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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경제] 초저금리가 불러온 ‘짠테크’의 시대 

만보 걷고, 퀴즈 풀어 스벅 커피 마신다 

자투리 시간 투자해 스마트폰 어플로 푼돈 모으는 ‘앱테크’ 인기
금융 자산 통합, 건강 관리 등 습관만 바꿔도 혜택 주는 서비스 봇물


▎스마트폰을 사용해도, 사용하지 않아도 돈이 쌓이는 ‘앱테크’ 전성시대다.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얻으려는 초저금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 사진:캐시카우
몇년 전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천재 바둑소년 택이가 우승 상금으로 받은 5000만원을 두고 이웃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은행 직원으로 나오는 성동일은 이렇게 말한다. “은행 금리가 쪼까 내려가지고 15%여. 그래도 목돈은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 따박따박 받는 게 최고지라.” 이 말을 듣던 한 이웃이 “은행에 뭐 하러 돈을 넣어. 금리가 15% 밖에 안 되는데”라며 맞받아친다.

15% ‘밖에’ 라니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실제로 한국은 1970년대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 10~20% 정도의 고금리를 유지했다. 은행에만 가져다 줘도 돈이 금방 불어났다. 1980~90년대 가계저축률이 연 평균 18%에 달할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 건 이유가 있었다.

이 등식 완전히 깨졌다. 2011년 3.25%였던 기준금리는 이후 계단식으로 꾸준히 하락해 1.25%까지 내려왔다. 역사에 없던 초장기, 초저금리다. 저금리는 무섭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자산 증식에 걸리는 시간은 가속적으로 느려진다. 적금에 돈을 넣고, 2배가 되는 시간을 따져보면 금리가 5%일 땐 14년이 걸린다. 4%면 18년, 3%면 23년, 2%면 35년이 필요하다. 각각 1%포인트의 격차지만 소요 시간은 금리가 낮아질수록 더 길다. 금리가 1%면? 무려 70년이다.

시중은행에서 2%대 적금 찾기가 어려워진 지금이 바로 그렇다. 한두 푼 아껴도 정작 둘 데가 없다. 은행 예·적금 금리는 바닥을 모르고, 이미 하늘로 치솟은 부동산은 엄두도 못 낸다. ‘어떻게 해도 큰 차이 없다’ ‘대충 먹고 살자’는 무기력증이 20~30대를 휘감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의 움직임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아끼고, 살뜰히 모아야 한다는 거다. 이른바 ‘짠테크’다. 돈에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다. 단순히 안 쓰고 아끼는 것과는 다르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더 불릴 방법을 찾아 꼭 필요한 곳에 의미 있게 지출하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주부 정서윤(33) 씨는 “특판 행사 정보, 중고 장터 활용법 등을 공유하는 글이 커뮤니티에 수시로 올라오고, 짠테크 비법을 소개하는 온라인 카페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돈 몰리는 26주 적금, 금융 앱은 퀴즈 열풍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 소액 재테크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초기화면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방치해두고 있어도 포인트가 쌓이고, 걸음 수에 따라 일정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정씨의 최근 관심사는 은행권의 특판 행사다. 예·적금 금리가 1%대로 떨어지면서 최근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우대 금리를 얹어주는 이벤트가 활발하다. 짠테크족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정씨는 “높은 금리를 주는 대신 수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며 “최근엔 새마을금고 특판 적금에 가입하려 먼 동네까지 찾아가 아침부터 줄을 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SBI저축은행이 모바일 채널인 사이다뱅크에서 선착순 5000명 한정으로 판매한 정기적금은 두 시간 만에 판매가 끝났다. 연 10%라는 놀라운 금리에 접속자가 폭주했다. 대략 4~5만 명 가량 몰렸는데 상당수는 기회를 놓쳤다. 사실 이런 특판 행사는 높은 금리를 약속하지만 납입 한도가 적다. SBI저축은행 10% 적금도 한 달에 최대 10만원까지만 부을 수 있다. 세금을 떼면 실제 이자는 연 5만원대다. 그래도 사람이 몰리니 특판 행사가 줄을 잇는다.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RP(환매조건부채권, Repurchase Agreement) 특판 상품도 인기다. 투자자가 증권사에 돈을 빌려주고, 채권을 받으면 일정 기간 후에 채권을 증권사에 되돌려주면서 동시에 원리금을 받는 구조다. 보통 RP는 연 1% 수준이지만 증권사가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최대 연 5% 수준의 특판 상품을 판다. RP는 예·적금과 달리 원금보장이 안 된다. 증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 볼 일은 없지만 위험은 있다. 그래도 인기다. 매력적인 금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투자처를 찾기 어려울 때 잠시 맡겨 두기 적당해서다. RP는 만기가 60일~1년 등으로 다양하다.

