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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전문기자의 ‘마인드풀, 내 마음이 궁금해’(11)] 마음챙김 명소로 뜨는 종묘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곳 내 마음속 전쟁은 없다 

종묘~창경궁 연결 녹지축 복원되면 접근 쉬워져
영원한 부·권력 꿈꾸는 이라면 한번쯤 들려보길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놓은 종묘 정전. 종묘~창경궁 녹지축이 복원되면 종묘는 단순한 문화유산을 넘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는 최적의 명상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사진:배영대 기자
무엇이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킬 때 흔히 ‘심금을 울린다’는 말을 쓰곤 한다. 상투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 의미가 꽤 그윽하다. ‘심금(心琴)’이란 ‘마음의 거문고’라는 뜻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구체적인 사물인 거문고에 비유했다. 뭔가 일이 자기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화를 내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곤 한다. 마음의 거문고가 거칠게 울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거문고 줄의 튜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일종의 마음챙김 명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2020년 새해도 역시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라는 인사말로 시작했다. 새해 모두의 마음속 거문고가 행복하게 울리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새해맞이 무대에 세계의 스타들과 나란히 오른 방탄소년단(BTS)이 기원한 인사말도 ‘행복한 새해’였다.


▎새해 벽두부터 들려온 전쟁 소식.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주둔지를 미사일 공격하는 장면. / 사진:연합뉴스
그 소망이 무색하게 신년 벽두부터 전쟁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란과 이라크 부근의 오래된 분쟁 지역에서 전해지는 소리다. 마음챙김 명상의 관점에서 전쟁은 극단적 소음이다. 어떻게 하면 전쟁을 평화로 돌릴 수 있을까? 국제적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전쟁도 만만치 않다. 남북한 대치 상황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남남 갈등이 거의 전쟁 수준이다. 그런 국내외 전쟁을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은 내 마음의 전쟁이다. 우리는 온통 전쟁 속에서 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새해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건축가 김석철의 서울 그랜드 디자인 실현


▎종묘~창경궁 연결 공사 현장. 율곡로를 지하화함으로써 본래 하나로 연결되었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왼쪽 숲이 종묘, 오른쪽 숲이 창경궁. / 사진:연합뉴스
새해 첫 휴일에 서울 종로4가에 있는 종묘를 찾았다. 지난 12월 말 종묘~창경궁 사이의 율곡로 터널이 확대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한번 가보려던 참이었다. 종묘와 창경궁은 본래 하나처럼 연결된 궁이었는데 1931년에 일제가 그사이에 도로를 내면서 두 개의 섬처럼 갈리게 되었다. 해방 이후 작은 구름다리를 설치함으로써 서로 연결을 시키긴 했지만 옹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별개였던 것처럼 알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종묘와 창경궁이 제대로 연결되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종묘~창경궁 녹지축 연결 공사가 진행 중이고 현재 개통된 것은 지하 율곡로만이다.

2001년 말 건축가 김석철을 만난 일이 기억난다. 필자가 종묘~창경궁의 녹지축 복원 구상을 처음 접한 것은 그때였다. ‘600년 역사도시’를 강조하면서 서울의 역사성과 환경과 관광자원을 되살리자는 그의 열정적 웅변이 인상적이었다. 김석철의 그랜드 디자인에는 종묘~창경궁 녹지축 복원, 청계천 복원, 광화문 광장 조성 등이 포함되었다. 이 같은 김석철의 구상은 2002년 초 중앙일보에 기획특집으로 연재되었다. 그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이를 공약으로 채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노무현, 이회창 후보 측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를 눈여겨본 것은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명박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청계천 복원 사업은 시작되었고, 광화문 광장에 이어 종묘~창경궁 녹지축도 이제 살아나게 되었다. 신문 연재를 위해 김석철을 수시로 만나며 서울의 그랜드 디자인을 함께 꿈꾼 일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놓은 곳이다. 단순한 문화유산이라기보다는 이제 마음챙김 명상의 관점에서 새롭게 주목받을 만하다. 삶과 죽음이 만나는 도심의 명상 공간으로 제격인 것 같다. 아무리 많은 권력과 부를 지녔다고 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부귀영화를 누린 제왕도 결국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랜드 디자이너 김석철도 이미 떠났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원히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 것 같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가 지금 있다면 잠시 시간을 내서 종묘를 한 번 들려보길 권하고 싶다.


