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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23)] 치(恥): 부끄러움, 인간의 최소 조건 

곧바로 걸어야 할 길 도덕(道德)과 다르지 않아 

염치가 깨지면 후안무치… 결과는 치욕만이 기다릴 뿐
상식 통하고 정의가 존중받는 건전한 사회 만들어 내야


▎부끄러움을 잘 모르는 세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염치가 깨지면 결과는 치욕뿐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1. ‘지치득거(舐痔得車)’

옛날 전국(戰國)시대 때 송(宋)나라에 조상(曹商)이라는 자가 있었다. 한번은 송나라 임금을 대신해 진(秦)나라로 사신을 가게 됐다. 진나라로 떠날 때는 고작 몇 대의 수레만 주어져 다소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진나라에 도착한 그는 잘난 세 치 혀로 진(秦) 왕을 극진히 잘 모셨다. 그러자 진나라 왕이 너무나 흡족해해 무려 100대나 되는 수레를 상으로 줬다. 그는 의기양양해하며 송나라로 돌아와 장자를 만나 자랑하며 말했다.

“내가 그간 뭐 한다고 이 좁고 누추한 빈민굴에서 짚신이나 짜면서 삐쩍 마른 목덜미에 갖은 두통에다 누렇게 뜬 얼굴로 구차하게 살았을까? 만승(萬乘)의 임금을 깨우쳐 100대의 수레를 얻는 재주가 나에게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오!”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허허허, 그랬던가? 진나라 왕이 병이 나면 의사를 부르는데, 종기를 째고 고름을 빨아주는 자에게 수레 한 대를 주었다고 들었네. 치질을 핥아서 고쳐주는 자에게는 수레를 다섯 대 줬다고 하네. 치료하는 곳이 더러울수록 하사했던 수레의 숫자가 늘어났지. 그런데 자네는 도대체 그의 어디를 어떻게 빨아 줬기에 100대나 되는 수레를 얻었던가? 정말 더러워서 상종하기조차 싫다네. 썩 빨리 내 앞에서 꺼져버리게!”

[장자]에 나오는 ‘지치득거(舐痔得車)’, 즉 ‘혀로 치질을 핥아 주고 얻은 수레’라는 고사성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체면조차 버렸던 당시의 세태, 또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일상, 아니 재주라고 우쭐하며 자랑삼던 풍토, 그러나 그 일이 얼마나 부끄럽고 치욕스런 일인지, 윗사람에게 아첨해 이익을 얻는 자의 비열함을 통박한 유쾌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사실 그 옛날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도 자신의 출세와 이익을 위해 갖은 부끄러운 방법을 동원하고도 그것을 재주라 여기는 풍토는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아 보인다. 부끄러움은커녕 그것을 정의로 포장하고 더욱 떳떳이 여기며 당당해하는 모습이 어찌 이와 다르다 하겠는가?

2. 몰염치(沒廉恥)의 시대


▎중국 고대 철학자인 장자의 초상. 장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세태를 비판했다.
그야말로 몰염치의 시대다. 몰염치는 염치가 몰락하여 아예 없음을 말한다. 달리 무치(無恥)라고도 한다. 염치가 없다는 말은 양심(良心)이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양심은 “도덕적 가치를 판단해 선과 악, 옳고 그름을 깨달아 바르게 행하려는 의식”을 말한다.

무치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의식이 없음은 물론 그것을 깨달아 바르게 행하려는 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얼굴이 두껍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통 후안(厚顔)이라는 말이 붙어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로 자주 쓰인다.

몰염치는 염치가 물속에 들어가 버린 듯(沒) 전혀 보이지 않음을 말하고, 무치는 염치(恥)가 없다(無)는 말이다. 사람치고 어찌 염치가 어찌 전혀 없을 수 있겠냐만, 염치가 없다면 그것은 어떤 의도된 목적에 의식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염치를 깨트려버리다(破)라는 뜻의 파렴치(破廉恥)라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 ‘염치도 모르는 뻔뻔스러움’, 여기서 파(破)는 돌을 깨다는 뜻이다. 그 단단한 돌, 어지간한 힘으로는 깨트릴 수도 없는, 인간의 가장 깊은 속에 들어 있는 것이기에 깨트려서는 아니 되는 염치를 ‘깨트리다’는 뜻에서 파(破)가 어찌도 이렇게 적절하게 사용됐는지를 생각해 본다.

