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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취업 시장의 새 트렌드 AI 면접 

노트북보다 데스크톱이 합격률 높다? 

본격 도입 1년 반 만에 200여 개 기업 공채전형에 AI 면접 활용
회당 10만원 과외, 모의면접 앱 쏟아지지만 신뢰도는 ‘글쎄’


▎2019년 4월 연세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한 청년취업 관련 행사 참가자가 AI 면접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9년 하반기 공채에서 인공지능(AI) 평가기법을 활용한 기업이 200곳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주요 개발사들의 기업체 공급 실적을 합산한 결과다. 2018년 상반기 공채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AI 면접이 1년 반 만에 크게 증가한 것이다. 1995년 일부 대기업이 신입 공채전형에서 외국어·상식 등 필기시험을 없애고 인·적성검사를 도입한 이후 가장 혁신적인 변화로 꼽힌다.

AI 면접이 확산되면서 취업시장도 술렁인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을뿐더러 지원자들 간의 상대평가를 통해 선발하는 검사 체계와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AI 면접 프로그램 개발업체 관계자는 “AI 면접은 돌발질문을 던졌을 때 면접자의 표정 변화량 등 비언어·무의식적 요소까지 측정한다”고 말했다. 기업별, 직군별로 원하는 인재상이 제각각인 마당에 AI 면접 준비까지 하다 보니 취업준비생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매출을 기준으로 국내 5대 그룹에 포함되는 기업의 한 계열사는 AI 면접 결과 하위 25%를 탈락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AI 면접을 도입한 모 대기업 계열사 역시 최근 공채전형에서 하위 30~40%가량을 탈락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들 기업은 향후 그룹사 전체로 AI 면접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장은 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한다. 1995년 당시 삼성그룹은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선보이면서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문항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암기식 대비는 무의미하다”고 평가의 독창성을 강조했다. 벼락치기 공부에 능한 취준생보다는 탄탄한 자질과 깊이 있는 사고능력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는 취지였다. 삼성의 이런 기대가 무색할 만큼 SSAT 대비 특강과 모의고사가 홍수를 이뤘다. SSAT 관련 서적만 50여 종이 나올 정도였다. “인·적성 교재만 13권 풀어서 삼성전자에 합격했다”는 한 취준생(취업준비생)의 말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업들이 알짜 인재를 고르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AI 면접을 둘러싸고도 시장은 비슷하게 반응하고 있다. 서울 강남·노량진 일대 취업컨설팅 학원은 회당 5만원대 AI 면접 특강을 내놓고 있다. 회당 20만원짜리 일대일 모의면접 과정을 선보인 스피킹 전문학원도 등장했다. 과거 인·적성검사 열풍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면접 디바이스(device)의 변화다.

이에 따라 AI 면접 ‘모의고사’를 치러볼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온라인 모의면접 1회 당 가격은 660원(제네시스랩 ‘뷰인터’)에서 3900원(사람인 ‘아이엠그라운드’)으로 저렴한 편이다.

월간중앙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육업계 관계자들의 AI 면접 ‘비책’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사실상 기존 면접특강에다 시중에 알려진 팁(tip) 몇 가지를 더한 정도”라든가, “일부 모의면접 프로그램의 기술력은 한마디로 bullshit(헛소리), 실제 AI 면접 대비 못한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메이크업을 어찌하리오”


▎마이다스아이티가 개발한 면접 AI 솔루션 ‘인에어(inAir)’ 설명회 행사장에 많은 참가자들이 몰렸다.
어쨌거나 AI 면접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요령을 알려주는 아이디어들도 백출한다.

“AI 면접 볼 땐 노트북 말고 꼭 데스크톱 컴퓨터를 이용하세요.”

“이어폰보단 헤드셋(마이크 달린 헤드폰)을 끼고 했을 때 합격률이 높더라.”

서울 소재 한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의 ‘AI 면접 팁을 알려 달라’는 글에 달린 댓글들이다. 데스크톱 컴퓨터로 해야 인터넷이 끊길 염려가 없고, 헤드셋을 써야 음질이 더 깨끗하다는 것이다. 취준생들에게는 귀가 솔깃할 수 있는 조언이다.

