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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전문기자의 ‘마인드풀, 내 마음이 궁금해’(9)] 세계가 공감한 ‘BTS 만트라’ 

기쁨·슬픔, 절망까지 너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연민이 타인과 세상을 향한 사랑의 시작
매일 아침 새 손님 맞듯 자신의 감정 껴안아야


▎방탄소년단(BTS)의 팬들이 지난 10월 말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월드 투어 파이널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월드 투어의 주제는 ‘Love Yourself: Speak Yourself’였다.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는 ‘여인숙’이란 시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고 했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우리 마음속에 찾아온다고 봤기 때문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여인숙에 우리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루미가 말하는 손님이란 인간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가리킨다. 기쁨·절망·슬픔 같은 감정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불청객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 루미가 제시한 방법은 오늘날 마음챙김 명상과 유사한 점이 많아 참고할 만하다. 13세기 루미 시대의 인간이나 21세기의 인간이나 감정 조율의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은 다시 화로 변하기도


▎월드 투어 서울 파이널 콘서트에서 ‘러브 유어셀프’를 외치는 방탄소년단(BTS). / 사진:연합뉴스
루미는 감정 손님들이 찾아오는 그대로 모두 존중해 맞아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대개 듣기 좋은 소리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거슬리는 소리에는 반대의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수용하기 거북한 손님도 문전박대하지 말라는 얘기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어떤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런 전화위복의 시각이 루미의 시에는 깔려 있는 것 같다.


▎‘마음챙김- 자기연민(Mindful Self-Compassion)’ 명상의 공동개발자인 크리스틴 네프 미 텍사스대 교수의 저서 [러브 유어셀프]. 영어 원서 제목은 [Self Compassion]이다.
중국의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를 연상시킨다. 말을 기르던 노인이 말을 잃고 얻음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화(禍)가 복(福)이 되기도 하고, 복은 다시 화로 변하기도 하는 인생의 무상함을 알려준다.

무상(無常)이란 무슨 뜻인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기쁨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아쉬워하고, 큰 슬픔도 오래갈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히면서 상황이 바뀌는 게 세상살이로 보인다.

시간의 흐름과 만물의 변화는 철학의 오래된 주제다. 노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道)의 움직임이다.” 이때 도는 세상 만물의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노자는 화와 복이 돌고 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화여, 복이 거기에 기대어 있다. 복이여, 화가 거기에 잠복해 있다.” 화와 복이 서로에게 의존해 있다는 얘기다. 불변의 화와 복이 각기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자는 바름과 기이함, 좋음과 요망함을 추가로 예로 들며 보충 설명하기도 했다. “바르게 되어 있는 것은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좋은 것은 다시 요망한 것이 된다.”

루미나 노자나 새옹지마의 지혜는 세속적인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조금씩 이해되어 가는 것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방탄소년단(BTS)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20대 젊은이들로 구성된 세계적인 ‘힙합 아이돌’이다. 현란한 댄스에 맞춰 분출하는 이들의 노랫말이 의미심장하다. 힙합과 랩에 실린 가사라고 낮춰 봐선 안 된다.

BTS의 대표곡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는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BTS 만트라(mantra)’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만트라는 산스크리트어로 깨달음을 위한 주문 같은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면서 타인과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BTS의 ‘러브 유어셀프’가 그런 기능을 한다는 얘기다. BTS 만트라, 재미있으면서도 어떤 정곡을 건드린 표현으로 보인다.

자기 혐오가 타인에 대한 증오로 나타나기도


▎세계적 명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만트라 자체가 실제 명상의 일종이기도 하다. 세계 톱클래스 가수들만이 한다는 월드 투어의 주제도 ‘러브 유어셀프’였다.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퀸이 섰던 윔블리 경기장에서도 BTS 만트라는 울려 퍼졌다. BTS의 리더 RM은 유엔총회에 초청받아 연설하기도 했는데 그 주제도 ‘러브 유어셀프’였다.

