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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와이드 인터뷰] 성태윤 연세대 교수가 말하는 2020년 한국경제 반등의 조건 

“글로벌 위기보다 우려되는 건 우리 내부에서 경제가 죽어간다는 것” 

■ “가계·기업 무너져가고 국가 재정으로 떠받치는 상황, 통화정책도 한계”
■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안 바꾸면 수출경쟁력 확보 어렵다”
■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려면 노동 경직성과 산업정책 손질해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산성이 수반되지 않은 근로시간 감소가 디플레이션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본다.
경제학은 미래를 예견하는 학문이 아니다. 어떤 경제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를 합리적으로 규명해주는 분야에 가깝다. 그 필연성을 파악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야 환부를 제거 혹은 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 경제를 전망하려면, 2019년에 찍혀 나온 숫자들을 땅에 딛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 통계 더미에서 무엇에 가중치를 두고, 어떻게 해석할지는 저마다의 견해가 된다.

성태윤(50)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실참여형 학자다. 언론 인터뷰나 칼럼 기고에 그의 이름은 곧잘 등장한다. ‘학문적으로 엄밀하되, 현실 경제 이슈에 관한 발언을 두려워 않는’ 미국 하버드대의 기풍에 영향받았다. 성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거쳐 모교인 연세대로 돌아왔다. 2015년에는 한국경제학회 청람상을 수상했다. 가장 연구 성과가 뛰어난 만 45세 미만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KBS TV ‘명견만리’ 강연으로 거시경제학자론 이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도 높은 편이다.

세상에서 가장 통렬한 게 ‘팩트로 때리는 것’이다. 인터뷰는 2019년 12월 13일, 연세대 성태윤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미·중 무역합의가 타결돼도, 반도체 경기가 회복돼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총체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2020년 한국 경제의 반등은 희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중국발 금융위기나 미국발 거품 붕괴 가능성보다, 서서히 식어가고 있는 우리 내부의 가계·기업 활력 감퇴가 더 치명적’이라고 경계했다.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디플레이션 국면


▎이미 소비자물가 하락 등, 디플레 경고등이 켜진 한국 경제. / 사진:연합뉴스
오늘(13일) 미·중 간 1단계 무역 협상이 합의됐다.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걷혔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애초부터) 트럼프가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만한 강도로 (대중 무역 갈등을) 끌고 간 것으로 보긴 어렵다. (미국의 관세 부과만으로) 중국 경제를 침체로 만들어낼 것은 아니다. (때마침) 중국 경제 자체가 약화하는 구간에 있었던 셈이다. 장기적으론 미국과 중국의 패권 문제는 해결이 안 됐다. (최종 타결까지) 불확실성의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2019년 12월 3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GDP 디플레이터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분기 이후 가장 큰 폭(1.6%)으로 떨어졌다. 또 4분기 연속 하락은 1961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디플레이션 상황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생산자물가지수를 동반해서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물론 나중에 GDP디플레이터가 (하락세에서) 빠져나올 순 있는데 그렇다고 디플레이션이 아니란 의미는 아니다. 현재 디플레이션이라고 보고 의사결정과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면 더 악화할 수 있다.”

정부와 통화 당국은 디플레가 아니라고 한다.

“이것보다 더 강력한 디플레이션을 디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면, 정말 빠져나오기 어려운 디플레이션을 뜻하는 것이다. 아직은 대응을 통해서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나 통화 당국에서 얘기하는 디플레이션은 완전히 경제가 무너진 상황을 의미한다.”

지금이 디플레라고 판단할 근거는 무엇인가?

“디플레이션은 물건의 공급이 잘돼서 가격이 내려간 경우, 경기가 안 좋아서 수요가 부진해서 물건값이 떨어지는 경우,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지금의 디플레이션은 후자에 가깝다. 경기 상황이 안 좋다 보니까 물가 하락이 일어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국민이 경기가 나쁘다고 느낀다면, 그러면서 물가가 마이너스로 되고 있다면, 디플레이션으로 정의하는 게 바르다고 본다.”

주변에선 ‘서울에서 점심 한번 먹으려도 돈이 얼만데 물가 하락이냐’고 반문한다. 체감물가는 오른 것 같은데 디플레가 맞나?

