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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총력진단] 청와대와 부동산의 끝없는 연장전 

시장과 정부, 갈 데까지 간다 

12·16대책 이후 거래 급감… 공급 부족 상승론과 보유세 증가 하락론 맞서
추가 규제 예고 속 재산권 위협받아… 집값 안정 아닌 양극화 심화 우려


▎부동산과의 전쟁에 이겨서 여권은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과격한 정책으로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 / 사진:연합뉴스
12·16대책은 한마디로 ‘집 좀 그만 사’라는 정부의 메시지다. 대출 규제, 보유세 인상, 장기보유 특별공제 조건 강화, 분양가 상한제 범위 확대, 전세대출 일부 제한, 조정 대상 지역 내 일시적 1가구 2주택 양도세 면제 허용 기간 단축 등, 집요하리만치 수요 억제에 집중했다.

12·16대책에서 공급 유도 정책은 거의 없었다.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2020년 6월까지 팔면 양도세 중과를 배제해준다는 것이 유일하다. 수요는 정책으로 눌렀고, 공급은 나오지 않으니 거래절벽이 발생했다. 대책 이후 한 달, 서울 집값은 내려간 것이 아니라 냉각됐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12·16대책에서 ‘정부의 고심’을 읽었다.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0으로 만든 정책은 헌법소원이 제기될 정도로 논란이다. 4월 총선 국면에서 어떻게든 집값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결연함이 응축돼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항상 거시경제를 집값의 제1 변수로 여겼는데, 올해는 정부 정책”이라고 밝혔다.

‘집값마저 폭락하면 정말로 디플레가 올 수 있으니, 정부가 원하는 집값 안정은 보합이지 하락이 아닐 것’이라는 시각은 문재인 대통령의 거듭된 초강경 발언으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1월 7일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1월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도 “일부 지역은 서민들이 납득하기 어렵고 위화감을 느낄 만큼 급격히 상승한 곳이 있는데, 이런 지역들은 가격이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더욱 강력한 대책을 끊임없이 내놓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통령이 집값 안정론자가 아니라 하락론자처럼 말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직접 관련된 주거 정책은 시장경제의 룰에 맡겨둬선 안 된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신년사(2019년 12월 31일)도 유사한 결이다.

한 전문가는 “시장의 재료들만 놓고 보면 올해 부동산은 아무리 찾아봐도 하락할 요인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정부는 명운을 걸고 상승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시장과 정부가 ‘갈 데까지 가겠다’는 태세에서 2020년 부동산은 어디로 기울 것인가.

떨어질 수 없다 vs 오를 일 없다

90만 명 이상의 회원 수를 보유한 네이버 카페 ‘부동산스터디’는 상승론자와 하락론자의 여론이 실시간으로 교차하는 공간이다. 12·16대책 직전에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산 사람의 기분이 어떨지를 놓고 이 카페에선 격론이 붙었다. 상승론자는 대출이 막히기 전 극적으로 ‘막차’를 탔으니 안도할 것이라며 부러워한다. 어차피 집값은 장기적으로 우상향이니까 살다 보면 언젠간 구매한 가격 이상으로 올라 있으리라고 믿는다. 반면 하락론자는 며칠을 못 참고 ‘상투’를 잡았다며 동정심을 표출한다. 소수 현금 부자를 제외하면, 15억 넘는 아파트 수요가 사라졌으니 기약 없는 마음고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여긴다.

상반된 두 가지 시선은 한 달여가 흘렀음에도 팽팽하다. 강남, 마포·용산·성동 등 핵심지 신축은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버티기 장세에 들어갔다. 매도 물량도 늘지 않고, 매수세도 붙지 않는 흐름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29주 연속 상승(1월 16일 한국감정원 발표) 중이지만, 상승 폭은 4주 연속 축소되고 있다. 상승론자는 그래도 올랐다는 지점, 하락론자는 추세가 꺾인 지점에 주목한다.

“2020년 서울과 수도권 요지 집값은 아무리 봐도 떨어질 수 없다”는 상승론의 근거로 공급 부족과 유동성 증가가 꼽힌다. 서울 등 수도권 요지에 거주하고 싶은 대기 수요는 넘친다. 청약 열기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경기도 안양 아르테자이 무순위 청약 경쟁률은 4191:1이었다. 8가구 분양에 3만3000여 명이 몰린 셈이다. ‘이런 수요를 받아줄 신축은 모자란다’고 시장이 해석한 결과다. 2020년 서울 일반분양은 5년 만에 최대로 알려졌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강동구 둔촌주공(일반분양만 4786가구)이 분양(4월 예정)에 나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 하반기 이후 공급절벽론이 부동산 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정부가 필사적으로 틀어막으려 해도 돈이 왜 부동산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시중은행 PB는 이렇게 반문했다. “당신에게 돈 20억원이 생겼다고 상상해보라. 예금·주식·금·달러·부동산 중에서 무엇을 1순위로 선택할 것인가?”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면 2020년 한국 경제도 다소나마 반등할 것이다. 이러면 소위 ‘좋은 일자리’가 줄지 않는다. 이는 집을 살 구매력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이 밖에 약 45조원의 토지보상금, 전셋값 상승 움직임, 금리 인하 예상, 4월 총선을 겨냥한 개발 공약 등은 집값의 하방 경직성을 담보한다.