소액 투자도 활발하다. 이도운(31)씨는 요즘 카카오뱅크(이하 카뱅)에 푹 빠졌다. 26주 적금에 가입하고 나서다. 이름처럼 26주가 만기인 이 적금은 최초 가입금액(10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1만원)을 선택하면 매주 가입액만큼 늘어난 금액이 자동이체된다. 2000원짜리를 가입한 경우 둘째 주에는 4000원, 그 다음 주에는 6000원을 납입하는 식이다. 이씨는 “비록 소액이지만 꾸준히 돈을 모아가는 맛이 있다”며 “입금할 때마다 카카오 캐릭터로 화면을 채워가도록 만든 것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만기는 짧고, 최대 가입금액이 1만원밖에 안된다. 금리도 연 1.7% 수준으로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 1만원으로 가입해도 26주 뒤 이자는 세금을 제외하면 대략 1만원 수준이다. 그런데도 대박이 났다. 지난해 6월 출시 이후 약 100만좌가 개설됐다. 단일 금융상품으론 이례적인 인기다.

전략의 승리다.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저축을 하게 만드는 펀 세이빙(Fun Saving) 트렌드를 잘 구현했다. 카뱅 앱에서 계좌를 만드는 건 5분이면 충분하다. 26주 적금에 가입하는 건 1~2분이면 된다. 그만큼 쉽고, 빠르다. 그러면서 ‘만기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마치 공식 같던 만기를 반년으로 줄였다. 이씨는 “26주 적금이란 네이밍에 시작부터 끌렸다”고 말했다.

잔돈 금융의 진화


▎여러 곳에 분산된 금융·자산 정보를 한데 모아 관리하고, 금융거래를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자산관리 서비스도 짠테크족에게 인기다. / 사진:토스
펀 세이빙 콘셉트가 주효한 또 하나는 토스 행운 퀴즈다. 가입자 1300만 명을 보유한 금융 플랫폼 토스는 매일 새로운 퀴즈를 만들어 이벤트를 한다. 퀴즈를 풀면 상금을 받는데 ‘커피값 벌겠다’며 참여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개인이나 기업이 원하면 토스 앱에서 자체적으로 이벤트를 열 수 있도록 한 것도 성공 요소다. OK캐시백(O퀴즈)과 캐시슬라이드(초성퀴즈) 등도 여러 기업과 연계해 퀴즈 이벤트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O퀴즈의 경우 정답을 맞히는 고객에게 OK캐쉬백 포인트를 준다. 이 포인트는 웰컴저축은행 등의 적금과 연동해 현금화할 수 있다.

잔돈 금융도 빼놓을 수 없다. 토스는 토스카드로 결제할 때 1000원 미만은 자동으로 저금해주는 ‘잔돈 저축’ 기능을 선보였다. 편의점에서 6300원을 결제하면 7000원을 결제하고, 700원은 지정 계좌에 자동으로 저금해주는 식이다. 티클은 개인 신용카드를 티클 앱과 연동하면 1000원 이하로 발생하는 잔돈을 모아 미래에셋대우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송금해준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처치 곤란인 외화 잔돈을 알뜰하게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핀테크 업체인 우디는 외화 잔돈을 포인트로 전환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모은 돈은 주식을 사거나 투자를 할 수 있다. 신한카드와 신한금융투자가 지난달 출시한 ‘해외주식 소액투자 서비스’는 고객이 카드 결제를 할 때마다 발생하는 자투리 금액을 소수점 두 자리로 쪼개 해외 주식에 투자하도록 만들었다. 4100원짜리 커피 1잔을 사고 5000원을 카드로 결제했다면, 자투리 금액 900원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스타벅스 주식 0.01주(약 976원)를 구매하는 식이다.

소액 부동산 투자도 가능해진다. 스타트업 카사코리아는 내년 초 부동산 간접 투자 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이다. 은행과 부동산 신탁사가 오피스 빌딩 등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DABS)을 발행하고, 개인투자자가 이를 소액으로 사고파는 방식이다. 최소 5000원으로 서울 강남의 1000억대 빌딩에 투자할 길이 열리는 셈이다.

잔돈 투자의 재미로 P2P(개인간 금융)를 빼놓을 수 없다. 개인신용대출 전문 P2P 렌딧은 채권 1개당 최소 5000원부터 투자할 수 있다. 박정환(30)씨는 “5만원을 투자한다면 5000원씩 10개의 채권에 분산 투자할 수 있는 게 매력”이라며 “소액이기 때문에 부담은 적으면서도 투자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얼마 전 피플펀드와 어니스트펀드도 최소 투자 금액을 10만원에서 1만원으로 조정했다. 개인 신용뿐만 아니라 부동산 PF, 아파트 담보대출, 기업 매출 채권 등 투자 상품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다만 P2P는 원금 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수익률과 느낌만 믿고 무턱대고 투자해서는 안 된다.

1000원짜리 보험도 등장

잔돈 금융 시장이 커지면서 꼬마 보험도 등장했다. 보맵은 최근 귀가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보장하는 월 보험료 700원짜리 상품을 선보였다. 보장액이 크진 않지만 강력범죄보상금·교통상해입원일당 등 보장 내용과 범위는 나쁘지 않다. 여행자나 반려견 맞춤형 소액 보험도 곧 출시할 전망이다. 삼성생명도 최근 월 보험료가 1090원에 불과한 교통상해보험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3년 만기 일시납 상품인데 대중교통재해 사망보험금으로 1000만원, 대중교통사고 장해보험금으로 30만~1000만원을 지급받는 상품이다.

