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연인의 안부 

 


▎달리는 버스 차창에 맺힌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 사진:박종근
네가 서 있는 바깥보다 내가 사라지고 있는 안쪽의 풍경이 더 우수하다고 말해준 것은 영국 시인이었습니다. 내 안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검은 해변이 가득한데도요. 검은 돌과 검은 물이 넘쳐나서 버스를 타면 어둡고 무거운 그림자를 떨어뜨리곤 했었죠. 너는 바깥에서 버스 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조심히 잘 들어가. 아주 작은 빛으로 멀어지면서요. 네가 서 있는 바깥은 그렇게나 따뜻한데,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요. 깊은 곳으로 부는 바람. 나는 노트에 적힌 영국 시인의 시를 지워버렸습니다. 만나면 헤어질 수밖에 없고. 안쪽이 더 좋다는 말은 늘 다정했던 너의 안부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우는 얼굴은 싫어합니다. 네가 아름다운 빛을 흘리며 나와 멀어질 때. 버스를 타고 검은 겨울 속으로 내가 영원히 떠밀려 갈 때.

※ 이영주 -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을 냈다.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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