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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전문기자의 ‘책과 사람’(3)] 1977년 여대생 기숙사 복원한 소설 낸 은희경 

“왜 하필 그때 이야기? 답 못 찾아 펑펑 울기도 했다” 

데뷔 장편 <새의 선물> 70만 부 넘게 팔린 ‘한국 문학의 빛나는 고유명사’
“지금 시점으로 과거를 보니 답이 보였다”…70년대 풍경 세밀하게 되살려


▎소설가 은희경의 소설 공방은 멈추는 법이 없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지독할 정도로 열심히 소설을 써 왔다.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은 없어도 그의 이름은 누구나 들어봤음 직한 인지도는 그래서 생긴 거다. / 사진:임안나
지난여름의 끝자락 소설가 은희경(60)이 새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자신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이자 열네 번째 소설책 [빛의 과거]다. 인생 100세 시대, 조만간 200세도 가능하리라고 내다보는 시대에 환갑을 맞은 해라는 사실이 큰 의미는 없겠다. 그렇더라도 소설은 어딘가 회고조의 제목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 세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의미가 없지 않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 일은 쉽지 않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폭넓은 지명도. 그는 첫 소설책이 대표작이 돼버린 흔치 않은 경우다. 등단하던 해인 1995년 말 출간한 장편소설 [새의 선물]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여전히 읽힌다. 이미 서너 해 전 누적 판매 70만 부를 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설책 이후 그가 거둔 꾸준한 문학적·상업적 성공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게 마련인 문학 수사(修辭)의 과장법, 한국에서 더 심한 것처럼 보이는 근친상간 성격의 칭찬 문화를 감안하더라도, “은희경은 하나의 장르”, “한국문학의 빛나는 고유명사”, 이런 평가가 과하지 않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러니 그의 오늘을 중간결산하자는 욕심은 버리자. 어떻게 써도 빤한 글, 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둘째 이유는 어느 작가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 실팍한 작품 목록. 앞서 언급했지만, 그는 등단 이후 지금까지 햇수로 25년 동안 모두 14권의 소설책을 출간했다. 필력 왕성한 작가들이 간간히 그래 왔듯이, 한 해에 소설책을 두 권 낸 적도 있다. 어떤 작가가 그렇겠는가마는 그는 큰 고민 없이 척척 소설책을 찍어내는 스타일도 아니다. 여러 소설책의 작가의 말에서 “어렵다”, “죽겠다”, “못 쓴다”는 엄살을 피워 왔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부지런히 지독하게 써 왔다. 그러니까 그의 작가론(作家論)을 섣불리 쓰지 못하는 첫째 핑계가 질의 문제였다면 둘째는 양의 문제. 이렇게 질과 양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과제는, 작품의 의미와 근수를 다는 데 이골이 난 숙수의 평론가가 몇 달씩 걸려 해내야 하는 일이지, 종합 잡지 지면에서 문학기자가 할 일은 아니다.

기자나 이 글을 읽는 당신 같은, 무책임한 독자는 그저 돌아가면 된다. 듬성듬성 내키는 대로 읽기다. 다만 은희경 소설 전체를 관류(貫流)하는 문화 유전자, 밈(meme)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신경 쓰며 읽어보면 어떨까. 보다 흥미롭지 않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불행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드려야 하는 작품이 많다는 점에서, 다행은 그나마 친숙해서, 기자에게는 은희경 소설의 절반 이상이 있다.

1995년 등단 이후 25년간 장편, 소설집 14권 출간


▎지금까지 출간된 은희경 소설. 왼쪽부터 1995년 장편 [새의 선물] 1998년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2001년 장편 [마이너리그] 2014년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2016년 소설집 [중국식 룰렛] 2019년 장편 [빛의 과거]
초기 작품인 1998년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다시 꺼냈다. 사실상 처음 꺼내 들었다고 해야 한다. 어딘가 화끈하고 은밀한 치정(癡情)소설이었다는 점 말고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으니 말이다.

이 소설의 전체 17개 챕터 가운데 10번째 ‘지적인 남자를 유혹하는 법’으로 직행한다. 제목이 은근히 부추기는 대로, 어떤 독특한 취향 때문인지 당신을 먹잇감으로 선택한 팜므파탈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라고 여기고 읽으면 짜릿함이 더하다. 단, 당신이 지적인 남자라는 전제하에. 팜므 파탈의 비결은 이렇다.

①나는 개방적인 여자이지만 아무에게나 개방적인 건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②’당신은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암시를 한다. ③’내가 저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라고 남성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이를 위해 남성이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용기를 내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물론 이 3단계 공작으로 지적이어서 까탈스러운 남심 저격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은희경은 이런 문장을 덧붙인다.