▎1월 11일도 서울 광화문은 보수와 진보로 나뉜 시위대로 뒤덮였다. / 사진:연합뉴스
가만히 숨을 가다듬고 마음의 거문고를 조율해보자. 거문고 줄이 어떤 상태인가. 팽팽하다고 해서 다 소리가 고운 것은 아니다. 줄이 느슨해선 물론 안되겠지만 너무 팽팽해도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느슨하지도 않고 팽팽하지도 않은 적당한 조율은 거문고를 통해 경험하는 중도 혹은 중용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다. ‘거문고 중도’는 마음챙김 명상과 닮아 보인다. 과유불급(過猶不及)도 같이 연상되는 사자성어다. 중도를 중시한 공자의 말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또 다른 제자인 자장과 자하를 품평하면서 둘 중에 누가 더 낫냐고 물었다. 공자의 대답은 “자장은 지나치고(過),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不及)”는 것이었다.

자공이 재차 물었다. “자장이 더 낫다는 말씀인지요?”

공자가 답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늘 적당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가 된다. 때와 상황이 주요한 고려사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중(時中)’, 즉 상황에 맞는 중도가 필요할 텐데 시중을 알아차리는 훈련이 마음챙김 명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상사의 시비는 대개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 사이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거나,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나 등을 놓고 판단을 하는데, 어떤 기준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를 놓고 또 갈등이 발생한다. ‘끝없는 갈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음챙김 명상은 영원한 갈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명상가 틱낫한의 언급을 참고할 만하다.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으면서 전체 현실을 사랑


▎세계적 명상가 틱낫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의로운 행동에 기꺼이 뛰어들려는 사람들이 부족한 게 아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으면서 전체 현실을 껴안을 수 있고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다.”(틱낫한 지음,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이 말한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쉽진 않겠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마음챙김 명상의 관점이다.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으면서 전체 현실을 껴안을 수 있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 틱낫한이 말하는 그 사람은 공자가 말하는 중도를 실천하는 군자를 닮은 것 같다. 군자와 소인의 경계도 그리 먼 것만은 아닌 듯하다. 마음 씀씀이에 따라 때로 군자도 되고, 때로 소인도 되는 것이다.

마음챙김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군자인가, 소인인가. 어제의 군자라고 해서 오늘도 무조건 군자인 것은 아니다. 군자도 실수를 한다. 어제 소인이었다고 해서 오늘도 소인은 아니다. 변화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즉각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바뀌어야 사회가 변한다. 내 마음속 전쟁이 사라져야 사회의 전쟁도 사라질 수 있다. 틱낫한이 말했듯이, 정의로운 행동에 기꺼이 뛰어들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게 아님을 되새겨 보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내 마음을 돌이켜 보는 일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 마음이 지금 어디에 가 있는가. 변화하기 위해선 우선 멈춰야 한다. 멈춤은 변화의 시작이다. 멈춰서 호흡 한번 크게 해보자.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한 악기가 고운 소리를 낼 수 있게 조율해보자. 올해 우리 사회 곳곳에 감동이 넘쳐 마음의 거문고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일이 늘었으면 좋겠다.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박스기사] 명상을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려면… 전화벨 울릴 때마다 동작 멈추고 심호흡 해보자

단 1분 만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음의 주의를 자신의 호흡에 모아보는 것으로도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할 수 있다.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순간만큼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이리저리 방황하던 마음이 그 순간 내 호흡에 모인다. 이런 호흡이 그리 어려운 것일 수는 없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데, 다만 그러한 마음챙김을 지속적으로 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습관에 얽매여 살기 때문이다. 몸의 동작, 감정의 느낌, 생각의 패턴 모두 우리가 의식적으로 주의하지 않으면 습관대로 반응하곤 한다.

다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희망적인 소식은 없을 것이다. 새해에는 내 마음의 습관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전화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이다. 스마트폰이나 사무실의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동작을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어 보자. 전화벨이 마음챙김 명상벨이 될 수 있다. 틱낫한이 권하는 일상의 명상법이다. 거리를 걸을 때 만나는 신호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일종의 명상 벨이 울리는 신호로 알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다. 전화벨· 신호등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 속에서 무엇이든 명상 벨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중앙콘텐트랩 - 학술기자 20년 외길을 걸어온 국내 굴지의 학술전문기자다.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불전국역연수원·민족문화추진회·도올서원 등을 거쳐 서강대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대한제국 120년, 다시 쓰는 근대사] [실학별곡, 신화의 종언]이 있다.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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