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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서양사 현장르포 - 승자의 조건, 패자의 교훈(13)] 로마 공공 목욕탕에 담긴 ‘통합의 정치학 

황제도, 매춘부도 목욕탕에선 알몸이 되다 

속주와 식민지까지 3억 인구 묶어 낸 ‘로마다움’의 상징
‘신에 대한 찬미’ 뜻한 목욕 의례… 로마 멸망 원인과는 무관


▎터키 남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 전경. 온천수의 칼슘 성분이 퇴적되면서 ‘목화의 성(파묵칼레, Pamukkale)’으로 불리는 독특한 지형이 형성됐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삶을 멸망으로 이끄는 것은 와인·여자·온기(溫氣)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와인·여자·온기다.’

고대 로마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는 유명한 말이다. 고대 로마인의 평균수명은 25살 전후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의 방증이라 볼 수 있다. 5600만 로마 시민이라면, 먹고 마시면서 성(性)에 ‘올인’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궁금한 것은 카르페 디엠의 대상 중 하나인 ‘온기’에 관한 부분이다. 뭘 뜻하는 말일까? 목욕탕이다. 목욕탕은 대제국 로마를 대표하는 전방위 테마파크였다.

대제국 로마는 어디에서든 같은 구도의 ‘공공 도시’를 만들었다. 구성 요소로는 수많은 신을 모신 사원에서부터 연극을 관람할 극장(theatre)과 200m 길이의 종합운동장이자 경마용 공간인 스타디움(stadium), 시장으로 활용되는 아고라(agora), 물건 보관소이자 토론장인 스토아(stoa), 목욕시설(bath)과 현지 최고 지도자가 거주하는 폴티코(portico), 시민대표들의 회의장인 보우레우테리안(bouleuterion), 작은 음악회나 공공 발표장으로 활용된 오덴(odeon), 나아가 전몰군인 위령탑인 헤룬(heroon)과 비상시 긴급피난처인 아크로폴리스(acropolis)가 있다.

목욕탕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


▎지하수 확보는 고대 도시 건설의 필수요건이다. 오랜 기간 지반 침하가 이뤄지면서 표면으로 나온 지하수가 옛 도시를 뒤덮는 경우도 많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이런 건물들은 로마의 것보다 더 크게 지어져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최고 권력자의 지근거리에 가장 큰 건축물을 올렸던 중국·조선·일본과는 달랐다.

검투사의 무대인 콜로세움은 로마에 있는 것이 가장 크지만, 그밖에 신전 같은 건물은 속주나 식민지의 것이 더 큰 경우도 많다. 그중 하나가 목욕탕이다. 목욕탕은 도시 내 시설 가운데 가장 크고, 많은 사람이 거의 매일 썼던 곳이다. 21세기 스포츠클럽처럼 운동시설(gymnasium)도 갖추고 있다. 극장과 스타디움에서의 기쁨도 있지만, 목욕탕이 제공하는 육체적 환희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다. 비용도 무시해도 될 만큼 쌌다. 로마는 영토나 파워로서의 대제국인 동시에, 인류 최대 규모의 공공 목욕탕 원조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배운 것 가운데 하나로, 로마 멸망 원인에 관한 대목이 기억난다. 간단히 말해, ‘대제국 곳곳에 들어선 수많은 목욕탕이 로마 멸망의 원인’이란 얘기였다. ‘목욕탕=부도덕·타락’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서기 354년 로마 대제국 내 공공 목욕탕은 크고 작은 규모를 합쳐, 952개에 달했다고 한다. 로마의 최전성기는 기원전 2세기 중엽이다. 당시 로마 시민과 속주·식민지 인구는 도합 3억 명에 달했다. 5600만 로마 시민만을 기준으로 하면, 대제국 전체를 통틀어 대략 7만 명당 목욕탕 하나가 있었던 셈이다. 비율로 볼 때 절대 많은 게 아니다. 목욕탕이 늘어날수록 로마의 건국 정신과 파워가 내림세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과장이 심하다. 반대로 공공 목욕탕이 늘어난 만큼 로마도 팽창했다고 보면 된다. 망할 정도 상황이라면 목욕탕을 만들 수도 없다. 공공 목욕탕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었다.