이에 맞서는 비관론은 ‘집값이 내려간다’는 하락론자와 ‘오르지 않는다’는 조정론자로 나뉜다. 둘 다 “이제 부동산으로 큰돈 만지는 시대는 당분간 없다”는 시점은 일치한다. 하락·조정론자의 믿는 구석은 투자 메리트 감소와 정부 정책이 꼽힌다. 투자 상품으로서 부동산의 치명적 단점은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격 상승에 대한 피로도가 올라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 규제 폭탄까지 가세해 매수세가 줄어든다면 서둘러 살 매력이 떨어진다.

아직은 막연하게 다가오지만 6월과 9월에 재산세, 12월에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들면 보유세의 위력이 실감 날 것이다. 게다가 보유세는 해가 갈수록 더 올라간다. “보유세가 아무리 올라도 어떻게든 세금 내고 버틴다”에서 “한 채만 남기고 팔아야겠다”로 강남, 용산 부동산 부자들이 ‘출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은행가의 전언이다. 자산가들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는 부동산 법인이나 신탁도 세금을 더 맞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에 떨고 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처럼 여겨진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잠실주공 5단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호가가 고점 대비 2~3억 내려갔다. 재건축은 호재와 악재에 민감해 가격 출렁임이 심한 편이다. 15억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금지에 4월 이후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될 예정이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헌법재판소 합헌 판결(2019년 12월 27일)을 받는 트리플 악재에 휩싸였다. 상대적으로 재건축은 신축, 구축보다 전세가가 낮다. 갭 투자의 매력마저 줄어들었다.

강남 재건축이 저격당하면 시차를 두고 신축, 구축도 따라 떨어지는 것이 그동안의 패턴이었다. 그러나 18차례의 규제가 독할수록 시장도 내성이 세졌다. 역설적으로 ‘가치가 그만큼 있으니까 저렇게 규제를 가하는 것’이라는 학습효과가 생겼다. 이러다 보니 작은 불씨에도 시장은 격하게 반응한다. 1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목동 재건축, 마포 성산시영 등은 호가가 올라갔다.

12·16대책의 파격만큼 시장도 기상천외하게 반응했다. 대출 규제에서 벗어났던 9억 이하 아파트가 상승한다는 소위 ‘풍선효과’의 등장이다. 풍선효과의 실체를 두고, 상승론자와 하락·보합론자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다. 상승론자는 서울 외곽과 경기도 안양 평촌·수원 팔달·구리·광명·용인 등의 아파트값 주간 상승률을 근거로 풍선효과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최환석 팀장은 “상승의 힘이 외곽 지역으로 퍼지는 시점에 12·16대책이 나와 9억 이하 아파트가 키 맞추기를 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하락·보합론자는 풍선효과는 상승론자의 심리적 선동일 뿐 상식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고 일축한다. “그랜저(15억 아파트) 가격이 멈춰 있는데, 아반떼(9억 아파트) 가격 오르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동안의 급등 때에도 거의 안 올랐던 아파트를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샀다가 나중에 장이 꺾이면 가장 뒤늦게 팔리는 매물로 밀릴 수 있다.

상승론자는 “9억 미만, 9억~15억, 15억 초과 등 아파트 구간별로 투자 방식을 달리 가져가야 한다. 지금이 그나마 조정 구간이다. 지금 아니면 앞으론 정말 못 산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하락·조정론자는 “정부가 죽자고 달려드는 이런 시국에 투자는 의미 없다. 집 못 사서 죽은 귀신 붙은 것도 아니고 관망이 답”이라고 반박한다.