“‘여러분이 산 물건값만 올랐다’고 말하면 될 것 같다. 무슨 뜻이냐면 사람들이 사지 않은 물건은 수요가 부진해서 가격이 내려간다. 떨어졌지만 사람들이 사지 않기 때문에 느낄 수 없다. 반면 (체감이 바로 되는) 생필품이나 식료품은 꼭 필요한 물건이니까 값이 올랐다. 정부는 그런 것까지 다 떨어져야 디플레이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러면 속된 표현으로 경기가 절단이 난 상태다. 지금은 정말 꼭 필요한 음식과 물건 값만 유지되고 있다. 나머지 것들은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상태다. 쉽게 말해서 (상황이 더 악화해) 밥도 못 먹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이 디플레이션이라고 진단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걷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


▎2019년 12월 10일 자유한국당의 반발 속에 2020년 512조원 예산안이 통과됐다.
서민들은 체감적으로 디플레(저성장 저물가)보다 더 가혹한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이라고 여길 법하다.

“일반 국민은 내가 구매하는 필수품이 올랐으니 물가가 올랐다고 느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가처분 소득이 내려가서 물건값이 더 많이 올랐다고 느낄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월급봉투가 줄어든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월급에서) 정부나 공공의 이름으로 걷어가는 세금, 공적 연금 관련 지출이 늘어났다. 이 부분이 국민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을 줄여놨다. 내 실소득은 훨씬 줄었는데, 필수품의 물건값은 약간 올라 있으면,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졌는데 무슨 디플레이션이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물가로 보면 디플레이션이 맞다.”

디플레 국면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

“고용이 안 좋아지면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다. 정부는 2019년 11월의 고용이 33만1000명 늘어났다고 했지만, 60대 이상에서 40만8000명이 늘었다. 가계를 책임지는 40대는 일자리에서 아웃(17만9000명 감소)되고 있다. 주 50~60시간 일하던 40대가 사라지고, 주 5~10시간 일하는 60대(초단기 일자리)가 채운 것이다. 일자리가 아예 없어지거나 근로시간이 엄청 줄어서 벌 수 있는 돈이 감소했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돈을 번 다음에 지출되는 세금은 늘어났다. 세법·세율은 그대로지만, 세금 집행 강도를 높여서 더 많이 걷었다. 또 각종 연금이나 공적 기금 관련 부분에서 징수가 늘어났다. 이러면서 소비하거나 저축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줄었다.”

정부는 나름대로 선순환 구조를 그렸을 텐데, 현실은 왜 이렇게 흘러갈까?

“정부는 세금을 거둬서 어려운 사람들한테 써야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금이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형편이 어렵지 않은 이들에게도 지원이 간다. 이렇게 되면 소득이 많은 사람한테 세금을 걷어 소득이 적은 사람한테 가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냥 세금 재원이 낭비되는 형태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지출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요즘 돈이 돌지 않는 의미로 ‘돈맥경화’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민간 부문도, 정부 공공 섹터도 ‘돈맥경화’ 현상이 보이고 있다. 특히 정부 주도의 대규모 사업은 예비타당성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일부 재원은 현금성으로 지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저성장 국면에서 정부가 적극 재정을 안 펼 수도 없다.

“적극 재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정부 지출을 늘리는 구조에 대한 준칙을 만들어 너무 막 늘어나게 하면 안 된다. 또 하나는 국채를 찍어내는 것을 관리하기 위한 준칙이다. 세금을 많이 걷으려 하거나 부채를 마구 늘리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을 관리하는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복지 등 경직성 지출 파트는 세금 자원 조달 방안을 세워야 한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는 MMT(현대화폐이론)처럼 정부가 무한정 돈을 찍어낼 수 없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비율을 반드시 40%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스페인·아일랜드 사례처럼 40%를 넘기면 매우 빠르게 국가부채비율이 악화한다. 이 속도 관리가 안 되면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

“부동산정책 실패가 통화정책에도 영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20년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할지 주목된다.
통화정책 관련해서, 2020년 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설이 나온다.

