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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대기자의 ‘셰익스피어 이야기’(2)] ‘天命’ 거스른 영웅의 비극 '맥베스' 

모든 사건의 배후엔 여자와 남자, 그들 사랑이 있다 

‘생명의 아들’ 맥베스, 마녀 예언에 홀려 ‘죽음의 아들’ 돼
외부 침략 물리친 충신, 왕 죽이고 왕위 찬탈했다가 몰락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샤세리오(1819~1856)가 그린 ‘황야에서 마녀들을 만나는 맥베스와 뱅쿼’(1855). / 사진:오르세 미술관
홍수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닥쳐오면 곤충·파충류·어류 같은 미물(微物)들도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방어적 행동에 나선다. 예컨대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도시를 탈출한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다. 인간은 미물이 아니라 영물(靈物)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는 ‘비인간 생명체(non-human life forms)’와 적어도 같은 수준의, 혹은 능가하는 예지력이 있다. 인간은 영물을 자처하지만 한때 미물이었고, 어쩌면 지금도 미물인 약한 존재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본능적인 예지력은 퇴화했다. 인간의 언어능력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성의 발달로 인간은 생리적·본능적 미래 예측력을 상실했다. 대신 수리적·통계적 모델을 만들어 미래를 예측한다.

인간 중 일부는 다른 인간과 달리 시원적(primal) 예지력을 계속 지니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점술가가 된다. 그들 중 일부는 정치나 경제·종교 등 분야에서 인류의 미래를 이끌 선지자(visionary)가 된다.

셰익스피어(1564~1616) 시대 사람들은 마녀들에게 예지력이 있다고 믿었다. 서양의 마녀는 우리 문화·종교 역사에서 무당에 해당한다. (그리스도교나 유교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비저너리들이 생존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시 사람들은 신(神)의 존재를 믿었고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믿었다. 예언이나 운명을 자유의지로 최종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맥베스]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항하는 마녀들의 가장 큰 무기는 ‘암시의 힘(power of suggestion)’이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왕이 된다고 했지, 왕을 죽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맥베스는 자기 자신의 의지와 선택, 자기암시(autosuggestion)를 바탕으로 덩컨왕을 죽인다.

맥베스는 운명과 미래의 메커니즘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운명이 내가 왕이 되기를 바란다면, 어쩌면 운명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니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If fate wants me to be king, perhaps fate will just make it happen and I won’t have to do anything.)” “어떻게 해서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One way or another, what’s going to happen is going to happen.)”

맥베스는 실제 인물이다. 1040~1057년 스코틀랜드 국왕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다음과 같이 인생을 요약한다. “그것은 바보가 들려주는, 음향과 분노로 가득한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다.(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맥베스는 스코틀랜드를 침입한 노르웨이와 아일랜드 병력을 물리친 영웅이다. 그는 이미 글람즈(Glamis) 영주(thane)다. 세인(thane)은 족장·씨족장이나 귀족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인생이란 바보가 들려주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


▎스위스 화가 헨리 푸젤리(1741~1825)가 그린 ‘몽유병에 걸린 레이디 맥베스’ (1781-1784). / 사진:요크 프로젝트
전과를 올린 맥베스 앞에 세 명의 마녀가 나타나 예언한다. 그가 이번 공로로 이미 글람즈 영주인 그가 추가로 코더(Cawder)의 영주가 될 것이며, 미래 스코틀랜드 왕이 될 것이라는 것.

마녀들 예언에 긴가민가하다가 결국 사로잡힌 맥베스는, 자신의 성으로 덩컨(Duncan)왕을 초대해 죽이고 왕이 된다. 어쩌면 마녀들의 예언이 없었더라도 맥베스는 야망을 품었다. 마녀들의 예언이 그가 마음속 깊이 품은 야망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덩컨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예(技藝)가 없구나.(There’s no art to find the mind’s construction in the face.”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물의 깊이는 알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알기 어렵다(水深可知 人心難知)”와 같은 말이다.

마녀들은 맥베스와 함께 외적을 물리친 뱅쿼(Banquo)가 왕이 되지는 못하지만 자손들이 왕이 된다고 예언한다. “맥베스보다 더 작으면서도 더 크다(Lesser than Macbeth and greater)”는 마녀들의 평가가 두려웠던 맥베스는 자객을 보내 뱅쿼를 죽인다. 맥베스는 이후 뱅쿼의 유령에 시달린다.

