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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총력취재] ‘친문(親文) 게이트’ 반쯤 열리다 

대통령이 아는 내용, 들은 내용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유재수 비위, 울산 선거개입, 우리들병원 대출’ 3대 의혹 청와대 정조준
‘왕수석’ 조국의 민정수석실이 공직기강 감시 컨트롤타워 역할 못해


▎문재인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3대 의혹이 청와대를 옥죄고 있다.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비서실 내부의 공직기강 해이를 적발해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감찰보고서를 검찰 수사도 하기 전에 지라시 취급했다. 대통령이 알고 있는 내용, 측근들로부터 들은 내용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허심탄회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14년 8월,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제기되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보고서를 ‘지라시’로 규정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처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위의 발언은 문 대통령이 당시 했던 발언이다.

5년 전의 발언이 문 대통령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도덕성 논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관련 사건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청와대의 조직적인 감찰 무마 의혹으로 비화했다.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관련 경찰의 편파 수사 논란은 사상 초유의 권력형 선거 개입 의혹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검찰의 파상 공세는 권력의 정점(頂點)을 향한다. 좌표는 청와대에 찍혀 있다. 3개의 문(Gate) 중 어느 하나라도 열리는 순간 청와대의 무장은 해체되고 만다. 하나가 열렸을 때 나머지가 열리는 건 시간문제다. “대통령이 알고 있는 내용, 측근들로부터 들은 내용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허심탄회한 자세”는 현직에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로 지금, 무엇보다 절실한 자문(自問)이다. 참모는 가장 든든한 방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눈과 귀를 가리는 장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헬게이트’, 3개의 문이 기다린다

“탄탄대로가 좁아질 때 첩첩산중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챘어야 했다.”

비문(非文)으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현재 상황을 “첩첩산중의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위가 드러날 때만 해도 정권에 치명적인 상처로 여기진 않았다고 한다. 조 전 장관 당사자의 비위가 아니었고, 그의 진정성을 여권 내부에서 누구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9월 6일 조 전 장관을 임명하면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그런데 조 전 장관이 취임한 직후 상황이 급변했다. 여권의 우호 여론이 ‘표창장 논란’과 ‘조국 수호’에 집중하는 동안 검찰의 칼날은 여러 개로 갈라졌다. 더 예리하고 미세해진 칼날들은 청와대 중심으로 날아들었다. 첫 번째 칼날은 ‘유재수 비리’ 사건이다.

1. 첫 번째 문: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부산시 오거돈 시장과 유재수 부시장이 2019년 10월 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질의를 듣고 있다. 유 부시장은 2017년 청와대 감찰을 받은 뒤 오히려 영전했다. / 사진:송봉근 기자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근무했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2018년 11월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한 비위를 포착해 감찰을 벌인 적이 있다고 주장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유 전 부시장이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을 맡은 지 5개월쯤 됐을 때였다. 민정수석이었던 조 전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근거가 약하다고 봤다”며 “비위 첩보와 관계없는 사적인 문제가 나왔다”고 했다.

후에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드러난 유 전 부시장의 비위 내용은 조 전 장관의 해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근거가 약하지도, 비위와 관계없는 사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사건을 맡은 서울동부지검은 2019년 12월 13일 유 전 부시장을 구속기소하면서 그의 범죄 혐의를 상세히 공개했다.

검찰이 공개한 범죄 혐의는 매우 구체적이다. 검찰 공보 자료에 따르면 ‘초호화 골프텔 무상사용, 고가 골프채·항공권 구매비용, 오피스텔 사용대금, 책 구매대금, 선물 비용, 동생 취업, 아들 인턴십, 부동산 구입자금 무이자 차용과 채무 면제 이익 수수, 표창장 부정 수여. 그에게는 뇌물수수, 수뢰후부정처사,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등 4개 혐의가 적용됐다.