“미국의 상황을 안 보기 어렵다. 트럼프는 2020년 말 대선을 앞두고 경기부양을 하는 중이다. 이 기간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는 어렵다. 이러면 우리 입장에서는 약간의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이 더 들썩이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실제 서울 등 일부 지역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 그러나 금리보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올랐다고 보는 편이 맞다. 경기가 워낙 안 좋기 때문에 부동산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부동산은 양질의 주택 공급으로 잡는 것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정부 정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은 더 올랐다.

“처음에 나왔던 것이 다주택자 규제였다. 이러면 나머지 집을 팔고, 서울의 선호 지역으로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즉, 핵심자산으로의 포트폴리오 재편(소위 ‘똘똘한 한 채’)을 유도하는 정책이 돼버렸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향후 주택공급을 못 하게 하는 정책이다. 사람들은 좋아하는데 공급이 제한될 것이라 생각하는 지역에서 가격이 폭등하는 양상이다.”

서울 요지에 공급을 늘리겠다는 시그널은 아직 없다.

“강남 등 선호 지역의 가격이 올랐는데, 일산처럼 집값이 그렇게 오르지도 않은 지역에 공급을 늘리려 하니… 이것은 양극화시키는 정책 수행이다. 금리를 올리면 주택가격이 어려운 지역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통화 정책에도 제약을 주고 있다.”

한국이 금리를 또 내리면 한·미 금리 차가 유례없이 벌어질 수 있는데.

“부담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한국 경제가 나빠지면 금리차와 관계없이 국외 자본이 떠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기업들 상당수가 해외로 떠나고 있다. 투자도 서서히 빠지고 있다. 우리나라 자본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되면, 국외 자본이 나가는 것을 막기란 더 어렵다.”

우리나라 경제의 최대 위협은 예기치 않은 외부 충격보다 가계와 기업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가계와 기업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국가 재정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뿐이다. 고용통계를 보면, 제조업을 비롯한 민간 기업에서의 고용은 사라지고 재정에 의한 단기자금 형태로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제구조는 기본적으로 지속할 수 있지 않다. 우리는 이미 라틴 아메리카를 통해 이런 경제가 어떻게 됐는지를 봤다.”

‘타다’의 케이스를 보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규제 장벽에 막혀 비관적이다.

“기존 사업자(택시)의 이해관계 이슈 때문에 (공유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 자체를 금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존 서비스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새로운 사업 기회와 고용을 창출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의 최대 수혜자는 큰 회사 정규직”

기업도 문제겠지만, 가계대출도 사상 최초로 1570조원을 돌파했다.

“가계대출 하면, 흔히 부동산을 생각한다. 그러나 근로자가 자영업자로 이동하는 등, 자영업이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주택 담보 대출은 이자율이 가장 낮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삶이 어려워지면 신용 대출 등을 받아서 사업을 꾸리거나 생계를 이어간다. 특히 부산·울산·경남 지역 경제가 상당히 어렵다. 제2금융권에서 무리를 해서 대출을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경제여건, 소득 감소, 이런 부분들이 가계부채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높다. 서서히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이분들(자영업자)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는 정부에서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다. ‘소득주도빈곤’이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이에 관해 2017년 한국경제학회에서 발표를 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정부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는데 그 당시 예측 그대로 돼가고 있다. 정책 의도는 소득이 높은 사람들의 것을 걷어서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자영업자의 것을 걷어서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주는지도 모호한’ 상황이 됐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깔려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소득이 웬만큼 되는 중산층의 구성원들이 실제로 꽤 많았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자영업자를 자본가로 생각했다. 사실 자영업자의 성격은 (부잣집 알바생과 비교할 때) 근로자에 더 가깝다. 오히려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 정책의 여파로 자영업자는 최대 피해자, 대기업 근로자는 최대 수혜자가 됐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서 그 (인건비 상승) 압박을 통해서 전반적인 임금이 밀려 올라갔다. 안정된 직장에서 (높은 급여를) 받고 있었던 근로자들의 임금도 올라간 것이다.”

김광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폐쇄경제라면 소득주도성장 이론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방경제에서는 우리가 아주 핵심적인 경쟁력을 가진 산업, 예를 들면 반도체를 제외하곤 대부분 수출 산업이 노동비용 증가 압박을 받게 된다. (인건비 증가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안 되니까 기업들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업황만 쳐다보는 또 하나의 배경일 수 있겠다.