뱅쿼는 맥베스의 음모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침묵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기회주의자다. 역사의 최종 승자는 기회주의자인가.

11세기 스코틀랜드를 무대로 펼쳐진 [맥베스]를 가장 흥미롭게 감상한 관객은 아마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군주 제임스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재위 1567~1625)였다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재위 1603~1625)로 즉위한다. 그는 [맥베스]에 나오는 뱅쿼가 자신의 직계 조상이라고 믿었다. 제임스 1세는 킹제임스성경(KJB, 1611)의 편찬을 후원했다. 그러나 그는 마녀 이야기나 점술 같은 미신을 좋아했다.

남자의 야심(野心)에 여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 반대로 여자의 야심·야망에 남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

맥베스의 아내인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는 ‘야(野)하다’. 섹시하다. ‘야하다’의 뜻은 “천박하고 요염하다”, “이끗(利끗, 재물의 이익이 되는 실마리)에만 밝아 진실하고 수수한 맛이 없다”이다. 맥베스 부인은 자신의 성적 매력으로 남편을 뒷조종한다. 주저하는 남편을 부추긴다.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 맥베스를 지극히 사랑한다. 레이디 맥베스가 맥베스를 종용한 이유는 자신이 왕후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맥베스가 왕이 되는 것을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야심 부추기는 것은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


▎영국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가 그린 ‘레이디 맥베스의 죽음’(1875년경). / 사진:로세티 기록보관소
프랑스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1802~1870)의 소설[파리의 모히칸족(Les Mohicans de Paris)] (1854~1859)에 나오는 “그 여자를 찾아라(Cherchez la femme)”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어로는 “Look for the woman”인 이 말은 모든 것의 배후에 여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면 21세기 남녀평등 시대에 굉장히 부적절한 표현이다. 모든 문제를 여자 탓으로 돌리는 ‘나쁜’ 말, 여성혐오(misogynist)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진정한 권력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또 ‘그 남자를 찾아라’는 말로 바꿀 필요도 있겠다. 가설로 주장한다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고 그들의 사랑이 있다.

군주 시해를 감행하기 전에는, 맥베스보다는 레이디 맥베스가 멘탈이 더 강했다. 시해 음모가 성공한 다음에는 아내가 남편보다 더 고통스러워한다. 레이디 맥베스의 정신 상태가 급속도로 약해진다. 몽유병에 걸린다. 급기야는 극의 말미(末尾)에 자살한다.

왕이 된 맥베스는 잔혹하게 통치한다. 점점 더 무자비한 폭군으로 변한다. 맥베스는 원래는 좋은 사람이다. 악인이 아니었다. 맥베스는 “나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모든 것을 감행할 수 있다. 그 이상을 감행하는 인간은 인간도 아니다(I dare do all that may become a man; who dares do more is non.)”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더니 점점 더 흉측한 사람으로 변한다.

맥베스는 게일어(스코틀랜드 켈트어)로 ‘생명의 아들(son of life)’이다. 그는 장군으로서는 훌륭하지만, 군주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왕이라는 자리에 대해 맥베스는 “과실 없는 왕관(fruitless crown)”이라고 표현했다. 최고 권력자로서 과실을 낳고 과실을 즐기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맥베스는 ‘죽음의 아들’이 됐다.

‘성즉군왕 패즉역적(成卽君王 敗卽逆賊)’이다. 반란에 성공하면 군왕, 패하면 역적’이다. 하지만 왕이 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즉위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왕이 된 다음에는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한다. 왕의 종류를 세 가지로 분류하면, 성군(聖君)과 범군(凡君)과 폭군(暴君)이 있다. 성군이나 범군을 죽이는 것은 국왕살해(regicide)다. 명분이 없다. 나쁜 왕을 죽이는 것은 폭군살해(tyrannicide)다. 명분이 있다.

맥베스가 죽인 덩컨(Duncan)왕은 현명한 성군이었다. 덩컨을 시해할 명분이 없었다. 명분 없이 왕이 된 자는, 왕이 된 다음에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 선정을 베푸는 게 명분 확보의 지름길이다. 하지만 성군을 죽이고 왕이 된 맥베스는 공포정치(reign of terror)를 펼치는 폭군이 된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왕이라는 감투를 쓴 맥베스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의 괴로움에 위로가 된 것은 마녀들의 예언이었다.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 그는 더욱 ‘미신’에 집착했다. 마녀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낳은 자는 당신을 쓰러뜨릴 수 없다.” “버넘 숲(Birnam Wood)이 던시네인(Dunsinane) 언덕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당신은 안전하다.” “맥더프(Macduff)라는 귀족을 조심하라.”

