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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대통령들의 멘토’ 김장환 목사의 고언(苦言) 

“편 가르기는 그만… 단합하고 화합해야” 

■ “내 이념 중요하면 타인 이념도 중요, 서로 존중하라”
■ “북한에 복음, 외국의 물정 들여보낼 계획”
■ “사법부 만장일치 서글퍼… 자기 뜻 충분히 못 밝히는 나라 돼서야”
■ “자기 편 아닌 적임자도 과감하게 기용하라”


▎‘대통령들의 멘토’로 알려진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는 “어떤 정부라도 국민이 뽑았기에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개신교의 거목’ 김장환(85)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와 만난 건 2019년 12월 12일 이른 아침. 김 목사가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극동방송 서울 마포 본사에서다.

“드디어 만났네요.” 기자를 보자 김 목사는 반갑게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월간중앙이 처음 김 목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건 10월 초. 이후 고사(固辭)→재요청→고사→재요청 등의 곡절 끝에 인터뷰 일정이 확정됐다.

김 목사는 한국 개신교계 거목 중 거목으로 꼽힌다. 종교·정치 성향을 떠나 역대 대통령들은 김 목사에게 귀를 열었고, 그의 조언을 존중했다. 사람들이 김 목사를 ‘대통령들의 멘토’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2000년 김장환 목사의 [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 출판기념회에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다. 개신교 장로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김 목사를 자주 만나 조언을 구했다.

가톨릭 신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김 목사가 침례교세계연맹(BWA) 총회장에 당선됐을 때 축전을 보냈다. 불교와 가까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 목사의 소개로 릭 워렌 목사를 만났다. 워렌 목사는 [타임]이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뉴스위크]가 뽑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15인에 드는 세계적 명사다.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 구속 수감 중일 때 “손주는 못 봐도 김장환 목사는 만나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2019년 3월 조건부 석방된 이 전 대통령은 법원에 김 목사 접견 요청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 구속 뒤에도 김 목사는 매주 서울동부구치소를 찾아가 예배를 함께 해왔다고 한다.

침례교 전도사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도 김 목사는 ‘영적 멘토’다. 2019년 3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기독인회 예배’에 참석한 김 목사는 ‘우리의 소원’이란 주제의 설교에서 황 대표를 향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모세의 소원은 세 가지가 있다. 주의 길을 보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새로 당선된 (황교안) 대표님의 소원이 되기를 바란다.” 무대 중앙에 앉아 있던 황 대표는 “아멘”으로 화답했다.

사회공헌의 본질은 마음을 전하는 것


▎2008년 5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정치인 등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국가조찬기도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장환 목사, 이 대통령, 김윤옥 여사,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사실 김 목사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인물이다. 개신교계 세계 최대 교파인 BWA 총회장(2000~2005년)을 지낼 때 세계적인 종교인이 됐다. 그는 부시·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고, 2000년 쿠바에서 BWA 총회장 취임식이 열렸을 때는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장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성사된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는 극동방송 4층 회의실에서 1시간 남짓 진행됐다. 8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지만 김 목사는 조금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김 목사의 카랑카랑한 음성은 회의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김 목사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전부터 “정치 얘기는 일절 하지 말자”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가 진행되자 김 목사는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또 정치권에 당부하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구체적인 거명(擧名)은 삼가면서도 적폐청산에 따른 부작용,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 최근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인선(人選) 등을 지적하거나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유년 시절 깨달았던 독립국의 중요성


▎2006년 7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미국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 일행과 접견한 뒤 김장환 목사와 악수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근황을 궁금해합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올해 한국 나이로는 86세입니다. 그래도 저는 특별히 먹는 약도, 특별히 하는 운동도 없습니다. 그저 부지런히 다니는 것이 건강의 비결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대구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2주 동안 미국 행사에 갔다 왔어요. 또 빌 그레이엄 목사님 아드님이 캄보디아에서 부흥회를 연다고 해서 거기에도 다녀왔습니다. 바로 그저께 돌아왔지요. 많은 분이 기도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가운데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를 맞네요.”

고(故) 빌 그레이엄 목사(1919~2018)는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의 거목으로 불렸다. 그레이엄 목사가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대규모 복음 집회를 열 때 김 목사가 통역을 맡았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대를 잇고 있다. 2018년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식 때도 김 목사는 노스캐롤라이나 현지로 날아가 조사(弔詞)를 낭독했다.