염치는 일찍부터 중국에서 나와 우리를 비롯한 동양인들에게 중요한 윤리 도덕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 존중돼 온 말이다. 일찍이 [순자]가 자신을 수양하는 법에 대해 언급하면서 등장한 말로 알려졌다.

파렴치, 염치가 깨어지고 나면 얼굴이 두꺼워지는 법, 후안무치해진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로지 치욕(恥辱)만이 기다릴 뿐이다. 더구나 자연인이 아니라 나라의 지도자가 그렇다면 그 치욕은 한 개인에 머물지 않고 나라 전체에 미치게 된다.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여러 차례 겪었던 우리의 국치(國恥)가 바로 무능하고 파렴치한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지 않았던가?

아무리 능력 뛰어나도 명분 없으면 무용

그래서 예로부터 강조해 왔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여전히 유효하다. 천하를 다스리기 전에 자신의 나라부터 잘 다스려야 하고, 이도 가정을 잘 다스려 남의 모범이 됐을 때 가능하며, 가정은 자신이 잘 수양됐을 때 평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자신이 잘못 수양됐고, 가정이 엉망이고 정의롭지 못하면, 나랏일을 할 명분 그 자체가 없어진다. 동양에서는 명분을 얻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억지로 할 수는 있을는지 몰라도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며, 궁극에는 개인의 치욕을 넘어서 국치로 갈 뿐이다.

3. 염치의 어원


▎색연필과 볼펜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배우 김혜자의 대본. ‘국민 엄마’로 불리는 대배우지만 늘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염치를 잃으면 치욕(恥辱)에 이르고 만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염치와 치욕에 공통으로 든 글자가 치(恥)이다. ‘양심의 부끄러움’을 한자에서는 어떻게 해서 치(恥)로 그려냈을까? 치(恥)는 글자 그대로 이(耳)와 심(心)이 경합한 글자다. 그런데 이들이 무엇을 상징하기에 ‘치욕’을 뜻하게 됐을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먼저, 마음속(心)으로부터 느껴지는 양심의 가책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귀(耳)가 붉어짐을 상징한다는 설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양심이라는 것이 있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것이 자연스레 밖으로 드러나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빨개진다는 것이다.

둘째, 옳고 그름과 선악은 귀(耳)를 통해 마음(心)으로 전달되어, 양심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이(耳)와 심(心)을 결합해 치(恥)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셋째, 옛날 전쟁에서 패하면 귀를 잘라 수급을 대신하던 패배의 치욕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넷째, 또 刵(귀 벨 이)나 聝(귀 벨 괵) 등에 근거해 귀를 베던 습속이 옛날의 형벌의 하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 중 어느 해설이 더 정확한지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귀가 빨개지든, 전쟁에서 패한 포로의 귀를 잘라 전공을 내세웠든, 귀(耳)가 수치의 상징임은 분명하다.

귀를 자르던 형벌에서 치(恥)의 어원을 찾는 것은 영어의 ‘치욕’의 어원을 생각하게 한다. 치욕을 뜻하는 ‘stigma’는 범죄자의 피부에 불에 달군 인두로 낙인을 찍던 데서 유래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도 ‘stigma’로 썼는데, ‘스틱이나 뾰족한 도구’를 뜻하는 steig-(PIE)에서 근원해 ‘뾰족한 도구로 낸 표식·펑크·문신·마크’ 등을 뜻했고, 다시 죄수들에게 ‘뜨거운 철로 태워서 피부에 표식을 남김’을 말했다.

말을 거둬들이는 게 겸손의 출발

이는 중국의 고대사회에서도 등장하는 묵형(墨刑)과도 비슷해 보인다. 묵형은 죄수의 얼굴에다 먹으로 문신을 새겨 그가 죄인임을 표식했던 제도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불로 지진 인두로 낙인을 찍었으며, 부위도 얼굴에 한정되지 않고 등이나 팔 등 신체의 다른 곳에도 가능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뾰족한 것으로 찌르다’는 뜻의 ‘stick’도 여기에서 근원했다. 물론 대문자로 쓴 ‘Stigmas’는 1670년대부터 ‘독신의 몸에 초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닮은 표식’ 즉 ‘성흔(聖痕)’을 말하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염치’는 인간을 짐승과 구분하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덕목의 하나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앞에 ‘도덕(道德)’이 붙어 ‘도덕 염치’라는 말을 많이 쓴다. ‘도덕’이 무엇이던가? 우주만물의 운행질서, 그 질서를 따라가야 하고 걸어야 하는 인간의 길을 도(道)라 하고, 그 길을 가면서 갖은 유혹에도 한눈팔지 말고 바르게 걷는 ‘정직한 마음’, 그 ‘곧은 마음’을 덕(德)이라 하지 않았던가?