언뜻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합격 여부를 결정짓는 열쇠로 보긴 어렵다는 게 AI 면접 프로그램 제작업체인 제네시스랩 이영복 대표의 주장이다. 이 대표는 “얼굴 각도나 조명 등 외부 변수를 보정한 뒤 AI 프로그램에 넣기 때문에 노트북·데스크톱, 이어폰·헤드셋 논란은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소재 S대 4학년인 김지수(23·여)씨는 “‘일부 커뮤니티에서 언급된 데스크톱·노트북 이야기는 대학교 수강신청은 집이 아닌 PC방에서 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는 황당한 주장과 다를 바 없다”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학생들로서는 아예 무시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학교 서버와 가까운 곳일수록 접속 속도가 빠르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건 다 안다. 그런데도 막상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학생들이 학교 인근 PC방으로 몰리지 않느냐. 그게 보통 사람의 심리인 것 같다.”

정작 김씨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화장을 진하게 할 경우 AI가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을 한 취업 특강에서 들었다고 한다. 일부 AI 면접 프로그램의 경우 질문을 던진 뒤 면접자의 혈류(血流)량 변화를 측정하는데, 화장을 짙게 하면 이 변화가 측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고 화장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녹화된 면접 영상을 AI 면접 이후 임원면접에서 면접관들이 참고 자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인식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평가되는 C 교수는 “김씨의 고민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며 이렇게 귀띔했다.

“긴장하면 얼굴에 피가 몰려 빨갛게 변하지 않나. 그 상황에서 빛의 파장 변화로 심박 수를 가늠하는 기술이 있다. 내가 직접 실험해보니 실제로 그런(김씨가 말한) 현상이 생기더라. 피부에서 발생한 미세한 파장이 화장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거다. AI 면접 프로그램을 실제 면접에 도입하기에 아직은 기술적 완성도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AI 면접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취업을 지도해야 할 각 대학 당국은 당국대로 머리가 아프다. 월간중앙과 만난 서울 소재 한 대학 취업지원팀장은 “일단 AI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 방안도 강구 중”이라며 “면접의 포인트가 다양하고 기술 또한 발전 중인 분야라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취준생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설문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9년 11월 말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취준생 1458명을 대상으로 ‘AI 채용에 따른 부담’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셋 중 두 명꼴(60.2%)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56.1%, 복수응답)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50.3%) ▷‘평가 기준이 모호해서’(39.8%) 순이었다. ‘일반전형과 동시에 준비해야 해서’라고 답한 응답자(14.6%)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준비시간 자체보다 불확실성이 취준생들의 불안감을 키운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AI 면접 대비 학원들은 취준생들의 이 같은 불안한 마음을 파고든다. AI 면접을 통과하려면 특강은 기본이요, 면접 직전 ‘진짜 특강’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임채은(29·여)씨는 2019년 8월 3년간 재직했던 유통 분야의 한 대기업을 그만두고 하반기 공채에 뛰어들었다. 전 직장에서는 자신이 전공했던 경제학과는 무관하게 매장관리 업무만 줄곧 맡아온 탓이었다. 임씨는 신입공채를 한번 경험해본 만큼 웬만한 전형은 익숙하리라 짐작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AI 면접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모의면접은 기술 수준 낮아” 불만도


▎이영복 제네시스랩 대표가 2019년 6월 서울 강남 네이버 D2SF 오피스에서 AI 영상분석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임씨는 10월 공채를 앞두고 한 달여간 서울 강남구의 한 면접·스피킹 학원에 다녔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AI 모의면접을 치렀다. 모범 답변을 훈련받는 데는 1회당 10만원이 들었다.