원래 목욕 문화는 종교적 관점에서 시작됐다. 불교의 목욕재계(沐浴齋戒)가 단적이다. 제사를 지내기 전 목욕해서 마음을 가다듬고(齋) 부정을 경계(戒)했다. 신과 연결되는 만큼, 의학적 효과도 있다고 믿었다. 몸을 씻은 물을 마시고, 신에게도 물을 선물로 바쳤다. 목욕을 통해 병도 고치고, 신으로부터의 저주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제우스와 12신의 나라 고대 그리스는 육체적·정신적·종교적 만병통치로서의 목욕에 주목한 나라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의 신탁에 임하기 전, 씻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였다. 4년마다 열린 올림픽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은 신에 대한 찬미로서의 스포츠 경쟁이다. 경기에 앞서, 경기 후에 당연히 씻어야 한다.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는 축제 기간의 각종 문화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나 시를 연출하는 사람, 관람하는 사람 모두 씻고 참석했다. 물 부족 탓에 대부분은 전신이 아닌 몸의 일부를 씻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목욕탕=로마 멸망의 원인’으로 해석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4세기 이후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되면서부터 나타난 종교학자들과 로마 당시 스토이시즘(stoicism)에 빠진 철학자들이 주인공이다. 악명 높은 황제 네로와 칼리굴라가 목욕탕 건립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목욕탕=폭군의 상징’으로 해석한 사람들이 가톨릭 신학자들이다. 스토이시즘 철학자로는 황제 네로의 스승이자 정치고문관인 세네카(Seneca)가 대표적이다. 로마 시대 원리주의자라 보면 된다. 이들은 ‘목욕탕=속(俗)의 무대’로 보면서 맹렬히 비난했다. 21세기 도덕 윤리관과 전혀 다른 공간이 2000년 전 로마다. 매춘은 넘치는 노예는 물론, 가난한 이의 탈출구로 인정받았다. 목욕탕이 없다고 해서 매춘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로마 목욕탕은 대제국의 상징이자 정체성으로 적극 활용됐다. 로마의 권위와 파워를 뒷받침한 선진 문명문화로서의 역할이다. 일단 로마에 통합되는 순간 씻고 즐기는 목욕문화에 편입됐다. 씻지 않는 문화는 미개한 야만인으로 통했다. 로마 목욕탕은 신만이 아닌, 인간적 관점에서 탄생한 생활양식이다. 신에게 잘 보이려는 의식적 측면도 있지만, 육체적·정신적 안락을 향한 일상으로서의 목욕이다. 인간해방으로서의 목욕인 셈이다.

로마 목욕탕은 주인의 허락 하에 노예 출입도 가능했다. 여자도 목욕시설을 이용했다. 남녀 시설이 분리돼 있지만, 동성인 시민과 노예는 함께 이용한다. 출입구가 다를 뿐, 목욕시설 이용은 공용이다. 대제국 전원에게 열린, 공공 목욕탕이다. 당연하지만 목욕탕은 들어가는 순간 벌거벗을 수밖에 없다. 타월로 몸의 일부를 가릴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체다. 나체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다. 명문가·군인·주인·노예·매춘부 구별할 수 없는, 계급장을 뗀 고대 평등사회가 로마 목욕탕을 무대로 펼쳐졌다. 결과적으로 대제국 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국가통합 현장으로서의 목욕탕이 된 셈이다.

독일 통합의 바탕 ‘바데안슈탈트’


▎교회로 변한 로마 목욕탕. 바닥이 목욕탕 대리석 그대로이다. 목욕탕은 크고 넓다는 점에서 서로마 멸망 후 교회로 재활용된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국가 정체성과 통합의 상징으로서의 목욕탕은 로마가 사라진 뒤에도 적극 활용된다. 근대화 이후 독일과 미국이 대표적인 예다. 계급·계층적 차원에서의 지위나 품격은 교양·돈·외모에 그치지 않는다. 냄새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자신은 모르지만, 소속된 집단에서나 통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19세기 말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에 나선 독일은 악취를 없애고 위생을 증진한다는 취지에서 공공 목욕탕 건설에 나선다. 독일 부르주아를 위한 공공 목욕탕이 전국 곳곳에 일제히 들어선다.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서는 순간 게르만 민족으로 일체화된다. 건물은 대리석과 같은 고급 재료를 사용한, 네오 클래식풍으로 만든다.

목욕탕 자체가 품격의 현장이다. 스칸디나비아 사우나를 참고로 한 것이지만, 로마 목욕탕처럼 온수·냉수 목욕탕과 스포츠클럽, 수영장, 나아가 마사지시설도 갖춘 종합 스파(spa)시설로 진화한다. 온천이 곳곳에 널린 나라가 독일이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바데안슈탈트(badeanstalt, 공공 온천 목욕탕)’의 탄생이다.