사회공헌활동도 왕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업들을 펼치고 있나요?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칼 파워스 상사를 만나 그분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미군 하우스보이(houseboy)에서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소외계층, 탈북자, 선교사, 미(未)자립교회 목사의 자녀들을 돕는 극동PK장학재단을 2010년에 설립했습니다. 장학재단에서는 지금까지 1000여 명의 장학생을 배출했습니다. 또 군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기 위해 지난여름에는 3600여 장병에게 침례식을 열어주고 선물도 전했습니다. 라디오가 없어 방송을 듣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백령도 주민들에게 라디오 1000여 대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유명한 사람들만 만난다고 생각하던데요, 결코 아닙니다. 사실 저는 누가 부르든 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쪽방촌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제 기도를 받는 게 소원이라며 방송국에 전화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선물을 준비해 할머니를 찾아뵙고 위로해드렸습니다. 사회공헌은 큰 물질이나 선물을 전달하는 게 근본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목회뿐 아니라 사회 활동도 왕성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나라가 잘되길 바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쟁을 겪은 세대로 한국이 워낙 가난할 때 태어났습니다. 6·25 때 어렵게 들어간 학교가 비행기 폭격을 맞는 통에 더는 다닐 수 없게 됐어요. 그때 마침 미군 24부대가 수원에 들어오더라고요. 거기에 초콜릿이나 얻어먹으러 다니다 하우스보이가 됐습니다. 당시 1·4후퇴 무렵이었는데 하우스보이는 피란민들에게 굉장히 인기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때는 월급을 돈이 아닌 물품으로 받았어요. 담배·비누·양말·로션 등을 받아서 시장에 내다 파니까 돈이 꽤 되더라고요. 그러다 운 좋게 미군 한 명과 연이 닿아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처음 가서 들어간 학교가 기독교 학교라 그곳에서 신앙을 갖게 됐고, 신학도 공부하게 됐습니다.

미국에 가보니까 그 사람들 정말 잘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우리 한국은 왜 이렇게 낙후돼 있을까’ 생각도 해봤어요. 그때 한국도 미국처럼 하나님을 잘 믿으면 잘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제 어머니와 형제들을 복음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믿는 가정이 되니까 우리 김씨 가문에도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조카들도 신학대에 보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창씨개명·신사참배 등을 강요당하면서 나라의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또 저는 미국 여성과 결혼했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 조국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 들어와 보니 한국에 제대로 된 포장도로가 서울~안양 간 도로밖에 없더라고요. 그랬던 한국이 짧은 기간에 세계 어느 나라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발전했지요. 한국은 신앙과 경제가 함께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남한을 축복해주시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하고요. 북한도 하루속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우리처럼 풍족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진보·보수 갈등 치유 특효약은 사랑


▎2000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침례교세계연맹 회장 취임식에서 관계자와 악수하고 있는 김장환 목사(사진 가운데 왼쪽).
나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사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제 기도 제목은 ‘이 나라가 잘됐으면’ 그리고 ‘이 정권이 잘됐으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편 가르기를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편 가르는 것도 좋다 쳐요. 문제는 자기와 다른 편은 일절 쓰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치권, 심지어 종교에서도 흑백논리가 너무 뚜렷한 것 같아요. 내 종교가 중요하면 상대방 종교도 중요하고, 내 정치이념이 중요하면 상대방의 정치이념도 중요합니다. 저는 국제회의에 한국 기독교 대표로 자주 참석합니다. 외국에 나가 보면 일본이나 중국보다 한국 기독교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느끼게 돼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거기 가서도 우리는 편 가르기를 하는 것 같아요. 반면 일본은 단결을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남을 존경하고 존중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치·경제·종교·사회 모든 면에서 단합이 되면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가 될 겁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갈라지고 찢어지고….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건 우리 국민이 열심히 일한 덕분 아닌가 싶어요. 정치도 국민도 단합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진보·보수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입니다. 치유 방법이 뭐라고 보시나요?

“사랑과 존경이죠. 우리 집에도 3남매(2남 1녀)가 있는데, 아이들 생각이 다 달라요. 그러나 부모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이 큰 틀 안에서는 생각이 비슷해요. 그런데 ‘너 어디서 살래?’와 같은 작은 부분에서는 각자 달라요. ‘난 대전에서 살래요’ ‘난 미국에서 살래요’ ‘난 수원에서 살래요’ 이런 식으로. 요즘에 보면 소위 ‘갑질’이라는 게 있죠?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갈라지고 찢어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계에 존경하는 승려들이 더러 있습니다. 천주교도 마찬가지고요. 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서로 인격을 존중해주고 양보해주면 우리나라는 금세 더 좋은 나라가 될 거예요. 사랑과 존경이 앞서면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나라가 될 거로 확신합니다.”