천명 받지 못한 자가 통치자 되면 결과는 무질서


▎미국 배우·감독 오손 웰스(1915~1985)와 미국 배우 저넷 놀런이 출연한 영화 [맥베스](1948). / 사진: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
여자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또 숲이 움직이는 일은 없다. 맥베스는 안심했다. 그런데 맥더프가 영국으로 도망가 덩컨왕의 아들 맬컴(Malcom) 세력에 합류한다. 1만 명의 군사를 영국 왕에게 빌려 스코틀랜드로 쳐들어온다. 영국군은 나뭇가지로 위장하고 맥베스를 향해 진공했다. 멀리서 보면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맥베스와 마주친 맥더프는 자신이 여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제왕절개로 태어났다며 맥베스의 목을 벤다. 맬컴이 왕이 된다.

[햄릿]·[리어왕]·[오셀로]와 더불어 셰익스피어(1564~1616)의 4대 비극인 [맥베스]의 목표 중 하나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옹호하는 것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천명(天命)을 받아야 왕이 될 수 있다. 천명을 받지 않은 자가 왕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빈번하고 기이한 일들이 발생한다. [맥베스]에서도 천명과 무관한 마녀들의 꼬임에 따라 맥베스가 모반으로 왕이 되자 무질서(chaos)가 질서의 자리를 차지한다. 덩컨왕의 말들이 서로 물어뜯는다. 올빼미가 매를 죽인다. [맥베스]는 맥베스의 통치가 하늘의 뜻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덩컨왕이 암살당할 때를 포함해 극의 3분의 2를 어둠 속에서 전개한다. 날씨가 안 좋아 햇빛이 없거나 밤에 이야기를 풀어 간다.


▎독일계 미국 조각가 엘리자벳 네이(1833~1907)가 대리석으로 조각한 ‘레이디 맥베스’(1905). / 사진:뮌스터 시립박물관


마키아벨리 '군주론', '맥베스'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


▎영국 화가 존 마틴(1789~1854)이 그린 ‘맥베스’(1820년경). / 사진: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맥베스]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니콜로 디 베르나르도 데이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1532)을 함께 읽어야 한다. [맥베스]와 밀접한 [군주론]의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첫째는 운명이며, 둘째는 이제껏 쌓은 능력이며, 셋째는 ‘역사가 부를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 어쩌면 적어도 한때 운명과 능력과 역사의식 모두가 맥베스를 편애했다. 다만 결정적인 순간에 맥베스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남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자는 끝내 자멸을 초래한다.”

☞ 비운의 스코틀랜드 국왕 덩컨은 국난 극복의 영웅 맥베스를 지나치게 신뢰하고 그에게 코더 영주 자리를 주어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사랑과 공포는 공존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훨씬 안전하다.”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증오하는 자에게는 해를 끼친다.” “군주는 가혹하기보다는 인자하다는 세평을 듣는 게 바람직하다.”

☞ 왕의 자리에 오른 맥베스는 두려움의 대상을 넘어 증오의 대상이 됐다.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귀족들이 맥베스를 증오한 결과 맥베스는 권력을 상실하게 된다.

“모든 선택은 위험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

☞ 쉬운 말 같으면서도··· 코멘트하기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어떤 선택으로 결과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최고 지도자의 어떤 선택으로 나라나 회사나 집안이 망할 수도 있다. 가장 적합한 선택의 기준이 뭘까. 이익보다는 양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셰익스피어는 왕의 후원을 받았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일정 부분 보수적이었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작가로서의 이익을 팔았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맥베스]에서 양심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레이디 맥베스가 이렇게 발언했다. “약간의 물로 우리의 이 행위를 씻을 수 있다.(A little water clears us of this deed.)” 하지만 손에 묻은 피를 씻어 낼 수는 있더라도 마음에 묻은 죄업은 씻을 수 없었다.

※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중앙일보에 지식전문기자로 입사, 심의실장과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서강대·한경대·단국대 등에서 강단에 섰다.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등이 있다.

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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