“당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피부색이 무엇이든 간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러분의 목소리를 내십시오”라고 RM은 연설했다. ‘러브 유어셀프’는 ‘스피크 유어셀프(Speak Yourself)’와 짝을 이룬다. 7분가량 진행된 연설의 말미에 RM은 “많은 잘못을 했고 두려움도 많지만 저 자신을 꼭 껴안아 줄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러브 유어셀프’가 무슨 의미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살면서 실수나 잘못 한 번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두려워하고 실수를 범하며 사는 게 보통 인간이다. 잘못과 실수와 두려움 속에 갇힌 자신을 극도로 미워하며 우울증에 빠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기 비난이 타인을 미워하는 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무한경쟁 사회는 자기 비난과 타인 혐오를 부추기기도 할 것이다. 이런 부정적 세태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반성이 ‘자신을 꼭 껴안아주라’는 BTS 만트라에 담겨 있는 듯하다.

어떻게 자신을 안아줄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먼저 주어진 현상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바꿀 필요가 있겠다. 그러면 일희일비하는 마음이 좀 줄어들 수 있다. 루미가 제안한 것처럼 손님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 자세를 소극적이라고 헐뜯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BTS 만트라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면, 기성세대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가 그들의 노래 속에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신형철의 해석은 참고할 만하다. “BTS 만트라(당신 자신을 사랑하라)를 두고 값싼 ‘셀프 위로’ 유행의 변종일 뿐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그것이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겸허히 확인할 일입니다. 그 만트라가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을 자기 혐오에서 끌어내고 그들의 영혼을 그야말로 ‘방탄’된 영혼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김영대 지음, [BTS : The Review])

‘러브 유어셀프’는 실제 마음챙김 명상의 중요한 주제다. 미국에서 2010년경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마음챙김-자기연민(Mindful Self-Compassion)’ 명상에서 ‘러브 유어셀프’는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영문 앞글자를 따서 ‘MSC 명상’이라고 한다. 이를 만든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거머와 크리스틴 네프의 책 제목에 MSC 명상의 지향점이 잘 드러난다. 거머의 [오늘부터 나에게 친절하기로 했다]와 네프의 [러브 유어셀프]가 그것이다.

우리는 대개 남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부드럽게 온정을 베풀 줄 알면서 정작 자기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머와 네프는 이 점에 착안했다. 약점이나 결함이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먼저 자신에게 연민을! 이것이 MSC 명상의 기본 출발점이다.

자기 연민이 자기의 세계 속에만 안주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연민은 타인을 향한 사랑의 시작이다. 자기 연민의 의미, 타인 사랑과의 관계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연민이란 우리가 품는 연민의 대상이 고통에서 자유롭기를 소망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따뜻이 껴안으세요. 그러고 나면 더 고귀한 길로 나아가 남들까지 껴안게 될 겁니다.”

BTS의 ‘러브 유어셀프’ 노랫말을 다시 감상해보자.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중략)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 I’m learning how to love myself /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박스기사] 자기 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자신에게 가혹했던 세월 전폭적 수용이 필수 해독제


▎미국의 명상 전문가 타라 브랙의 저서 [받아들임].
늪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대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더 깊이 빠져들곤 한다. ‘난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됐어’라고 비하하는 자기 혐오는 부정의 늪에 빠진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늪에 빠졌다면 거기서 나오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 연민은 그런 늪에서 빠져나오는 의도적 훈련이다.

미국의 명상 전문가 타라 브랙은 자기 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전폭적 수용(radical acceptance)’을 제시한다. “전폭적 수용은 자신을 무시한 세월, 자신을 판단하고 거칠게 다룬 세월,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거부한 세월에 대한 필수 해독제입니다.”(타라브랙 지음, [받아들임])

전폭적 수용을 어떻게 하는가. 마음챙김 명상을 하며 자신의 경험을 부드럽게 감싸 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자기 연민의 자비로운 마음은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차 넓어지면서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된다. 20세기 인도의 명상가 스리니사르가다타의 제안도 되새겨볼 만하다. “내가 당신에게 당부하는 건 이뿐이다. 당신 자신을 완벽하게 사랑하라.”

※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중앙콘텐트랩 - 학술기자 20년 외길을 걸어온 국내 굴지의 학술전문기자다.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불전국역연수원·민족문화추진회·도올서원 등을 거쳐 서강대 철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대한제국 120년, 다시 쓰는 근대사] [실학별곡, 신화의 종언]이 있다.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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