임씨는 “학원에서 알려준 팁이 사실은 유튜브의 취업 관련 채널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수준이더라”며 씁쓸해했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게 시선 처리에 신경 써야 한다’ ‘긍정적인 인상을 주도록 웃으면서 답변해야 한다’ ‘자기소개 할 때 직무에 적합한 단어를 자주 쓰라’는 식이었다. 김씨는 1시간 반 남짓한 수업 시간 내내 시선 처리 연습만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강사가 해줄 수 있는 건 화면을 보면서 ‘흔들리면 안 된다’ ‘조금 더 웃어라’ 정도의 조언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취업 재수에 나선 임씨였지만 정보통신(IT) 분야 대기업 공채에서 고배를 들었다. 임씨로서는 그나마 AI 면접 문턱을 넘은 데 만족해야 했다. 임씨는 “촉박한 시간 탓에 발음·발성 연습을 제대로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고 말했다. 임씨는 현재 학원 대신 일반인 스피치 동호회에 참가하고 있다. 즉석에서 키워드를 정해 3분간 돌아가며 발언하는 식으로 꾸려지는 모임이다. 한 달 5~6회 모임에 비용도 회당 1만원으로 저렴하다.

그런가 하면 취준생들 스스로 AI 모의면접을 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사람인은 2019년 10월 AI 모의면접 모바일 앱 ‘아이엠그라운드’를 출시했다. 그보다 앞선 6월엔 공무원·자격증 시험 전문 교육업체인 시대고시기획이 같은 유형의 웹 기반 서비스를 선보였다. 제네시스랩은 기업에 실제 납품하는 프로그램과 엔진을 공유하는 웹·모바일 기반 서비스 ‘뷰인터’를 운영하고 있다. 모의면접 회당 가격이 4000원 미만이라 취준생들 사이에서 대체로 ‘가성비(가격 대비 효능감)’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일부 AI 모의면접 서비스의 경우 기술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 면접을 대비하는 용도로 쓰기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영복 제네시스랩 대표는 “일부 서비스는 동영상 전체가 아니라 사진 몇 장으로 면접자를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독자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서비스는 대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얼굴인식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가져다 쓰는데, 이 API 자체가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바탕으로 얼굴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같은 영상이라도 추출하는 이미지(사진)에 따라 분석 결과가 판이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모의면접 프로그램의 피드백 내용을 실전에 앞서 AI 면접을 체험해본다는 의미 이상으로 과신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며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라고 강조했다.

취업 컨설팅 업계에서도 “AI 면접 관련 강의나 교육이 AI 면접 유형에 익숙해지는 것 이상의 학습효과를 내기는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사람마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비언어적 습관 등 오랜 행동 패턴을 단기간에 바꾸긴 어렵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취업 관문을 뚫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소재 교육 컨설팅 업체 ‘피플앤피플’의 박성중 AI 면접 솔루션 사업팀장은 “AI 면접은 대인(對人) 면접의 연장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평소에 착실하게 대면 면접을 준비했다면, AI 면접도 크게 걱정할 게 없다는 박 팀장 주장의 요지다. 박 팀장은 “대면 면접과 마찬가지로 AI 면접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면접 예측 신뢰도 95%까지 올라가”


▎서울의 한 취업 컨설팅 학원에서 대기업 면접 대비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취업 현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AI 면접을 도입하는 기업의 수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무엇보다 사람(면접관)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정성 보장’의 명분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각종 채용비리가 불거졌던 만큼 가장 확실한 대안이 AI”라는 게 J그룹 인사 담당자의 설명이다.

‘가성비’도 무시할 수 없다. J그룹 인사 담당자는 자기소개서 검토에 걸리는 시간을 예로 들었다. “AI가 한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초다. 1만 명의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는 데 단 8시간이면 족하다. 같은 일을 인사 담당자 10명이 처리하려고 하면 하루 8시간씩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일각에서는 효율성은 물론, AI 면접의 신뢰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영복 대표는 “사진이 아닌 제대로 된 동영상을 바탕으로 AI 면접 프로그램이 낸 점수와 실제 면접관이 채점한 점수의 일치도가 95%까지 올라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2000개 동영상을 테스트 데이터로 삼아 4명의 전문 면접관과 AI 면접 프로그램이 각각 채점한 뒤 상관 관계를 비교한 결과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전문 면접관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관계자들은 AI든, 대면이든 면접 형식에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여러 공공기관·공기업에서 전문 면접관으로 활동해온 최근배 J&P HR Consulting 대표는 “대인이냐 인공지능이냐 형식을 두고 접근방식을 달리하려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면접이란 평가의 본질에 집중해 긴 시간 훈련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강조했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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