중요한 대목은 그다음에 있다. “이러한 중대 비리 혐의 중 상당 부분은 대통령비서실 특별감찰반 감찰 과정에서 이미 확인되었거나 확인이 가능했다”고 밝힌 부분이다. 유재수의 비리를 몰랐다거나, 수사 권한이 없어서 더 밝혀낼 수 없었다고 한 청와대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검찰의 직격탄 “유재수 비리 몰랐을 리 없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오른쪽)과 유한홍 의원이 2019년 12월 3일 국회 의안과에 ‘친문 농단 게이트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기자
조 전 장관의 해명이 위증은 아니지만 사건의 경중을 가벼이 여긴 것만큼은 명백해졌다. 검찰 발표에 이어진 청와대의 반박성 해명은 다급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019년 12월 15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감찰은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조사가 가능한데, 당사자인 유재수는 처음 일부 사생활 관련 감찰 조사에는 응했지만, 더는 조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감찰 조사를 더는 진행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판단의 결과는 인사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감찰의 한계를 강조하지만, 문제는 감찰 이후 보여준 태도에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감찰 업무를 담당했던 한 경찰 간부는 “청와대의 해명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감찰이 시작되면 우선 본인에게 재산이나 금융거래 내역, 휴대폰 분석 등 조사에 필요한 동의를 구한다. 감찰 대상자가 이런 요구를 거부하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거부하는 순간 감찰에서 수사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유 전 부시장이 감찰 조사를 거부했다면, 나머지 의혹은 수사기관에 정식 수사를 의뢰하는 게 당연히 해야 할 절차다”고 덧붙였다.

당사자의 비협조로 조사를 중단했다면 감찰의 무능을 자인하는 꼴이다. 어느 기관보다 엄정해야 할 청와대의 공직기강 감시 기능이 이 정도라면 무능을 넘어 직무유기로 봐도 어색하지 않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범죄정보를 다뤘던 한 검찰 수사관은 “당사자가 거부한다고 편의를 배려하는 ‘친절한 감찰’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공직자들에게 감찰의 위력은 상당하다.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섭다. 경찰 간부는 “든든한 ‘백’이 있지 않고서야 감찰을 거부할 만큼 당당하고, 게다가 비위 사실이 확인된 뒤에 오히려 영전했다는 걸 상식적으로 납득할 공직자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과정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유 전 부시장은 감찰이 끝난 뒤 금융위에 사직서를 냈다. 비위 혐의가 있는 공직자는 스스로 그만두는 것조차 제한된다. 우선 직위 해제한 뒤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징계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황운하 전 울산청장이 제출한 퇴직 신청서를 경찰청이 보류한 것도 같은 이유다.

“감찰 무마가 아닌 인사 조처”라는 해명도 설득력이 약하다. 유 전 부시장은 금융위를 나온 뒤 “날개를 달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불과 한 달 만에 민주당 소속 국회수석전문위원으로 선임됐다. 금융위 때 직급(2급)보다 두 단계 위인 차관보급의 자리다. 이어 3개월 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과 함께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과정에서 감찰조사를 받았던 이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위 당사자에게 ‘친절한 감찰’ 듣도 보도 못해”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은 “비위 사실이 명백한데도 승승장구한 것은 윗선의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한 ‘윗선’의 정점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다. 유 전 부시장은 문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김경수 경남지사가 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근무할 때와 겹친다.

그를 부시장으로 영입한 오거돈 부산시장은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부산지역 선대위 상임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오 시장은 2019년 8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 전 부시장에게 불법이나 뇌물수수 문제가 없다”고 두둔했다.

유 전 부시장의 비위를 몰랐다고 선을 그었던 조 전 장관은 수세에 몰렸다. 검찰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으로부터 “상부의 지시로 감찰이 중단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태우 전 수사관의 주장과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민정수석실을 총괄 지휘했던 조 전 장관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2. 두 번째 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유재수 사건이 유 전 부시장과 조 전 장관 등 관련 인물들의 개인적 도덕성과 청와대 사정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냈다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정권의 정당성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사안이다.

보수 정치학자 A 교수는 “공권력에 의한 선거 개입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폭발력은 이명박 정부가 벌인 국정원 댓글 사건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A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북한과 종북 세력에 의한 온라인 여론 공작에 대응한다는 안보의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도 선거를 앞둔 상황이어서 선거 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본 거다. 울산 사건은 이념적 명분조차 없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경찰의 태도가 정상적이지 않다.”

검찰이나 경찰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수사는 비밀 유지에 각별히 신경 쓴다.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8년 3월 김기현 울산시장과 주변에 대한 경찰 수사는 이런 통상의 관행과 달랐다.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던 울산시 비서실장과 도시국장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울산지검은 수차례에 걸친 보완수사 지휘 끝에 두 사람을 무혐의 처분했다. 결정문에는 처분에 관한 법리적 근거와 함께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사가 경찰의 수사 태도를 공식 문서로 비판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라며 “추후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근거를 남기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3월 15일 불기소 결정문을 보자.