바데안슈탈트는 공중을 위한, 공적 차원의 시설로서의 목욕탕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목욕탕은 대중용 시설로, 몸을 씻는 장소에 그친다. 바데안슈탈트는 값도 저렴하지만, 대규모 시설이란 점에서 대중목욕탕과 구별된다.

독일 대도시에 가면 지금도 바데안슈탈트를 볼 수 있다. 최근 독일 쾰른에 들렀을 때 곧바로 현지 바데안슈탈트부터 찾았다. 호텔 직원이 추천한 ‘넵튠바드(Neptunbad)’라는 곳으로 갔다. 1912년 설립된 쾰른 최고(最古)·최고급 시설이다. 19세기말 비스마르크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중후한 분위기의 3층 대리석 건물이다. 20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17유로로 사우나를 뺀 목욕시설과 풀장을 2시간 동안 즐겼다. 100여 년 전 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독일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준 품격 높은 공공 목욕탕이다.

고대 로마의 목욕 문화는 고대 그리스를 본뜬 것이라 보면 된다. 그러나 목욕탕 규모는 그리스보다 더 크고 화려하며 다양하다. 로마 한복판에 아직도 남아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목욕탕은 무려 3000명 동시 입장이 가능한 규모다. 로마가 자랑하는 건축공법을 통한, 신개념 초대형 목욕탕이다. 크게 보면 세 가지 측면에서의 기술적 일취월장(日就月將)을 통한 목욕탕이다.

첫째, 건축 재료다. 그리스와 로마의 축조기술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다. 그리스는 대리석·화강암·석회암이다. 통째로 잘라 차곡차곡 하나씩 위로 쌓아가는 식이다. 돌과 돌 사이는 종이 한장 들어갈 틈 없이 밀착돼있다. 고대 그리스 영향 하의 건물은 돌 사이의 틈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항상 느끼지만, 저렇게 큰 돌을 어떻게 산꼭대기까지 끌고 갔는지 신기할 뿐이다. 로마는 어떨까? 대리석·화강암·석회암도 사용하지만, 그리스와 달리 잘게 부셔서 연결하는 공법이다. 작은 돌로 큰 건물을 쌓기는 어렵다. 어떤 비법이 있을까? 화산재를 활용한 콘크리트가 답이다. 강력한 접착제인 콘크리트가 있는 한, 작은 돌로도 큰 목욕탕을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리스보다 재료의 가격이나 이동비용도 훨씬 저렴하다. 공사 기간도 빠르다.

둘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반원형 아치(arch) 공법이다. 로마가 적극적으로 도입·활용하면서 대규모 건물 건립이 가능해진다. 아치 공법은 헬레니즘 시대에 이미 나타난다. 위에서 누르는 중력을 아치로 분산해 안정된 건물을 만들 수 있다. 그리스는 아치 공법이 아닌 사각형 기반을 사용한다. 지중해 고대 유적이라 해도 아치 공법 여부에 따라 건립 시기를 간단히 추정해낼 수 있다.

셋째는 수도관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모든 물은 수도관을 따라 로마의 도시로 향한다. 로마의 수도관은 크고 높고 긴 초대형 다리를 통해 연결됐다. 원조는 메소포타미아 농사용 수로 시설이다. 그리스는 로마처럼 높이 10m 고공 수도관이 아닌, 지하 10m로 내려간 시설이다. 지하로 뚫고 들어가 땅 밑 수로를 통해 목욕탕까지 물을 공급했다.

로마 목욕탕은 필자가 매년 적어도 열 군데는 찾아가는 상설 순례지다. 글을 쓰는 시점에도 터키 지중해 해안에 와 있지만, 그리스 로마 유적을 방문하면 목욕탕부터 눈에 띈다. 의도적으로 보려고 해서 접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 도시 어디에 가도 남아있는, 2000여 년간 생존해온 ‘유일한’ 건물이 목욕탕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로마 공공 도시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시설이 목욕탕이다. 다른 건물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도, 목욕탕은 반드시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왜일까? 워낙 규모가 크고 양적으로도 많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 목욕탕의 구조다.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터키·이스라엘, 그 어디에 가도 거의 비슷하다. ‘콘크리트·아치·수로’라는 3박자 신기술과 더불어, 거의 통일된 구조로 세워져 있다. 실내 사우나와 온수·냉수 욕탕, 실외 풀장과 마사지, 스포츠클럽이 목욕탕의 기본 요소다.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식당도 인접해있다. 바닥은 대리석이고, 물을 데우는 시설도 목욕탕 밑 지하에 설치돼 있다. 사우나를 가동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땔감이 필요했다. 산꼭대기 도시에 들어선 목욕탕이라도 구조는 비슷하다.