“반도체가 어려워지면 수출이 꺾이는 것은 맞다. 그러나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수출도 안 좋다. 글로벌 경기 탓만으로 보기 어렵다. 다른 나라 경제가 빠지는 것에 비해 우리의 수출 감소 정도가 훨씬 심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의 비용구조 약화가 수출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원인에 관여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최저임금 인상 못지않은 파급력을 끼쳤다.

“근로시간 단축은 단위 시간당 노동비용을 올려놓는다. 우리 기업 경쟁력을 상당히 잃게 되고, 투자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예측한 부분이 예측한 그대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궤도 수정이 분명히 필요하다.”

이런 제도들은 노동 개혁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문 정부에선 기대하기 힘든 목표로 비친다.

“근본적으로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노동비용이 올라가고 있다. 이러면 누가 가장 어려울까? 청년 계층이다. 이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못 구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20년 경제 개선돼도 웃지 못할 이유


▎2019년 12월 6일 ‘타다 금지법’이 의결됐다. 혁신성장의 길은 더 멀어졌다.
일과 여가의 균형이라는 지향성은 궁극적으로 맞는 것 아닌가?

“[중앙일보]에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제목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경직적인 방법으로 하면 안 된다. 미국이 우리보다 노동시간이 적지만, 이렇게 하진 않는다. 생산성이 좋고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을 더 주고 일을 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가처분 소득을 줄인 한 가지 요인이겠다.

“기업도, 근로자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주 조직화한 환경에서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들은 (주 52시간제를)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근로시간과 수입이 연계된 사람들은 손해다. 기업도 탄력적인 대응을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R&D(연구개발) 분야가 그렇다. 주 52시간제는 궁극적으로 한국에서 연구개발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만들 수 있다.”

기업 경영 측면에서 상속·증여 체계가 너무 엄격한 나머지 우리 기업들의 가업 승계가 힘겹다는 얘기를 듣는다.

“상속세 같은 경우 경제적 이슈뿐만이 아니라 국민 정서도 있기 때문에 건드리기 어렵다. 다만 오랫동안 세금 내고 충분히 공헌한 기업인에 대해선 우리가 어느 정도 배려해줄 수 있는 형태로 세금 제도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볼 순 있다.”

수출 얘기를 해보자. 수출이 계속 흑자를 유지하곤 있다. 그러나 수출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수입이 더 감소한 덕분에 이뤄진 ‘불황형 흑자’다.

“경기가 후퇴하다 보니까 수입이 감소했다. 일본과의 갈등 속에서 맥주처럼 수입을 안 한 부분도 있었다.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할 게 줄어들어서 생긴 흑자 기조는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

2019년 경제실적이 워낙 저조해서 2020년에는 바닥을 칠 것이라고 보는 낙관론이 나온다.

“수치적으론 어떻게든 반등할 수밖에 없다. 2019년의 경제 상황은 거의 모든 면에서 역사상 최악에 가까웠다. 이 정도의 지표는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곤 나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개선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개선되면 좋긴 한데, 정부가 또 어떻게 포장할지….

“아마 국민이 체감하는 정도는 여전히 좋지 않을 것이다. 정책 당국에서는 좋아졌다고 얘기를 하겠지만…. 실제 개선이라고 보기에 조금 민망할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이만한 호재가 없지 않나?

“반도체 시장이 2019년 워낙 안 좋아서 (2020년은) 개선될 수 있다. 그렇지만 2017~2018년과 같은 초호황으로 돌아갈지는 상당히 불확실하다. 그때처럼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지는 의문이다. 워낙 다운된 것은 맞기 때문에 일반적은 회복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반도체는 지탱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의 자동차·화학·정유·디스플레이·철강·조선 등은 2020년에도 불확실성에 싸여 있다.

“조선이 먼저 떨어져 나갔다. 현재는 반도체·자동차·화학 정도가 버티고 있다. 자동차도 어렵다가 최근에 미국에서 SUV가 팔려 조금 나아졌다. 화학은 경쟁력을 잃었다기보다 가라앉는 사이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이클이 회복되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 경제를 견인할만한 산업이 새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과거에 있던 산업이 조금씩 약화하고 있다. 일종의 산업전환, 산업재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맞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첩첩산중이다.

