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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자연의 마지막 피난처, 야생동물구조센터 

사람에게 받은 상처, 사람에게 받는 치유 

호송 동물 중 80%가 인공물 충돌, 농약 중독 피해
해마다 구조 동물 20%씩 느는데… 전국 센터는 15개소뿐


▎한 해 300마리가 넘는 고라니가 차 사고를 당해 야생동물구조센터를 찾는다. 국제 멸종 위기종이지만 한국엔 개체 수가 많다 보니 관리가 소홀하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고라니의 두개골 크기와 이빨 개수 등을 근거로 연령을 추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추정한 연령은 야생동물 개체 수 조절에 활용한다.
지난 9월 29일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부러진 고라니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로 호송됐다. 상처 부위에는 이미 구더기가 끓기 시작했다. 사고를 당하고 꽤 오랜 시간 뒤에야 구조된 것이다. 구조센터의 수의사 주인씨가 구더기를 핀셋으로 제거한 뒤 부러진 다리 부위에 엑스레이를 찍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살펴보던 주씨는 “시간이 너무 흘러 수술을 해도 걸을 수 있을지 장담 못 하는 상태”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치료 후 재활에 성공한 동물은 가급적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센터에 온 야생동물 중 자연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40%에 불과하다. 야생 복귀가 어려운 동물은 동물원 등 야생동물을 관리할 수 있는 기관에 입양되기도 하지만 보통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센터 도움을 받는 야생동물의 80%는 사람 때문에 다쳐옵니다.” 6년 차 동물재활관리사 김봉균(31)씨는 야생너구리 ‘클라라’와 ‘데이비드’에게 먹이를 주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동물의 안전 사고는 사람이 만든 도로 위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요.”

수의사 2명이 충남지역 관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수의사들이 소쩍새(천연기념물 제324호)의 왼발에 대고 있던 부목을 제거하고 있다.
2010년 9월 충남 예산군 공주대 캠퍼스에 문을 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현재까지 9000여 마리의 야생동물을 구조했다. 해마다 약 20%씩 증가해 올해는 1700여 개체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곳을 포함해 전국에 설립된 야생동물구조센터는 15개소다.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되고, 환경부와 관할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는다.

충남 센터에 소속된 직원은 모두 8명(수의사 2명, 재활관리사 5명, 행정직원 1명)이다. 이 인원으로 관할 지역을 감당하기엔 벅찬 게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야생동물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드물다보니 전문 인력도 달린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같은 감염성 질병이나 생태계 교란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선제적 대응이 어려운 이유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센터 구성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힘입어 재활의 길로 접어드는 야생동물이 날로 늘어난다. ‘로드킬’ ‘버드 스트라이크’ 같은 용어가 대중에게 익숙해졌듯이 이들 센터의 노력 덕분에 야생동물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과 관심도 증가하는 추세다. 박영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장은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며 “야생 동물과 인간은 이웃이면서 모두 자연의 일부”라고 말한다.


▎교통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한 너구리 ‘데이비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센터에서 교육동물로 살아가고 있다.



▎수의사가 중대백로에 약을 투여하고 있다.



▎총상 치료 후 방생했지만 100일 만에 다시 총에 맞아 한쪽 날개를 절단한 흰꼬리수리 ‘알비’. 흰꼬리수리는 1급 멸종 위기 야생생물이다.



▎동물재활관리사 김봉균씨가 너구리 ‘클라라’와 ‘데이비드’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야생동물구조센터는 동물들의 번식기인 6~8월에 가장 바쁘다. 충남 센터 관계자가 야생동물 구조 및 관리 현황판에 구조한 동물을 기록하고 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이 수술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사진·글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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