종말을 앞당겼습니다. 임금 인상 대신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자동화로 바꿔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죠. 최근 식당과 편의점에서 시급을 올리지 않고 무인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가뜩이나 ‘무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 없는 미래’를 부추긴 겁니다.

앤드루 양 또한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입니다. 인상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민주당 후보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죠. 그는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는 좋지만, 중소상공인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자동화를 부추긴다”고 지적합니다. 대신 기본소득은 구매력을 높여 소규모 사업장을 유지시키고, 일자리를 잃어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죠.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해 가는데 한국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다수 국민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적폐와 친일, 빨갱이 같은 이념 논쟁으로 패거리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앤드루 양과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가 실제 대통령이 되는 길은 멀고 험난해 보입니다. 그러나 기술혁명과 인간의 일자리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시대정신을 깊이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 윤석만 기자/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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