“기업은 무너지고 있는 파트를 그대로 놔두고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없다. 그러면 죽는다. 기존 분야를 서서히 정리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를 재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 경직성을 봤을 때 상당히 어렵다. 또 자본이나 기업이 새 사업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용이해야 하는데 각종 규제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다.”

정부 차원의 산업정책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지금 정부 정책은 신성장동력을 선정하고, 거기에 보조금을 투입한다. 기업들을 불러서 보조금 따 갈 곳을 뽑는 식이다. 진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은 정보 보조금을 따려 하지 않는다. 해외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정도의 능력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어려운 회사들이 정부 보조금을 딸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 지원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지금 정부 방식으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구조를 창출할 수 없다.”

중국발 경제위기보다 더 두려운 노동 경직성


미국 경제가 125개월째 확장 중이다. 그러나 미국도 업종은 IT, 지역은 실리콘밸리를 품고 있는 샌프란시스코가 장을 이끌고 있다.

“미국 주가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은 테크놀로지 관련 회사들이다. 어느 정도는 지속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미국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도는 것도 사실이다. 장·단기 채권금리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트럼프의 선거전이 미국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든다. 우리로서도 2020년 그런 부분이 부담스럽다. 2008년 금융위기도 주식시장은 활황 상태였는데 금융시장에서 불안 신호가 나타나며 꺾였다. 지금도 그런 불안 신호가 계속 나타나고 있는 시점이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에 거품을 계속 키우고 있다. 거품은 언젠가는 터지는 것인가, 아니면 커지면서 계속 관리가 되는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열려 있다. 사전적으로 거품을 판단하기란 어렵다. 사후적으로 봤을 때, 관리가 되면서 어느 정도의 생산성이 뒷받침됐다고 판단한다면 거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이 꺼지게 되면 거품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경제의 실물 지표로 봐선 거품이 안 끼어 있다곤 못하겠지만, 실물 경제가 어느 정도 지탱을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최근 들어서 실물 지표들이 악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직전까지는 미국 경제가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했었다.”

2020년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온다면 중국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예측이 만연해 있다. 동의하는가?

“중국과 미국 모두에 위기 요인이 있다. 그보다 더 우려하는 것은 우리 내부적으로 경제가 가라앉는 부분이다. 외부 충격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중국의 경우, 일부 지방은행에서의 뱅크런을 비롯해서 금융 불안이 상당히 번져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중국 당국에서 발표하는 통계 수치가 현실보다 상당히 양호한 쪽으로 왜곡돼 있다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또 하나 홍콩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불안도 상당하다.”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디서 출구를 찾아야 할까?

“일본 경제가 무너졌을 때 작용한 것은 ‘플라자 합의’라고 생각한다. 환율 조건이 나빠지면서 일본 기업들이 수출을 못 하게 됐다. 우리는 환율보다 노동 비용 때문에 수출 경쟁력이 약화하는 문제가 있다. 일본도 당시 근로시간 단축이 있었다. 하야시 후미오 일본 도쿄대 교수와 에드워드 프레스콧 애리조나주립대학 교수가 쓴 유명한 논문 ‘하야시·프레스콧 가설(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를 유발한 것은 엔화 절상보다 1988년 노동법 개정으로 탄생한 근로시간 단축에 있었다는 가설을 증명)’이 있다. 환율(엔고)에 의해서 수출이 잘 안 되게 됐고, 수출이 안 되니 노동 투입 효율이 낮아져 경기 악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디플레이션으로 갔다고 평가한다. 우리도 생산성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시간이 줄었다.”

노동생산성 저하가 수출경쟁력 약화를 부르는 악순환의 덫에 빠질 수 있겠다.

“수출 약화와 수입 약화는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 수출이 안되니까 수출에 사용되는 부품 수입이 안 되는 것이다. 일본이 빠져들었던 과정의 초입에 상당히 근접했다고 보인다. 그래서 지금이 디플레이션이라고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해 통화정책, 재정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시장 임금에 국가가 개입하는 통에 국가경쟁력에 상당한 타격이 오고 있다. 더는 악화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 녹취 정리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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