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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목민관 열전] 이희진 영덕군수의 ‘2000만 관광객 시대’ 야망 

‘응전(應戰)하는 영덕’ 경북 대표 브랜드로 키운다 

‘3·18’만세운동 등 역사자산 바탕으로 관광 콘텐트 개발 역점
아이템, 기술 보유 청년 창업가에겐 최대 6000만원 지원


▎이희진 영덕군수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정부의 일방적·획일적 정책 운용을 비판했다. / 사진:영덕군
경북 영덕군은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반색한다. 2016년 570만 명에 불과했던 영덕 방문 관광객 수가 이듬해 98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뛰더니 지난해엔 1014만 명으로 신기원을 이뤘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 개통한 당진·영덕 고속도로 상주~영덕 구간이 외지인들을 흡입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영덕군은 설명한다.

사람들을 영덕으로 불러 모으는 ‘킬러 콘텐트’는 단연 영덕대게다. 주말엔 영덕 톨게이트부터 영덕대게 거리로 유명한 강구항(港)까지 4㎞ 구간이 밀려드는 차량으로 극심한 정체를 겪는다는 얘기도 있다. 이곳의 한 상인은 “최근 한 상가 거래가격이 평당 2000만원을 넘긴다는 소문마저 돌았다”며 들썩이는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강구항에서 시작되는 동해안 트래킹 코스인 ‘영덕 블루로드’도 도보 여행자들에게 단연 인기를 끈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잘 알려진 영덕이다. 그러나 영덕의 진가는 독자성 강한 역사·문화에 있다고 지역 사학계는 강조한다. 영덕은 동학농민운동과 3·1만세운동,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에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다. 적어도 4600명이 참여했고, 검찰에 송치된 인사만 275명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선 이를 두고 “경상북도에서 일어난 ‘불령자의 망동’ 중에 가장 맹렬”(1919년 5월 31일 자)하다고 평했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지난 11월 4일엔 영해면 소재 장터거리(영해장터거리)가 문화재청에서 공모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사업’ 대상지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북 익산과 함께 유이(唯二)한 성과다. 영해장터거리는 내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국비와 도비 450여억원을 지원받는다.

영해장터거리 활성화는 이희진 영덕군수가 민선 6기 때인 2016년부터 공들인 사업이다. 이희진 군수는 “이를 디딤돌 삼아 영덕만의 역사·문화 콘텐트를 발굴, 2000만 관광객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영덕다운 정체성을 정립하고, 도시 청년이 수월하게 정착하도록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11월 7일 이희진 군수를 만나 영덕군의 ‘2000만 관광객 시대’ 구상을 들었다.

영해장터거리가 10개 지자체와의 경쟁 끝에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비결이 있나?

“대구 김광석거리나 전주 한옥마을 같은 랜드마크를 우리도 못 만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2016년부터 용역을 내서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적합한 곳을 물색했다. 영해면에는 ‘구 영해금융조합’ ‘영해양조장 및 사택’ 등 근대도시 경관이 즐비하고, 주거 건축사, 생활사 등에서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건물도 많다. 이런 포인트들이 심사과정에 반영되면서 거둔 성과가 바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사업’ 선정인 셈이다.”

집무실 한가운데 놓인 ‘장사리’ 포스터


▎이희진 영덕군수는 “중앙이 모르는 지역, 지역이 모르는 중앙을 균형 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영덕군
만세운동 외에도 숱한 사건들이 영덕에서 일어났다.

“구한말 평민 의병장으로 유명한 신돌석(1878~1908) 장군이 영덕 사람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보다 23년 이른 1871년, 동학교도 이필제가 봉기한 곳도 바로 영덕이다. 지역 유생, 소상공인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 최초의 근대 시민혁명으로 지역에서는 전승되고 있다.”