치(恥)는 다른 글자에 비해 상당히 이후에 생겨난 글자다. 소전체부터 등장하며 [설문해자]에서 처음으로 이의 구조에 대한 해석이 이뤄졌다. “치욕을 말한다(辱也). 심(心)이 의미부이고 이(耳)가 소리부다”라고 해 허신은 이(耳)를 소리부로 봤다.

그러나 이후에 등장한 치(耻)·치(誀)·치(?)·치(聇) 등과 같은 여러 이체자를 살펴보면 이(耳)는 대체로 고정된 반면, 심(心)이 지(止)·언(言)·산(山)·정(正) 등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耳)는 단순한 소리부라기보다는 의미를 겸한 소리부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 때문에 최근의 연구에서는 “심(心)과 이(耳)가 의미부고, 이(耳)는 소리부도 겸한다”라고 풀이한다. 그래서 [설문해자]의 말처럼 ‘치욕(恥辱)’이 원래 뜻이고, “치욕을 느끼게 되면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발개진다”라거나 “치욕스런 말이 귀에 들어가면 마음에서 수치를 느끼게 된다”는 해설처럼 ‘귀’가 더 중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염(廉)도 재미있는 글자이다. ‘청렴(淸廉)하다’는 뜻인데, 엄(广)과 겸(兼)으로 구성됐다. 엄(广)은 214부수 글자의 하나로, 옛날 거주 형태의 하나였던 동굴 집에 앞으로 처마를 내고 받침대를 그린 모습이다. 그래서 엄(广)이 들어가면 암(庵, 암자), 점(店, 가게), 부(府, 곳집), 고(庫, 곳집), 측(廁, 뒷간)에서처럼 달아낸 건축물을 뜻한다.

겸(兼)은 원래 두 개의 화(禾)와 손을 뜻하는 우(又)로 구성돼 볏단 둘을 한 손으로 쥔 모습을 그렸다. 이로부터 ‘겸하다’는 뜻이 나왔으며, ‘아우르다’는 뜻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겸(兼)으로 구성된 글자들은 이러한 의미 지향을 가진다. 예컨대 겸(謙)은 ‘겸손하다’는 뜻인데 말(言)을 많이 해 떠벌리지 않고 속으로 거둬들이는 것이 바로 ‘겸손’의 출발임을 보여준다.

또 겸(鎌)은 ‘낫’을 말하는데, 한 손으로 볏단을 쥐고 벨 수 있도록 고안된 금속 도구를 말한다. 겸(鉗)이나 겸(箝)은 죄수의 목에 채우는 형벌 도구인 ‘칼’을 말하는데, 마음대로 나대지 못하도록 목을 구속하는 쇠나 대로 만든 형벌 도구를 말한다.

엄(广)과 겸(兼)이 결합해 만들어진 염(廉)은 원래 지붕에서 한 곳으로 모이는 곳을 말했다.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안쪽을 향해 한 곳으로 모으다는 뜻에서 속으로 거둬들이다, 검소하다, 청렴하다는 뜻이 나왔다.

그래서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을 말한다. 잘난 체하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을 속으로 거둬들이고(收斂, 수렴), 양심으로부터 생겨나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스스로 양심의 문제고, 그래서 염치(廉恥)는 ‘인간이 곧바로 걸어야 할 길’을 말한 ‘도덕(道德)’과 다르지 않다.