이렇듯 12·16대책 한 달이 지나도 가격은 움직이지 않고 눈치 보기만 이어지자, 정부는 초헌법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1월 15일 CBS 라디오에 나와 “정말 비상식적으로 폭등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부동산 매매 허가제를 둬야 한다는 발상도 하는 분들이 있다”며 “이런 주장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규제가 ‘자기 돈 있는 사람만 집 사라’였다면, 주택 거래 허가제는 ‘돈 있어도 못 사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의 뜬금없는 부동산 발언


▎12·16대책 이후 15억 넘는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은 막혔다.
사유재산권 침해 등 위헌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개인적 생각”이라고 차단했다. 국토부와 민주당도 발을 뺐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과 관련성이 없는 정무수석이 매매 허가제 운운한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강 수석이 총대를 메고 간을 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1월 15일 KBS 라디오에 나와 “강남 집값 안정이 목표다. 대출 규제 등 모든 정책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14일 “일부 지역은 위화감을 느낄 만큼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있었는데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말한 뒤, 청와대 참모들의 톤도 강해졌다. 문 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 5월 수준으로 ‘원상회복’하려면 은마아파트가 13억9000만원까지 떨어져야 한다. 최근 이 아파트는 23억원에 거래됐다.

정부가 준전시 상황처럼 부동산을 대하자,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혼란이 빚어졌다. 1월 10일 온라인에 떠돌아다닌 지라시(사설 정보지) 1장에 시장 참가자들이 출렁이자, 국토부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보도자료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지라시 내용에는 ‘초고가 주택 거래 허가제 도입’이 실려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부의 19번째 규제 내용 예상’을 저마다 내놓고 있다. 거의 일치되는 예견은 전세 규제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 청구권이 그것이다. 전·월세를 집주인 마음대로 못 올리고, 세입자에게 원하면 더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취지다. 이들 제도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으로 매력적이다. 다수의 세입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정부 공약이었음에도 이제껏 선뜻 손을 대지 못한 것은 그만큼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전·월세가 급등할 수 있고, 새롭게 가정을 꾸리는 젊은 부부들은 서울 요지에서 전셋집 얻기가 몹시 어려워진다. 가뜩이나 집주인들은 장기보유 특별공제 요건(향후 보유와 거주를 동시에 10년 이상 해야 80%의 양도소득세 면제) 충족이 더 까다로워져서 세를 준 집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이 와중에 이 제도까지 생기면 세를 줬던 집으로 반드시 들어가려 할 것이고, 서울 요지의 전세는 씨가 마를 것이다. 서민들은 갈수록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전세의 종말이 올까?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강경한 부동산 정책을 예고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만약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 청구권이 도입된다면, 대한민국 부동산의 독특한 제도인 ‘전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미국, 유럽처럼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만 남게 될까. 김학렬(필명 빠숑)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전세는 없어질 수 없다”는 쪽이다. 그 근거로 “임대시장의 85%를 민간이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 청구권이 도입된다면, 집주인들은 첫 번째 계약 때 전·월세 가격을 올려놓고서 시작할 것이다. 이러면 전셋값이 올라가고, 매매가와의 격차가 줄어든다.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가뜩이나 15억 넘는 아파트는 대출이 안 되니까 전세 낀 매물은 인기가 더 많을 것이다. 실제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세가는 5억에서 11억까지 올랐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 청구권에 대해 시장은 소급을 염려한다. 한 부동산학 교수는 “이런 고민까지 해야 싶지만 이 정부는 상식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김학렬 소장도 “시장에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소급 가능성을 낮게 봤다. 실제 상가 임대차보호법 실행 때에도 소급은 없었다. 집주인이 자기 집에 들어와서 살거나 부득이한 해외 장기출장 등에 한해, 최소한의 계약 갱신 청구권 예외 적용을 둬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다.

결국 ‘극한 부동산’의 본질은 정부 공급과 시장 수요 사이의 비대칭이다. 서울 주택 공급절벽론에 대해 서울시와 민간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서울시나 국토부는 “공포 마케팅일 뿐”이라며 강경하다. 반면 민간은 “서울시와 정부가 통계를 과대 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 인구가 줄고 있다. 그러나 공급이 적절하게 일어났으면 줄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비아파트 합쳐서 서울 주택 공급은 평균 8만 호다. 이 중 30~40%는 (헐고 짓는 것이니까) 멸실 주택이 나온다. 실제 증가량은 4~5만 호 남짓이다.” 이 교수는 서울 주택이 연 12만 호는 증가해야 인구가 줄지 않는 범위에서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결혼 후 분가하는 가구 분화 현상 등을 고려하면, 인구가 안 늘어도 새 집은 더 많이 필요하다.

서울 아파트 공급절벽 팩트체크


▎강기정(오른쪽) 청와대 정무수석은 1월 15일 부동산 매매 허가제를 언급했다. 김상조(왼쪽) 정책실장은 강남 집값을 겨냥 중이다. / 사진:연합뉴스
부동산114는 2021년 서울 아파트 공급을 2만1993가구로 전망했다. 2018~2020년 3만7000~4만3000가구 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이다. 반면 서울시는 2021년 3만8000가구 공급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기준의 차이다. 이 교수는 “서울시는 인허가 기준으로 준공 물량을 추정했다. 반면 부동산114는 분양 물량을 기초로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인허가를 내줬다고 아파트가 1~2년 새 뚝딱 지어질 순 없다. 서울시, 국토부의 숫자에 시장이 신뢰를 보내지 않는 이유다. 반면 부동산114 수치는 입주자 모집공고 기준이라서 뒤로 갈수록 오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서울시는 너무 낙관적, 부동산114는 꽤 보수적 계산법을 적용한 셈이다. 이창무 교수는 “공급절벽까지는 모르겠지만 2021년 물량이 줄어든다”고 봤다.