기독교, 정치세력과 가까이하는 데 반대


▎2019년 11월 30일 광화문광장에서는 ‘2019 전국민중대회’가,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문재인 정권 퇴진 국민대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갈등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 나아가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다른 종교는 잘 모르기 때문에 개신교에 국한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두운 세계에서 살고 있던 130년 전,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새 세상을 열어줬고, 우리는 재빨리 받아들였어요. 선교사들은 세계를 보여줬고, 우리 청년들은 해외로 유학을 가서 많이 배워 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한국 개신교도 급속도로 외국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경제인들도 미국·중국·일본으로 가서 많은 걸 배워 왔어요.

또 우리는 해방 이후 급성장했습니다. 물론 기독교도 그렇고요. 기독교에서 중·고등학교 130여 개와 여러 개의 병원을 세웠지요. 이처럼 외국의 문화·의료·교육이 들어옴으로써 우리 민족이 급진적으로 개방됐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전통을 지키기 위해 무척 노력했음에도 미풍양속이 사라져가는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래서 우리 젊은 사람들은 역사와 전통을 연구해서 좋은 것은 가져가고, 병폐는 버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단, 한꺼번에 다 버리고 가는 건 나쁜 것 같아요.

사실 개신교만 단합이 돼도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현재로서는 교단이 여러 개로 갈라져 있어요. 또 새로 세워진 기독교 연합체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이 굉장히 마음 아파요. 하루빨리 하나가 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미국에 유학을 다녀와서 그런지 기독교가 지나치게 정치세력과 가까이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미국은 협력할 때는 협력하지만 정치와 종교는 분리돼 있더라고요. 서로 터치하지 않는 게 공존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997년 8월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극동방송 ‘김장환 목사와의 대담’에 출연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86세에도 불구하고 바쁜 일정들을 건강하게 잘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비결이 궁금합니다.

“제 건강 비결은 바쁜 일정에 있습니다. 바쁠수록 힘이 납니다. 이 말은 곧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즐기면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 몸도 마음도 힘들어집니다. 바쁘다고 불평하고 투덜거리면 바로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올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감사의 마음으로 즐기고자 노력하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새해 한국 나이로 87세가 되지만 마음만은 아직 젊습니다. 2019년에도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1년 중 절반은 해외 사역을 하고 있는데요. 바쁘고 힘든 일정들을 하나하나 소화해낼 때마다 힘이 더 납니다. 물론 가끔은 피곤하기도 하고 힘들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지요. 그렇다고 마냥 축 처져 있으면 더 피곤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 겨를이 없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줍니다. 회사(극동방송)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새벽에 다들 자는 시간에 회사에 도착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거죠. 보통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해서 성경 읽기와 기도를 마친 후 출근하면 5시 30분 전후가 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제 건강의 비결 중 하나인 거죠.”

더 이상 억울한 사람 없었으면


▎결혼 전 교제 시절의 김장환 목사와 부인 트루디 여사.
앞으로 어떤 비전이나 목표를 가지고 계신지.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1인 독재 체제에서 인권도 없고, 종교의 자유도 없는 나라인 점이 안타깝습니다. 좀 개방돼서 잘사는 나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경제가 활성화돼서 북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여행도 하고, 마음대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마음대로 교회에도 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저는 북한에 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근래에 베트남 하노이·캄보디아·로마에 가봤습니다. 여러 나라에 가보면 참 안타깝게 생각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삼성 같은 기업이 중국에 있다가 (뜻대로) 잘 안 되니까 베트남으로 옮겨가는 것이죠. 그럴 게 아니라 북한으로 간다면 5년 이내에 북한이 참 잘살게 될 텐데 저렇게 개방을 하지 않고 있으니 사람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기업이 북한으로 가면 그쪽 형제들을 잘살게 해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저는 북한에 복음을 들여보내고, 외국의 물정을 들여보내려 합니다.”