4. ‘귀’의 상징: 총명함


▎교토 히가시야마(東山)구에 있는 귀 무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군과 양민을 학살한 증거다.
‘귀’를 뜻하는 이(耳)는 귀 모양을 그대로 그렸는데, 외이(外耳) 즉 귓바퀴와 외이도(外耳道)가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물론 청각이 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지만, 한자에서는 이러한 기능 외에 다양한 특수한 의미를 가지며, 거기에 맞는 합성자를 만들어 냈다. 이를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요한 글자에 자주 귀(耳)가 등장하는 까닭

먼저, 이목구비(耳目口鼻)에서처럼 ‘귀’ 그 자체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목(耳目)은 ‘귀와 눈’이 원래 뜻이지만, ‘다른 사람의 주목’이나 ‘얼굴 생김새’ 전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만큼 귀가 신체 부위에서 중요한 부위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생활에서 눈과 함께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聾(귀머거리 롱)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또 이(耳)가 셋 보인 섭(聶)은 귀에 대고 ‘소곤거리다’는 뜻이며, 여기에 수(手)가 더해진 섭(攝)은 ‘당기다’는 뜻인데, 손으로 귀를 당겨 소곤대는 모습을 선명하게 그렸다.

나아가 이(耳)는 사람의 귀뿐만 아니라 ‘귀처럼 생긴 것’이나 ‘두 쪽으로 갈라진 것’ 등도 지칭한다. 예컨대, 버섯의 일종인 목이(木耳)는 나무에서 자라는 사람 귀처럼 생긴 버섯을 지칭한다. 다만 색깔이 검지 않고 흰색이면 은이(銀耳)라고 부르는데, ‘흰 목이버섯’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정이(鼎耳)라는 말도 있다.

옛날 청동 제기의 대표였던 정(鼎)의 귀(耳)라는 뜻인데, 정은 발이 세 개이고 귀가 두 개이며 둥근 배를 특징으로 한다. 무거운 정(鼎)에 막대를 끼워 메거나 들고 가도록 고안된 몸통 양 쪽으로 솟은 두 귀가 사람 머리의 양편으로 붙은 귀를 연상시켜 이(耳)라 부르게 됐다. 그것은 이방(耳房)도 마찬가지인데, 정방(正房)의 양편으로 늘어선 방을 말한다.

둘째, ‘듣다’는 뜻인데 [급취편] 등에서도 이(耳)를 “듣는 감각기관”이라고 해 귀의 청각 기능을 강조했다. 예컨대, 문(聞)은 문(門) 사이로 귀(耳)를 대고 엿듣는 모습에서부터 ‘듣다’는 뜻을 그려냈다. 또 청(聽)은 이(耳)와 悳(덕 덕)이 의미 부이고 ?(좋을 정)이 소리부로, 귀(耳)로 듣다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이(耳)와 口(입 구)로 이뤄져 말(口)을 귀(耳)로 듣다는 뜻을 그렸는데, 구(口)가 두 개로 변하기도 했다. 소전체에 들어 소리부인 ?(좋을 정)이 더해졌으며, 곧은 마음(㥁)으로 발돋움한 채(?)귀(耳) 기울여 듣고 청을 들어준다는 뜻을 반영했다. 듣다는 뜻이 외에도 받아들이다, 판결하다, 판단하다 등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한 청(廳)은 广(집 엄)이 의미부고 청(聽)이 소리부로, 대청(大廳)마루가 갖춰진 관아를 말했다. 관아는 일반 민중들의 의견을 잘 청취하고 아픈 사연들을 귀담아들어야(聽) 하며, 그런 사람들이 머무는 큰 집이나(广) 장소임을 웅변했다.

셋째, 총명함의 상징으로서의 ‘귀’다. [설문해자]에서는 귀를 두고 “총명함을 주관하는 기관”이라 하여 총명함과 귀의 연관성이 일찍부터 주관했다. 한자에서 총명하다는 뜻의 총(聰), 성인을 뜻하는 성(聖) 등에도, 빛나다는 뜻의 경(耿)에도 이(耳)가 들었고, 관직을 뜻하는 직(職)에도, 깨달음을 뜻하는 영(聆)에도, 초빙한다는 뜻의 빙(聘)에도 이(耳)가 들었다.

총(聰)은 이(耳)가 의미부고 悤(바쁠 총)이 소리부로, 훤히 뚫린 밝은(悤) 귀(耳)로써 남의 말을 잘 들어 살핌을 말했고, 이로부터 ‘총명(聰明)함’의 뜻이 나왔다. 또 성(聖)은 이(耳)와 구(口)가 의미부고 정(?)이 소리부로,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그렸다. 갑골문에서는 와 같이 써 사람(人)의 큰 귀(耳)와 입(口)을 그렸고, 금문에서는 사람(人)이 발돋움하고 선(?) 모습을 그렸는데, 귀(耳)는 ‘뛰어난 청각을 가진 사람’을, 구(口)는 말을 상징해 남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는 존재가 지도자임을 형상화했다.