‘울산지방경찰청장 황운하는 정치적 고려를 하면서 어설프게 정무적 판단을 하여 수사를 멈칫대는 것도 국민이 원하는 경찰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중략)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이 취한 조치내용과 구체적인 피의사실이 언론에 지속적으로 공표되고, (중략) 유죄로 확정되거나 적어도 수사를 해야 할 만한 사건이라는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경우 경찰은 물론 수사를 지휘한 검찰까지도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시비, 그리고 수사권 남용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수사였다.’

이어지는 불기소 이유에 대한 설명에서 검찰은 2018년 3월 16일 울산시장 비서실 압수 수색이 언론에 보도되자 ‘조례 분석이 이뤄지지 않아 직권남용 여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피의자들에 대한 구체적 피의사실이 언론을 통해 그대로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경찰이 선거를 앞두고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비판이다.

선거 앞두고 경남 지역 한국당 후보 4명 수사 압박

울산과 더불어 경찰이 야당 후보를 향해 수사의 칼날을 들이댄 곳은 더 있다. 경남 창원, 사천, 양산시다. 공교롭게 모두 민주당 열세지역인 경남벨트 선상이다.

2018년 3월 13일 경찰은 양산시장 선거에서 3선을 노리던 나동연 한국당 후보가 업무추진비를 유용했다며 시장실 등을 압수 수색했다. 김기현 울산시장을 겨냥한 압수 수색이 이뤄지기 3일 전이었다. 결국 선거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경남선대본부의 조직특보를 지낸 김일권 후보가 승리했다.

뒤이어 3월 30일에는 창원시장 한국당 후보인 조진래 전 의원을 공개적으로 소환 통보했다. 조 의원의 공천이 확정된 날이었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치러진 선거에서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민원제도 비서관을 지낸 허성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1년 가까이 경찰 수사를 받던 조 전 의원은 2019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천시장 선거에서도 경찰은 송도근 한국당 후보를 뇌물수수 혐의로 압수 수색하며 수사를 시작했다. 다만 경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송 후보는 간신히 선거에 승리했다. 울산, 양산 사건은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로 종결됐고, 송 시장은 2019년 10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2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판사 출신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은 “울산을 비롯한 경찰의 선거 개입 사건은 헌법을 위반한 중대한 문제”라며 “경찰의 직권남용이 명백하고 공직선거법, 국가공무원법을 다 위반했다. 청와대가 개입돼 있다는 게 밝혀지면 탄핵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3. 세 번째 문: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대규모 대출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권 실세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우리들병원 청담동 병원 전경.
친문(親文)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사업가 신혜선씨가 2013년 소송을 시작하면서 회자했지만, 본격적으로 이슈화한 건 최근이다. 네트워크 병원인 우리들병원이 2012년 산업은행으로부터 1300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이상호 우리들병원 원장은 친노 핵심 인사로 꼽힌다. 친문 인사들과 깊이 교류하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씨는 대출 과정에서 신한은행이 문서를 위조해 이 원장을 돕는 바람에 사업 파트너인 자신이 큰 손해를 입게 됐다며 소송을 벌였다. 검찰이 수사를 벌였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 신씨는 이 과정에 여권 실세가 개입해 수사를 무마했다고 주장한다. 신씨의 주장에는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전 민정비서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버닝썬 사건에서 ‘경찰총장’으로 등장한 윤규근 총경(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등장한다.

양정철 원장은 2019년 12월 12일 자신의 연루 의혹을 부인하며 “청탁을 들어주지 않아 서운해하는 사람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무리한 부탁이 많아 연락을 피하다 야멸차게 할 수 없어 ‘알아는 보겠다’고 넘어가거나 뭉개곤 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 역시 검찰에 넘어가 있다. 신씨가 대출 과정에 개입한 신한은행 직원을 위증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은 형사 3부(부장 박승대)에 배당했다.

실체 모호하지만, 여권 실세 이름 오르락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3인방인 소위 ‘3철’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왼쪽)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
아직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진 않았다. 신씨와 관련 인물로 지목된 이들의 공방이 이어지는 중이다. 다만 자유한국당은 이미 이 사건을 ‘금융농단’으로 규정하고 대여 공세의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당은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고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자며 벼르고 있다.