콘크리트·아치·수도교의 발명


▎산 중턱에 들어선 로마 목욕탕 흔적. 아치형 공법으로 크고 넓은 목욕탕 건설이 가능해졌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어떻게 수천㎞ 떨어진 곳에서도 똑같은 구조의 목욕탕을 건립할 수 있었을까? 답은 로마군이다. 목욕탕을 세운 건설 인력이 바로 로마군이다. 로마군은 싸움만이 아닌, 도로·축성·토목 공사의 전문가다. 작은 일은 노예나 현지인에게 시키지만, 큰 그림과 구조는 로마군의 몫이다. 미국 건국 위인들이 건축이나 도시계획에 관심을 가진 것은 로마사의 전통과 교훈에 따른 것이다. 건설·건축에 능해야 하는 것이 로마 지도자의 조건이다. 지도자는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쌓고 세우는 일에 전력해야만 한다. 로마 황제들이 경쟁하듯 목욕탕 건립에 나선 것도 그 같은 배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로마군이 세운 목욕탕은 로마군이 애용하는 시설이기도 하다. 속주나 식민지 곳곳에 세워진 목욕탕의 최대 단골손님이 바로 로마군이다. 전쟁에서 돌아와 목욕탕에서 몸과 마음을 푼 뒤, 신전에 가서 신을 찬미하면서 승리를 기약하는 것이 로마군의 일상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로마 목욕탕은 5세기 서로마 멸망 후 기독교 초기 교회 시설로 활용된다. 지중해 고대 유적지 곳곳에서 확인했지만, 어느 정도 큰 고대 교회의 99%가 로마 목욕탕에서 시작된다. 신전을 교회로 바꾼 경우도 있지만, 높은 천장에다 격벽 없이 뻥 뚫린 목욕탕이 교회 시설 영순위가 된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침례 의식의 물 공급지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목욕탕이 제격이다.

로마 목욕탕 건물은 20세기 들어서도 건축사의 모델로 재활용된다. 미국 시카고 철도청사와 뉴욕 펜(Penn) 스테이션 철도청사는 로마 카라칼라(Caracalla) 목욕탕 내 냉수시설 건물(Frigidarium)을 본뜬 것이다. 둥근 아치형 목욕탕 건물이 초대형 미국 철도청사로 부활한 셈이다.

노천 풀장 아래 비치는 고대 유적


▎로마의 건축은 콘크리트 발명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이후 로마를 이은 비잔틴은 벽돌을 콘크리트에 연결해 사용했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로마 목욕탕 순례 도중 얻는 기쁨 중 하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도 활용 가능한 목욕탕이 ‘가끔’ 있다.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내륙에 위치한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에는 필자가 가장 아끼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노천 목욕탕이 있다. ‘파묵칼레(Pamukkale)’로 알려진, 하얀 석회석 단층이 수직으로 길게 연결된 지형에 조성된 목욕탕이다. 터키어로 파묵(pamuk)은 목화, 칼레(kale)는 성(城)을 의미한다. 석회석 단층이 ‘목화의 성’ 같다는 의미에서 파묵칼레로 명명됐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 바로 위에 들어선 고대 고원 도시다.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히에라폴리스 목욕탕은 길이 50m, 폭 20m, 깊이 1m 규모의 온천 풀이다. 로마 목욕탕이 근처에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목욕탕이 아닌 야외 온천 풀에 해당한다. 현지에서는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수영장으로 통한다. 한 번이라도 체험한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할, 인생에 남을 영원한 추억이 될 것이다. 고대 로마 유적들이 온천 내 물속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대리석 기둥과 건물 파편들이 온천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원래 고대 건물터였지만, 로마 목욕탕의 온천수가 흘러들어오면서 노천 풀장으로 변한 것이다.