짠테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축은 바로 절약이다. 서점가 경제부문 서적 판매 순위에선 짠테크 관련 서적이 항상 상위권에 올라 있다. 식비나 냉방비 절약 팁부터 짠테크 고수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이정연(34)씨는 “짠테크를 주제로 한 블로그 글이나 포스팅도 활발하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는 언제든 얻을 수 있다”며 “최근엔 신용카드를 고를 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앱으로 소소하게 돈을 버는 앱테크도 활발하다. 여러 앱을 돌면서 포인트를 모으거나 쿠폰을 받는 걸 두고 ‘인터넷 공병 줍기’ 혹은 ‘온라인 폐지 수집’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일단 첫 화면을 해제하기만 해도 현금을 쌓아주는 앱이 있다. 첫 화면에서 뉴스나 광고, 쇼핑 정보 등을 보면 캐시가 모인다. 이 캐시는 상품권이나 모바일 쿠폰 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운전한 만큼 주행 등급에 따라 차등해 포인트를 준거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한 사용자에게 캐시를 주는 앱도 있다.

미션을 수행하면 포인트를 쌓아주는 앱도 인기다. OK캐쉬백엔 출석 룰렛 이벤트가 있다. 퀴즈나 게임에 참여하고 광고를 클릭하면 최대 1만 포인트를 지급한다. 챌린저스는 돈을 걸고 습관을 만들어가는 앱이다. 자신이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미션에 참가비를 내고 참여하면 된다. 미션을 완료하면 참가비를 돌려받고, 상금도 준다. 미션의 85%만 달성해도 본전이지만 실패하면 돈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 밖에 알람을 통해 물 마시기 습관을 만들어주는 앱, 걸으면 캐시를 주는 만보기 앱도 사용자가 많다.

자산관리는 앱으로, 금융상품도 바로 연결

자산관리도 중요하다. 박종경(35)씨는 “새 나가는 돈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며 “귀찮을 때도 있지만 요즘은 앱을 이용하기 때문에 간편하다”고 말했다. 2030 젊은 층에서 사용자가 늘고 있는 뱅크샐러드는 대표적인 자산관리 앱이다. 은행과 보험사·증권사·카드사 등의 계좌 정보가 클릭 한 번에 연동된다. 계좌 정보가 전부 연동되면 이후로는 예·적금과 대출·보험·카드·연금 등의 자산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수입과 지출 내역을 기록해주는 ‘가계부’와 소비 습관 알림 서비스 ‘금융비서’가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앱을 출시한 이후 매달 30%씩 성장하고 있다. 다운로드 수 550만 건, 연동된 관리 금액이 165조원에 달한다.

직장 5년차 김은서(32)씨는 연말정산이 최고의 재테크라고 말한다. 그는 “크게 달라질 게 뭐가 있느냐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며 “살뜰히 챙기는 것과 대충 하는 건 엄청난 차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지적대로 수입이 비슷해도 연말정산 결과 크게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쓰임새가 다를 수도 있지만 의욕의 차이기도 하다. 예컨대 의료비나 교육비는 체감 공제 효과가 큰 세액공제 항목이다. 본인의 경우는 대부분 자동 등록되지만 기본공제 대상인 부양가족이 쓴 건 별도로 제출해야 한다. 복잡해서, 귀찮아서 내버려두는 경우가 있는데 의료비만으로도 환급액이 100만원 이상 차이 나는 경우가 있다.

카드 소득공제도 마찬가지다. 근로소득자가 총급여의 25% 초과한 금액을 신용카드·체크카드·현금영수증 등으로 사용하면 초과금액의 15~40%를 소득공제해준다. 공제율은 신용카드 15%, 직불·체크·현금영수증 30%, 전통시장·대중교통 40%, 도서·공연 30%다. 내년부터는 제로페이 사용분에도 40% 공제율을 적용한다.

제대로 계산을 하는 게 중요하다. ‘25%를 초과한 금액’이 핵심이다. 총급여가 5000만원인 A씨가 2000만원을 체크카드로 썼다면 25%(1250만원)를 초과한 나머지 750만원의 30%(225만원)까지 소득에서 빼 준다는 의미다. 체크카드의 공제율이 신용카드의 두 배니 이론적으로는 체크카드를 쓰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25%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라면 높은 공제율도 의미가 없다.

대략 연중 어느 시점에 25%가 넘을 것으로 판단되면 그때부터는 체크카드를 쓰는 게 유리하다. 반면 25%를 채우기 어렵다면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 등 부가서비스가 좋은 신용카드를 쓰는 게 낫다. 대중교통과 전통시장을 자주 이용하면 소득공제 효과가 커진다. 카드 소득공제 한도금액(300만원)과 별도로 각각 100만원(제로페이도 포함)까지 추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중교통 이외에 KTX와 고속버스 승차권도 공제 대상이다.

- 장원석 중앙일보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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