정치적 이슈화하면서 우리들병원에 대한 대출 과정에서 석연치 않았던 점들이 드러나 의혹을 키우는 중이다. 한국당 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인 정태옥 의원은 산업은행이 1400억원을 병원에 대출하기 위해 기업 규모를 부풀려 심사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2019년 12월 15일 “우리들병원 청담점은 법인도 아닌 개인병원인데 대출심사 때 대기업으로 분류됐다”며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보다 금리도 낮았다”고 설명했다.

여권에서는 우리들병원 의혹이 한국당의 주장처럼 ‘농단’으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오래전부터 제기된 주장이지만,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온 데다 아직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대출 특혜가 있었다고 하는 2012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국책은행이 서슬 퍼런 정권 몰래 야권 인사에게 불법 대출을 해줬다는 시나리오는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폭로자인 신씨가 오랫동안 친노, 친문 인사들과 교류해왔고, 주장이 구체적이어서 속단하긴 어렵다는 게 시각도 있다. 부장검사를 지낸 한 중견 변호사는 “사업이나 이권 등에서 배려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정권 초반에 권력 실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던 이들이 후반기로 넘어가면 서운한 마음에 내밀한 관계를 폭로하는 경우가 많다. 레임덕은 대체로 사소해 보이는 잡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4. 네 번째 문: 탈출구인가, 낭떠러지인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9월 25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29차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 (ADLOMICO)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검찰과 야권의 세 갈래 공격은 진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파고든다. 진보 정권의 가장 큰 자부심은 동지적 연대의식과 도덕성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보수와 다르다는 우월감을 정책 추진의 동력으로 삼는다.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래 지금까지 이들이 가진 열정의 순수함을 국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진보의 정체성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는 것이다. 개인들의 일탈이 모이니 ‘그렇고 그런’ 이해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구나 그 중심 인물들이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거나 여권의 핵심 멤버들이다. 작은 균열이 모여 건축물의 부실 판정의 근거가 되듯, 정권의 권력 누수는 ‘실망’에서 비롯된다.

정치권에선 일차적 책임은 조국 전 장관, 최종 책임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조 전 장관은 한때 ‘왕수석’이라고 불렸다. 대통령의 신임과 대중적 인기를 밑천 삼아 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자기 일이 아니어도 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처했을 때 특기인 ‘SNS 정치’로 우호 여론을 조성했다. 하지만 현재 드러나고 의혹들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게이트 키퍼’로서 그의 역할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추상같은’ 왕수석이 아닌 ‘내 식구에 상냥한’ 맏형의 이미지만 남았다.

“조국이 직을 걸었어야 했다”

“그는 얼굴마담에 불과했다. 민정수석실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의 일탈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비문 진영의 한 핵심 인사의 지적이다. 유재수 사건을 조 전 장관의 가장 뼈아픈 실책으로 지목했다.

“그가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해야 할 일은 말의 목을 벨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잡는 것이었다. 유재수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했다면 개인의 일탈에 그쳤을 일이다. 외압이 있었거나, 대통령의 의중이 그랬다 해도 조 전 장관은 직을 걸고 막았어야 했다. 그래야 정권도 살고, 조 전 장관의 후계론도 힘이 실릴 수 있었다.” 직언의 통로가 막혀버린 민정수석실의 난맥상은 박근혜 정부의 비선 국정농단을 방치하다 파멸에 이른 ‘우병우 민정수석실’과 데칼코마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정권의 운명이 교차하는 변곡점이 반드시 있다. 변곡점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이른바 ‘키맨’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정권의 도덕성이 치명타를 입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장진수 주무관의 폭로로 파장이 커졌다. 박근혜 정부의 변곡점에는 박관천 경정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있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었던 박 경정은 정윤회가 비선 실세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는 비선에 의한 국정농단의 실마리가 됐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임명된 이석수 전 특감은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찰했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전 정권과 비교했을 때 문재인 정부도 변곡점에 다다른 형국이다. 검찰을 잘 아는 법조계 인사는 “청와대와 여권은 지금 검찰의 태도를 ‘반란’으로 보겠지만, 시기가 약간 앞당겨졌을 뿐 언젠가 닥칠 일이었다”고 했다. “청와대가 반드시 다가올 미래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책임이 크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청와대와 조 전 장관의 민정수석실이 리스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국정운영 감각이 부족한 탓이거나, 탄탄한 지지층만 믿은 오만한 태도 탓이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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