이곳을 들를 경우, 물안경·귀마개·수영복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필자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온종일 머물곤 한다. 아름다운 일몰을 보기 위해 몸이 불어터질 정도로 머문다. 수영 중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이슬람 코란(Quran)도 들을 수 있다. 바로 옆에 식당이 있기 때문에, 가끔 밖에 나와 음료나 음식도 즐길 수 있다. 섭씨 30도 정도의 온수로, 여름보다 겨울이 제격이다. 입장료가 10달러 정도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고대 유적지 온천 풀장이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2세기부터 발전된 도시로, 서기 3세기 최전성기에는 무려 10만 명이 거주했던 대도시다. 목욕탕은 물론, 극장을 비롯한 공공시설들의 규모가 엄청나다. 로마 황제 가운데 2세기 하드리아누스와 3세기 카라칼라가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황제가 방문한다는 것은, 재화가 넘치는 도시라는 의미다. 황제가 도시에 특별한 권리나 역할을 부여하는 대신, 현지 지도자는 황제에게 엄청난 돈을 바쳐야만 했다. 도시의 명성과 권위를 높이는 특권이 황제의 무기였다. 황제 방문에 맞춰 황제용 신전이 급조되기도 했다. 이 모든 도시 번영의 비밀은 온천에 있다. 기도와 치유 목적으로 대제국 전체에서 몰려오면서 히에라폴리스는 에게 해의 황금도시로 부상한다.

로마 목욕탕과 한국의 찜질방


▎히에라폴리스 클레오파트라 풀장 전경. 원래 신전이었지만, 온천수를 발견하면서 자연 풀장으로 탈바꿈했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특이하게도 히에라폴리스에는 지하의 신, 하데스(Hades)를 기리는 신전이 존재한다. 로마명 플루토(Pluto)로, 죽은 뒤 만나는 신이다. 일명 ‘지옥의 문(Gate of Hell)’이라 불리는 좁은 지하 통로가 신전의 전부다. 로마 당대에는 주기적으로 의식용 동물을 지옥의 문 앞에 바쳤다고 한다. 지중해와 에게해를 통틀어 지하의 신 하데스를 기리는 신전은 극히 드물다. 지옥의 문이 히에라폴리스에 들어선 이유는 온천에 있다. 온천에서 나오는 유해한 독성물질 탓에 의식을 잃거나 죽는 사람도 나타났다. 지옥의 문은 독성물질이 가장 강하게 나오는 곳이다. 하데스가 머무는 지하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라 해석했을 듯하다. 현재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로마사나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냥 스쳐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다.

히에라폴리스는 기독교인에게는 필수 방문지로 손꼽힌다. 예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필립(Philip, 한국명 빌립보)이 포교·순교한 곳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기독교 초기 선교 역사를 보면 사람이 몰리는 곳이 포교의 주대상지다. 서기 1세기 히에라폴리스의 번영을 짐작케 한다.

흥망성쇠는 우주의 철칙이다. 로마 목욕탕의 역사는 4세기 기독교가 국교로 정착되면서 ‘한순간’ 사라진다. ‘목욕=부도덕 매춘’으로 본, 원리주의적 편견 때문이다. 국가의 정체성이나 통합은 기독교도의 관심 밖이다. 국가·사회· 가족이 아닌, 신을 향한 신앙만이 전부다. 목욕과 무관한, 21세기 이슬람 권역의 문화를 보면 중세 유럽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히에라폴리스를 비롯, 대부분의 로마 내 목욕탕이 폐허로 변해간다.

도쿄발(發) ‘신어·유행어 대상’은 12월 초 등장하는 한해 결산 이벤트다. 올해는 ‘원 팀(One Team)’이란 말이 유행어 대상에 선정됐다. 올해 일본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일본 국가대표팀이 내건 구호다. 일본 대표팀은 올해 럭비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는 등 선전해 열도를 흥분케 했다. 그런데 일본 대표팀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다. 한국인도 한 명 들어가 있다. 외국인이라도 일본에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One Team’이 대상에 오른 듯하다. 일본판 ‘인간 통합’의 현장이 럭비인 셈이다.

한국이란 나라의 정체성과 한국인 통합에 기여하는 것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찾아보면 있을 법도 한데,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다. 태극기나 애국가도 색깔 논쟁에 들어간 지 오래다. 목욕탕도, 단순히 몸을 씻는 생활의 일부로 기능할 뿐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통합이란 차원에서 한국인만이 가진, 한국인도 잘 모르는 경쟁력 높은 한류가 하나 있다. 찜질방이다. 형형색색의 사우나시설을 갖춘 뉴욕의 찜질방은 닳고 달은 뉴요커들의 관심사 중 하나다. 다른 주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갔다 온 미국인 친구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목욕 중 인스턴트 라면을 즐기는 한국인이 신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2000년 전 로마 목욕탕에서 시작된 인류의 DNA가 부활했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다. 국가·국민 단위의 통합과 정체성을 넘어, 글로벌 하모니를 위한 한국 찜질방 보급도 고려해볼 만하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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