북한에 애정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1950년대 초 칼 파워스 상사(왼쪽)와 김장환 목사. 파워스 상사는 김 목사에게 미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은인이다.
“다른 건 없어요. 우리는 단일민족이잖아요? 나는 여기서 따뜻하게 하루 세끼 쌀밥 먹고, 빵 먹고, 스테이크를 먹는데, 저기서 어린애들은 제때 밥 한 그릇 맛있게 못 먹는다는 사실이 참 많이 슬퍼요. ‘어떻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런 나라에서 살게 됐나. 얼마든지 잘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면 북한에 애정이 생기는 거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롭게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인간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만 된다면 우리는 북한에 가서 방송국을 짓고 싶어요. 그 사람들이 마음대로 듣지 못했던 프로그램 같은 것을 제공하는 때가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피폐한 생활을 안타까워하던 김 목사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한국 정치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사실 남한,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예요. 정치만 좀 잘해주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 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가 정치를 못한다는 건 지금 국회를 보면 알 수 있어요. 합의해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힘센 사람들이 자기네들 뜻대로 끌고 가고 있잖아요? 야당과의 합의 없이 예산안이 통과됐다고 하는 것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사건을 판결할 때 소수의견이라는 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냥 다 만장일치예요. 사실 만장일치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우리 가족만 해도 다 모여서 얘기를 해보면 만장일치가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사법부에서 특정 사건을 두고 만장일치가 나올 수 있을까요? 참 서글퍼요. 누구 눈치 보면서 자기 의사를 충분히 발표하지 못하는 나라가 된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따금 정계 주요 인사들이 목사님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말씀을 해주시는지.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얘기합니다. 성경에 보면 (조언을 구하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이 많아요,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 ‘힘든 때가 지나가면 좋은 때가 올 것이다’ 같은 말씀이죠. 전직 대통령·장관·군인(장성) 출신들이 교도소에 많이 수감돼 있으니까 구치소에 면회를 가서 성경 말씀 읽어드리면서 기도도 해드리고 위로도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게 성직자로서 제 사명이죠. 그런데 (구치소나 교도소에) 가보면 실제 억울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분들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낙담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분들에게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겠냐? 금방 나올 수 있을 것이다’고 위로해줍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이 (나중에) 무죄나 무혐의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미 인격적으로는 큰 타격을 입은 뒤죠. 저는 이런 것도 인권 보호 차원에서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한번 법정에 서고, 한번 언론에 보도되면 사람들은 그것만 기억할 뿐 그 사람이 나중에 무혐의나 무죄로 나오는 건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이 빨리 선진국처럼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닉슨 사면한 포드에게 배워야


▎‘얼리 버드(Early Bird)’인 김장환 목사는 “지금도 새벽 3시 30분쯤 일어나서 기도하고 출근하면 5시 30분쯤 된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목사님 말씀에 참 많이 귀를 기울였죠?

“가령 A정권에서 B정권으로 넘어가면, ‘적폐청산’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구치소에) 들어가기도 하고, 대통령 아들이 대신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분들도 나라 위해서 헌신했고, 나라를 걱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도청 사건’으로 탄핵 직전까지 갔습니다. 닉슨은 탄핵을 면하기 위해 (대통령직에서) 사퇴합니다. 그리고 부통령인 제럴드 포드가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습니다. 포드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대통령 권한으로 닉슨을 사면해줬습니다. 물론 욕도 많이 먹었지만 어쨌든 닉슨을 사면해줍니다. 그리고 훗날 (닉슨이) 타계하니까 전·현직 대통령이 다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전직 대통령들이 1~2년쯤 감옥에 수감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반대가 좀 있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으로 ‘저 사람은 이미 형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간주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구치소에 면회 가보니까 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전직 장관이나 장성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드렸습니다. 물론 죄가 있어서 들어간 사람들도 있겠지만, 단지 정적(政敵)이기 때문에 들어간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죄가 없는 사람이라면) 하루속히 정상적인 삶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 지도자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우리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고, 정부이니까 잘됐으면 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정부가 잘되려면 훌륭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직책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러) 집단사고의 반대 때문에 등용되지 못할 때 마음 아픕니다. 한국 경제가 2020년에 더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들은 요소요소에 있어요. 노조가 반대하고 시민단체가 반대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고사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사청문회에서) 가족들까지 다 조사하니까.

잘 생각해보면 현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 것을 빨리 타파하고 좋은 인물, 적임자를 기용해야 대한민국이 크게 발전하고 우리 국민이 더 좋은 나라에서 살 수 있습니다.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우리는 누가 잘되는 걸 보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것을 극복하면 더 성숙한 시민이 되고 국민이 되겠죠. 그래서 좀 과감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제도도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인사청문회에 가면 별것도 아닌 것까지 다 밝혀내고 그러니까 어지간한 사람은 고사할 수밖에 없잖아요.”

끝으로 국민에게 새해 덕담을 해주신다면.

“대통령이 기업에 ‘여기 좀 도와주라’고 하는데 안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좀 도와줬다고 감옥살이하는 경우가 있죠? 새해에는 그런 것들은 좀 지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남북통일이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남북 간에 믿음을 가지고 교류가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헌 부대는 터지기 때문이죠. 새해를 맞아서 정치·경제·사회·종교·교육 모든 것을 다 새로운 부대에 담아서, 다 그 안에서 선(善)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저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곧 새해입니다. 이전 것은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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