지난 9월 장사상륙작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 개봉하기도 했다.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1950년 9월 15일 영덕에서는 장사 상륙작전이 전개됐다. 유엔군과 국군이 북한군 지도부를 교란하고자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날 실시한 양동작전이었다. 학도병 722명이 장사리에 상륙해 4일간 혈전을 치렀다. 학도병을 수송하다 침몰한 상륙함 문산호는 50년 가까이 지난 1997년에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희진 군수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포스터가 방문객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받침대 위에 세로로 설치된 영화 포스터는 영덕이 어떤 곳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물로 기능하는 듯했다. 원목 탁자와 가죽 소파는 집무실 한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모양새다. 이희진 군수는 “내방하는 손님들에게 늘 장사상륙작전을 설명해드린다”면서 “영덕의 자부심을 대표하는 이 상륙장면을 통해 군정에 임하는 자세를 늘 가다듬는다”라고 말했다.

영덕은 인구 4만여 명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역사적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 건 어떤 연유일까?

“이런 정신문화의 바탕엔 오랜 교육의 전통이 서려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말선초 대유학자인 목은 이색 이후로 영덕은 영남 유림의 거점 역할을 해오며 향교를 중심으로 충효사상의 전통을 전수해왔다. 구한말 땐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민정신도 타 지역보다 먼저 뿌리를 내렸다. 3·18만세운동 당시 윤악이·신분금 선생님 등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여성 지도자가 연이어 나온 배경이다.”

영덕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응전(應戰)하는 도시다. 외세의 침략이나 구체제의 모순 등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맞서온 역사가 증명한다. 지역과 국가 공동체를 위하는 숭고한 정신문화는 이런 응전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다.”

최근 영덕에 닥친 역경은 태풍이다. 지난해 태풍 ‘콩레이’와 올해 ‘미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봤는데.

“충격이 컸지만, 민관이 협력해 신속히 응급복구를 완료했다. 또 국비 지원을 끌어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재해 복구비로 지난해 1235억원, 올해 1754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자연재해를 예방하는 개선복구사업을 추진해 안전한 도시를 만들 계획이다.”

11월 말 다목적 어업지도선 ‘영덕누리호’ 취항


▎사진:김현동 기자
군청 공무원들이 피해 예상지역의 노인분들을 등에 업고 피신시켰다고들 하던데.

“10월 2일 군청 공무원 300여명을 침수피해 우려 지역으로 보냈다. 현지에서 구호 활동을 펴다가 본인의 차량이 떠내려간 경우가 두 건 발생했다. 그만큼 태풍은 맹렬했고 피해는 극심했다. 태풍의 규모나 강수량에 견줘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면 그건 지난해 태풍 콩레이 내습 이후 대응 시스템을 면밀하게 보완한 결과라고 하겠다. 두 가지가 주효했다. 첫째 태풍 주의보가 내려지는 즉시 각 마을의 이장들을 소집해 태풍의 예상경로와 시점, 대응 요령 등을 공지하고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하도록 요청한다. 또 영덕군 내 각 읍·면 별로 민간인 10명 이상이 참여하는 자원봉사단을 조직했다. 유사시 각 면에 파견되는 20명 안팎의 공무원과 이들 자원봉사단이 손발을 맞춰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케하고 태풍에 수반하는 안전사고에 대처한다.”

농·어촌지역 단체장이다 보니 기후변화를 더 체감할 것 같다.

“실제로 대게 어획량이 많이 줄었다. 기후변화 영향도 크지만, 타 지역 어선의 불법어로 행위 영향도 크다. 대게 암컷은 개체당 3만에서 8만 미 정도의 알을 품는다. 이들이 대게 성체로 20년 정도 자라면 마리당 10만원 가격에 유통된다. 그래서 암컷 한 마리는 대략 50억원의 잠재적 가치가 있다고 영덕 사람들은 말한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암게 개체 수가 줄고, 전체 어획량도 감소하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불법어업을 근절할 방법은 없나?

“지금까진 민간에서 불법어업을 자체적으로 단속했다. 민간 어선들이 8개 조를 짜서 교대 감시하는 식이다. 그런데 불법어업 중인 어선과 충돌하는 등 위기일발의 아찔한 상황도 왕왕 있었다. 그래서 35억원을 들여 다목적 어업지도선인 ‘영덕누리호’(56t급)을 최근 건조했다. 11월 말 강구항에서 취항식을 가질 예정이다.”