“그러나 이런 과정만으로 유혹이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을 보여 곁에 오게 한 다음 특별한 호감을 표시함으로써 마음을 끌어당기고 그러고는 행동의 증표를 남기게 하는 것, 이런 따위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보편적 유혹의 방법이다. 그것이 결정적 기회인가, 한갓 해프닝인가는 오로지 행운이 결정한다.” (174쪽)

이런 생각을 실제로 실천에 옮겨 소설의 여주인공 진희는 술집 계단을 내려오다 비틀거린다(기자는 이 대목에서 진희가 의도적으로 비틀거렸다고 생각한다). 예상대로 진희가 노리는 먹잇감 현석은 진희의 어깨를 안는다. 여기서는 사냥의 성공 여부를 운수에 맡기는 진희의 유연함이 이미 어떤 고수의 경지.

그런데 눈치채셨나. 팜므 파탈의 뇌 속을 들여다보며 흥미로워하는 수컷들을 상상하며 책장 뒤에서 은희경이 짓고 있을지 모르는 은근한 미소를(진희의 유혹 수법이 여전히 흥미롭다면 말이다. 벌써 20년도 더 된 수법 아닌가. 아니면 유혹의 공식은 만고불변인가). 기자는 어쩐지 자기 소설을 철 없이 좋아하며 읽는 독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빙그레 미소 짓는 은희경이 연상된다. 이런 상상은 어쩌면, 2001년 장편 [마이너리그]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이성욱이 요령 있게 간추린 은희경 소설의 어떤 비밀, 이른바 ‘허위의식의 지도’론(論)과 겹치는 지점일 게다. 그러니까 은희경의 농담기 어린, 유연한 풋워크의 문장들에 콕콕 찔려 가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돋을새김 되는 소설 인물들의 속물근성, 허위의식이 바로 우리들의 속물근성, 허위의식이라는 지적 말이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팜므 파탈의 당돌하면서도 닳고 닳은 수법이지만 결국 그 부메랑에 의해 재귀적으로 폭로된 건 남성들의 속물근성, 음험한 성적 판타지인 건 아닌가.

우리 안의 속물근성, 허위의식 까발리는 고발자


▎은희경의 소설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개별성의 강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전체주의, 획일성에 매몰되는 개별적 존재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왔다. / 사진:임안나
듬성듬성 내키는 대로. 이 독서법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각도로 휘둘러보면 다시 눈여겨보게 되는 작품이 바로 앞서 언급한 [마이너리그]다. ‘무책임한 독자’라는 우산 아래 거칠게 재단하면 은희경의 소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연애소설. 또 하나는 복고풍 회고소설 혹은 성장소설. 현재의 연애소설 프레임 안에 담긴 했지만 [새의 선물]은 아무래도 복고풍 성장소설. 1960년대 미국의 보컬 그룹 드리프터즈의 히트곡 ‘Save the last dance for me’를 마치 영화 OST 느낌으로 활용한 [마지막 춤은…]은 역시 연애소설이다. [마이너리그]와 이번에 출간한 [빛의 과거]는 나란히 복고풍 성장소설. 물론 이 두 카테고리를 거뜬히 빠져나가는 은희경 소설이 적지 않지만 말이다. 특히 소설집들에 실린 단편들이 그렇다.

그런데 2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세상에 나왔지만 [마이너리그]와 [빛의 과거]는 마치 쌍생아처럼 문학 DNA 혹은 문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두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세대가 같다. 아니 두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 1958년 개띠 해에 태어나 1977년에 대학에 입학한 동급생들이다. 심지어 두 소설에는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캐릭터도 등장한다. [마이너리그]의 지방 고등학교 동창 형준·승주 등 ‘만수산 4인방’ 멤버들이 1970년대 대학가 캠퍼스의 통과의례였던 청량리 기차 여행을 함께 떠난 여대생 미영이, [빛의 과거]에 나오는 애란과 사실상 동일 인물로 보인다. 대학가 축제의 필수항목 PDT(파트너·드레스·티켓) 혹은 TPDB(티켓·파트너·드레스·백), 그중에서도 D,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남학생을 사로잡을 만한 화려한 드레스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다.