그런가 하면 직(職)은 이(耳)가 의미부고 戠(찰진 흙 시)가 소리부로, 직무·직책이라는 뜻인데, 남의 말을 귀(耳)에 새기는(戠) 직책을 말해, 언제나 남의 자세한 사정을 귀담아듣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직무(職務)의 원뜻임을, 그런 일은 영민한 사람이 맡아야 함을 웅변해 주고 있다.

나아가 빙(聘)은 이(耳)가 의미부고 甹(말이 잴 병)이 소리부로, 방문하다, 초빙한다는 뜻인데, 훌륭한 사람(耳)에게 물음을 구하고 귀담아듣기(耳) 위해 말을 달려(甹) 찾아가고 물어보다는 뜻을 그렸고, 이로부터 초빙(招聘)에서처럼 훌륭한 사람을 모시다는 뜻도 생겼다.

귀를 잃는 건 곧 생명을 잃는 것과 같아

늘어진 귀는 이처럼 총명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경(耿)도 “귀가 늘어져 뺨에 붙다”는 뜻이지만, 총명함의 상징으로 쓰인다. 또 탐(耽)도 ‘큰 귀’나 ‘늘어진 귀’를 말했는데([설문해자]), 늘어진 큰 귀는 길상의 상징이었다. 반면 짧은 귀는 서구처럼 악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 담(聃)은 귓바퀴가 없는 ‘귀’를 말한다고 하지만, 어원적으로 보면 귀(耳)가 늘어진(冉) 모습을 그렸다. 최고 현자의 상징인 노자의 이름이 담(聃)인데 귀가 축 늘어진 모습으로 그려졌다. 부처의 모습도 마찬가지인데, 모두 지혜의 상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나이 예순 살’을 뜻하는 이순(耳順)은 모든 말이 귀에 순조롭게 들린다는 뜻을 담았다. 그 나이가 되면 인생살이에서 지혜로움 다 얻을 나이라는 뜻이다. 농경사회를 살면서 경함이 특히 중시됐던 중국에서 60갑자가 한 바퀴 도는 60이라는 나이는 장수의 상징이었고, 이 나이는 모든 경험과 지식과 지혜가 완성되는 상징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5. 귀의 상징: 수치


▎보물 제141호인 대성전에는 공자·맹자를 비롯한 중국 위인 21명과 설총·최치원 등 우리나라 위인 18명 등 총 39명의 위패가 안치돼 있다.
넷째, 수치(羞恥)의 상징으로서의 ‘귀’이다. 한나라 때의 백과사전인 [백호통의(白虎通義)]에서는 귀를 두고 “마음의 징후(心之候)”라고 했다.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인 심장의 대표가 ‘귀’이고, 마음에서 작동하는 부끄러움도 귀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를 잃는 것은 심장을 잃는 것이요, 생명을 잃는 것이요, 그래서 수치의 상징이 됐다. 앞서 말한 치(恥)가 대표적이다. 이는 취(取)나 련(聯)이나 괵(聝) 등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취(取)는 이(耳)와 又(또 우)로 구성돼 전공을 세우려 적의 귀(耳)를 베어 손(又)에 쥔 모습이며, 이로부터 (귀를) 베다, 가지다, ‘빼앗다’, 채택하다 등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한 취(娶)나 취(聚)나 총(叢) 등도 모두 이러한 뜻이 있다.

전쟁에서 잡은 적의 귀를 베던 모습은 련(聯)과 괵(聝)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잇다’는 뜻의 련(聯)은 원래는 이(耳)와 絲(실 사)로 구성됐는데, 사(絲)가 련(?)으로 변해 지금처럼 됐다. [설문해자]에서는 “귀가 뺨에 붙어 있다”라고 했는데, 이후의 파생 의미로 보인다. 갑골문에서는 귀를 실로꿰놓은 모습이다.