태풍이 천재(天災)라면 인구감소는 인재(人災)인 듯하다. 얼마나 심각한가?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 연구 자료를 보면 영덕군이 소멸 위험지역 10위였다. 한국 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14%에 달한다며 고령사회 대책 마련에 부산하지만 영덕은 이미 그 비중이 35%를 넘어서고 있다.”

중앙과 지역의 대응이 달라야 하겠다.

“그렇다. 중앙정부 65세 이상 어르신들께 기초연금을 30만원까지 드린다. 여기에 더해 영덕군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직접 식사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돈이 있어도 기력이 달려 직접 시장에서 장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에겐 하루 세 끼 식사 해결이 절실하다. 그래서 영덕군과 지역 경로당이 손잡고 이들을 대상으로 ‘밥상 공동체’ 사업을 펴고 있다. 노인 한 분이 월 3만원만 부담하고, 군에서는 경로당별로 급식 예산을 지원하는 식이다. 경로당 한 곳당 연간 급식 도우미 인건비 720만원과 부식비 100만원이 든다. 마을 부녀회원들이 당번을 돌며 식사를 마련한다. 경로당에선 식사 시간대마다 인원 점검을 하기 때문에 노인분들의 근황도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다. 지역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희진 군수는 “도시와 농어촌을 구별하는 맞춤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며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당신들 실정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이냐’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금 수당만으로 사람 모이지 않아

이희진 군수는 28세 때인 1992년부터 여의도 정치에 몸을 담은 정치 지망생 출신이다. 23년간에 걸친 국회 보좌관 시절 보건복지·통일외교·농림축산식품·국토해양 등 상임위를 두루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이희진 군수는 “지역에 와보니 비로소 중앙의 문제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인구감소 대책으로 귀농·귀촌에 역점을 두는 지자체들이 많다.

“올해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시작했다. 우수한 아이템이나 기술을 보유한 청년 창업가가 정착할 수 있도록 1인당 3000만원(최대 2년)까지 지원한다. 단순히 현금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정착할 때까지 군에서 도와준다. 좋은 계획을 갖고도 이를 실행할 경험과 자본이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컨설팅을 제공한다. 일단 요가 가르치는 청년, 빵 만드는 청년, 관광 가이드하는 청년…. 이렇게 도시 청년 30명이 영덕에 뿌리를 내리게 하자고 군청 공무원들과 뜻을 모았다. 다양한 아이템을 가진 젊은이들이 늘어날수록 주민 삶의 질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지난 10월 창원 출신 청년들이 강구항 인근에 드론 체험관을 개장했다. 드론을 활용해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이런 청년들이 없었다면 군민들이 색다른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었겠나. 또 강구항을 찾은 외부 관광객들에게도 또다른 놀이가 될 수도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귀농인구가 2017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귀농·귀촌에 필요한 농지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정말 중요하다. 농촌에 정착하려면 땅이 있어야 하는데, 귀농인들은 저렴한 땅을 찾아 시골 깊숙이 들어가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면 마을공동체에 적응하기 어렵고 고립되다 보면 결국 도시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주거지와 가까운 농지를 귀농인들에게 충분히 공급하는 방법 등으로 농지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농지제도의 주도권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겨 귀농·귀촌 정책을 뒷받침하도록 해야 한다.”

‘2000만 관광객 시대’를 위해서도 철도 등 교통망 확충이 필요해 보인다.

“포항~삼척 동해선 철도 전철화 사업이 2022년 완공된다. 매일 부산~영덕~삼척 구간 전철이 6회, 동대구~영덕~삼척 구간 전철이 5회 운행될 예정이다. 그러면 부산·대구·울산 등 인근 800만 명 인구가 기차를 타고 영덕을 찾을 수 있다. 또 전북 전주시를 기점으로 경북 신공항과 신도청을 잇는 동서철도 계획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영해 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과 축산 블루시티, 그리고 영덕대게·영덕송이·영덕복숭아 등 풍부한 특산물을 활용한 문화관광 콘텐트를 개발한다면 2000만 관광객 시대가 성큼 다가올 것이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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