문학평론가 진정석이 “유신세대의 성장기이자 그들을 위한 만가(輓歌)”라고 요약했던 [마이너리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4인방의 요란하고 씁쓸한 20여 년 인생 궤적을 추적한다. 그에 비해, 한 세대 아래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여성적 경험에 충실한 ‘입사 이야기(initiation story)’의 전형”이라고 표현한 [빛의 과거]는 1977년 여대생 기숙사의 사생활 복원에 힘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두 소설은 사실상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평론가 신형철 “'빛의 과거'는 입사 이야기의 전형”

에베레스트에 오른 고상돈이 “여기는 정상, 더는 오를 곳이 없다”고 외치고, WBA 챔피언 홍수환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울먹이는 가운데 베트남 난민 38명이 여수항에 발을 딪고 CIA가 2년간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회는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며, 고향을 뛰쳐나온 젊은 여성들에게 고속버스 안내양 합격이 가장 큰 성공으로 꼽히던 시절([빛의 과거]에 나오는 1977년 한 해의 스케치다), 종합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교련 실기 대회를 위해 뙤약볕 아래 카드섹션과 제식훈련을 하느라 여학생들이 픽픽 나가떨어지고 어느 날 갑자기 신문 1면에 ‘憲法(헌법) 비방, 改廢(개폐)선전 禁止(금지), 國家安全(국가안전) 公共(공공)질서 수호 緊急(긴급) 조치 9號(호) 선포’ 같은 무시무시한 제목의 기사가 실리는가 하면 1970년대 말 통기타 가수들의 대마초 검거 사건이 대통령 아들이 기타 선생으로부터 대마초를 얻어 피워 일어났다는 루머가 돌던 시절 ([마이너리그]가 전하는 1970년대 사회사) 말이다.

우리 삶과 당대의 그야말로 세목(細目)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이루는 거대한 모자이크 풍경은 은희경의 새 소설 제목처럼 어쩌면 지금 빛의 과거(지금을 빛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욱신거리는 통증이나 아련한 감상 없이는 돌아보기 어려운 우리의 지난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횡단면 혹은 종단면을 제시하며 정작 은희경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뭘까. 지금 우리는 그런 시절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왔나. 떠나오기는 한 건가. 그때보다 다르게,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나. 이런 이야기이지 않을까.

지난 10월 2일 은희경을 만났다. 소설을 쓰인 대로 읽으면 되지 사실 할 얘기는 별로 없다. 은씨는 대뜸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 “그러다 내용 잘못돼 명예를 훼손하는 사태가 발생해 화나시면 어쩔려고.” 기자가 묻자 “명예가 있어야 훼손되지” 답한다. 특유의 겸양법 혹은 비관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된 방어적인 대답이다. 그는 문학성과 함께 상업성이라는 상징 자본을 누구보다 많이 가진 행복한 작가다.

작가의 말을 보면 이번 [빛의 과거] 쓰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 같다. 무려 10년 전에 쓰려 했으나 실패했고, 8년 전, 3년 전에도 실패했다고 밝혔는데.

“내가 갖고 있는 이야기이긴 한데 이런 걸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그저 1970년대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건가. 왜 그때 이야기를 쓰려는 거지? 그 답을 오래 찾았다.”

그래서 그 답을 찾았나?

“찾았다. 지금 시점으로 과거를 본다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제목도 ‘빛의 과거’다.”

그럼, 지금 시점으로 과거를 보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과거가 다 끝나버린 일이 아니라 내가 과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지금 현재를 보는 내 눈이 달라진다. 그래서 과거를 다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옛날에는 그랬지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소설을 통해 바라보니 지금 내 모습이 보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소설은 사람으로 하여금 반성을 하게 하는 장르인가?

“그렇다. 반성이라는 게 결국 객관화니까. 소설은 철저한 객관화의 산물이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나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쓰는 와중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미투 운동도 일어나고, 그래서 고통받는 요즘 여성들의 모습을 보니까 우리 세대가 너무 안일하게 우리가 해결해야 했던 숙제를 젊은 세대에게 넘겼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빛의 과거]는 1977년을 되살리는 데 전력질주했달까. 그런데 복원된 풍경이 너무 상세해 놀라울 정도다.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나?

“쓰다 보니 기억이 많이 나더라. 학교를 한 살 빨리 들어가 소설 속 인물들처럼 내가 77학번인데 굉장히 긴장했지만 에너지도 많았던 시기여서 기억이 나는 것 같다. 일기장이랑 소설 속 주인공 김유경처럼 학보사 기자 시절 썼던 편집노트가 남아 있어 활용했다.”

자료가 풍부하다면 쉽게 쓸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자료는 다 있었지. 그런데도 3년 전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정말 써야겠는데 써지지 않아 어떨 때는 울기도 했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대 은희경 작가가 울다니.

“그런 소설이 끝났으니 내가 지금 얼마나 후련하겠어.”

이런 발언은 놀랍고, 어쩌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얼마나 뜨거웠나. 지금 얼마나 뜨거운가. 대상이 무엇이든 말이다. 반성 유발 발언이다.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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