규제론자들은 재개발, 재건축으로 발생하는 주택 순증가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헐고 새 아파트를 지어도 원소유주가 들어와 살고, 일반분양분은 소량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주거 이전비 받으려고 숫자를 부풀리는 경우도 많아 통계상으로 많이 안 늘어난다고도 하는데, 재개발 전후의 똑같은 공간 비교를 해보면 30~40% 늘어난다”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집은 가족이 머무는 공간이다. 단순히 수량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 집이 얼마나 좋은지 따지는 질적 요소가 중시된다. 누구나 직장·주거 근접과 학군, 커뮤니티 등을 갖춘 서울 요지의 신축 아파트에 살기를 갈망한다. 녹물과 주차난에 시달리면서도 재개발 아파트에서 소위 ‘몸테크’를 불사하는 이유도 언젠간 신축 아파트가 될 것이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숱한 규제 향연에 공급 확대 시그널은 희미하다. 2021년 공급 위기가 우려되자, 규제 강도는 한층 독해지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목적이 공식적으로는 집값 안정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양극화 부추김 같다”며 “표 계산을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집 사는 사람 심정을 모르는 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7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이후 8·31대책이 나왔고 종부세, 양도세, 취·등록세를 전부 강화했다.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대출 규제도 신설했다. 큰 틀에서 문 대통령도 같은 코스를 밟고 있다. 단, 강도는 더 세다. 심 교수는 “15억 넘는 아파트 대출 금지는 상상도 못한 기발한 것”이라며 “정부는 투기꾼 1명을 놓쳐도 선량한 실수요자 10명을 살려야 하는데 반대”라고 성토했다.

금융위원회는 1월 16일 규제를 추가했다. ‘9억 이상 주택 보유자의 전세자금대출 회수’ 발표가 그것이다. 9억 넘는 집을 사놓고, 대출받아 다른 집에 전세 얻어 사는 갭 투자를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장기보유 특별공제도 이제 연간 거주 4%, 보유 4% 비율로 양도세 면제 구간이 올라간다. 거주를 의무로 만들어서 갭 투자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주택정책 실무자는 “정부가 갭 투자자를 보호해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전세 낀 집에 투자한 사람의 내면에는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가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나중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이 집에 들어가 거주하면 실수요자가 된다. 당장의 상황은 투자로 비치지만, 미래 어느 시점부터 실거주로 목적이 변경된다. 투자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만 갭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보다 좋은 환경에서 가족과 지내고 싶은 욕망이 작동한 측면도 있다. 이를 위한 현실적 ‘갈아타기’ 방편이 전세 낀 집 구매일 수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갭 투자와 실수요 사이의 경계는 이처럼 꽤 모호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갭 투자를 부동산 급등의 주범으로 여기는 셈이다. 장기보유 특별공제 혜택도 제대로 못 누리고, 신용대출 외 대출 제한 벽도 높였다. 갭 투자 차단은 필사적인데, 정작 갭 투자의 뇌관으로 꼽히는 전세자금대출 규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전세자금대출이 전셋값을 올리고, 결국 매매가를 밀어 올리는 구조가 명백함에도 그렇다. 전세대출을 막으면 총선에서 지지층 이탈이 생길 수 있다. “정부가 집값 안정과 총선 승리라는 두 가지 상이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다 보니, 유주택자들만 때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취재 중 접한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금 집 사는 사람들 심정을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1주택자와 무주택자들 피눈물 쏟게 만드는 정책은 반드시 부메랑 맞을 것.” “서울에 집 산 사람들이 돈 벌려고 사는 줄 아는가? 불안해서 사는 것.” “서울은 이토록 때리면서 왜 서울보다 상승률이 높은 대전, 광주는 그냥 두는가? 이것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부동산 정치다.” “새 주택을 못 짓게 한다. 서울시민은 언제까지 거지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규제의 종착역은 어디쯤일까?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서민들에게 행복한 시나리오는 아닐 듯싶다. 태산명동‘노’일필, 태산명동서일필(시작만 요란했지, 결과는 신통치 못할 때를 일컬음)을 패러디한 어휘다. 지금까지 강남 집을 판 정부·여당 핵심 인사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의 유일하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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