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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北 어민 강제북송 사태 바라본 태영호의 일갈(一喝) 

북한 주민 北送, 특검이 수사하라 

한국 정부가 분단 이후 탈북민에게 저지른 첫 인권유린 사건
北, 자국민 옥죄는 ‘내부 결속용’ 사례로 활용할 것


▎지난 10월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 정부의 탈북자 북송을 규탄했다. / 사진:뉴시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홀로코스트박물관에는 ‘끔찍한 일은 일단 한번 발생하면 또 발생할 수 있고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격언이 걸려 있다. 이 글에는 20세기 발생한 나치독일의 전대미문의 인권유린행위를 폭로하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인권유린행위를 묵인한 미국 등 서방세계의 통절한 성찰과 반성이 담겨 있다.

그런데 21세기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우리 헌법이 북한 주민과 국내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주민을 강제 추방해 ‘모든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위험한 전례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은 무조건 받아주던 국가의 ‘의무’가 ‘선택’으로 변하는 길이 열린 셈이다.

文 정부, 헌법·국제법 모두 어기는 선택 자초

민주주의라는 정치구조에서 상충하는 주장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민주국가에서는 헌법과 법률이 행정부의 모든 결정 채택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만일 행정부가 법치주의(法治主義) 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 잣대로 나라를 이끈다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국론은 분열되고 나라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정부를 장악한 사람들이 현행법에 동의할 수 없으면, 행정절차를 진행하기에 앞서 적절한 입법 절차를 통해 법을 수정·보충하는 사업을 선행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 북한 주민 강제추방과 관련하여 정부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국내법상 이들이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관련법에 따라 보호대상이 될 수 없었으며, 국제법상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정부부처 협의 결과에 따라 추방을 결정했다.”

설령 정부 측의 발표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필자의 눈엔 정부가 결정 채택의 근거로 내세운 이유 중 어느 것 하나도 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바이다.

우선,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 북한지역을 영토로 인정한다. 이는 대법원 판례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은 북한 주민과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을 국민으로 인정하고,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실효 지배 영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국민의 지위가 회복된다고 규정한다. 죄가 있어도 법리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조사하고 재판도 해야 하는 것이 법치(法治)다.

그러나 정부는 대한민국 영토에 들어와 정부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고 귀순 의사를 통해 북송을 거부했음에도 강제적으로 북송함으로써 헌법과 정면충돌하는 우를 범했다. 통일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남북관계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헌법 3조와 4조를 균형 있게 해석해야 하며 남북관계의 법적 성격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는 남북기본합의서 1조에서 규정한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곧 이번 추방 결정이 북한 주민들을 외국인에 준하는 신분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 3조는 국적법이나 국가보안법의 근거 조항인 반면, 4조는 남북관계발전법, 남북교류협력법 등의 근거조항이므로 북한 주민 추방 이유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북과 남이 외국에서 각기 유엔 회원국이라 해도, 필요에 따라 북한 주민을 외국인 신분으로 대한다는 것은 남북기본합의서 1조에도 맞지 않는다.

또 정부가 추방 이유로 든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북한이탈주민법)’에 의하더라도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북한 주민을 추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법 제9조 제1항 2호에 따라 북한 어민들이 살인 등 중대한 정치적 범죄자에 해당돼, ‘비보호대상자’로 간주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법적 근거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다. ‘비보호대상자’는 동 법률에서 정한 정착금 등 정부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근거일 뿐, 북한으로의 강제 추방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관계부처들과의 협의를 거처 강제추방 결정을 내렸다고 하지만 누가, 언제 추방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의 발표대로 이들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는 존재지, 국가안전보장 위협 대상이 아니었다면 이들에 대한 보호대상자 여부는 통일부에 설치된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이하 북대협)의 심의를 거쳐 통일부 장관이 결정한다. 심의가 월 1회 정도 실시되는 것을 고려하면, 북송된 2인에 대한 북대협의 심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힘들다.