전쟁에서 잡은 포로의 귀를 베어서 실(絲)로 꿰놓은 끔찍한 모습을 그렸던 것이 [설문해자]에서 부드럽게 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로부터 연결되다는 뜻이, 다시 대련(對聯)에서처럼 짝을 이루다는 뜻도 나왔다.

귀를 잘라 전공을 헤아리던 습관은 임진왜란 때도 경험했다. 정유재란 때 왜군들이 우리의 귀를 잘라 본국으로 가져가 무덤을 만들고 전공을 기억했다. ‘귀 무덤’이라 불리는 이총(耳塚)이 그것인데, 우리에게는 치욕의 상징이다. 마에다 켄지 감독이 만든 임진왜란의 참상을 잘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월하의 침략자 (Invaders in the Moonlight, 2009)]에도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귀를 배다’는 뜻의 괵(聝)은 首(머리 수)가 의미부이고 或(혹시 혹)이 소리부로, 적이나 포로의 귀를 베다는 뜻인데, 옛날의 전쟁에서는 귀를 베서 수급을 대신했고 이로써 전공을 헤아렸다. 괵(聝)은 달리 괵(馘)으로도 쓰는데, 이(耳)가 수(首)로 바뀌었다.

범법을 재주로 여기는 사회

이는 자신의 영역(或)을 지키는 싸움(戈)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목(首) 베기’를 형상화한 글자이며, 이로부터 베다, 포로, 끊다, 살육하다 등의 뜻이 나왔다. 목 대신 자른 귀(耳)로 전공(戰功)을 헤아렸다는 뜻에서 베어낸 귀를 뜻하기도 했다. 이처럼 귀는 전쟁에서 이긴 자에게는 전리품이자 철저한 유린의 상징이고, 전쟁에서 진 자에게는 치욕의 상징이었다.

다섯째, 귀처럼 부드럽다는 뜻이다. 중요한 한약재이자 보약으로 쓰이는 녹용(鹿茸)의 용(茸)이 그것이다. 용(茸)은 초(艹)와 이(耳)로 구성됐는데, 사슴의 뿔이지만 ‘막 자라난 새싹처럼 부드러운’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혹자는 잎에 미세한 솜이 촘촘하듯 ‘잔 솜이 난’ 녹용을 말하는데, 상징이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이외에도 이손(耳孫)이라는 말이 있는데, 자신으로부터 계산해서 8대까지의 손자를 말하는데, 잉손(仍孫)과 같은 말이다.

6. ‘염치론’

고염무(顧炎武, 1613~1682)는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기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한 실증주의자이다. [일지록(日知錄)]으로도 유명한 그는 염치에 관한 유명한 글을 남겼다. [염치론]이 그것인데, 학문하기 전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천고의 원리를 설파하면서 인격에 필요한 것으로 “예(禮)·의(義)·염(廉)·치(恥)” 즉 4가지 핵심 개념(四維)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4가지 핵심 개념이 진작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하고 만다고 했다. 그것은 예의(禮義)라는 것이 남을 다스리는 커다란 법(治人之大法)이라면, 염치(廉恥)라는 것이 사람이 바로 서는 커다란 규칙(立人之大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천하의 흥망은 필부라도 모두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오래전 맹자도 말했다. “사람이 부끄러움이 없으면 아니된다. 부끄러움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진심 상’) 염치는 인간이 인간으로 서는 최소한의 출발이요, 인간이 인간으로서 기능하는 최소의 요건이다. 개인 자신은 물론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근본적 요소이다. 개개인이 염치를 상실하면 나라 전체가 치욕을 당하는 법이다. 국치(國恥)는 그래서 만들어진다.

7. 이 시대의 염치와 인간성 회복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정말 염치가 상실된 시대를 살고 있다. 몰염치와 무치를 넘어서 파렴치와 후안무치가 일상이 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최소한의 금기 규칙인 법을 범하지만 않으면, 아니 법을 범했음에도 범법 사실이 증명되지만 않으면 떳떳하고 오히려 그것을 재주라 능력이라 여기는 사회가 돼버렸다.

죄의 유무로 개인과 사회적 존재 조건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염치를 아는 사회, 그것을 가능하게 할 양심과 도덕과 인간성의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리하여 상식이 통하고 상식이 살아 있는 사회, 옳음과 정의가 존중받는 그런 건전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끄러움과 염치를 잃어버린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다. [한국역대한자자 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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