‘난민 심사 대상’이 아닌데 ‘국제 난민’ 적용이 웬 말


▎지난 8일 동해상에서 우리 해군에 의해 북측으로 예인되는 북한 목선. / 사진:통일부
2019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북한이탈주민 중 국제형사범죄자,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로 적발돼 보호 대상자에서 제외된 인원이 3명 있었으며, 그들은 북한으로 추방되지 않고 대한민국에 잔류했다. 지난 10월 20일 통일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탈북민 보호 여부 결정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비보호결정을 받은 북한이탈주민은 137명이고, 이 중 탈북자 체포조 1명, 살인 2명이 포함돼 있었으나 동일한 사유로 비보호 결정을 받았어도 북송되지 않았다.

정부는 전례가 없고, 이 사항에 대한 적절한 규정이 없어 정부부처가 합동 회의를 해 결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이번 사항과 관련한 적절한 규정이 없었던 이유는 헌법과 법률, 대법원 판례가 북한 주민을 모두 국민으로 간주하고 있어, 북송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로 북송시키는 규정을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전까지 대한민국 정부와 관계자들은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집행한 것이며, 현 정부와 관계자가 첫 불법 범죄행위 혐의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 이번 사건도 언론의 확인 작업이 없었다면 공개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이에 이번 사안을 지켜본 국민은, 지금껏 판문점을 통해 북송된 사람들의 북송 희망 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확인과 검증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해 왔는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국제인권단체들은 우리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 북송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 여부에 대한 검증을 위해 서울의 유엔북한인권사무소, 국제인권단체 등의 확인 절차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북송된 2명이 중대 형사범죄자로 국제법상 난민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관례에 의하여 북송하였다고도 주장하는데 북한 주민은 헌법과 법률, 대법원 판례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이들은 ‘난민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 자국민을 자국에서 난민 여부를 심사한다는 것은 법리상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은 중국을 비롯한 제3국에서는 난민 심사 대상이 될 수 있고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으나, 한국에서 북한 주민은 난민이 될 수 없다.

탈북자 국민 인정 여부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

일각에서는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는 북한 주민을 외국인으로 간주해 강제 추방한 것이 옳았다고 하고, 어떤 국책 연구기관은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남북한 간의 형사사법공조를 통해 범죄 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서 인정하고 있듯이 이들의 북한에서의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도 현행법으로 가능하며, 실제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북한에서 중대 살인죄는 사형에 처해지고 피의자에 대한 적절한 변호 조력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금번 북송 결정은 이들을 사지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다.

유엔에서는 북한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결의가 해마다 나오고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사악한 북한 정권의 사법체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사법체계를 인정해 주는 사법공조 주장을 하는 현실을 보면서 북한이탈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한 심경이다.

유엔인권제도에는 북한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4년을 주기로 자기 나라의 인권정책을 심의받는 보편적 정례인권검토제도(UPR)라는 것이 있다. 자칫 이번 사건이 대한민국 정부가 분단 이래 북한 주민을 향해 저지른 첫 인권유린사건으로, 우리 정부가 가해자로 등록될 수 있는 인권유린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으로 지금까지 국제인권 무대에서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정책을 반대해온 우리 정부가 곤경에 처하게 됐다.

본 사안은 탈북 행렬에 포함될 수 있는 북한 주민과 국내외 거주 북한이탈주민의 신변불안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대오를 이탈하여 남조선으로 도망친 변절자, 배신자, 범죄자들을 끝까지 따라가 잡아온다’고 내부 결속용으로 이용할 것이다.

이번과 같은 끔찍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진상공개와 함께 사법절차가 이루어져 실추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바로잡아야 한다. 국가 기관과 정부 공무 담임자가 가해자로 조사를 받고 처벌될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위법성 여부에 대한 조사와 판단을 위해서 특별검사를 임명할 필요가 있으며, 기존 사안들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판단을 위해서는 국정감사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

북한 주민의 생명은 모든 이와 같은 생명이다.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들일지 여부는 우리의 선택이 아닌 의무다. 우리가 진정 북한 주민을 같은 민족이며 통일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인권을 중히 여기는 법치국가답게 북한 주민이 한국에 오면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 국민으로 보호한다는 것을 북한 정권과 주민들에게 알려야, 북한 주민들도 우리를 향해 다가올 것이다.

-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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